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직장 생활을 여기 오기전까지 2년반 정도 했다.
그당시 직장이라는 곳이 출근시간은 있는데 퇴근 시간이 없고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각종내기의 당구 한게임
그러다 보면 막차 시간은 다가오고
그당시 내일급,마누라로부터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받아오는 돈이 4천원
그러니까 일당 4천원 짜리 인생이었다.
이 사천원으로 6백원하던 88담배 한갑, 점심은 일천 팔백원짜리 칼국수 그리고 교통비하고 나면 주머니에 일이백원 정도 남던가 했다.
그당시 신혼이었고 살림집은 목 4동 목동 신시가지 바로 맞은편 연립주택,연탄을 사용하는 구식이었다.
퇴근 시간 군대보다 더한 상하관계,내몸이 내몸이 아닌 종속된 그런 생활이었고,강요받은 충성을 맹세한 로보트처럼,
못하는 술을 매일 마셔야되고
그당시는 명동에서 시청앞까지 걸어가서 좌석버스 68과 604를 이용했었다.
지금도 술먹으면 자는 버릇이 있는데 그때는 어딘가에 닺기만해도 눈꺼풀이 뽀뽀를 했다.
겨우 시간에 맞추어서 좌석버스에 실렸는가 하면
골아 떨어졌었다.
습관적으로 양화대교를 지나면서 눈을 한번뜨고
아 지금부터는 안졸아야지
그 양화대교에서 다시 잔다면 종점까지는 가는 것이고 그러면
걸어오든지 거기서 자고오든지,주머니에 돈이 없으니.
하지만 무서움에 벌벌떨고 있을 마누라 생각에
차마 걸어올수는 없고,
양화대교를 건너면서 부시시 눈을 떠지만
목동 사거리 지나면서 통제를 벗어난 육체를 가눌수 없고
여지 없이 신월동 종점이다.
새벽녘까지 기다리고 있는 마누라에게 전화
지금 택시타니 얼마후에 버스 정류장에 나와라이
그 캄캄한 밤에도
싫은 내색없이 기다리던
그추운 겨울밤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리던 마누라.
익어가던 군밤먹자는 말을 차마 하지못하고
묵묵히 앞만 보면서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어찌나 무거웠던지.
얼마전에 살아온 이야기를 하다가
참 궁상맞게도 살았었다고 하니
하는 말이
하루에 4천원만 용돈으로 주고도 둘이 사는 살림살이에
적금붓고 나면
한달에 2만원이 모자라서 처형집에서 빌렸었단다.
장사익의 타향 살이를 듣는데
자꾸 옛날 그시절 생각이 나더라.
양화대교,그때는 제2한강교였지, 아마.
맹시미가 보고온 양화대교가
애수에 젖게한다.
서울에 살면서 그굴레를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던
목동,화곡동 신정동,신월동
살던 옛집들은 그대로인지 보고 싶어 진다.
그리고 4월, 잔인한 달
브라질에 출장으로 처음 도착한 날이 93년 4월 13일이고
여기 브라질에 정착하고자 결심한 날이 97년 4월 10일이고
그리고 그 4월 어느날,굴레를 벗어버리고자 결혼날이 있고
아이러니칼하게도 나를 여기에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
그유명한 Tiger Woods다.이 야그는 다음에
첫댓글 그래 내가 전투욕을 깨우게 해 주었다니 다행이네 요즈음 양화대교아래 한강에 설치된 큰 분수대가 나를 흥분케하고 하늘을 놀라게 하고 마음에 사랑을 움트게 한다.
정말 아, 옛날이여! 드라마보다 더한 각본없는 삶의 드라마네. 요즘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를 보면서도 거짓이 아닌 진실로 다가온다. 내 삶도 그렇고. 그래서 난 비교적 평탄하게 살았었다 라고 자랑하는 사람들과는 가까이 친해지고 싶지 않음을 느낀다.
진영이의 글을 보니, 새삼 나도 옛날의 모습이 돌이켜지고, wife에게 미안한 감정이 솟구치네...기업총수들 본께, 고생안하고 성공한 사람 아무도 없더라... 끝이 좋으면 다좋은 기라...진영아 2탄, 3탄 계속 올려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