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1章.무 림 맹 주 ( 武 林 盟 主 )
금륜법왕은 두 눈을 끔벅거리며 마치 눈앞의 결투에는 관심이 없는
양했다. 그러나 실은 그도 자세히 보고 있었다. 곽도의 얼굴에 패색이
짙어지는 것을 보자 그는 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아구스진드얼, 미마흐어스릉, 치얼치얼후 !"
사람들은 그의 이러한 서장어(西藏語:티벳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
랐다. 그러나 곽도는 사부가 자신에게 수비에만 치중하지 말라고 일깨
워 주는 것임을 알았다. 그는 광풍신뢰공(狂風迅雷功)으로 상대방을
공격해 들어갔다. 순간 길게 휘파람 소리가 소매끝을 스치며 질풍 같
은 바람을 일으키며 주자류를 덮쳤다.
바람의 위력이 하도 엄청나 옆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계속해서 벼락 같은 고함 소리가 그 위력을 더해 주었
다. 이 광풍신뢰공은 원래 이러한 기합소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일문
(一門)의 고강한 무공이었다. 주자류는 소매를 휘두르며 잽싸게 그의
장풍을 막아내면서 그와 거의 대등하게 맞서 나갔다.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 1백여 초를 겨루었다. 자언첩(自言帖) 한
편을 거의 다 써 내려갈즈음 돌연 주자류의 필체가 바뀌었다. 손이
다소 느려지며 필체가 가늘게 변했지만 힘이 있어서 기개가 넘쳐흘렀
다. 황용이 중얼거렸다.
(옛말에 이르길 자획이 가늘고도 힘이 있어야 신의 경지라 하였는
데, 정말 대단한 실력이구나.)
곽도는 광풍신뢰공으로 그에 대적하였으나 상대방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부채에 더욱 힘을 주며, 고함소리도 맹렬해졌다. 무공이 비교
적 약한 사람들은 대청 안에 서 있지 못하고 한 발 한 발 안뜰로 물러
났다.
양과와 소용녀는 여전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기둥 옆에 앉아 있었
다. 그들이 앉아 있는 곳은 결투를 벌이는 두 사람과 불과 1여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다. 두 사람은 정답게 얘기를 나눌 뿐 시합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으며, 곽도가 일으킨 바람조차 전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 단지 소용녀의 옷자락이 가끔 바람
에 나부낄 뿐, 그녀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다정스런 눈빛으로 양과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황용은 보면 볼수록 신기해 곽도, 주자류보다 그들 두 사람을 더 자
주 쳐다보곤 했다.
(저 여자 아이는 상승의 무공을 익힌 듯한데 어느 고수의 문하생일
까 ?)
소용녀의 나이는 그때 이미 스무 살이 넘어 있었다. 그녀는 고묘 안
에서 양광(陽光)을 보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피부가 특별히 희고 부
드러웠으며, 내공이 높았기에 얼핏 보면 15,6세 정도로 밖에 안 보였
다. 그녀는 양과를 만나기 전에는 희로애락을 몰랐었다. 칠정육욕(七
情六欲)은 사람의 신체와 용모를 가장 상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
문에 소용녀의 2년은 보통 사람의 1년과 같았다. 만약 그녀가 사부의
가르침을 받들어 계속 수련을 해 간다면 백 살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신체와 용모는 50세의 사람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들로 황용은
그녀를 양과보다도 어리게 보았다.
한편, 주자류의 필체는 점점 보기 흉해져 갔지만 기운은 점점 강해
져 마치 벽에 거미줄을 쳐놓는 듯했다. 곽도는 점점 버티기 어려워짐
을 느꼈다. 금륜법왕이 또 한 번 소리를 질렀다.
"마미빠미, 구스흐스 !"
이 여덟 자가 무슨 뜻인지는 몰랐으나 사람들 귓전에 음산하게 울렸
다. 주자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만약 또다시 변초를 쓴다면 이 대전이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
구나. 나는 대리국의 옛 재상으로서 대송을 위해 앞장을 선 이상, 절
대로 질 수는 없다. 우방국과 사문의 부끄러움을 초래해서는 안 될 일
이지 !)
돌연 주자류의 필법이 변했다. 그것은 마치 도끼로 암석을 쳐내려가
는 듯했다. 아무리 보아도 글자를 쓰는 것 같지가 않았다.
곽부가 주자류의 동작을 보다가 황용에게 물었다.
"주백부께서 지금 글을 새기는 것이지요 ?"
황용이 웃으며 말했다.
"내 딸은 역시 바보가 아니구나. 그의 이러한 지법을 바로 석고문
(石鼓文)이라 하지. 그것은 춘추전국 시대에 도끼로 바위에다 글자를
새겼던 일에서 나온 말이다. 잘 보아라 ! 주백부께서 무슨 글자를 새
겨 놓았는지."
곽부가 그의 필체를 따라 자세히 살펴보았으나 매 글자마다 모두 꼬
불꼬불한 것이 마치 한 폭의 조그마한 그림 같아서 한 글자도 알아 볼
수가 없었다. 황용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가장 오래된 대전(大篆:한자의 서체. 대전과 소전이 있음)
으로서 나도 완전히 모르니,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곽부는 손뼉을 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저 몽고의 멍청이는 더욱 못 알아 보겠네요. 저것봐요 !
얼굴이 온통 땀투성이에다 허둥대는 꼴이라니......"
곽도는 정말 이런 오래 된 전자를 한 자도 알아 보지 못했다. 상대
방이 무슨 자를 쓰는지 알 수가 없게 되자, 자연히 서법 사이의 초식
을 막아내기가 어려워졌다. 주자류는 계속해서 한 자 한 자 새겨 나갔
다. 문자가 오묘하기도 했지만 서법의 기본이 되는 일양지가 기세를
더해 주었다. 곽도가 부채를 휘두르려는 순간 주자류의 붓이 움직이더
니 부채 위에 글자 하나를 썼다.
곽도가 보더니 망연히 물었다.
"이것은 <망(網)>자렷다 !"
주자류가 웃으며 대답했다.
"틀렸어 ! 이것은 바로 <이(爾)>자이지."
순간, 붓을 뻗어 부채 위에 한 자를 더 써 버렸다.
곽도가 물었다.
"이것은 아마 <월(月)>자일걸 ?"
"또 틀렸어. 그것은 <내(乃)>자야."
곽도는 기분이 상했다. 그가 더 이상 글자를 부채에 써 놓지 못하게
곽도는 미친 듯이 부채를 휘둘러 댔다. 순간 주자류의 좌장이 급히 공
격해 들어오자 곽도는 얼른 장을 뻗어 막아 냈다. 그 순간을 이용해
주자류는 이미 부채에 두 글자를 썼다. 너무 급하게 썼기 때문에 대전
체가 아닌 초서체였다. 곽도가 알아보곤 소리쳤다.
"만이(蠻夷) !"
주자류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맞았다. 바로 <이내만이(爾乃蠻夷:너는 오랑캐이다)>이다 !"
