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 제3주간 월요일 강론>
(2024. 1. 22. 월)(마르 3,22-30)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마르 3,22-27)”
마귀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쫓아낼 수 없고,
‘하느님의 힘’으로만 쫓아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만물의 주님이신 하느님에게만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신 일은 “예수님은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이 드러난 일입니다.
그런데 율법학자들의 눈에는 예수님이 ‘사람’으로만 보였습니다.
<율법학자들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귀들을 쫓아내시는 것을
직접 보았고,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힘’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고, 마귀들이 쫓겨난 것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래서 율법학자들이 생각해낸 ‘논리’가 바로 “예수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 라는 논리입니다.
마귀들은 자기들의 우두머리에게 복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라는 말도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의 ‘억지 논리’를
‘합리적인 논리’로 반박하십니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라는 말씀은,
사탄, 즉 우두머리 마귀라고 해도, 부하 마귀들을 쫓아내지
못한다는 뜻인데, 부하 마귀들이 우두머리 마귀에게 복종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거슬러서
싸울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마귀들의 속성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귀들은 단합이 잘 되는 조직체가 아니라,
‘분열될 수 없는 한 덩어리’인 존재입니다.
만일에 마귀들이 분열되어서 자기들끼리 싸운다면,
그것은 스스로 멸망하는 일이 될 뿐인데, 마귀들은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멸하는 길을 선택하지 못합니다.
<쉽게 말하면 마귀들은 자살하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24절-26절의 말씀은, 마귀들이 단합을 잘하고 결속력이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들은 스스로 멸망하는(자멸하는)
길을 선택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율법학자들도 마귀들의 속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논리를 반박하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기는 싫어서
그냥 침묵을 지킨 것으로 생각됩니다.
27절의 ‘힘센 자’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들을 가리킵니다.
그 ‘힘센 자’를 묶어 놓는 ‘더 힘센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라는
말씀은, ‘사람의 힘’으로는 마귀들을 쫓아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재물’은 마귀들의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뜻하고,
‘재물을 털다.’ 라는 말은 마귀들의 억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라는 말씀은,
‘예수님만이’ 마귀들을 쫓아내실 수 있고,
마귀들의 억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을 쫓아내심으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권한과 권능’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계시이기도 합니다.)
‘참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참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에서 살아 계시면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믿음입니다.
나중에 사도들은 마귀들을 쫓아낼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쫓아냈는데, 마귀들은 아버지 하느님에게 복종하는 것과
똑같이 아들 예수님에게도 복종해야 하고,
‘예수님의 이름’에도 복종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예수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마르 3,28-30).”
여기서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는 일반적인 죄를 가리킵니다.
‘신성을 모독하는 죄’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죄,
그리고 예수님을 안 믿는 죄로 해석됩니다.
“용서받을 것이다.”는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부정하고
모독하는 죄로 해석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구세주로서, 또 하느님의
아드님으로서, 또 하느님으로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들입니다.
<그 일들에는 용서, 사랑, 자비 등도 모두 포함됩니다.>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라는
말씀은, ‘회개해도 소용없다.’처럼 들리는 말씀인데,
정말로 그런 뜻일까? 그런 뜻은 아니고,
그만큼 ‘큰 죄’ 라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누구든지, 또 무슨 죄를 지었든지 간에, 진심으로 회개하면
용서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부정하고,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용서받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받기를 거부해서 용서받지 못하게 됩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3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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