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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도 청년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사랑 이야기 울고 넘는 박달재 |
- 여강 최재효 作 |
지금은 국민가요가 된 “울고 넘는 박달재” 노래에 얽힌 사연을 중편 소설로 다루었습니다. 본 작품은 제천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선 중기 경상도 총각 박달(朴達)과 충청도 제천 처녀 금봉이의 이루지 못한 비련(悲戀)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울고 넘는 박달재-47
박달도령과 금봉낭자 동상 - 제천 박달재 정상(직촬)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을 애별리고(愛別離苦)라고 한다. 여기에는 부모형제, 배우자, 자식, 애인, 벗 등과 생이별하거나 사별할 때 받게 괴로움이 포함된다. 예토에 사는 모든 사람은 애별리고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마다 고통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통한(痛恨)이라는 것에는 동일하다. 사람은 운명적으로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반복하며, 한평생을 살아가게 마련이다. 이 것은 천지신명의 섭리(攝理)이며, 인간 본연의 임무와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인연이고, 헤어지는 일 또한 인연이다. 다만 고통과 희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별리(別離)는 번개처럼 온다. 통석(痛惜)의 이별에는 부모형제와 자식 등 혈육의 별리, 부부나 정인(情人)의 영결(永訣) 만큼 가슴 아픈 이별은 없다. 혈육의 영결은 당연한 아픔이 뒤따르겠지만, 이성지합(二姓之合)으로 맺어졌던 부부의 영결은 혈육과 마찬가지로 그 슬픔의 정도도 가늠하기 어렵다. 형제와 혈육간에는 촌수(寸數)가 있지만, 부부사이에는 무촌(无寸)이며, 동혈(同穴)의 벗이라 애틋한 감정은 형제간의 그것보다 더하다. 사람의 괴로움은 나(我)와 몸체와, 사람과, 물질과, 마음과, 바라는 것과, 사상(思想)과 연유되며, 그것들과의 부조화(不造化)된 관계에서 나온다. 괴로움의 원인은 지혜롭지 못한 무지에서 오는 무명(無明)과 지나친 욕망(慾望) 때문에 오는 갈애(渴愛)에 기인하기도 한다. 그 갈애의 유발은 만물을 똑바로 관조하지 못하는 무지에 원인되기도 한다. 세상은 고해(苦海) 이다 “아이고, 아이고 -, 금봉아,” “금봉아-.” “아이고 금봉아, 원통해서 이일을 어쩔거나. 아이고-.” 자시(子時) 훨씬 지나 금봉이 숨을 거두자 그녀의 어머니는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고모와 이모 그리고 다른 친척들도 예상치 못한 급작스런 그녀의 죽음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였다.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들의 사고(思考)의 시종에 늘 죽음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다. 유년기 및 청소년기에는 죽음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나 사고는 무의미할 수도 있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많은 종교에서 죽음을 중요한 과제로 다루고 있지만 죽음의 실체에 관한 규명은 분명히 밝혀진 것이 없다. 아마도 이 문제는 다음번 천지개벽이 될 때 까지 결말을 짓지 못하리라. 혹자는 사람의 일생은 무덤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하고, 또 다른 호사가는 죽음이란 지상에서 일생을 살던 육체가 소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죽음은 범인(凡人)의 경험과 지각의 영역을 넘어서는 고차원적인 문제에 속하기 때문에 그 속성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가장 억울한 죽음은 천수(天壽)를 다 누리지 못 살고 원통하게 이승을 하직하는 경우가 아닐까 싶다. 여러 형태의 죽음이 있지만 원사(冤死)만큼 억울한 죽음이 또 있을까. 금봉의 사망 소식이 금방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 졌다. 이장을 비롯한 반장들이 한밤중에 그녀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장은 반장들에게 즉시 상청(喪廳)을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마을 청년들에게는 상가(喪家) 마당에 천막을 치고 밤을 새우며 상가를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우라고 하였다. 