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추억의 만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3299661?sid=104
https://namu.wiki/w/%EC%95%BC%EB%A7%88%EA%B0%80%EB%AF%B8%20%EB%8D%B0%EC%93%B0%EC%95%BC
우편 어쩌고 저 부분도 놀랍고
암튼 죽은 다음 날 집으로 운구되는 모습
경호받는 아베(시신)
진작 그렇게 하지 그랬노 ㅋ
그리고 범인에 대해서도 이모저모가 많이 풀렸는데...
왼쪽부터 유년 시절(1987~1988 추정)
중학교 졸사(1995)
고등학교 졸사(1998)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네요ㅠ
이 밑으로는 내가 도파민 중독이라,,,^^
혹시 범인 자세한 서사 궁금한 여시들 읽어봐!
야마가미 데쓰야(만 41세)
미에현 출신. 야마가미는 어릴 적 부터 할아버지, 어머니와 모친의 고향인 나라로 이주해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전후 건설 회사를 창립하고 경영해 그의 집안은 상당히 부유했다. 아버지는 야마가미가 5살 쯤 사망하고 말았다. 나라로 이주한 것도 이 시기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 생전부터 통일교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부부 관계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종교활동으로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고 ‘아무리 돈이 있어도 모자란다'고 하면서 집을 돌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남편 사망 이후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형이 있었으나 정신병을 앓다 2016~7년 즈음 자살했고, 3살 밑의 여동생이 있다고 한다.
중학교때는 농구부 소속이었고, 공부도 잘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미우리신문은 1999년 나라현의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유수한 진학교인 현립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위의 1998년도 당시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고등학교 졸업앨범에서 자신의 장래에 대해 '모른다.'라고 썼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그가 고등학생 때 학교 응원단과 문예부에서 활동했고 주변에선 얌전한 성격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심지어 성실하고 우수한 모범생이여서 친구는 적지만 주위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응원단의 경우 야구부가 강세인 반면 존폐위기를 겪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말수도 적은 야마가미는 정말 열성적으로 활동하여 별명이 단장이었다고 한다. 동급생들은 입을 모아 고교 졸업 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증언한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나름 우수한 학생에 친절한 성격으로 교우관계도 좁지만 나쁘지 않은 편으로 보인다.)
야마가미의 모친은 이 즈음에 통일교에 많은 재산을 갖다 바쳤고 집안이 순식간에 가난해지면서 가족이 나라 시내를 전전했다고 한다. 그와 모친은 정말 조용한 성격으로 주변인과의 교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지금도 그의 본가는 나라시 히라마츠에 있으며 어머니가 거주한다고 한다. 사건 발생 2주 전 야마가미와 그의 어머니가 본가 근처에서 목격되었다.) 게다가 1999년 할아버지까지 사망하자 어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당시에는 통일교에 더욱 심취한 어머니가 상당한 금액의 돈을 종교단체에 헌금하는 것도 모자라 그 결과 할아버지로부터 물려 받은 집을 팔아버릴 정도였고 결국 2002년 8월 21일 파산하고 만다. 이처럼 생활고 때문에 명문 대학에 합격하고도 학업을 포기하고 전문대학에 진학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 그는 주변 지인에게 '종교 때문에 집이 이상해졌다, 돈이 없어 어쩔 도리가 없다', ' '통일교회가 없었다면...'과 같은 말을 자주하며 해가 지날 수록 우울해졌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야마가미의 집안은 본인이 진학교 출신임에도 돈 문제로 대학에도 가지 못한 것은 물론, 굶주림에 3남매가 집에 먹을 것이 없다고 친척에게 연락하는 경우도 꽤 있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몰락했고, 자연히 범인은 통일교에 대해 극도의 증오심을 품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야마가미는 고교 졸업 직후 독립한 것으로 알려졌다.(참고로 여동생도 독립했다고 한다. 시기나 기혼여부는 불명.)
2002년 8월에 입대하여 12월까지 나가사키현의 사세보 교육대에서 필요한 교육을 받고, 그 후, 2년간 하츠유키급 호위함 「마츠유키(DD-130)」의 승무원으로 지냈다. 보직은 병기를 담당하는 포뢰과. 2004년 4월부터는 히로시마현 에다지마구의 제1술과학교에서 근무했으며 2005년까지 3년 동안 히로시마현 구레시 일본 해상자위대의 임기제 비정규직 자위관으로 복무한 후 동년 8월 임기 만료로 퇴역했다.
야마가미는 이곳에서 연 1회 정도 소총을 다루는 기본 훈련을 받았으며 실탄사격 및 소총의 분해나 정비, 조립에 대해서도 훈련을 받았다고 전해졌다. 총을 부정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받았다.
사건 이후 야마가미의 군 경력이 주목받았으나, 2~3 년 정도의 병 근무만으로 총기 제작 기술을 얻을 수는 없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3년이라는 긴 복무기간을 가졌던 과거의 중장년층 남성들은 전부 총기 제작이 가능한 기술을 가졌다는 말이 되는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복무한 군종도 소총의 사격훈련이 잦은 육상자위대가 아니라 해상자위대였다. 이러한 언론 보도 기조에 해상자위대 측에서는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는데, 한 해상자위대 간부는 "해자대는 총기를 만드는 기술따위 가르치지 않으며 포뢰과라 한들 소총류는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 소총류의 실탄은 1년에 1번 취급할까 말까하며 사격훈련 역시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야마가미가 해자대 시절 배운 기술을 범행에 사용했다는 일련의 보도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문예춘추의 7월 10일 보도에서는 조사관계자 취재에 의해 이 시기에 야마가미가 자살을 시도했던 과거가 드러나기도 했다.
