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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도 청년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사랑 이야기 울고 넘는 박달재 |
- 여강 최재효 作 |
지금은 국민가요가 된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에 얽힌 사연을 중편 소설로 다루었습니다. 본 작품은 제천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 경상도 총각 박달(朴達)과 충청도 제천 처녀 금봉이의 이루지 못한 비련(悲戀)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울고 넘는 박달재-38
아지는 그만 박달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하고 영영 다시는 만날 인연이 아닌가?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서방님이 갈만한 장소는 거의 다 찾아봤지만 어디에도 안 계시니 이를 어쩌나. 도대체 어디를 가야 서방님을 만날 수 있을까? 칠패, 칠패시장 주변에도 주막이 몇 군데 있지. 그곳을 가봐야겠어. 그곳에도 안 계시다면 한양에 안 계신거야.’ 아지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칠패시장 주변을 뒤져보기로 하였다. 그녀는 마차에서 내려 마부와 걸으며 찾아보기로 하였다. 마차를 타고 가면 속도가 빨라 골목에 있는 주막이나 규 모가 작은 주막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었다. 먼저 숭례문주변을 둘러보았다. 눈이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한양의 백성들이 바삐 숭례문을 드나들었다. 눈 덮인 숭례문 지붕에 일렬로 늘어선 어처구니들이 춥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 르는 것 같았다. 녹색 과 붉은색, 황금색으로 칠해진 숭례문 단청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는 듯 고색창연하면서도 위엄을 느끼게 하였다. 숭례문 아래 좌우로 벙거지를 쓰고 검정색 옷을 입은 병사 두 명이 시커먼 벙어리장갑을 끼고 삼지창을 들고 서 있었다. 그들은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이상하다고 판단되는 행인을 세워놓고 그들의 소지품을 일일이 검사하며, 범인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과 대조 하였다. 푸른색 철릭을 입고 전립(戰笠)을 쓴 사령인 듯한 자가 칼눈을 뜨고 행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아지는 칠패시장에 있는 주막 서너 곳을 뒤져보고 주모에게 물어 보았다. 박달과 비슷한 인상을 보았다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혹시나 싶어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박달과 키와 인상이 비슷한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박달과 비슷한 사내는 만날 수 없었다. “저기여, 이 칠패시장통 말고 다른 데 주막이 또 있나요?” “저기 시장 끝에서 목멱산 쪽으로 조금만 가면 주막이 있을 거요. 왜요? 우리 집 국밥도 맛있는데 들고 가시지?” 아지가 방금 전에 들렸던 주막에 다시 들려 묻자 주모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지와 마부가 그 주모가 알려준 대로 남산 쪽으로 한참을 걷자 주막이 나타났다. 마침 시장기를 느낀 아지와 마부는 주막에 들어 국밥을 시켰다. 마당에 쳐놓은 포장에 눈이 쌓인 것을 간난이 바지랑대로 툭툭 치며 털어 냈다. “저어, 아가씨, 뭣 좀 물어 볼게요.” 아지가 간난이를 부르자 그녀가 쪼르르 달려왔다. “뭔데요?” “혹시 이 주막에 박달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령이 기거하고 있지 않나요? 아니면 며칠밤 묵어갔던지.” 아지가 박달의 초상화를 간난이에게 보여 주었다. ‘앗, 바, 박도령님 얼굴이-.’ 간난이는 아지가 박달의 아내나 혹은 일가친척인가 싶어 ‘그 분은 이 주막에서 먹고 자면서 일하고 있어요.’라는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가씨, 이런 남자 분 못 봤어요?” 아지가 재차 물었다. ‘어쩌나, 박달 도령님이 물을 길러 가셨는데 금방 올 텐데…….’ “네에, 못 봤는데요.” 간난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눈을 내리깔며 짧게 대답하였다. 아지가 막 국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을 때 박달이 물지게를 지고 마당으로 들어서다가 아지와 시선이 마주쳤다. “앗, 서, 서방님-.” ‘아니, 아지가 여길 어떻게 알고?’ 박달은 아지를 보고 깜짝 놀라며,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서방님, 이게 어찌된 거예요?” 아지가 평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박달의 초췌한 모습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대가 여긴 어쩐 일이오?” “서방님, 제가 잘못했어요. 흑 -” 아지가 박달 앞에 서더니 반쯤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에 보는 임이었다. 아지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으며 훌쩍거렸다. “나는 그대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소. 그러니 돌아가오. 