사람들은 모두 몽고의 철기병이 침입해 들어와 백성들을 괴롭힌 데
대해 마음속으로 분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자류가 <이내만이>라
고 욕을 해 대는 소리를 듣자 모두들 큰소리로 칭찬을 했다.
곽도는 주자류의 일양서지(一陽書指)를 막아 내기가 어려워 이미 겁
을 먹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고함소리를 듣자 마음이 더욱 심란해졌다.
주자류는 붓을 춤추듯 휘둘러 공중에 글씨를 써 내려갔다. 무슨 글자
인지 생각할 틈도 없었다. 곽도는 오로지 무채를 들어 얼굴과 가슴의
급소를 막아 낼 뿐이었다. 돌연 무릎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상대방의 붓자루에 혈도를 찍힌 것이었다.
곽도는 정강이에 힘이 쑥 빠져 버려 무릎을 꿇으려는 순간, 일단 무
릎을 꿇는다면 이는 패배를 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히 기
를 끌어올려 무릎의 혈도로 내려보냈다. 그러나 주자류는 번개같이 붓
을 휘둘러 또다시 혈도를 찍어 버렸다. 그가 손가락 대신 붓자루로 일
양지법을 잇달아 격출해 내자 곽도는 당해낼 재간이 없어 결국에는 꿇
어앉아 버렸다. 얼굴에는 이미 핏기 한 점 없었다.
군웅들의 환호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곽정이 황용에게 말했다.
"당신의 묘책이 성공했구료."
황용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무씨 형제는 곁에서 시합을 지켜보면서 주사숙의 일양지법이 변화무
쌍한 것을 알고는 모두 크게 감복했다.
(주사숙의 무공이 이처럼 심후고강한 줄은 몰랐구나. 서법을 사용해
서도 이처럼 오묘한 변화를 사용해 낼 수 있다니...... 나는 언제나
그처럼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인가.)
모두들 그의 무공에 혀를 내두르는 순간 갑자기 주자류의 비명소리
가 들렸다. 급히 고개를 돌려 보니 그는이미 길게 자빠져 누워 있었
다.
너무나 창졸간에 생긴 변화라 모두들 놀람을 금치 못했다. 곽도가
패배를 한 후, 주자류는 일양지법으로 혈도가 눌린 사람은 이 점혈법
이 보통과 크게 달라서 다른 사람이 풀어 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손을 뻗어 곽도의 옆구리를 몇 차례 눌러서 그의 혈도를 풀
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곽도는 혈도가 막 풀리는 순간, 오른손 엄
지로 부채 손잡이 끝을 눌러 버렸다. 그 순간 부채살에서 4개의 독침
이 격출되어 주자류의 몸에 맞아 버린 것이다.
본래 고수들의 대전에서는 승패가 나눠지면 결코 다시 공격하지 않
는 것이 상례였다. 게다가 대청 안의 군웅 호걸들이 눈을 버젓이 뜨고
있는데, 어찌 그가 비겁하게 암습할 줄을 알았으랴 ! 곽도가 만약 시
합중에 암기를 격출했다면 부채살에 감추어진 독침이 비록 제아무리
정교하다 하더라도 결코 주자류를 해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는
주자류가 혈도를 풀어 주기 위해 그와의 거리가 불과 1촌 정도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아무리 무공이 높은 자라도 피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4개의 독침에는 티벳의 설산에서 나는 독극물을 발라 놓았기 때문에
일단 독침에 맞자 곧바로 전신에 고통이 엄습해 와 주자류가 비명을
질러 댔던 것이었다.
군웅들은 노기에 찬 얼굴로 곽도를 바라보며 비겁한 놈이라고 욕을
해 댔다. 곽도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패배를 승리로 이끌었는데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 우리들
이 시합을 벌이기 전에 암기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
잖아 ! 만약에 상대가 먼저 암기를 사용해 나를 무너뜨렸다 해도 어
쩔 수 없었을 것이다."
군웅들은 그가 지금 억지로 강변을 한다고 느꼈지만 즉각 반박할 방
도가 없었다.
곽정이 급히 주자류를 끌어안았다. 독침은 모두 그의 가슴에 박혀
있었으며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암기의 독약이 매우
괴이하다고 느껴 즉시 그의 대혈을 눌러 경맥을 봉쇄해 버렸다. 독기
가 심장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황용이 다가섰다.
"어때요 ?"
곽정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이 없었다. 독을 풀기 위해서는 필히 곽
도나 금륜법왕이 만든 약을 써야 할 텐데 어떻게 해독약을 빼앗을지
좋은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점창어은은 사제의 중독이 심한 것을 보자 걱정이 되면서 또한 화가
치밀어 도포자락을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달려나가 곽도와 겨루려고 했
다. 황용은 이 시합을 전반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상대방이 한번 이겼으니 어인 사형이 나선다면 상대편에선 달이파
가 응전하게 되니 우리 쪽이 승산이 없게 될 것이다.)
"사형, 잠깐만요 !"
점창어은이 물었다.
"왜 ?"
황용의 지모가 비록 뛰어났어도 언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한번 졌기 때문에 다음번 비무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다.
곽도는 간교한 꾀로 주자류를 이기고 나서는 대청 입구에 득의양양
하게 서서 잔뜩 뽐을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소용녀와 양과가 어깨
를 나란히 하고 손을 맞잡고 앉아서 정담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한눈
에 들어왔다. 자신의 이번 승리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
이자, 순간 화가 치밀어올라 부채로 양과를 가리키며 냅다 고함을 질
러 댔다.
"야, 이 건방진 놈아, 일어나 봐라 !"
양과는 다시는 소용녀와 헤어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소용녀에게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 때문에 방금 곽도와 주자류의 요란스러운 싸
움을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소용녀와 함께
수년을 고묘 안에서 지냈지만 실은 그녀에 대한 자기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잘 몰랐었다. 당시 소용녀가 자신을 아내로 맞이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그에게 물었을 때에는 그 질문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에 또한 그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이후에 소용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마음
속으로 몇천 번이나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맞이할 것이다 ! 설령 내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할지라도 소용녀
를 아내로 맞이하고야 말 테다.)
그와 소용녀 사이의 감정은 두 사람 모두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자라났었다. 그 뒤, 이별을 한 후로는 더욱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
졌다. 양과는 세상 일에 거리낌이 없었고 소용녀 또한 세속의 예법에
관해 조금도 아는 것이 없어 그저 좋으면 좋은 것이지 옆의 사람과 무
슨 상관이 있으랴 싶었다. 그런 이유들로 그들은 두 사람의 군웅이 곁
에서 악전고투를 하거나 말거나 수수방관하며 정담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곽도가 욕을 했는데도 양과는 여전히 듣지 못했다. 곽도가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금륜법왕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측이 한 차례 이겼으니 두번째 대결을 해 보자."
곽도는 양과를 노려보고는 자리로 돌아와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 측이 한 번 이겼으니 이제 두번째 대결에서는 우리 사형이신
달이파가 나설 것이오. 그 쪽에선 어느 영웅이 맞설 작정이오 ?"