청년들은 바깥마당에 천막을 치고 모닥불을 피웠다. "어쨌거나 참으로 금봉이가 안됐으이. 그 도령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상사병에 걸렸을까. 참으로 딱하게 되었어. 혼자도 아니고 뱃속에 아이까지 있었다니. 쯧쯧쯧……." "어허. 세상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구먼. 그래.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이를 밴 채 죽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원로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하면서도 금봉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였다.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로 이런 흉사는 처음이야. 성황신께 우리가 뭘 잘못한 거 같으이. 장례 마치고 이장을 비롯해 마을 원로들께서 성황신께 제사를 지내야 해. 성황신께서 노하신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마을에 이런 재앙을 내릴실리가 없지.” 그녀의 아버지가 풍산에 가고 없는 상태에서 먼 친척이 임시 상주가 되어 장례치를 준비를 서둘렀다. 마을 원로들은 모여 장례에서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처녀가 한을 품고 세상을 하직하 였기 때문에 마을에 흉사(凶事)였다. 게다가 망자의 복중에 들어있던 태아까지 동시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을 원로들은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의 원통한 죽음을 애도(哀悼)의 뜻을 표하면서도 찜찜한 표정이었다. 이장과 원로들은 2일장으로 서둘러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결론을 보았다. 전통적으로 장례는 3,5,7일 홀수날에 장례를 치르는데, 혼인하지 못하고 죽은 젊은 남, 녀의 경우는 2일장으로 치르는 것이 마을에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장례절차가 정해졌다. 마을의 장년들은 부르지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상가에 모여 밤을 새우며, 장례 절차를 논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다음날 장례를 치르기에 위해서는 온 마을 사람들이 서들러야 했다. “아버님, 날이 밝아옵니다.” “그렇구나. 봉양에 도착한 듯 하구나.” 밤을 새워 최고 속력으로 달려온 마차는 날이 밝아오자 더욱 속력을 냈다. 말이나 마부(馬夫)는 상당히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차가 벌말에 도착했을 때 금봉의 아버지는 바깥마당에 천막이 쳐진 것을 보고 딸의 죽음을 직감하였다. “아아-, 금봉이가, 금봉이가 세상을 떴구나.” “안 돼, 금봉아, 안 돼.” 두 사람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마을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어서 들어가 보시게. 금봉이가 지난밤에 그만…….” 이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얘야, 금봉아, 애비가 왔다.” “금봉아-.” 두 사람이 금봉의 시신이 있는 방에 들었을 때 막 염을 시작하려 했다. “얘야, 애비다. 눈을 떠보거라. 눈을 떠봐. 이게 어찌된 일이니?” 그는 방바닥을 쳐가며 통곡하였다. “안 돼. 금봉아 안 돼. 나를 두고 어디를 가는 거니. 금봉아, 안 돼. 눈을 떠봐. 이대로 가면 안 돼. 난, 난 너를 보내지 않았어.” 갑돌이 싸늘하게 식은 금봉의 손을 잡고 통곡하였다. 두 남자의 통곡소리에 마을 사람들도 가슴이 먹먹하여 눈을 껌뻑거렸다. “금봉아, 애비가 잘못했다. 애비가 잘못했어. 아비를 용서해다오.” “금봉아, 이렇게 허무하게 가면 어떻게 하니. 난, 난 어떻게 하라고. 어서일어나. 어서 일어나서 저 이등령으로 진달래꽃 따러가고 칡도 캐러가야 하잖아.” 두 사람이 서럽게 울자 그만 울음을 참고 있던 가족들도 흐느꼈다. 날이 환하게 밝았다. 벌말은 조용한 슬픔에 휩싸이면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상가(喪家)로 모였다. “금봉이가 저렇게 허망하게 갔으니 갑돌이가 충격을 받았을 텐데. 저 일을 어쩌나? 금봉이가 다른 씨앗을 품고 있어도 갑돌이 금봉이를 탓하지 않고 더욱 애틋하게 생각했다는데. 