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도님의 글이 기억의 우물에서 추억을 퍼 올리게 해서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적습니다. 모두 한국과 교포와의 관계입니다.
1996년 여름 미국 서부 6박7일 여행 “사막 유격 여행”
영화 <China Town>은 비평가가 선정한 미 100대 영화에 선정되었으며, 그래서 봤고, LA가 사막위에 선 도시이고 물 문제가 삶과 인간에게 황폐한 영향을 준다는 주제입니다. 사막이 주는 특이한 기후가 인간의 정서에 심오한 영향을 주어서 기독교, 이슬람교, 유태교가 모두 사막에서 태동했다는 그런 영적 체험은 하지 못하고 팍팍한 스케줄에 끄달려 다녔습니다.
사막을 점지한 선지자들은 결국 그 땅아래서 원유가 펑펑 쏟아짐으로써 믿음을 보답했으며 그들의 신통력을 증거했다. 석유는 원래 펜실베니아의 암반에서 흘러나왔다. 그래서 돌석자를 써서 석유라고 한다. 등을 밝히는 등유가 중요했고 개솔린은 부산물이라서 버렸던 것이 자동차 발명으로 팔자가 서로 바뀐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사람들은 그 한정성으로 사람들과 친하게되고 솔직한 말들이 오가게 됩니다. 꽉 찬 관광버스에 모두 한국에서 온 관광객이었고 나만 미국 동부 출신이어서 가이드에게 영어 헬퍼하면서 맹활약을 하던중…부모님 포함 5인 가족과 함께 온 젊은 가장과 나이도 비슷한 듯하여서 대화 시작.
:난 한국서 교사하고 있다. LA 교포 사는 것을 보니까 불쌍하다. 이럴려고 미국와 사는가? 한국 잘산다. 내가 교사해도 온 가족과 함께 하와이 거쳐서 현재 반 달 째 미국 여행중이다.
내가 이 대화를 30년이 지나도 그 배경까지도 생생하게, 그 얼굴까지도 또렷히 기억하는 이유는 나도 교사했었고 하면서 결혼 하면 안되겠구나, 이 돈은 혼자서는 풍족하겠으나 넘을 먹여살릴 수는 없겠구나 했는데 불과 10년 후에 무슨 요술 방울이 요령을 부렸는지 이런 스피취가 나온단 말인가? 그 말 중 ‘LA교포 불쌍하다’는 대사는 가을비 내리는 호숫가 그 가로등 등불 아래에 있던 노래처럼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았다. 나도 못간 하와이, 니가 갔구나…하와이만 놓고 본다면 LA교포 만이 아니고 뉴욕교포도 불쌍하단다.
최근 읽은 글에서는 이런 비유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LA에 여행을 가서 마주치는 한인들의 간판이 반가움보다는 어색함으로 느껴지는 정서였다.” 조정래였던 것 같다.
1996 여행에 돌아온 뉴욕
내 막내 여동생 남편이 공부로 일가를 이룬 자로서 미국에서 경제학 교수를 하고 동기들을 죽 대는데 현재 한국에서 유명한 인사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송서방, 한국에서 교사하는 사람이 아주 풍족하게 미국 여행을 하면서 미국을 우습게 보는 발언을 남발하는데 이거 먼가 잘못된거 아녀?
백면서생에 속하는 송서방이 알수가 없는 질문을 던진 것이고…
1997 여름 뉴욕
-송서방, 내가 무역을 해서 아는데, 한국이 시방 미국에 팔 물건이 없어요. 가격이 안 맞아. 중국 물건들이 밀려오고 있어. 지금 한국 외환 문제라는데 한국 문제없어? 멀 팔아서 식량과 원유를 들여와?
역시 송서방이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비슷한 경력을 지닌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가서 서울대와 미국유학 박사 경력으로 정부의 요직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어쩌구 저쩌구 한다는 것임. 그들이 한마디 하면 국민들은 귀와 눈을 쫑긋하고…뭐, 예측하나 제대로 한 것 있기나 하나?
IMF 터지기 전까지 그들은 모두 "펀더멘틀은 쌩쌩하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말조차도 미국에서 잘 쓰는 말을 그냥 따라한 것이다.
1997 가을. 아이엠에프
인위적으로 환율을 낮게 유지하니까 달러가 싸지고 제2금융권들이 홍콩에서 싼 달러를 정부 지불보증하에 무작정 들여와서 이자 놀이를 하고 그 와중에 한국의 달러가 풍성해지고, 그 돈으로 교사가 가족 끌고 미국 한달 여행오고…뭐, 이런 것이 간단하게 드러났다. 그 젊은 교사는 아이엠에프가 터지고 나서 반성했을까? 나를 떠올렸을까? 조금 좋다고 깝친 자, 아마 망했다고 절망했을 것이다. 어쩌면 미국 이민왔을지도 모르것다.
