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지문
넘어질 때마다 무늬가 생겼어
물결이 굽이칠 때마다 결 따라 남긴
소용돌이치고 모아지고 만나서 몸에 남은 무늬
그 골을 따라가면 전생을 꿈꾸듯 어딘가에 도착하곤 했어
언니가 나를 업고 가던 그 저녁 신작로
등에서 수박향이 났지
우물에 떨어진 달을 아무리 길어 올려도 두레박엔 아무것도 없듯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하루는 흔적도 없었지
물일을 많이 해서 닳아버린 지문처럼
꽃잎에 남은 잎맥들은 해독 못한 채로 남았어
이불 뒤집어쓰고 울던 밤이거나
해고 통지를 받은 봄이거나
구급차를 타던 날이거나
생채기 하나 없이 오는 아침은 없어서 말이지
물결무늬로 말라버린 압화
갈비뼈 어디쯤 숨겨 놓은 기억처럼
책 읽던 중간에 끼워 놓았지
기억에 눌러놓고 간 누군가의 무늬 같아서
꽃의 마지막 말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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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꽃의 지문 / 최지안
이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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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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