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서울 올림픽
조 흥 제
88 서울 올림픽 때 써 놓은 일기가 있어 서울 시청에 성화가 안치될 때와 잠실 주경기장에서 개막식을 본 바를 발췌해 본다.
1988년 9월16일 : 어제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채화되어 온 성화(聖火)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오늘 서울시청 광장에 안치하는 의식을 가졌다.
나도 집 사람과 왕래와 함께 그 현장에 가 보았다. 키가 작아 수십 겹으로 둘러싸인 인의 장막을 뚫지 못하고 군중 속에 묻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지음 함성 소리와 함께 프라자호텔 쪽에서 검은 연기가 날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때마침 내리는 소낙비로 우산을 썼던 사람들은 비쯤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우산을 걷고 발돋움을 하였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팡파르 음악이 울려 나오면서 김용래 서울시장이 성화대에 성화를 안치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순간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격과 희열을 맛보았다.
세계적인 행사 중 가장 큰 규모인 하계 올림픽, 전 기구촌 가족이 함께 어울려 경기를 통하여 화합과 전진을 다지는 평화 행사. 올림픽을 위하여는 서로 싸우던 적도 총칼을 멈추고 경기에 함께 참석했다고 하는 옛 정신을 되살려 1백여 년 전 프랑스 쿠베르탕의 주창으로 근대 올림픽이 탄생했다.
81년 바덴바덴에서 치러진 IOC 총회에서 개최 후보지인 일본의 나고야와 북한의 평양(평양은 서울올림픽 방해 공작으로 신청했다 함)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따낸 값진 선물이었다. 그 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올림픽 개최의 성공을 위하여 전 국민은 혼과 성을 다하였다.
북한의 아웅산 테러와 CAL 기 폭파와 금강산 댐 건설 등 직접 간접으로 불안을 조성했던 평양의 방해 공작으로 커다란 테러가 자행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김포공항에서 폭발물이 터졌고, 철없는 학생들이 북한 당국의 되지도 않는 소리(올림픽 공동개최)에 동조하여 5공화국 때 정치적 소요사태에 휩쓸려 많은 파고를 타왔다. 그러나 모든 시련을 물리치고 내일 (9월17일) 개막을 앞둔 올림픽 주 경기장인 잠실벌에 세계 50억 인구가 지켜 볼, 성화가 드디어 서울의 심장부인 서울 시청 광장에 안치된 것이다.
아직까지 올림픽은 모든 시설과 여건을 갖춘 선진국에서 개최해 왔고, 후진국에서는 멕시코에서 개최하고 중진국 대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6‧25의 잿더미 위에서 수출입 1천억 달러의 규모로 세계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국력이 커지고 62층의 고층 빌딩과 반도체 같은 고도 정밀 전자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축적하였다. 그래서 이 세계적인 행사를 치르기에 부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 치룬 다른나라의 규모보다 나은 훌륭한 시설이라는 언론보도다. 167개 세계 국가 중 160개국의 1만3천여 명의 선수들이 참석한다.
내일 잠실벌에서 펼쳐질 수호화(守護火)인 성화여! 너는 수만리 먼 길을 달려 와 이제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대한민국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편안히 휴식을 취하라. 내일부터 세계인의 축제를 비춰주기 위해서.
서울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주제가가 탄생한 대회다. 처음 채택된 노래는 아리랑의 테마가 깔린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였지만 보다 글로벌한 감수성을 원했던 조직위원회는 세계 메이저 음반사들의 공모를 통해 세계적인 신스팝 프로듀서이자 아카데미와 그래미를 휩쓴 조르조모로더가 출품한 ‘hand in hand'를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유럽에서 활동하던 한국인 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이 주제가는 무려 1700만장 이상 판매되었고, 독일과 일본 등 17개국에서 음반 판매 차트 1위를 기록했다. 이듬해 동독의 시위대가 이 노래와 함께 장벽을 향해 행진하며 평화를 염원하는 글로벌한 투쟁가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된다. 노랫말처럼 이들은 벽을 넘고 결국 무너뜨렸다.
손에 손 잡고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 잡고
하늘 높이 솟는 불
우리의 가슴 고통 되어
이제 모두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손잡고
어디서나 언제나 우리의
가슴 불타게 하자
하늘 향해 팔 벌려 고요한
아침 밝혀 주는 평화 누리자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한 마음 되자
손 잡고
1988. 9월17일 : 오늘은 24회 서울 올림픽이 개막되는 날이다. 시청 앞에서 하룻밤을 잔 성화가 오전 9시20분 채화되어 시청 앞을 떠나 남대문을 통과하여 서울역-남영동-용산-제1한강교를 거쳐 흑석동-국립묘지-이수교를 지나 12시30분 경 주 경기장에 도착했다.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옹이 성화를 들고 잠실운동장에 들어서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에게서 쏟아졌다. 손기정옹은 일본 기를 가슴에 달고 우승해 조국에 영예를 바치지 못한 한(恨)을 조국에서 성화를 들고 뛰니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뛰는 것이 아니라 겅중겅중 뛰면서 들어 왔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 성화대 앞에 온 순간 아시아 육상여왕 임춘애 선수에게 인계되어 성화대 앞에 온 순간 성화 점화자 3사람이 나타나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임춘애 선수의 성화 불을 받아 성화대 기단이 그대로 올라 가 20m 위에 있는 성화로에 닿았다. 3사람이 세 방향에서 불을 붙였다. 유명인도 아닌 낙도 중학교 교사, 마라톤 선수, 고등학생이었다. 그들을 성하로에 불을 붙이게 한 이유는 학계, 체육계, 예술계를 대표하도록 했다.
박세직 체육부장관의 축사와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환영사, 노태우대통령의 개회가 선언되고 세계 각국에서 온 1만 3000여 명의 선수들이 입장을 완료한 가운데 공중 낙하, 비둘기 비상, 마스게임 등이 진행됐고 옆에 있는 한강에서 450척의 각종 선박이 강상 퍼레이드를 벌이고 세계 유명 스키어들이 수상 쇼를 펼쳤다. 수륙 양쪽을 이용한 장관이었다. 이렇게 해서 24회 서울 올림픽은 북한의 집요한 방해공작에도 무사히 개막되었다.
나는 애 엄마와 함께 잠실 주 경기장에서 육상 멀리 뛰기와 100m 결승 경기를 보았다. 성화대 옆에서 보았는데 석유 냄새가 많이 났다.100m 경기에서 세계적인 미국 단거리 선수가 일등을 못하여 살망했고, 여자 멀리 뛰기 여자 우승자가 성조기를 들고 경기장을 누볐던 것이 생각난다. 그 선수는 불치의 병이 들어 젊어서 세상을 떴다는 기사를 보고 안타까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