적어도 비공식적으로 나는 아이엠에프를 1996년 여름 LA 사막에서 예측한 선지가가 되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무엇을 예측했지를 몰랐을 뿐이다. 역시 사막에서 먼가가 나오는구나. 그 후 LA 근처 사막에 몇 일을 지낸 적이 있다. 코안이 말라서 아주 불편했었다.
1997 가을. 대구
자 오늘은 부산가는 날. 새벽에 목욕을 하러갔습니다...가격에 익숙하지 않고 돈의 단위에 익숙하지 않으니...일단 가격을 묻는 경우가 잘 발생합니다.
:목욕비가 얼마죠?
-1300원...나는 적어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것이 싼 것인지 비싼 것인지 그런 개념은 전혀 없고 달라면 달라는데로 주고...제가 원래 친절하니 버릇되로 한 친절한다고 동전을 차곡차곡 헤아려서 밀어드리니까...그것이 획하고 다시 튕겨나왔습니다. 온 사방으로 흩어진 동전들이 사장님의 신경질의 심도를 또렷히 드러내고 있었다. 황망하게 다시 줏는 와중…
-아니 이 쏴람이 시방 장난쳐? 새벽부터 잉, 엉? (실상은 3,000원이었습니다.)
담박에 가격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뭐 그런 경우 친절하게 다시 가격을 이야기해주면 좋을텐데...감옥에서 열쇠가 고장나면 큰 일이듯이 그걸보고 아 열쇠 고장 난 것가지고 뭘 그리 난리셔 할수없듯이...장사에서 1,300원과 3,000의 차이는 서울과 해남 차이? 그리고 열 받은 사람에게 흥분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나는 그 정도에 흥분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너와 나의 구분으로 들리기에 흥분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무조건 입 쳐닫고 무엇을 원하는가를 묻는 것이 사태 해결의 지름길이다. 이것은 부부싸움에도 해당하는 말로, 흥분한 배우자에게 흥분하지 말고 이야기하라는 것은 더 흥분시키는 직빵의 길이다. 그런데도 우리 인류는 신라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이 오류를 답습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예측은 비오는 거리를 회색으로 만들게 된다.
:아, 예...제가 좀 멀리서 와서요...
-아무리 멀리서 와도 그렇지 물정을 몰라 물정을 이 싸람이...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예수님, 그 예수님 맘이되어 사태 수습이 나섰다.
:뉴욕에서 왔는데요?
-...............음...진작에 얘기하지...주섬주섬....정확하게 이 대목에서 공수가 교대되었습니다. 난감한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할지를 잔뜩 머리 굴리는 사장님 아자씨...그 굴리는 소리가 자갈밭 탱크 굴러가듯이 크게 들리나, 못 들은 척 하는 나의 세련되고 참모총장급의 교양미의 발현.
:에이 멀리서 왔다고 진작 얘기했는데...
-에이 난 제주도에서 온 줄 알았지...
제주도가 그리 멀어? 그 분의 공간감의 확장은 가장 먼 곳이 화성도 아니고 미국도 아니고 제주도였던 것이다. 세상이 끝이 제주도여. 거 봐라. 국민의 대다수는 제주도 여행을 환상의 섬으로 지구의 끝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 1990년대의 한국 실정이여. 무신 하와이...
기본적으로 늘 행복한 사람이라...음무홧홧 즐거운 웃음으로 마무리하고...우린 잘못했다는 사람한테 약하잖아...특히 여자가 잘못했다고 하면 더 약하다...나만 그런가?
낮이 되어서 부산으로 갔습니다. 아는 까마득한 선배가 부산에 회 얻어먹을 일이 있다고 따라갔습니다. 대구에서 부산행 기차를 타면 그것은 바로 추억으로 바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주 익숙한 길이 됩니다...한시간 반 정도의 길...맘잡고 책읽기에는 짧은 길이지만 중간 쯤부터 시작되는 낙동강과의 조우 그후의 강과의 동행길은...<내게 강 같은 평화>라는 복음성가 작가는 이 기차 타고 이 대목에서 지었을 것이라는 그런 예술적 영감의 길이라는 것...그런 길...그 길을 나는 소싯적에 수시로 다녔다. 그래서 내 영혼에는 시심의 강물이 너울져 흐르는 것이다.
