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쉰다고 물량이 줄겠나, 그래도 이게 어데고?”
오는 14일 ‘택배 없는 날’을 앞두고
현직 택배기사가 밝힌 소감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번 휴일 이후 늘어날 물량에 대한
걱정과 처음으로 맞이하는 휴일에 대한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지난달 17일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는
택배산업 출범 28년 만에 ‘택배 휴가 가는 날’이
제정됐다고 밝혔다.
국내 위탁 택배 서비스가 도입된 이후 최초로
택배 종사자들이 평일 휴가를 얻게 된 것이다.
택배 없는 날은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
한진택배 등 대형 택배사와 우정사업본부(우체국)가 참여했다.
택배업과 달리 배송 인력을 직접 고용하는 등
자체 배송망을 갖추고 있는 쿠팡 '로켓배송'을 비롯해
SSG닷컴 '쓱배송', 마켓컬리 '샛별배송' 등은
평소대로 배송 업무를 진행한다.
CU(씨유) 등 편의점 점포 간 택배 서비스는 14일에도
정상 운영되지만 보내는 경우 최소 2일 이상이 걸리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열악하기만 한 택배산업 구조·근무 환경
택배기사의 배송·집하량은 수입에 비례, 다들 많은 물량이 나오는 노선을 선호한다. 물량보다 상대적으로 힘이 덜 드는 노선은 권리금까지 얹어서 거래하려고 할 정도다.
문제는 그 많은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고된 노동이 쉼 없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구조적으로 택배사가 업무를 멈추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이들은 하루를 쉬기도 어렵다.
쉬는 날의 수입 이상의 비용을 들여야만 쉴 수 있기 때문에 택배 기사들은 “아프면 너만 손해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심한 몸살감기로 신체 컨디션이 최악일 때조차 일단 참으면서 일을 하는 게 부지기수다.
실제로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하루 휴식이라도 취할라치면 당일의 배송을 대신 할 소위 ‘용차’를 구해야 하는데, 하루 10만~20만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택배기사를 위한 안전장치가 전무하기 때문에 주 6일, 하루 12시간의 극한 환경 속에서 과로로 인한 안타까운 소식이 매년 끊이지 않고 있다.
◆택배 없는 날, 일회성 휴일 그 이상의 필요성…눈물 어린 '용차'를 아시나요?
그런 택배 기사들이 택배 없는 날이란 사상 초유의 공식 휴가를 받은 상황에서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택배 없는 날에 맞춰 14~16일 국내 택배가 일괄 중단되지만, 그 이후에 오히려 평소보다 2~3배의 업무 급증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현장에선 ‘택배 없는 날이 아니라 숙제 미루는 날’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로, 당장은 좋아도 수합된 택배가 오히려 쌓여 업무 피로도를 더 높일 수 있다.
한 택배기사는 “택배 없는 날에 택배 기사는 쉬더라도 주요 거래처인 유통 업체와 택배사가 멈추지 않기 때문에 택배기사가 배송해야 할 물량은 줄어들지 않는다”며 “택배 없는 날에 임시 공휴일까지 지나면 그다음 날인 화요일에는 명절 직후에 준하는 평소보다 40% 이상 늘어난 배송 양이 기다릴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해당 배송량을 소화하려면 최소 14시간 이상 근무해야 한다는 걱정도 섞여 있었다.
택배기사 업무는 제품을 직접 고객 집 앞까지 배송해야 하는 육체노동이기 때문에 적절한 휴식이 중요하다. 하지만 택배기사의 경우 택배회사와 직접 고용계약이 아니라 구·동 단위의 대리점과 배송계약을 맺고 일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을 적용받기 어렵다.
실제로 법적 지위도 개인사업자처럼 일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이며 법정 근로시간을 제한받지 않아 과로 위험을 키울 수 있다.
◆근로기준법 사각지대 놓이며 법정 근로시간 제한받지 않아 과로사 위험 직면
택배기사와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법적 지위와 근무 환경에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배송직원도 있다. 바로 이커머스 기업 쿠팡 배송직원인 쿠팡친구(舊 쿠팡맨)이다.
쿠팡은 배송인력을 직고용하고 주 5일제 52시간제, 연 15일 연차 제공을 준수해왔다.
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쿠팡친구는 일평균 9.3시간, 지입제 택배업계의 일평균 12.2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밖에도 회사 배송차량 제공, 4대 보험, 유류비 제공, 단체 실비보험 가입, 회사 보유 콘도 등 휴양시설 이용 등 각종 복리후생을 제공한다.
11년 동안 타 택배회사에서 지입기사로 근무하던 쿠팡 배송직원 위성윤(42) 씨는 “주5일 근무와 매년 15일의 연차를 활용한 가족 여행까지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당연한 것들이 쿠팡에 와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며, “그전에는 택배산업 구조적 특성으로 택배업체가 업무를 멈추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하루를 쉬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쿠팡은 회사에 소속된 배송직원이라 이번 택배 없는 날이 아닌 다른 직장인처럼 17일 임시공휴일을 더 기다리고 있지만 나도 전에는 택배기사였던 만큼 이번 택배 없는 날이 택배기사의 열악한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출발점이 되길 응원한다”며, “택배기사 직업에 대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힘들게 일하는 직업’이란 사람들 인식이 많은데 이번 계기로 최소한 ‘쉬지도 못하고’란 표현에선 벗어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첫 시행을 앞둔 '택배 없는 날'과 관련해 "택배 노동자의 '쉼'을 응원한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김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