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에는 죽설헌(竹雪軒)이라는 문화 예술인들의 사랑방이 있습니다.
개인 집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지요.
시원(枾園) 박태후 화백께서 40여년간 가꾼 정원이 있는 집입니다.
조용헌 교수가 쓴 책 "방외지사(方外之士)"의 첫장에 등장하는 곳입니다.
배밭 가운데 있는 숲속의 집으로, 자연과 어울리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요.
저희 부부는 죽설헌 안방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장작불을 지핀 온돌방 구들장의 온기가 온몸을 풀어줍니다.
눈 내리는 소리도 들릴 것 같은 곳,
대나무 밭을 스치는 바람소리도 청량한 곳입니다.
죽설헌 거실에서 창을 통해 내다 본 마당 사진입니다.
입춘을 앞둔 마당은 흰 눈으로 덮여 있네요.
거실에는 손님이 오면 마주 앉아 차(茶)를 마시는 찻상이 있습니다.
직접 정원에서 채취하여 덖은 차잎으로 끓인 차를 손님에게 내놓지요.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이 찻상에서 차를 드셨다고 합니다.
다녀가신 분들이 남긴 감사의 마음은 향기가 되어 죽설헌을 감싸고 있습니다.
5월이면 마당 한쪽에서 철쭉이 큼직한 꽃송이를 피우지요.
5년 전 사진과 비교해 보니 실내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그때도 똑같은 전기 주전자가 있었군요.
정월 대보름이면 30여명의 사람들이 이 거실에 모입니다.
저희 부부도 여러번 초대를 받고 가서, 통기타 가수의 노래, 판소리 명창의 소리 한마당,
광주지역 병원장의 가곡 독창, 스님의 하모니카 연주 등을 들었답니다.
2년전 대보름 모임 때 시원 선생께서 인사말을 하시는 장면입니다.
거실에서 안방과 부엌으로 통하는 쪽으로는 오래된 오디오가 있고
시원 선생의 문인화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마룻바닥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의 마루를 가져다가
시원 선생 내외께서 사포로 밀고 여러 번의 칠을 해서 완성하였답니다.
거실 다른 쪽으로는 장작을 때는 난로가 있습니다
창밖으로 대나무 밭이 보이고, 벽 쪽에는 시원 선생의 작품을 활용한
생활도자기가 전시되어 있군요.
유리창은 그대로 풍경화 액자가 되어 매일 다른 그림을 보여줍니다.
죽설헌을 알리는 문패 역할을 하는 돌입니다.
표지석은 죽설헌 양쪽 입구에 하나씩 있습니다.
싱그러운 5월에 찍은 다른 쪽 표지석 사진입니다.
죽설헌의 산책로 양쪽에는 기와를 돌담처럼 쌓았습니다.
한옥 폐가가 생기면 그때마다 기와를 얻어 와서 쌓았답니다.
기왓장 하나 하나에 시원 선생의 정성이 깃들어 있지요.
대밭 너머로 멀리 나주 배밭이 보입니다.
배밭 가운데 있는 숲이라는 걸 알 수 있네요.
배나무를 심어 수확하는 것 보다는 숲으로 가꿀 때의 가치가 더 크다는
시원 선생의 뜻이 읽어집니다.
직장을 그만 두고 그림 그리기와 농사짓기라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어릴 적부터 가꾸어 온 고향집을 수목원으로 탈바꿈 시켰지요.
검소한 생활을 하며 일구어 놓은 곳이기에, 조용헌 교수의 표현처럼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느낌이 들어 방문객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산책로가 지금은 눈으로 덮여 있지만, 봄이 되면 질경이가 길을 뒤덮지요.
늦여름이면 기와 담장 사이 산책로는 향긋한 옥잠화 꽃내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길에는 질경이가 무성하지요. 자연 상태 그대로 두는 것이랍니다.
자연석이 곳곳에 놓인 이곳은 봄이면 자운영 밭이 됩니다.
지금은 황량하지만 여름에는 이렇게 파초가 거대한 도열을 하는 곳이지요.
얼음과 눈으로 덮인 연못가에 노랑꽃창포가 봄을 기다리고 있군요.
5월이면 창포 꽃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줍니다.
죽설헌은 나주시에서 생태공원 예정지로 지정하였다고 합니다.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시원 선생의 의지가 실현되는 것이지요.
뒤뜰도 눈으로 덮여 있네요.
가을이 오면 뒤뜰에는 꽃무릇이 만발합니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고 하여 상사화(相思花)라고도 하지요.
죽설헌에서 견공은 목줄 없이 자유로이 다닙니다.
누구하고라도 정답게 지내지요.
죽설헌을 나설 때 복슬강아지가 따라 나오고 싶어 했습니다.
눈 덮인 오솔길을 조심 조심 걸어 나옵니다.
이 오솔길을 "방외지사"에서는 '좌 탱자, 우 꽝꽝'이라고 하였습니다.
왼쪽에는 탱자나무, 오른쪽에는 꽝꽝나무가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지요.
봄이 오면 좌탱자 우꽝꽝의 대비를 더욱 실감 있게 느낄 수 있답니다.
죽설헌에선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에, 과일나무의 열매는
9할을 새와 벌레가 먹고 주인은 1할만 건진다고 하네요.
과일나무는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있는데,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건 만생종의 열매라고 한 시원 선생의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죽설헌에는 대문이 따로 없습니다.
입구에 대나무 장대를 걸쳐 놓으면 지금은 집 주인이 출타 중이라는 뜻이 되지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감출 것 없이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이라는
시원 선생의 철학이 내비쳐 집니다.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되는데 ‘원하는’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이 마음이 부끄러워집니다.
시험 동기인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께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시원 선생 내외와 함께 광주 시내의 "홍아네"라는 음식점으로 갔습니다.
선생의 '갤로퍼'가 주차장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습니다.
홍아네 식당에서는 누룽지를 특이한 모양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병록 부시장과 저희 부부가 기념 촬영~
점심식사 후에 시원 선생 내외께서 광주 송정역까지 저희 부부를 태워다 주셨습니다.
KTX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저희 부부는,
아름다운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첫댓글 참 아름다운곳이~ 산아래에도 있습니다~!
죽설헌! 다음 방문하실때 구경좀 시켜주시면~?
나주 근방에 갈 일이 있으면 연락해 주시게~
난 처음엔 집과 정원이 좋았지만, 지금은 그집의 사람을 더 좋아하고 있네.
개인이 저런 곳을 유지하다니.....참 대단합니다.
인공적인 요소를 최소화하니까 가능하다고 하더군.
사진과는 달리 무척이나 소박한 곳이네~
잠금 장치가 필요 없는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