부산역에 내렸더니 그 넓은 역광장에 꽉 찼던 인파들이 노숙자였습니다...깜딱 놀랬습니다. 서울역에서 물론 노숙자를 많이 봤지만 "말은 제주도로 인간은 서울로" 공식에 의거 전국의 노숙자들이 다 모인 것으로 생각했지 각 지역마다 노숙자 지부가 또 있었는 줄은 몰랐습니다...점심 배식시간이었고 어느 목사님이 배식 중이었습니다. 도네이션했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하라고 부추겼습니다. 배식의 길을 건너서 배식중인 목사님에게 돈을 건네는 일은 머쓱한 일이었습니다. 왼손이 하는 거 오른손 모르게 해야하는데, 선행은 자고로 조용히 행하고 나중에 드러나게 해서 그 효과를 극대화 해야 하는데…이게 무슨 내놓고 생색이란 말인가. 선비의 도리가 아닌데...
부산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기찻길...시심을 품은 추억의 여행...그런 부드러운 서정에서...갑자기 검은색의 노숙자 무리를 맞딱드리는 것은 급박한 놀라움의 충격으로서 동시대인으로 이렇게 서로 다를 수가 있나 ...평화와 충격의 차이는 역의 문 하나 차이였슴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장면.
회를 먹은 송도는 모래 유실로 인해서 해마다 모래를 퍼붓고 있다고 했습니다. 왜 항구마다 송도라는 지명이 있는 지 거 참 궁금...
일찍 지는 저녁해...다시 부산역...그랬더니 부산역이 꽉 찰 정도로 노숙자 분들이 모여있었습니다. 이 역시 충격. 남의 병은 100년을 앓을 수 있다고, 송도에서 참돔 먹고 한잔 때릴때 넉넉한 관조의 풍요로움이었다가 노숙자가 사라진 부산역 광장을 지나면서 노숙자 생각은 깨끗히 잊고 문을 하나 열었는데 그런 컬러의 변환은 영화의 한장면. 그 노숙자들이 모두 역안에 들어와있었던 것.
<마지막황제> 영화 첫 장면에 남루하고 어둔 차림의 중국난민들이 역에 모여있던 그런 이미지가 담박에 연상되는 어둔 분위기...건너편에 신문 가판대가 있었습니다. 저는 <부산일보>를 보면서 어디 취업할 곳 없나?하고 부산에 6개월 살 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부산일보가 궁금해서...그때는 200원...신문값이 궁금했는데...가판대 아저씨에게 물으면 이 쏴람이 신문값도 몰라? 간첩아냐? 너 목욕비도 잘 모르지? 그럴까봐...농담아님...선배한테 물었습니다.
:형님...요즘 신문값이 얼마예요?
-신문? 나 모르는데...
:한국 국민이 어떻게 신문값을 몰라요?
:집으로 배달이 와서 사볼일이 없어서...
거...참...그게 대답이 되는지 마는지...짜장면 집으로 배달오니 값 몰라도 되겠네? 영 민생 경제에 냉담하시네. 청문회 나가면 고생하시겠네. 그러고 있는데 신문 가판대 아저씨가 고개를 쫙 내밀곤...
-신문값을 내 한테 묻지 와 그 사람한테 묻능교? 소리를 빽질렀습니다...온 부산역이 떠나가겠네...부싼 사람들 목소리가 너무 커...영화 <해운대> 보면 부산사람들 롯데 야구 응원가서 거의 무정부 상태를 만들드만...(신문값은 500원이었습니다.)
그 아저씨 기세에 눌려서 신문가판대에서 신문도 사고...또 책도 한권을 샀는데...그것이 <성공시대>라는 티비 프로의 사례를 모은 동명의 책이었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쏟아지는 우연들과 그 우연이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들이 밀도를 달리하면서 엮어가는 흔적들임에, 나는 나라가 가난해져서 역의 전깃불 마저도 휜히 밝힐수가 없던 노숙자들의 어둔 역에서 삶의 밝은 성공을 적은 <성공시대>를 샀으니...역시 부자가 하나 나올려면 마을은 세개가 망해야하는 것이고 노숙자들이 역마다 빼곡해야하는가?
2023 가을비 오는 뉴저지
1996년 오만방자하기 보다는 뭘 모르는 교사를 만나기 전부터 벌써 나는 한국을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진정 행복하리라는 것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엠에프가 와도 내가 한국을 돌아갈 것은 하등 관계가 없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직진이었다. 아이엠에프 때문에 많은 이들이 미국으로 불법 입국했고 또 어떤 이들은 성공해서 역이민했다. 미국의 산 세월이 쌓일수록 먹고 사는 불편이 없어질수록 한국 갈 생각은 또렷해졌다.