난, 이 주막에서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 종일 물 긷고, 가마솥에 불 지피고, 손님들에게 국밥 나르고, 술을 나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 소. 마음 하나는 참으로 편합디다. 그대가 나를 다시 찾을 줄은 몰랐소.” 박달은 과거 낙방하던 날 밤 운종가에서 아지로부터 박대를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무슨 일로 자신을 찾아 왔는지 한편으론 궁금하기도 했다. “서방님, 제가 잘못했어요. 저와 그만 돌아가요. 여기는 서방님이 계실 곳이 아닙니다. 어서 저와 마포로 돌아가요.” “난, 이곳이 편하오.” “서방님, 안됩니다. 저와 가셔요.” 아지는 눈물로 하소연 하였다. 곁에서 두 사람을 바라보는 간난이의 눈이 빛났다. “아니오. 난 이곳이 편하오.” “서방님, 안 됩니다. 어서 저와 마포로 가셔서 다시 시작하시는 거에요. 봄에 별시가 일을 지도 모른다 합니다. 한양에 소문이 파다하게 났어요. 다시 시작하세요. 제가 서방님을 정성으로 보필 할게요.” 아지가 일어나 박달의 소매를 잡았다. “난, 이곳에서 일하며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어요. 그러니 나에게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가요.” 박달은 냉정하게 말하면서도 속내는 금방 용서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안 됩니다. 주막에서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해야 하루 세끼밥을 겨우 얻어먹을 수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어떻게 공부를 하시겠다는 말씀이세요? 서방님, 그날 제가 잘못했어요. 저를 용 서해주시고 마포로 돌아가세요. 서방님, 제가 이렇게 빌잖아요. 서방님, 이렇게 빌게요. 한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이제 노여움을 거두시고 저와 마포로 가세요. 시간이 없어요. 하루 종일 책을 보며 다시 과거 준비를 하시도록 하세요. 제가 먼저보다 더 신경을 쓸게요. 저와 돌아가세요.” 아지의 얼굴은 금방 눈물로 흥건하였다. ‘하긴 며칠 주막 일을 해보니 이런 상태에서 과거를 준비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바보 같은 짓인지 잘 알지. 그러나 다시는 아지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어이할꼬? 사내가 한번 마음먹었으면 실천해야지, 당장 사정이 어렵다고 쪼르르 아지를 따라나선 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하지만 과거를 다시 보려면 아지 말대로 하루 종일 책속에 파묻혀 살아야 하는데, 물지게를 지고 있다가 언제 과거를 준비한단 말인가? 아, 어찌해야 하나? 못이기는 척하고 아지를 따라 나설 까? 괜히 고집 피워봐야 나만 더 피곤하고 몸만 축날 텐데…….’ 박달이 망설이고 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아지는 다시 한 번 박달에게 애원하다시피 했다. “서방님, 제가 잘못했어요. 그만 노여움 푸시고 다시 시작하세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서방님께서 고향에 안 내려가시고, 이곳에 계신다는 것은 과거를 보실 의향이 있다는 뜻입니다. 서방님, 자존심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공부입니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하시어 과거에 입격하셔야지요. 주막에서 허드렛일을 하시면서 무슨 공부를 하실 수 있겠어요. 서방님, 어서, 어서 저와 함께 돌아가요. 서방님이 계실 곳은 마포지 이곳 칠패시장 모퉁이가 아니에요. 제발, 제발 돌아가세요. 그땐 저도 너무 충격이 커서 그랬던 거에요. 이제, 저를 용서하시고 돌아가셔서 다시 시작하세요. 서방님-.” 박달은 평상에 앉아 골똘히 이것저것을 생각해보았다. 아지 말이 백번 맞기는 하지만 선뜻 따라나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지조 없이 따라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 어쩌나…….’ “박도령님, 제가 이런 말씀 드려 송구합니다만, 도령님께서 청운의 꿈을 안고 상경하셨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꿈을 이루셔야지요. 전 처음에 박도령님이 그냥 말로만 과거를 준비하는 줄 알았어요. 제 판단에도 이 언니 말씀이 맞아요. 이곳에서는 도저히 과거 준비할 수 없어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해야 하는데, 언제 책을 읽고 언제 글을 써요? 지금은 자존심 다 버리시고 과거에 급제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도령님, 어서 이 언니를 따라가세요. 도령님이 이 주막에 게속 계시면 도령님은 저때문에 공부하지 못하실거에요. 그런데 언니를 보고 도령님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간난이가 옆에 서 있다가 아지를 거들고 나섰다. ‘그래, 간난이 말대로 입격이 우선이지. 그까짓 자존심이야 합격하고 난 후에 세워도 되겠지. 간난이가 그동안 나를 좋아하고 있었나 보구나. 어딜 가나 여자들 등쌀에 못살겠구나.’ "서방님, 어서 일어나셔요. 서방님-.” “좋소. 내 그대 말을 따르리다.” 박달이 망설이다 아지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다. “고마워요. 서방님.” “박도령님, 잘 생각하셨어요. 나중에 과거에 합격하시거든 꼭 우리 주막에 한번 들려주셔요. 저하고 칠패시장가서 모주 한잔만 더 마셔요.” 아지와 간난이는 박달의 자존심이 크게 훼손되는 않는 선에서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하였다. “금봉이 방에 있니?” 