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지못 문패
연지못 문패를 찾았다
물기 젖은 바람이 불었다. 비가 오려나 보다. 우산을 들고나오지 않았지만, 걱정을 안 하기로 했다. 일기예보에서 내일쯤 비 소식이 있다고 하니 비가 오면 미친 척 맞으면서 걸으면 된다. 핑계 삼아 비를 맞는 것도 괜찮다. 운동을 나온 사람들 손에도 우산이 보이지 않았다.
기분 좋게 웃으면서 반겨주던 금계국도 시들 부들 꽃이 지고 있다. 이제는 개망초가 대세다. 빈 밭에는 개망초가 점령해서 개망초 천국이 되었다. 대단한 생명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개망초밭을 지나가면서 킁킁대며 꽃향기를 마신다. 소인국 공주가 좋아하는 계란후라이꽃이 아닐까?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맛있겠다.’ 하며 침을 꼴깍 삼킨다. 오늘 점심은 계란후라이로 우아하게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면서 레스토랑 분위기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가끔 계란후라이를 두 개 정도 만들어서 돈가스처럼 나이프를 사용해서 먹으면 기분 전환이 되었다. 혼자서도 잘 노는 여자다.
연지못 문패는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인터넷에 표지석이 있다고 분명하게 나와 있다. 서쪽 수문에 화강석에다 음각으로 새긴 표지석이 있다고 한다. 생각이 날 때마다 서쪽 수문 근처에서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수문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샛길이 있는데 근처 과수원과 묘목밭에서 사람들이 늘 일을 하고 있었다. 낚시하는 사람들의 자동차가 두어 대 있을 때도 있고 해서 지나갈 때마다 쭈뼛쭈뼛하다가 돌아섰다. 둑길 위에서 내려다보면 표지석으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인터넷으로 다시 찾아보고 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연지못 서쪽 바깥 둑이 맞다. 사람이 없을 때 용기를 내서 수문 아래 수풀 속으로 난 샛길로 내려가 보리라 다짐을 했다.
오늘은 새벽에 산책을 나와서 수문 쪽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복숭아가 익어서 수확하고 있었는데 아직 사람들이 나오지 않았다. 자동차도 없었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그냥 샛길로 내려갔다. 마음먹었으면 그냥 해버리는 것이다. 얼마나 기회를 엿보면서 지나쳐 간 길인가. 물이 흘러내려 가는 소리가 경쾌했다. 생각보다 수문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맑았다.
매일 연지못을 걸으면서 이곳까지 내려와 보기는 처음이다. 연지못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자료가 필요했다. 진량이 고향인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도 담아두고 연지못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데려오고 연지못에 기대서 살아가는 꽃과 바람과 하늘과 소낙비와 함박눈도 넣어두었다.
수문 입구에서 아무리 둘러봐도 표지석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도 저기도 없었다. 어디에 숨어있는 걸까? 과수원 근처까지 둘러보아도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맑은 물소리에 반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돌아서는데 그때 수문 상부에 큰바위얼굴처럼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그대로 멈춰버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표지석의 크기가 컸다. 세월의 이끼가 덕지덕지 낀 돌에서 전해오는 기운이 나의 심장을 뛰게 했다. 아니 가슴이 뭉클해서 눈물이 났다. 애타게 찾아 헤매던 답답했던 시간이 한순간에 시원하게 터져버렸다.
서둘러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리도 찍고 저리도 찍었다.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가면서 문패를 소중하게 휴대폰에 담았다. 언덕배기를 오르다가 다시 내려가서 한 번 더 쳐다보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금계국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꽃길을 걸었다. 둑길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위치에 표지석이 있었다. 살면서 가끔은 뒤도 돌아보며 걸을 일이다.
연지못 문패를 드디어 찾았다. 연잎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백로에게 큰소리로 ‘문패 찾았다’ 고 자랑했다. ‘눈이 보배여’ 활짝 웃으며 백로가 화답을 해준다.
* 연지는 진량읍 선화리 18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연지는 과거에는 건흥지(乾興池)로 전해 내려오다가 1947년 일제가 건흥지를 확장 개보수한후 표지석을 세우면서 당초 건흥지, 건흥연지로 불러오던 이름을 건흥(乾興)을 빼고 연지제(蓮池堤)로 새기면서 연지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되었으며, 현재도 연지 서편 바깥 둑 수구 상부에 가로 121㎠, 세로 36㎠ 화강석에 좌서로 ‘연지제(蓮池堤)’를 음각(글자 크기 가로 8㎠, 세로 21㎠ 깊이 5㎜)으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1568년 경주에서 태어나 참판을 지낸 동래 정씨 정개보의 5세손인 정응지는 자는 원도, 호는 농수이다. 1604년 건흥마을로 이거한 후 어느날 꿈속에서 도인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 일찍 서리가 내린 땅에 둑을 쌓아 못을 만들라 ’는 현몽 후 도인이 가르켜준 자리에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이 못이 바로 연지다.
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