달이파가 붉은 법의 속에서 병기를 꺼내 들고 대청 중앙으로 나섰
다. 사람들은 그의 병기를 보고 모두들 속으로 놀라는 눈치였다. 달이
파의 병기는 길고 굵은 금방망이였다. 이 금강항마저(金剛降魔杵)는
불교에서 호법존자(護法尊者)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서역승들이 종종
이것을 무기로 사용하곤 했다. 달이파의 항마저는 길이가 4척이나 되
었으며 굵기가 사발 주둥이만 했다. 번쩍번쩍 금빛으로 빛나는 것이
아마도 순금으로 만든 것 같았다. 무게도 강철보다 더 무거울 것이 틀
림없었다.
그는 대청으로 나와서 군웅들에게 인사를 한 후, 방망이를 위로 홱
집어던졌다.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대청 위의 2개의 커다란 청색
무늬 기왓장이 산산조각 났다. 방망이는 진흙 속에 떨어져 1척이나 쑥
들어가 버렸다. 깡마른 체구에 이렇게 육중한 방망이를 놀릴 수 있는
걸로 보아 그의 무공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황용이 생각했다.
(부야 아버지가 이 말라깽이 티벳승을 능히 제압할 수 있겠지. 그러
나 세번째는 법왕이 나설 텐데, 그러면 우리 쪽에서는 당해낼 사람이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내가 힘을 다해 이놈을 맞아야겠구나.)
타구봉을 들면서 황용이 말했다.
"내가 나서마 !"
곽정이 깜짝 놀라 급히 말했다.
"그건 안 돼 ! 안 돼 ! 당신은 지금 몸도 좋지 않은데 어떻게 대
결을 한단 말이오 ?"
황용도 사실 이길 자신이 없었다. 만약에 이번 판마저 지게 된다면
제 3판은 해 볼 건덕지도 없게 되는 것이다. 망설이는 순간 점창어은
이 소리쳤다.
"황방주, 내가 저 못된 중놈을 막게 해 주시오."
그는 사제가 독침에 맞아 고통스러워하는 참상을 보자 화가 불같이
일어나 빨리 복수를 하려 했다. 황용도 별 뾰족한 계책이 없어 생각에
잠겼다.
(그가 만약 티벳승을 이겨 준다면 곽정이 금륜법왕을 상대하면 되겠
구나.)
"사형, 조심하세요 !"
무씨 형제는 사백이 사용하던 철로 된 노(櫓)를 꺼내 점창어은 에게
갖다 주었다. 그는 노를 옆구리에 끼고는 중앙으로 걸아갔다. 그는 불
같이 타오르는 눈빛으로 달이파를 노려보면서 그의 주위를 한차례 돌
았다. 그가 주위를 돌자, 달이파는 무슨 속셈이 있을지도 모르므로
따라서 몸을 돌렸다. 점창어은이 맹렬하게 기합을 놓으며 2개의 노를
휘둘러 정수리를 곧바로 베어 내려쳤다. 달이파는 재발리 몸을 놀려
땅에 떨어져 있던 방망이를 쳐들어 그의 공격에 맞섰다. 떠엉, 하는
소리가 사람들 귓전에 요란하게 울렸다. 두 사람의 병기가 서로 부딪
치자 두 사람의 손목이 모두 시큰거렸다.
달이파는 티벳어로, 어은은 대리국 사투리로 서로에게 욕을 퍼부었
다. 그러나 누구도 그 뜻을 알지는 못했다. 순식간에 몸을 날리니 다
시 철노와 방망이가 서로 맞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번 대결은 주자류와 곽도의 비무처럼 시원시원하지 않았다. 그러
나 두 사람 모두 있는 힘을 다하여 상승 외공으로 서로 대항하였기 때
문에 방망이와 노에서 바람이 일어났다.
점창어은의 팔 힘은 본래 알아주는 그것이었다. 호남성에서 일등대
사를 모시고 은거할 다이시 날마다 철노를 저어 격류 속을 거슬러 올
라갔으므로 두 팔뚝의 근골은 철과 같이 단련되어 있었다. 그는 일등
대사의 대제자로 사문에서 전수를받은 지가 가장 오래되었다. 일등대
사는 그의 순박한 성품 때문에 그를 매우 사랑하였으나 그의 천부적
자질이 부족하여 내공은 주자류에게 못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외공에
있어서는 상당한 경지에 와 있었다. 지금 그가 티벳승 달이파와 외공
으로 겨루는 것도 외공이 바로 그의 장기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2개의
철노는 춤을 추듯 아래위로 맹공을 가하고 있었다. 그는 무게가 50여
근이나 되는 철노를 보통 사람들이 몇 근짜리 검을 휘두르듯 가볍고
민첩하게 놀렸다.
달이파는 스스로의 힘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터였는데 뜻하지 않게
중원땅에서 이처럼 강한 신력(神力)의 장사를 만나게 된 것이다. 상대
방은 힘도 강할 뿐만 아니라 초식 또한 정교하여 전력을 다해 금강저
를 휘둘러 댔다. 방망이와 노, 노와 방망이, 두 사람 모두 공격에 치
중하는 편이었다.
주자류와 곽도가 대결을 할 때에는 대청 안에서 관전하던 군웅들이
모두 바람을 피해 흩어졌었다. 지금 무거운 중무기로 사생결단을 내려
고 뒤엉키자 그 기세를 당해 내기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
병기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금속성 마찰음은 더더구나 견뎌 내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귀를 꽉 틀어막고 관전했다. 촛불이 환하게
비추는 가운데 황금빛 방망이에서 누런빛이 번쩍였고 철노에서는 두
줄기 흑기(黑氣)가 뻗어나와 서로 어지럽게 뒤엉켜 대결은 점점더 격
렬해져 갔다.
이러한 호결투는 실로 평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것이었다. 더 위험
스러운 광경이 비록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고수들이 내공을 이용하면
속으로는 그 힘의 부딪침이 대단할지 모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별반
대수롭지 않게 보이곤 했다. 세상에는 점창어은같은 무서운 신력을 지
닌 사람도 흔치 않았지만, 두 사람의 힘과 무공 또한 서로 비슷해서
그런 사람끼리 서로 이처럼 악투를 벌이는 것은 더더욱 보기 힘든 일
이었다.
곽정과 황용 모두 손에 땀이 흥건해 있었다. 곽정이 말했다.
"우리 편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사실 곽정이 그들의 승부를 쉽게 알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어찌 모
르겠는가 ! 다만 아내의 <어은이 이길 것이에요.>라는 말 한 마디를
들으면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아 물어 본 것이었다.
다시 수십 초를 겨루었지만 두 사람의 힘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
다. 오히려 힘이 더욱 솟구치는 것 같았다. 점창어은이 노를 번갈아
공격하며 기합소리를 질러 댔다. 달이파가 물었다.
"뭐라고 지껄이느냐 ?"
그가 쓰는 말은 티벳어이기 때문에 점창어은은 알아듣지 못하고 되
물었다.