퇴역 후에는 나라시에 거주하던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측량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2급 재무설계사, 택지건물거래사(쩌노,,,) 등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파견사원으로 리프트 일을 주로 전전했다. 단, 범행 당시 기준 무직인 상태였던 것으로 보도되었다.
2009년에는 어머니가 이어 받았으나 방치하고 제대로 경영하지 않은 건설 회사가 큰 적자를 내고 문을 닫았다.
30대 중반 시절에는 투병 중이던 형이 자살하여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여러 사건이 겹쳐 자신의 생활을 괴로워했다고 한다.
2020년 가을부터 교토에 있는 플라스틱 제조업체에서 1년 6개월간 파견사원으로 근무하며 지게차로 짐을 싣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3월부터 트럭 기사들과 트러블이 있기 시작하더니 외부 업체 기사들과도 마찰을 빚어 기피 대상이었다고 한다. 공장 책임자는 산케이신문에 “처음에는 성실했지만, 올해 들어 동료들과 격하게 싸운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2022년 4월 중순부터 무단결근이 잦아지다가 결국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며 퇴직을 신청해 유급 휴가를 소화했고 5월 15일에 퇴직했다고 보도했다.(당시의 직장동료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의바르고 말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학창 시절 동급생들과 자위대 시절의 동료들도 비슷한 증언을 하며 당시의 활동을 거의 기억을 못할정도로 조용하고 존재감이 옅은 성격이었다고 한다. 21년 하반기부터 일 처리 관련으로 동료들에게 지적을 당하자 말싸움을 하는 등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였다는 말도 있고 극 내향적 성격이라 단체 점심식사 때도 홀로 차 안에서 끼니를 때웠다고 한다. 시급은 1800엔 정도로 벌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파견회사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말수가 적고 얌전한 인상이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적고 자가용 차 안에서 점심을 먹었다."고 전했다.
이후 사건 현장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약 3km 떨어진 월세 4만엔(약 38만원)의 2.7평짜리 원룸에서 사건 직전까지 혼자서 기거해 왔으며, 주변 이웃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음식점에서도 그를 봤다는 사람이 없다. 다만 폭탄과 총기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큰 소리를 낸 건지, 층간소음을 굉장히 심하게 냈다고 한다. 요미우리는 "약 한 달 전부터 야마가미의 집에서 톱질하는 소리, 금속성 소음이 들렸다"는 이웃의 증언을 보도했다.
6월 19일에는 음식점에서 주차 문제로 항의를 받자 물러갔으나 그날 밤 부터 별점테러를 했다고 한다.
금년 봄 부터 암살을 계획했으며 사건 전날인 7일에는 아베를 따라 오카야마현의 모 행사에도 참석했다. 짐 검사로 행사가 열린 시민회관에는 출입하지 못했다. 고베 연설회에서도 목격담이 나왔다.
피격 전부터 계속 아베의 유세를 따라 다니며 경호 상태를 확인한 것이 포착되었다.
일본인들아 좀 봐줘라
뉴스 보는데 안타깝다 ㅋㅋ ㄹㅇ 자기 분노를 여자한테 안푼것만으로도 한남보단 나음
2
엄마가 사이비 안빠졌음 대학 들어가서 직장생활 잘 했을텐데 ..
2.7평 원룸에 살았다니...
아빠가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엄마가 사이비에만 안빠졌어도 명문대 진학해서 평범하게 살아갔을 사람 같은데... 뭐 만약은 없는거지만 참 인생이 그렇다
22 뭔가 안타까운 마음도 듬 ..
야... 진짜 한남이었으면 지보다 약한여자만 표적삼아서 분풀이했을텐데.. 이사람은 한 국가의 장을 죽여버리네 ㅋㅋ
222
333.. 지능도 높아보이는데 안타깝네
한남이었어봐
본인 처지 비관하여 길가는 여자 살해
평소 어머니를 원망하여 여성에 대한 혐오가득하여 어쩌구 ㅇㅈㄹ
였을듯
와 ㅇㄱㄹㅇ
한남은 이럴때 엄마나 지나가는 아무 죄없는 여자 죽이는데…일남이 낫구나
아베보다 이사람이 더 안타깝다 난
분노를 옳은곳에 풀긴했네 상관없는 약자가 아니라
일본은 국가장학금 없노
한남보다 낫네
그리고 삶이 참 기구하다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너무 큰 짐이었을 듯.. 마음이 좀 그렇다..
범인 인상좋네
저사람 삶이 너무 기구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같아.. 진짜 얼마나 우울했을까..
내한 해주세요 제발…….
머리도 좋고 비상한거 같은데 .. 아이고 참 ㅠㅠ
종교가 대체 뭐라고 저렇게 현생갈릴정도로 돈을 갖다바치는거지..
그냥 나필요할때 심적으로 기대는곳아님?ㅠ
소설 소재 그잡채 아니냐고.. 기구하게도 살았다
에휴 참...
초대합니다
열심히 살았는데...기구해 진짜
묘하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운이 안따라주는것도 그렇고 결국 그렇게 될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참... 이세상에 사연없는 사람은 없다지만 안타깝다
진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