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날
조 흥 제
11월22일은 김치의 날이다. 지구촌에서 김치의 날을 제정한 나라 및 주도가 14곳에 이른다. 자랑스런 우리 문화유산인 김치의 날을 맞이하여 기치송이 나왔다.(오연복 작사, 임긍수 작곡, 임청화 노래)
국수가락에 열무김치
고구마엔 동치미
깍두기와 갓김치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김장김치 쭉 찢어
흰밥위에 척 걸치면
고기반찬 고마우랴
보약밥상 따로 없네
근육은 불끈불끈
소화력도 금상첨화
…
요즈음 깍두기의 매력에 빠졌다. 이웃에 사는 애들이 깍두기를 큰 통으로 한 가득 가져 왔다. 김치는 시큼하고 맛이 없어서 ‘꼰대가 먹는 반찬’이라고 했다. 연탄가스 마신 사람에게 김치 국물을 마시게 하면 깨어난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김치를 안 먹었다. 그런 김치를 요즘 맛있게 먹으니 나도 ‘꼰대’가 된 모양이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 사는 사람은 김치 생각이 나는가 보다. 심지어 노래에까지 김치를 넣은걸 보면. 김치 주제가는 1985년 ‘김치 없이는 못 살아, 정말 못 살아’라고 말하는 대표적 김치 예찬 노래다. 김치 사랑을 듬뿍 담은 노래로 ‘김치 깍두기’도 있다. 같은 제목의 두 노래가 있는데 한 곡은 1926년 윤심덕이 음반에 실은 ‘김치 깍두기’이고, 다른 한 곡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김시스터즈가 1970년 한국에서 녹음한 ‘김치 깍두기’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세 딸인 숙자, 애자, 민자로 구성된 3인조 걸 그룹인 김시스터즈는 1959년에 미국에 진출했다. 1926년 잡지에서 윤심덕이 부른 김치 깍두기의 노랫말을 찾는데 1930년대 노래책에서 그 악보도 확인했다. 노랫말은
저 건넛마을 김첨지 두 양주가 아침밥을 먹는데
그 영감이 마누라를 돌아보며 이것 좀 맛보소
그 마누라가 영감을 바라보며 그것 참 맛 좋소
김치 깍두기 참 맛 좋쇠다.
이 가사는 윤심덕이 부른 노랫말인가 보다. 1926년 사회상은 그런 분위기였으리라.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맛으로 밥을 먹을까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없으면 왠지 허전해
김치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잊어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 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만약에 김치가 없어진다면
무슨찬으로 상을 차릴까
중국음식 일본음식 다차려놔도
김치빠지면 왠지 허전해
김치없인 못살아 정말 못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잊어
맛으로보나 향기로보나 빠질수 없이
입맛을 바꿀 수 있나
이 노래는 85년도에 나온 ‘김치 없이는 못 살아 정말 못살아’는 장유정의음악 정류장으로 되어 있고 노래 부른 가수는 찾지 못했다.
김시스터즈의 ‘김치 깍두기’는 ‘머나 먼 미국 땅에서 십년 넘어 살면서 고국 생각 그리워’하고 시작된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동생 애자가 울면서 김치가 먹고 싶다고 한국에 있는 언니 숙자에게 호소하여 김치를 보내 주었다. 애자가 김치 찾으러 갔으나 김치가 없었다. 김치 국물이 새어 버렸다는 말을 듣고 무척 서운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온 노래여서 더 애착이 가는지도 모른다.
머나 먼 미국 땅에 십년 넘어 살면서
고국 생각 그리워 아침 저녁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후스텍 맛 좋다고 자랑쳐도
우리나라 배추김치 깍두기만 못하더라
코리아의 천하명물 김치 깍두기 깍두기
자나깨나 잊지 못할 김치 깍두기
낯설은 타국 땅에 몇몇해를 살면서
고향 생각 그리워 오나가나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후스텍
…
나도 젊어서는 김치를 싫어했으나 지금은 좋아한다. 저녁에는 빈대떡을 주로 부쳐 먹는데 김치 국물이 없으면 색깔이 희어 보기도 싫고 맛도 없다. 찌개에도 김치가 안 들어가면 색깔부터 마음에 안 들고 맛도 없다.
깍두기에 대한 종래의 인식은 딱딱하고 셔서 먹기가 나쁘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데 요즘 먹어 보니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김치는 처음 먹어 본다. 조그마한 플라스틱 반찬 그릇에 한 가득 퍼서 상에 놓고 씹으면서 감상하면 짜지도 않고 싱겁지도 않고 맨 입에 먹어도 맛있다. 국물도 짜지도 싱겁지도 않아 숟갈로 떠먹으면 입에 착착 붙는다. 반찬 통에 있는 걸 맨 입으로 다 먹는다.
자고로 배추는 가래를 성하게 하고 무는 가래를 삭혀 주는 역할을 한다고 배웠다. 노인들에게 따라 다니는 고질병은 해소다. 고질적인 기침이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 기침약이 많아 기침을 달고 사는 노인이 없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겨울이면 기침을 하는 노인들이 많았다. 그런 노인들은 무김치를 많이 먹었다. 그때는 김장을 무와 배추를 절여 고춧가루를 넣으면 끝이었다. 양념이 새우젓도 없었다. 그걸로 저녁이면 김치죽을 쒀 먹었다. 김치는 반 양식이었다.
김치에서 벗어난 것은 90년대 이후였던 것 같다. 60년대에는 연탄가스를 맡아 김치 국물이 필요했고 90년대에는 연탄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양념과 젓갈류를 넣은 김치를 만들어 먹었다.
영원한 우리의 김치가 세계인이 좋아하는 식품으로 거듭난다니 참 좋다. 일본이 자기들이 김치의 원조라고 ‘기무치’라고 했다가 세계 식품 검사에서 불합격되고, 지금은 중국이 자기들이 김치의 원조라고 한다니 이를 어쩌나. 하지만 중국의 김치는 장아찌 비슷한 김치로 안다. 우리의 김치와는 전연 다르다. 시뻘건 고추에 여러 가지 젓갈류를 넣은 김치는 우리밖에 없다. 깍두기를 먹으면서 김치의 날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