"넌 뭐라고 헛소리를 주절대느냐 ?"
달이파도 알아듣지 못했다.
두 사람이 서로 욕을 해 대며 어지럽게 다투는 통에 대청 안의 탁자
들이 모두 부서져 나무조각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군웅들은 그
들이 혹시 정신없이 기둥이라도 치는 날에는 천장 전체가 내려앉을까
걱정이 되었다.
금륜법왕과 곽도도 속으로 놀람을 금치 못하였다. 보아하니 이처럼
악전고투를 계속해 간다면 설령 달이파가 승리한다 해도 힘이 떨어져
필경 중상을 입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너무 격전중이라 어떻게 정
지시킬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종횡무진 격전을 치르는 통에 누런 빛과 흑색 기운이 촛
불 아래 어지럽게 난무하고 있었다. 돌연 고함소리와 함께 두 사람이
동시에 맞부딪쳤다. 점창어은의 오른손에 든 철노와 금강저가 동시에
맞부딪쳤다 두 사람 모두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비교적 가느다란 철노
가 금강저를 당해내지 못하고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철노의 한 동가
리가 휙 날아서 소용녀의 발 앞에 떨어졌다.
소용녀는 양과에게 정신이 팔려 있다가 느닷없이 철노 조각이 왼쪽
발가락 위에 떨어지자 아얏, 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비명소리에
양과가 정신이 퍼뜩 들어 황급히 물었다.
"괜찮아요 ?"
소용녀는 몹시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며 발가락을 어루만졌
다.
양과는 화가 치밀어 누가 이 철노 조각을 던져 소용녀를 다치게 했
는지 알아 보려고 했다. 점창어은이 오른손에 부러진 철노를 들고 달
이파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달이파는 상대방의 무공이
자신과 엇비슷하여 만약 재대결을 한다면 이기기 어렵다고 여겨, 병기
로 따져 볼 때 자신이 이겼다고 우겼다.
곽도가 일어나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쪽이 두 번을 거푸 이겼으니 무림 맹주의 자리는 당연히 우리
사부에게 돌아가야 하는 것이오. 여러분들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과가 점창어은에게 말했다.
"당신 철노가 어찌해서 부러지게 되었소 ? 우리 용아가씨가 그때문
에 다치지 않았겠소 ?"
"그건......, 그건......"
당신 철노가 튼튼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이니 빨리 사죄하시오."
어은은 그가 아직 새파란 소년임을 보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 양과
가 돌연 손을 뻗어 그의 부러진 철노를 빼앗아 들며 소리쳤다.
"빨리 소용녀에게 사죄하시오."
곽도가 그의 말을 가로채며 소리 질렀다.
"이 촌놈아 ! 어서 꺼져 버려 !"
"어느 자식이 감히 누구에게 욕을 하는 것이냐 ?"
곽도가 이 말을 듣고 바로 대답했다.
"바로 네놈한테 욕을 했다. 어쩔 테냐 ? 이 촌놈아 !"
그는 남방 출신의 소년이 이러한 어투로 자신을 희롱하는 줄은 생각
도 못 했다. 양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바로 이 촌놈이 나를 욕하는 것이로군 !"
대청 안의 정세는 원래 상당히 긴장되어 있었는데, 이 소년이 갑자
기 끼여들어 말장난을 하자 군중들은 모두 웃어 버렸다. 곽도는 화가
치밀어 부채를 들어 양과의 정수리를 향해 쳐들어갔다. 군웅들은 방금
곽도의 무공이 대단한 것을 보았기에 그가 만약 양과의 머리를 공격해
들어간다면, 양과가 죽지 않으면 크게 중상을 입으리라 생각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손을 멈춰라 !"
"약한 자를 건드려선 안 되오 !"
곽정이 급히 몸을날려 부채를 빼앗으려고 했다. 양과는 머리를 숙
여 이미 곽도의 팔꿈치 안으로 파고들어가 타구봉법의 <전>자 구결을
사용해 철노를 휘둘러 곽도의 발을 걸어 넘어뜨렸다. 곽도는 휘청거리
며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의 무공이 고강하여 넘어지려는 순간
높이 펄쩍 뛰어올라 사뿐 내려앉았다.
곽정이 크게 놀라 물었다.
"양과야, 어찌 된 일이냐 ?"
양과가 웃으며 말했다.
"뭐 대단치 않아요. 타구봉법으로 그를 냅다 넘어뜨리려고 했더니만
그가 피해 버렸군요."
곽정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네가 어떻게 타구봉법을 사용할 줄 알지 ?"
"방금 노방주와 그가 대결할 때 보고선 몇 초 배웠지요."
곽정은 자신은 비록 아둔하지만 세상에는 총명한 사람이 많다는 것
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과의 말을 그대로 믿어 버렸다.
곽도는 양과에게 비록 넘어질 뻔했지만 그것은 자신의 실수라 여겼
다. 스무 살도 안 된 소년의 무공이 그토록 고강한 경지에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곽도는 목전에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대사를
앞두고 이런 어린 아이 때문에 일을 지연시키고 싶지가 않았다. 바로
곽정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낭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곽대협 ! 오늘의 시합은 우리가 이겼소이다. 우리 사부 금륜법왕
이 바로 무림 맹주가 되는 것이지요. 만약 불복하는 자가 있다면.....
."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양과가 살금살금 그의 뒤에 다가섰다.
철노를 들어 질풍같이 그의 엉덩이를 찔러 들어갔다. 바로 타구봉법의
제 4초인 <착>자 구결이었다.
곽도처럼 무공이 고강한 자가 어찌 등뒤에서의 갑작스런 암습을 모
를 리 있겠는가 ? 그러나 비록 그가 알아차리긴 했어도 타구봉법이 워
낙 오묘스러워 결국은 엉덩이에 퍽, 하고적중되고 말았다. 그의 내공
이 심후하고, 엉덩이 부분은 또 근육이 많은 부분이긴 했지만 매우 아
팠으며, 뜻하지 않게 당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아얏, 하고 비명을
질렀다. 양과가 소리쳤다.
"뭐라고 ? 내가 불복하겠다 !"
순식간에 대청 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이 소년이 지독한 개구장이
일 뿐 아니라 담력도 상당히 커 몽고왕자를 두 번씩이나 농락했다고
모두들 생각했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곽도는 화가 날 대로 났다. 일장을 휘둘러 따
귀를 후려 갈겨 울화부터 먼저 풀려고 했다. 그는 다만 손을 휘둘렀을
뿐이지만 장력이 워낙 대단했다. 서장파 무공의 정수로 일장이면 이
소년을 까무라치게 할 수도 있을 판이었다. 곽정이 얼른 왼손을 뻗어
그의 손을 거머쥐며 노숙하게 말했다.
"너 어찌 어린 아이와 상대하려고 그러느냐 ?"
곽도는 그에게 손이 잡히자 순간 몸이 떨려 옴을 느꼈다. 놀람과 동
시에 화가 치밀었다.
양과가 이 틈을 이용해 얼른 철노를 휘둘러 곽도의 엉덩이를 또 한
차례 갈기며 소리쳤다.
