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5일 사순 제2주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0
그 무렵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진실한 크리스천의 모습
우리가 살면서 여성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름답고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하고, 남성이라면 위엄 있고 보다 자상하고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향수도 뿌리고, 머리도 잘 꾸미고 싶어서 미용실을 찾거나 이발소를 찾게 됩니다. 모든 동물들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와 능력을 모두 쏟아 내면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멋지고 아름답고 가장 훌륭한 모습으로 보이기 위해서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동물의 본성입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도 그 내면에서 표출되는 것이 외면에 나타나기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움이 없이는 외면으로 아름다움이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표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비단보에 개똥을 싼 것처럼.’이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겉이 훌륭하고 아름답게 보여도 속에 있는 내용이 겉과 같지 않을 경우와 마찬 가지 일 때가 많습니다. 제아무리 얼굴을 아름답게 꾸며도 진실이 없고, 내용이 빈약하면 우리는 냉정하게 그 내면을 보고 성찰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논어의 〈학이편(學而篇)〉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언영색 선의인
巧言令色, 鮮矣仁
공자는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적다.”라고 하였습니다. 교언(巧言)과 영색(令色)은 이외에도 〈공야장편(公冶長篇)〉·〈양화편(陽貨篇)〉 등에 여러 번 나왔을 만큼 공자는 듣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현혹시키고 속이는 것을 경계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로편(子路篇)〉에서 “강직하고 의연하고 소박하고 어눌한 자는 인에 가깝다. ‘강의목눌 근인’(剛毅木訥, 近仁)”고 하여 자신의 마음을 따라 진실 되게 행동하는 것이 어진 사람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격적으로 보면 답답하고 내성적인 사람을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으나 달변이며 변덕이 죽 끓듯 하기 보다는 언제나 묵묵히 맡은 바 일을 성실하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진실한 사람이 더 훌륭하게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는 당신의 본성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제자들 앞에서 억지로 얼굴을 꾸미고, 멋진 옷으로 꾸미고, 거짓으로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가장 신뢰하는 세 제자들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바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고 바로 부활하신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본 모습은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보이고 있는 모습인가요? 우리가 맡고 있는 각자의 위치에서의 모습은 또한 어떻습니까? 우리의 본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에, 본 모습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보여 지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내면에 가득 찬 진실은 주님과 같이 거룩하게 매순간 변하고 있다는 믿고 있습니까? ‘향 싼 종이에 향내 나고, 생선을 묶은 새끼줄에는 비린내가 남아 있다.’는 말처럼 우리의 본래의 향기는 어떤 향기입니까? 정말 오늘 현성용에서처럼 우리도 삶 속에서의 참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묵상하게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당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거룩한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 모습을 억지로 꾸며서 거룩한 모습으로 보이려고 위장하고 위선자로 가장한다면 진실이 왜곡된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들의 본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찾아오고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삶을 제대로 살 때 아름답게 변한 모습을 보고 천주교 신자가 되려고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교회에 와서 우리의 실체를 보고 등을 돌린다면 우리는 복음을 선교하고 이웃에게 모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담을 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냉담 하는 신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에서 천주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기 1,26)하시고 우리를 지어내셨으니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겨운 삶으로 모든 것이 감춰지고 하느님의 본성이 미약해져서 우리를 보고 더러운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열심히 자신을 갈고 닦아 아름다운 빛을 뿌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 사람들이 발산하는 주님의 모상 때문에 교회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그렇게 자신의 천주성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변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의 삶이 매 순간 거룩한 변모의 모습을 발산하며 살아낼 때 교회는 더욱 발전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십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31ㄴ-34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축일2월 25일 성 아베르타노 (Avertanus)
신분 : 수사
활동 지역 : 리모주(Limoges)
활동 연도 : +1380년
같은 이름 : 아베르따노, 아베르따누스, 아베르타누스
프랑스의 리모주 태생인 성 아베르타누스(또는 아베르타노)는 겨우 말할 수 있을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행동은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주 기도하고 관상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천사의 환시를 보고 카르멜회에 입회하려고 마음을 먹고 부모를 설득하였다. 마침내 그는 부모를 설득하여 동의를 받은 뒤 카르멜회에 지원하였다. 수도원장은 그를 환영하였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가 서원할 때에는 천사들의 노래와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고, 성모님께서 친히 이 평수사의 머리 위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수도원의 온갖 잡일을 하였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밤에는 수도원 언덕 위의 바위에 기어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한 번은 그가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동료인 로메우스(Romaeus, 3월 4일) 수사와 함께 출발하였다. 그들이 겨울 알프스 산을 넘어 이탈리아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루카(Lucca) 성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만 성 아베르타누스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성 아베르타누스는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환시를 보며 웃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고, 로메우스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8일 동안 무작정 길을 가다가 운명하였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아베르타노 (Avertanus)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