일찍 저녁을 먹고 난 금봉이 어머니는 달의 방을 찾았다. “엄마하고 이야기 좀 하자.” “…….” “금봉아, 너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해보렴.” ‘아아, 엄마가 눈치를 채셨나보구나. 이를 어째…….’ “엄마하고 딸 사이에 못할 말이 어디 있어? 너에게 이상한 조짐이 일어나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 “어머니, 아무 일 없어요.” “저 지난달부터 너 그거 없는 거 알고 있다. 누구 씨니? 이왕 이렇게 된 거, 엄마에게 솔직하게 털어놔봐.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할 거 아니니?” 금봉은 어머니의 따뜻한 말에 안심이 되었다. 흑-. 금봉이 그제야 흐느끼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금봉의 어머니는 흐느끼는 딸의 등을 다독거렸다. ‘어린 것이 혼자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언니도 없고, 주변에 마음 터놓고 상의 할 벗도 없으니, 혼자서 밤잠도 자지 못하고 고민하였을 텐데…….’ 금봉의 어머니는 딸을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얘야, 그 아기 아버지가 박도령 맞니?” “네에. 어머니, 진즉에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금봉은 참고 있는 설움을 눈물로 쏟아내고 있었다. ‘이일은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곧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터인데. 창피해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왜 하필이면 그처럼 잘난 사내가 우리 집에 찾아올 게 무어람? 왜 하필이면 우리 집에…….’ 금봉의 어머니는 서럽게 울고 있는 딸을 보고 속이 쓰렸다. “얘야,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데는 없는 거야?” “네에.” 금봉의 어머니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면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딸의 앞날이 걱정되어 목이 메었다. 마음같아서는 딸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차만 그럴 수도 없어 가슴이 답답하면서 어디 가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진즉에 딸에게 성교육을 시키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자책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전적으로 딸의 잘못을 탓할 수 없지. 내가 여자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몸가짐에 대한 구체적인 성인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죄지. 저애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야. 그러나 앞으로 어떻게 한다? 친정에 보내 강제로 유산을 시킬까. 아니면 집에서 두문불출하게 하고 아기 낳아서 키울까?’ 그녀는 생각에 빠졌다. “어머니, 죄송해요. 박달님과 정분을 나누긴 했어도 아기가 들어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게 어디 너만의 탓이겠니. 다 이 미련한 어미 탓이지.” 모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전개 될 운명에 대하여 불안해했다. “어머니, 박달님은 꼭 오실 거예요.” “이것아, 아직도 박달타령이니?” “어머니, 그 분은 꼭 오세요. 저에게 과거에 급제하면 저를 보러 벌말로 달려오신다고 하셨어요.” 금봉은 박달이 찾아올 것을 확신하는 눈치였다. “과거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 아직도 그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걸 보면 그 사람이 너를 잊은 게 분명해.” “어머니, 아니에요. 절대로 박달님은 저를 잊으실 분이 아니에요.” “어이구. 네가 너무 물러 터지니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니니?” 금봉의 어머니는 딸의 말에 또 한 번 가슴을 쳤다. “어머니, 박달님은 꼭 저를 찾아오실 거예요. 지금은 눈이 많이 내려서 산 넘고 강 건너 오실 수 없으니, 저 눈이 녹으면 분명히 박달님이 저를 보러 오실 거에요. 너무 박달님을 미워하지 마세 요.” 금봉은 박달을 두둔하고 나섰다. “어이구, 속터져 죽겠다. 그래, 그 박달이 올 때까지 네 뱃속에 아기를 넣고 있을 참이니?” “그럼, 어떻게 해요?” 금봉은 어머니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불안해 하였다. “너, 내일 나하고 봉양(鳳陽) 외삼촌댁으로 가자. 이 동네 있다가는 무슨 이상한 소문이 날지 몰라. 외삼촌네 집으로 가서 아기를 지우자.봉양에 의술이 뛰어난 의원도 있다고 들었다. 거기 가 서 아기를 지우고 일년 정도 몸조리 하고 오면 감쪽 같을 거야. 과거 끝난 지 한참 지나도 찾아오지 않는 걸 보면 일은 다 글렀다. 그 박달인가 복달인가 하는 작자는 안 올 거야. 그러니, 너는 아무 말 말고 내일 나하고 외삼촌댁으로 가는거다. 알았니?” 금봉의 어머니는 남자에게 덜컥 정을 주었다가 여자가 임신하자 도망친 무례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딸을 설득하였다. 금봉은 어머니의 이여기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가로 저었 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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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