"이놈의 자식, 말을 안 들으니 아부지가 이렇게 엉덩이를 치는게 아
니겠느냐 ?"
곽정이 소리쳤다.
"양과, 어서 물러서라. 날뛰지 말고 !"
그러나 군웅들은 낄낄거리며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몽고 측의 무사들이 여기저기에서 한마디씩 해 댔다.
"두 놈이 한 명을 상대하느냐 ?"
"철면피 !"
"이것도 비무라 하느냐 ?"
곽정이 순간 멍청하니 곽도를 놓아 주었다.
황용은 방금 양과가 사용한 무공이 확실히 타구봉법의 초식임을 알
아보고는 심히 의심스러워했다.
(그가 어디서 타구봉법을 훔쳐 배웠을까 ? 설마하니 이 몇 개월간
내가 노방주에게 가르칠 때 훔쳐 봤단 말인가 ? 그러나 주위를 확실히
살펴보고 그에게 타구봉법을 가르쳤는데 그가 어찌 훔쳐 볼 수 있었을
까 ?)
"여보, 이리 와 봐요 !"
곽정이 아내 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양과가 당할까 봐 걱정이 되
어 시선은 여전히 두 사람을 떠나지 않았다.
곽도는 연달아 손발을 날려 양과를 공격하였다. 양과는 계속 피하면
서 약올렸다.
"엉덩이를 더 맞고 싶냐 ?"
양과는 노를 휘두르며 계속 그의 엉덩이를 때리려 했다. 곽도는 신
법을 전개했지만 그를 맞추지 못하고 허공만 내리쳤다. 곽도는 부채로
양과의 머리통을 치려고 했으며, 양과는 철노로 그의 엉덩이를 치려
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쫓아가며 대청 안을 돌자 이상한 원을 그리게
되어 누가 누구를 대리려 하는지 모르게 되었다.
관전하던 사람들은 두 사람이 몇 차례 원을 그리며 도는 것을 보자
모두들 놀라기 시작했다. 나이도 어린 양과의 발놀림이나 민첩한 행동
들이 곽도와 거의 비등하였던 것이다. 곽도가 몇 차례 번개같이 달려
들었으나 매번 실패로 끝났다.
점창어은과 달이파는 병기를 거머쥐고 서로 노려보면서 다시 한 번
격돌하려고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곽도가 이처럼 어린 소년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보게 되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점창
어은이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낄낄대며 웃었다. 달이파는 티벳어로
중얼중얼 욕을 해 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곽도, 양과 두 사람은 세 차례나 원을 돌았다. 곽도는 상
대방의 경공이 뛰어난 것을 알아차렸다. 계속 쫓아만 가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돌연 몸을 돌려 좌장을 뻗어 그의 철노를 빼앗으려
했다. 곽도는 오른손의 부채로 그의 허벅지 옆의 환도혈(環跳穴)을 찍
으려 했다. 이 같은 공격은 그를 더 이상 개구장일 보지 않고 정식으
로 초식을 사용해 공격한 것이었다.
양과는 여전히 그와 정면 대결을 않고 몸을 틀어 부채를 피한 후,
계속 철노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엉덩이를 때릴 테다 ! 두 번 때렸으니 아직 한 번이 남았지 !"
대결을 할 때 이렇게 희롱하는 수단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상대방의
무공보다는 월등히 뛰어나야 위험하지 않은 것이다. 양과가 비록 상승
의 무공을 익혔다고는 하나 공력에 있어서는 곽도에 훨씬 못 미치므로
이처럼 행동하는 것은 극히 위험스러운 짓이었다. 그러나 군웅들의 격
려와 환호성이 양과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곽도는 천하의 영웅들의 면전에서 자신의 엉덩이가 이 개구장이에게
또 얻어맞는다면, 설령 당장 이 녀석을 처치한다 해도 이미 크게 체면
을 잃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피하려는 생각 때문에
순간 반격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때 황용은 이미 양과가 어느 고수의 가르침을 받아 무공이 꽤나
높다는 것이라고 알아차렸다. 또 일전에 그가 내공으로 자신의 운기
조식을 도와 주었던 일이 생각나 그의 내공 수준도 여간 비범하지 않
다는 것을 떠올렸다. 황용은 그의 이러한 한바탕의 마구잡이 행동으로
인하여 잇달아 패한 열세를 슬기롭게 만화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양과야 ! 그와 한번 겨루어 봐라. 내가 보니 그는 네 적수가 안
되는 것 같구나."
양과는 곽도에게 혀를 낼름거리며 말했다.
"어디 해 볼테냐 ?"
곽도는 속으로는 화가 났지만 이를 참아내지 못하여 대사를 그르치
게 될까 염려되었다. 이미 연승을 거두어 무림 맹주 자리를 거의 다
차지햇는데 한 소년 때문에 소란을 피울 필요가 어디 있는가 !
"이놈 ! 너 같은 개구장이에게 한 차례 따끔한 교훈을 줘야겠지만
그것은 뒤로 미루겠다. 지금은 천하 무림 맹주이신 금륜법왕께서 여러
분께 말씀이 있을 것이니 여러분들은 모두 이분의 명령을 들으시오."
군웅들이 순간 왁자지껄하게 항변했다. 곽도가 큰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먼저 약속하길 삼판 양승제라 했소. 여러분들이 말했던 것
을 스스로 어길 셈이오 ?"
군웅들은 모두 강호에서 이름 있는 인물들로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신용을 저버린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방금 두 차례의 대결은 정말 억울하게 졌다.
첫번재는 압승을 당하여 승리를 패배로 만들었고 두번째는 단지 무기
가 부러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지지 않은 것이라고 우겨 대는 것도 군
웅들의 곧은 성격으로는 힘든 일이긴 했다. 모두들 곽도의 이 한 마디
물음에 그만 입을 다물었다. 양과가 소리쳤다.
"이 화상은 키다리에다 몸은 비쩍 말랐고, 모양 또한 괴상하게 생겼
는데 어떻게 무림 맹주가 수 있겠소 ? 내가 보기엔 그는 아무래도
자격이 없소이다."
곽도가 화난 듯이 말했다.
"이 꼬마놈의 사부는 누구시오 ? 어서 데려가 예의부터 가르치시
오. 다시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그땐 인정사정 보지 않을 것이오."
양과가 말했다.
"우리 사부야 무림 맹주에 합당하지. 당신 사부가 무슨 능력이 있다
고 ?"
"네놈 사부가 누구냐 ? 어디 한번 만나 보자 !"
곽도는 양과의 몸놀림이 비범한 것으로 미루어 그의 사부도 필시 고
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과가 말했다.
"오늘의 무림 맹주 자리는 제자들이 모두 사부를 대신해 겨룬 것이
아니겠느냐 ?"
"그렇고 말고, 우리가 세 번 중 두 번을 이겼으니 우리 사부님이 단
연 맹주이시다."