오랫동안 역이민은 나 혼자의 생각이었고 어떤 집단적 지성이나 가이드는 없었고, 빛의 속도에 대해서 끊임없이 사고 실험을 하던 아인슈타인처럼, 한국에 가면 어딜 살까 어떤 삶이 될까를 머리속으로 그리는 정신적 유희를 즐겼다. 그리고 결국 실행하고 보니까 내가 머릿속으로 만들어오던 각본들 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한국이었고 나의 한국 생활이었다. 상상력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
첫댓글 익숙한 단어 대구. 부산역 ,송도 .에 이끌려 내가 살앗던 추억 여행을 잠시나마 ..ㅎ.스피노자님 글에 이렇게 웃어본적 없던거 같은데 ..한참웃엇네요
이젠 팬이되기로 ...!역이민에 재이민 또 다시 기웃기웃
저의 모토는 웃기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팬을 한 분 접수한 만큼, 웃김으로 보답하겠습니다.
"파리를 한번 온 사람은 모두 파리 시민이 된다. 영원히 파리를 잊지 못하는 까닭이다. 파리는 이동축제일이다. 헤밍웨이"
동부에 서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부에 눈보라가 치는 날, 그들은 LA를 그리워합니다.
아마도 한번 LA에 살면 영원히 LA사람 되어 잊지 못하나 봅니다.
오늘 맨하탄에 갔다 왔습니다.
무슨일인지 안개가 자욱하여, 맨하탄 건물들이 뿌엿했고,
나도 모르게 '안개낀 장충단 공원'을 흥얼거렸답니다.
스피노자님 글을 읽자니, 오늘 맨하탄의 여정을 보는 듯 합니다.
안개속의 건물들을 뚫고 지나가다, 화려한 타임스퀘어가 눈앞에 펼쳐질 때의 느낌.
무슨소리인지 주절리 주절리, 왔다리 갔다리 하지만, 주제에 대한 결론은 분명하다는...
요즘 책방 보다는 노래방과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 들었습니다.
노래 실력도 향상 되길 기대합니다...ㅎㅎㅎ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셨고요...저는 골프장에 열심히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물론, 골프치고 노래방 갈 수는 있겠으나,
노래방 가기 위해 골프장을 갈 수는 없을 것이라...
후건긍정 오류가 생각나네...
내가 그녀 만난 날마다 비가 왔었지
어! 비오네...
난 그녀를 만나게 될거야.
뭐 누가 이 세상에 오겠다고 간청을 한것도 아니니 어찌 살든지 잼나게 사는 것이 우선이 아니겠어요?! 피클볼에 빠져 아침 나절은 피클볼 코트에서 여러 인종과 어울려 잡담하며 공치기하기... 이거 정말 재미납니다. 물론 한국은 한국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어딘들 재미나게 사는건 각자의 몫입니다. 아 그리고, 자기 가치는 자기 스스로 창출해야한다는 말씀에 공감을 보냅니다!
테니스 치는 자로써 당연히 피클볼도 쳤습니다.
구장이 작아서 작전과 게임의 흐름이 좀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노년에게 어울리는 듯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베드민튼을 칩니다.
배드가 아마도 픽클볼과 무척 근접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배드는 젊은이의 운동입니다. 무척 빠르거든요.
한국이 나를 반기지 않으면 그것은 내 책임이다.는 것은 맞나 틀리나 전에
제 사고 버릇입니다. 저는 모든 문제를 저에게서 부터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어떡게 행동하길 원하냐?" 고 묻는 것을 좋아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 싸움 10가지 원칙에서 배웠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절대 배우자의 가족을 욕하면 안된다."
'머릿속 각본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상상력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눈길이 머뭅니다
저 역시..
사전답사 후 그리 느꼈음으로 공감!
늘 먼지 피우던 지하철 공사도 끝나고
늘 사납던 사람들의 표정도 누그러지고
일단 모두 전화기에 코를 박고 있으니 그 민망한 눈길도 없더군요
멀리 시집 온 딸
친정이 잘 사는 것을 보고 흐뭇해지는 맘
아주 공감되옵고
자주 글로 뵈옵기만 기원합니다 ^^
카페를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시는 수고가 많으시며
그런 분을 실제로 서울의 횟집에서 만난 경험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제 또 만나게 되겠지요.
스피노자님 반가와요!
일기장이 개인역사의 기록으로..