"그래, 그들을 이겼다고 해서 그게 뭐 어쨌단 말이냐 ? 우리 사부
의 제자들을 당신네들이 아직 이기질 못했는데......"
"네 사부의 제자가 누구냐 ?"
양과가 웃으며 대답했다.
"멍청이 같으니라구 ! 내 사부의 제자는 바로 나지, 누구긴 누구란
말이냐 ?"
군웅들은 그가 재치 있게 곽도에게 무안을 주자 모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양과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세 번 겨루어 너희가 두 번 이기면 그 화상이 맹주가 되는
것을 인정하지. 만약 내가 두 번 이기면 미안하지만 이 무림 맹주의
자리는 내 사부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어떻겠느냐 ?"
사람들은 양과가 이처럼 말하는 것을 듣자 그의 사부가 정말 대단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금륜법왕이 무림 맹주 자리
를 빼앗아 가려는 이 마당에 그의 사부가 누구이든간에 한인(漢人)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 소년이 곽도에게 이길성싶지는 않았지만 몽고
국사에게 맹주 자리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았다. 또한 이미 패배가 기
정 사실화 된 상태에서 어떤 새로운 전기가 생길지도 몰라 여기저기서
소리를 질러 댔다.
"맞다, 그 말이 맞다 ! 너희들 몽고인이 또 두 번 이겨야 된다."
"이 소협의 말이 맞다."
"중원은 고수들이 많은데 너희들이 운이 좋아 겨우 두 번 이긴 것인
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설쳐 대느냐 ?"
곽도가 깊이 생각하였다.
(상대편의 최고수 두 명에게 이겼는데 다시 겨룬다고 해서 뭐가 두
려우랴 ! 단지 그들이 인해 전술로 우리를 밀어붙일까 그게 걱정되는
군.)
"우리 스승이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천하의
영웅들이 자꾸만 겨루자고 한다면 어느 세월에 끝이 나겠느냐 ?"
양과가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
"누가 맹주를 하든 우리 사부는 상관치 않는다. 그러나 그녀는 네
사부에게 유감이 있지."
"사부가 누구시냐 ? 그 어르신네도 여기 계시냐 ?"
"그 어르신네는 바로 네 눈앞에 있지. 용아가씨, 이 사람이 안부를
묻네요."
소용녀는 응,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군웅들이 폭소를 터뜨렸
다. 소용녀의 용모가 앳되게 보였으며, 나이도 양과보다 어려 보이는
데 그녀가 어떻게 그의 사부가 될 수 있을까 ? 이 익살스러운 소년이
우스갯소리로 곽도를 놀리는 것이라고 군웅들은 생각했다. 단지 학대
통, 조지경, 윤지평 등 몇 사람만이 양과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황용이 비록 지혜가 뛰어났지만 이처럼 나약하고 어린 소용녀가 그
의 사부라고는 결코 믿기 어려웠다.
곽도가 성을 내며 힐책했다.
"이놈, 무슨 헛소리냐 ! 오늘은 여러 군웅들이 집회를 가지는 중요
한 날이거늘 어찌 이처럼 방자하게 날뛰는 것이냐 ? 어서 썩 물러나
거라."
"당신 사부는 못생겼고 또 음흉하며 말도 우물우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겠다. 내 사부는 얼마나 아㎢牟痢瘀얼마나 청아한 기품을 지녔는
지 눈깔이 있다면 보면 모른단 말이냐 ? 그녀를 무림 맹주로 추대하
는 것이 그 못생긴 화상보다 몇천 배 당연한 도리이지 않겠느냐 ?"
소용녀는 양과가 자신의 미모를 칭찬해 대자 기쁜 나머지 살며시 미
소를 지었다. 그녀가 웃자 이름 모를 신비로운 꽃이 피어나듯 정말 미
색이 뛰어나 보였다.
군웅들은 양과가 점점 더 대담하게 상대를 희롱하는 것을 보자 모두
들 통쾌하게 여겼다. 몇몇 나이든 사람들은 곽도가 돌연 살수를 뻗쳐
양과의 생명을 앗아 버릴까 걱정이 되었다.
이 지경에까지이르자 곽도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영웅 제위 여러분, 소왕(小王)이 이 개구장이를 죽인다 해도 이는
그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소왕을 욕하지 말아 주시길 바라오."
말을 끝내기 바쁘게 곽도는 부채를 휘두르며 양과의 정수리를 치려
했다. 양과는 가슴을 쭉 펴며 그의 말을 흉내냈다.
"영웅 제위 여러분, 개구장이가 이 버릇없는 왕자를 죽인다 해도 이
는 그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개구장이를 욕하지 말아 주십시오."
군웅들이 폭소를 터뜨리는 순간 양과가 돌연 철노를 휘두르며 곽도
의 엉덩이를 쳐내려갔다.
곽도는 몸을 틀어 피하며, 부채를 비스듬히 휘두르며 좌장을 번개같
이 뻗어 상대의 머리를 쳤다. 부채를 휘두른 것은 허세였고 좌장공격
이 진짜였다. 이 일장은 십성의 공력을 다하여 그의 머리통을 부스러
뜨리려는 속셈이었다. 양과는 번개같이 으로 피하며 둥근 탁자를 밀
어넣었다. 꽝, 하는 소리와 함께 곽도의 일장은 탁자 위에 격중되었
다. 순간 나뭇조각이 튕겨 나가며 탁자는 두 조각으로 쪼개졌다. 군웅
들이 그의 장력을 보자 그만 입을 딱 벌렸다. 곽도는 곧바로 탁자를
발로 찬 뒤, 잇달아 공격해 들어갔다.
양과는 그의 장력이 대단한 것을 보고 더 이상 소홀히 상대할 수 없
다고 생각했다. 양과는 철노를 춤추듯 휘두르며 타구봉법을 이용해 그
와 격돌하기 시작했다. 양과는 타구봉법의 초식을 홍칠공에게 이미 완
전히 전수받아 그날 화산 정상에서 구양봉에게 며칠간 시전한 바 있었
다. 그는 초식 중 가장 오묘한 것까지도 모두 연습하였고 구결과 변화
도 또한 황용이 노유각에게 전수하는 것을 들었던 터였다. 이때 양과
는 두 가지를 합쳐 시전했는데 모두가 사리에 꼭 맞았다.
단지 철노가 너무 무겁고 또 반으로 부러져 짧았으므로 심히 불편할
따름이었다. 10여 초가 지나자 곽도에게 점차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양과가 시전하는 것이 모두 타구봉법이며, 비록 초식이 익숙치못하
고 정수를 다하지 못하였지만 시전 자세는 완연한 타구봉법임을 본 황
용은 즉시 대청 가운데로 뛰어들어 타구봉을 양과에게 건네주며 말했
다.
"과아야, 이 타구봉을 이용하여라. 노방주의 이 타구봉을 너에게 빌
려줄 테니 못된 강아지를 때리고 난 후에는 즉시 돌려주어야 해 !"
타구봉은 바로 개방 방주의 신물(信物)이므로 빌려주는 것이라는 사
실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양과는 기뻐하며 타구봉을 받아들었
다. 황용은 그의 귓전에다 속삭였다.