구체적인 스토리가 신뢰감 뿜뿜, 무엇보다도 재미있고 역시 신선하고, 공감되고.
그래서 쭉쭉 읽다가 웃다가 다시 읽고..
뉴욕의 도시 가을 풍경도 서울 못지 않죠.
제게는 그렇습니다.
빌딩과 어우러지는 공원근처의 나무들.
떨어지는 이쁜 낙엽들.
손에 잡아든 베이글과 커피를 들고 뛰는 뉴욕커들의 빠른 걸음걸이들.
지난 시절의 뉴욕의 가을 모습을 그리면서..
엄청추울거 같은 서울의 주점에서 막걸리 기대합니다.
그러나 주량은 그리 늘지 않고있으니 지나친 기대는 하시 마시고요.^^
대신 중간에 도망은 안갈정도로 좋아졌습니다.
안전제일. 건강제일! 추천 꾹!
술집 포함 모든 형태의 도망을 일삼는 자를 백안시 하는 입장에서
안도망의 강을 도강 하심에 축하하고
다시 건강하여 이리 저리 얼굴 보여주심에 박수!
스님 글을 읽다보니 과거 99년도에 한국 나가 한달동안 지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버스 탔다가 요금 물어 봤다가 간첩 취급당하는 일이며
강북의 어느 술집에 들어갔다가
손님들이 우리밖에 없어 전세를 내어
사장님 이하 모든 종업원 다 들어
오라 해 거금을 지불했던 기억이며
4년전에는 한국에 들어와 촌놈소리 듣기
싫어서 공부도 많이 했는데도
막상 실천에 옮길려니 불안 엄습
지하철 압구에서 5분 관찰후 교통카드를
찍고 통과 하는 순간 바가 넘어 가지 않아
뒤로 물러서 다시관찰후 시도했는데
결과는 마찬가지 직원에게 애기했는데
옆문을 열어주어서 통과는 했는데
지금도 트리우마가 있어서 지하철 타기가
불편하네요
버스는 그래도 잘 적응이 되었는데
스님은 한국 적응이 놀라울(뻔뻔할) 정도로 빠른것 같습
나는 상처를 잘 받는데
모두들 한국에서 에피소드는 만만찮게 장착하고 있네요. 말을 안해서 그렇지.
먼 일이 벌어지드라도 한국은 안전한 사회이니 큰 일로 확장될 염려가 없슴을 다행으로 여김.
내 동네 산책로 느껴지는 전반적인 사회의 부드러운 느낌을 좋아함.
삭제된 댓글 입니다.
"모두 시작은 있으나 끝이 있기는 어렵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종횡무진으로 글쓰기를 계속하시고, 저도 열심히 읽고 댓글도 달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글이 엄청 길어 읽을까 말까하다가 스피노자님 지난번 글도 잼나게 읽었기에 시작했지요.
역시 끌까지 쉬지도 않고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으며 읽었습니다.
아무리 값을 잘못알고 삼천원대신 천삼백원 냈다고 그리 하시는 분도 계시네요?
그렇게 까지 화낼일인가 십기도하고...ㅎㅎ
저도 스피노자님 팬이 되겠습니다. 홧팅!!!
목욕탕 돈 내는 곳이 아래로 반달 모양으로 뚫려있었습니다. 동전이 밀어넣자 마자 화들짝 팅겨져나왔습니다. 아마도 IMF의 여파로 장사가 충격적으로 좋지 않았던 모양일 듯.
"화가 났을 때 말을 하지 말라. 큰 소리로 흥분하여 말했던 맘속에 숨겨두었던 말들은 다음날 일어나서 후회하게될 인생의 멋진 연설이 될터이니."
그렇게 급한 성격과 함께 사는 가족들은 얼마나 불행했을까요?
팬심을 헤아리는 사려깊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고 글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저를 인정해주셔 감사하고요, 그 답례로서 한국 모임에서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제가 막걸리 한 사발, 아니 두 사발, 아니 한 항아리를 접대할 정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감기를 얼마나 자주 걸리는가, 그리고 걸리면 얼마나 빨리 회복하는가, 이 두가지가 면역력을 평가하는 첫째 항목임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좀 더 격렬한 운동을 하시어 전반적 체력의 확장에 도모하셔야 할 듯. 역이민 모임에서 70에 육박함에도 산을 잘 올라가시는 분들 많습니다.
글에 대한 기대 수준이 조금씩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역시 스피노자님!
반가운 글 감사합니다.
또 쓰겠습니다. IMF 2부를 쓰겠습니다. 응원 갑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