"해독약을 배앗도록 하여라."
말을 마치곤 즉시 돌아갔다. 양과는 방금 주자류가 암기에 당한 상
황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끼 때문에 잘 몰랐다. 해독약이 무엇을 말
하는지 잘 몰라 다소 멍청해진 순간, 곽도가 손을 휘두르며 달려들었
다.
양과는 타구봉을 쳐들어 그의 아랫배를 찍었다. 이 죽봉은 단단한데
다가 길이나 무게 또한 꼭 알맞아 타구벙법의 위력은 자연 배가되었
다.
곽도가 양과의 머리를 쳐내려가는 순간 타구봉이 날아들며 자신의
배꼽 아래 관원혈(穴)을 찌르려 하지 않는가. 이 혈도는 임맥의 요혈
인데 이 조그만 개구장이가 이처럼 정확하게 혈도를 찍어내자 곽도는
자신도 모르게 놀랐다.
곽도는 양과를 이미 몇 차례 다루어 보았기에 그가 몸놀림이 재빠를
뿐만 아니라 이미 고수의 지도를 받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다
양과의 점혈 공격을 받게 되자 그를 필적할 만한 상대로 여겨 더이상
가볍게 대할 수가 없었다. 즉시 몸을 틀며 부채를 펴 자신의 몸을 보
호하였다.
곁에서 관전하고 있던 고수들은 곽도가 수세에 몰리는 것을 보자 더
욱 놀람을 금치 못했다. 양과가 말했다.
"잠간만, 나는 결코 공연히 남과 대결하지 않는다. 뭔가 내기를 걸
어야 신이 나지 않겠어 ?"
곽도가 말했다.
"좋다. 만약 내가 진다면 절을 세 번 하며, 널 보고 할아버지라고
세 번 부르겠다."
양과는 또 강남 지방 어린 아이들의 말투를 흉내내며 짐짓 못들은
체하며 다시 물었다.
"뭐라고 한다고 ?"
너무나 갑작스레 어린애 말투로 말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속시
십상이었다. 곽도는 몽고와 티벳에서 성장하였기에 일상생활에서 순
박, 소박한 것만 보며 자랐었다. 그가 어찌 이처럼 교활한 강남 어린
아이의 속셈을 알 수 있으랴 ! 곽도가 곧바로 대답했다.
"할아버지라 부르겠다 !"
"으음, 귀여운 손자야 ! 다시 한 번 불러 보렴 !"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리자 곽도는 자신이 또 우롱당한 것을 알았다.
곽도는 이를 악물고 오른손의 부채와 좌장을 마구 휘두르며 달려들었
다.
양과가 힘을 대해 막으며 말했다.
"만약 네가 진다면 해독약을 내게 주어야 한다."
곽도가 성을 버럭 냈다.
"내가 너한테 져 ? 꿈에서 깨거라. 이 촌놈의 자식아 !"
곽도는 금륜법왕의 수제자로 이미 서장 무공의 정수를 익힌 몸이었
다. 그는 일등대사의 최강의 제자 주자류와 근 1천여초를 겨룰 정도로
무공이 심후했다. 양과와는 비교할 위인이 아니었다. 양과는 처음에
그를 약올리게 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며, 곽도 또한 처음에
는 자신의 전력을 다하지 않앗던 것이었다. 그가 정말로 손을 쓴다면
20여 초 후면 양과는 낭패를 당할 일이었다. 그러나 군웅들은 이 조그
만 소년이 이토록 오랫동안 견뎌 내는 것을 보자 모두들 칭찬을 하며
수군거렸다.
"이 소년은 정말 대단한데......"
그들은 분분히 서로에게 이 소년이 어느 문하인지를 물었다.
곽도는 상대방의 열세를 눈치채고 장력에 더욱 힘을 가했다. 양과가
사용한 타구봉법은 신묘하기 그지없어 곽도의 부채나 장법이 미칠 바
가 안 되었다. 그러나 홍칠공이 전수해 준 것은 단지 초식뿐으로 봉법
의 구결이 오묘하여, 다행히 양과가 총명했기에 황용이 말한 것을 듣
고 겨우겨우 이 둘을 합쳐 시전해 본 것이었다. 비록 위력이 더해졌다
고 하지만 양과의 봉법이 완전히 연성된 상태는 아니었다. 한 차례 격
돌을 한 후, 양과는 이리저리 피하며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곽부와 무씨 형제는 대청에서의 비무가 시작된 후, 줄곧 정신없이
관전하였다. 셋은 머리를 맞대고 조용히 소곤거렸는데 양과가 돌연 출
현하자 모두들 의외로 여겼다. 무씨 형제는 그가 필경 크게 낭채를 당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부는 호히려 그들과는 반대로 양과의 용감성을
칭찬했다. 무씨 형제는 곽부의 반응이 꽤나 거북하게 들렸다. 소용녀
가 느닷없이 나타나 양과와 친한 것처럼 보이자 이들 형제는 공연히
기분이 상쾌해졌었다. 그러나 양과가 그녀에게 사부라 부르자 그진위
여부를 몰라 다시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 양과가 곽도에게 몰려 허
둥거리는 꼴을 보자 두 형제는 비록 적이 이기길 바라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양과가 크게 낭패를 당하는 꼴을 보고 싶기도 했다. 두 사
람은 득실 관계를 따져서 기뻤다가 우울했다가 마음이 순식간에 몇 번
이나 뒤바뀌고 있는 중이었다.
곽부는 양과에 대한 별다른 호감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리 싫은 마
음도 없었다. 단지 그를 못나고 무능한 사람으로 여겼었는데, 자신을
이미 그와 짝지어 놓았다는 부친의 말을 듣자 순간 화가 났으나, 그런
일은 결코 실현되기 어렵다고 믿어 그렇게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그
러나 지금 그의 무공이 이처럼 대단한 것을 보자 크게 놀랄 뿐이었다.
그가 위기에 몰리자 곽부는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양과는 이렇게 싸우다가는 10여 초 이내에 적에게 질 것 같았다. 소
용녀는 여전히 주춧돌 위에 앉아 있었지만 등은 아까처럼 기둥에 기대
지 않고 있었다. 태도를 보니 여차하면 뛰어들어 도울 심산이었다.
양과는 생각한 바가 있어 돌연 타구봉을 휘둘러대며 비스듬히 몸을 꺾
어 소용녀 쪽으로 내달았다. 곽도가 고함을 질렀다.
"어닐 가느냐 ?"
하고 말하며 냅다 뒤쫓아왔다.
소용녀가 두 발을 가볍게 들어 왼발 끝으로 곽도의 오른발 복사뼈의
곤륜혈(崑崙穴)을 걷어차며, 오른발 끝으로는 그의 왼발바닥의 용천혈
(湧泉穴)을 걷어찼다. 소용녀가 두 발을 약간 들어올려 신속하게 공격
한 것을 사람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곽도는 급한 김에 원
앙연환퇴 일초를 사용하여 공중에서 두 발을 엇갈리게 하여 간신히 소
용녀의 점혈 공격에서 벗어났다.
양과는 소용녀 옆에서 뛰어오르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적
이 내려앉기도 전에 타구봉을 휘둘렀다. 곽도는 부채로 타구봉을 쳐내
며 소용녀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내려앉았다. 그녀의 두 눈을 바라다
보며 생각했다.
(중원은 역시 사람이 많구나. 이 두 남녀는 불과 10여 세의 나이로
어찌 이처럼 뛰어난 무공을 지녔단 말인가 !)
양과는 이 일초의 힘을 빌어 타구봉법 중의 살초, 삼초를 연달아 격
출하자 곽도는 크게 당황해 전력으로 막아 냈다. 그러나 이어지는 사
초에서는 양과가 계속 오묘한 봉법을 구사할 수가 없게 되어 그에게
반격을 받아 또다시 열세에 놓이게 되었다.
사람들은봉법을 몰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황용은 애만 태
우다가 결국 소리를 질렀다.
"봉으로 땅을 스치며 곧장 찔러 들어가라."
이 봉법은 실로 괴이하여 비록 그가 사용하면서도 어떤 결과를 갖고
올지 몰랐다. 봉법이 격출될 때 마침 상대방이 부채를 비스듬히 휘둘
렀다. 곽도는 이 일초를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 황급히 피하려 들었다.
황용이 또 소리쳤다.
"개가 담장으로 도망할 때 어떻게 때리지 ? 빨리 개 엉덩이와 꼬리
를 쳐라 !"
이 봉법은 개방 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것으로서 모든 동작이 실제
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군웅들은 황용이 적을 개라고 욕을 해
대는 줄 알았지, 양과의 무예를 지도하고 있는 것인 줄은 몰랐다. 이
타구봉법은 비록 개방 방주 이외에는 남에게 전할 수 없는 것이었지
만, 첫째 양과가 이미 스스로 배웠으며, 둘째 이 시합이 워낙 중대해
반드시 이겨햐 했기 때문에 황용도 어쩔 수 없이 규약을 어겨 가며 계
속 지도하였던 것이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구결을 정수가 숨겨져 있었다. 게다가 양
과의 총명으로 인하여 몇 차례 지도를 받자 황용이 구결을 다 말하기
도 전에 처음 지도받은 몇 자를 시전해 냈다. 그러자 타구봉법의 위력
은 점점 강해져 곽도는 죽봉 한 자루에 쩔쩔 매며 반격할 짬을 얻지
못했다. 몇 초만 더 지나면 무공이 고강했던 곽도가 패할 듯이 보이자
군웅들은 놀람과 기쁨이 겹쳐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곽도가 급히 부채를 휘둘러 맹공을 퍼부어 양과를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게 한 후 소리쳤다.
"잠깐만 멈추어라 !"
양과가 웃으며 말했다.
"뭐라고 ? 손자야, 이제 패배를 인정하겠느냐 ?"
곽도는 얼굴색을 붉히며 소리쳤다.
"너는 사부를 대신해서 맹주 자리를 빼앗겠다고 말해 놓고 어재서
홍칠공의 무공을 사용하느냐 ? 만약 홍칠공이 사부라면 이미 두 번
겨루었다. 너희들이 멍청해서이냐, 아니면 무슨 까닭이 있는 것이냐
?"
황용이 생각해 보니 틀린 소리가 아니라 적절한 항변을 하지 못하고
억지로 떼를 써 볼 생각을 하려는데, 양과가 벌써 그 말을 받고 있었
다.
"네 말이 옳지. 이 봉법은 내 사부가 전수해 준 것이 아니다. 설령
너를 이겼다 해도 승복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나의 사부
의 무공을 보고 싶다면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지. 내가 방금 남의
무공을 썼던 것은 실은 본문의 무공을 사용한다면 네가 너무 비참하게
깨질까 우려해서였다. 다 널 생각해서였으니 인사나 하시지 !"
원래 양과는 곽도의 말을 듣는 순간, 이미 소용녀를 힐끗 쳐다보았
었다. 순간, 양과는 깨달은 바가 있었다.
(다행히도 그가 나를 일깨워 주었구나. 만약 내가 타구봉법으로 그
를 이겼다면 어떻게 용아가씨의 능력을 여기에서 나타낼 수 있었겠는
가 ? 그랬다면 아가씨가 얼마나 나를 섭섭하게 여겼을까 ?)
사실 소용녀는 천진무구하여 마음속에는 양과에 대한 정념만이 가득
할 뿐이었다. 오로지 그만 바라보고 있으면 웬지 마음이 넉넉해져서
만사를 개의치 않았다. 그가 이기면 당연히 좋은 것이고 져도 상관없
었다. 그가 본문의 무공을 사용하든, 안 하든 황용의 지도를 듣든 말
든 그녀는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던 것이다.
곽도가 생각하였다.
(네가 만약 타구봉법을 사용치 않는다면 네까짓놈의 생명을 취하는
것쯤 어려운 일이 아니지.)
바로 냉소를 띠며 곽도가 말했다.
"그래요 ? 그렇다면 귀하의 사부에게 전수받은 무공을 어디 보여
주실까 !"
양과가 소용녀에게서 전수받은 가장 정묘한 무공은 검법이었다.
"어느 어르신네께서 검 한 자루 좀 빌려주시렵니까 ?"
대청 위의 2천여 명 중 약 3백 명 가량이 검을 차고 있었다. 양과의
한 마디를 듣자 군웅들은 일제히 대답하며 분분히 검을 뽑았다.
학대통과 손불이는 왕중양을 스승으로 모시기 전부터 충의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후에 왕중양의 영향을 받아 더욱더 오랑캐에 저항하는
마음이 강렬해졌다. 양과가 전진교를 떠나 버려 그들은 매우 분노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가 강적을 맞이하여 애써 분투하고 있는 것을 보
자 일체의 사사로운 감정은 눈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손불이의 무공은 전진칠자 중 가장 약해 왕중양이 임종할 때 전진교
에서 가장 예리한 보검을 그녀에게 주어 무공의 부족함을 보충하라고
하였다. 양과가 검을 빌려 적을 막겠다고 하자, 그녀는 맨 앞에 나서
며 푸른 빛이 번쩍거리며 한기가 감도는 보검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말했다.
"이 검을 써라 !"
양과가 보니 검은 비취빛이 감도는 단금절옥(斷金切玉)이라고 할 수
있는 보검이었다. 이걸 사용해 곽도와 겨룬다면 상당한 이익이 될 것
이었다. 그러나 손불이의 몸에 걸친 도포를 보자 자신이 중양궁에서
당한 굴욕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또한 손할머니가 학대통의 손에 횡사
당한 일이 생각났다. 양과는 눈을 홱 까뒤집으며 손불이의 보검을 받
지 않았다. 몸을 돌려 개방 제자의 칼집에서 거무티티한 녹이 슨 검을
골라 잡고는 말했다.
"싫어요, 나는 이 검을 빌려 쓰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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