저러다 갑돌 이도 잘못 되는 거 아녀?” “거참, 미꾸라지 한 마리가 몰래 기어들어와 온 동네를 슬픔에 잠기게 하였어. 그러게 타지 사람을 함부로 재우는 게 아니었어. 앞으로는 또 저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절대로 낯선 과객을 집안에 들여 재우지 말아야 해.” “하나 밖에 없는 딸을 잃은 금봉이 아버지가 안 되었네 그려. 좋은 사윗감을 고르려고 무진 애를 썼건만…….” 마을 사람들은 모닥불에 빙 둘러서서 마을 처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두고 제각기 한마디씩 하였다. 시랑산 이등령에 진달래를 비롯한 봄꽃들이 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마친 듯 봄기운이 완연해 보였다. 남녘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오는 화신(花信)이 올해는 여느 해보다 일찍 전해지고 있었다. 개구리들이 햇볕이 드는 계곡 마다 알을 낳고 산짐승들도 기지개를 켜면서 산의 정령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보통 3일장으로 장례를 치르지만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임신한 채 한을 품고 죽었으므로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루라도 빨리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난리들이었다. 잘못하면 원귀(寃鬼)가 동네 사람들에게 달라붙어 해코지를 할 수 있다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특히 평소에 금봉의 행동을 문제 삼던 사람들은 원귀(冤鬼)가 자신에게 달라붙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문 밖 출입을 금한 채 두려움에 떨기도 하였다. “서방님, 금봉이옵니다. 어찌 아니 오시는지요? 서방님을 기다리다 지쳐 병이 들었나이다. 이틀이 멀다하고 이등령에 올라 서방님 오실 날만 기다렸습니다. 서방님, 보고 싶어요. 그러나 서방 님께서 무슨 말 못할 사연이 있으셔서 못 오시는 줄로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서방님, 제 모습이 보이시죠? 이 배 좀 보셔요. 서방님의 아기가 무럭무럭 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먼 곳으로 가서 아기와 함께 살아 갈 거에요. 나중에 서방님께서 오시면 우리 아기와 마중 나갈게요. 서방님과 이루지 못한 미완의 사랑은 한으로 남을 것 같아요. 서방님, 먼저 가오니 내내 강건하사옵고 꼭 큰 뜻을 이루셔요. 혹시라도 고향가시는 길에 이등령을 잘 살펴보시어요. 제가 우리 아기와 이등령에서 서방님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서방님께 하 직인사 올립니다. 절 받으세요. 서방님…….” “헉-, 금봉아, 금봉아, 안 돼. 안 돼. 어딜 간다는 거야? 안 돼. 안 돼. 금봉아, 나를 두고 어디를 간다는 거야. 거기 서. 안 돼. 안 돼…….” 머리를 산발하고 소복(素服)을 입은 금봉이 남산 만한 배로 박달을 찾아왔다. 그녀는 슬픈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작별 인사를 하였다. 술에 취해 잠들어 있던 박달은 손을 허공으로 휘저으면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서방님, 서방님, 주무시다 말고 웬 잠꼬대를 그리하세요? 어머나, 이 땀 좀 봐. 악몽을 꾸셨나 봐요?” 박달이 지르는 소리를 듣고 아지가 방으로 뛰어 들었다. ‘아아, 이상한 일이로다. 그녀가 머리를 풀고 소복을 입은 채 나타나다니, 분명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해.’ “아지, 지금이 어느 때요?” “서방님, 한밤중이에요. 주무시면서 금봉낭자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셨어요. 그것도 아주 애절하게요. 악몽을 꾸셨나 봐요?” "내가 그랬소?" 아지는 금봉에게 별고가 생긴 것을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그녀의 아버지가 찾아와서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박달의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애썼다. “서방님, 오랜만에 술을 드셔서 그런가 봐요? 한 밤중이니 더 주무시고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공부하세요. 밤이 너무 늦었으니, 오늘은 그냥 주무세요. 내일 새벽에 깨워드릴게요.” 아지가 방에서 나가자 박달은 밖으로 나왔다. 마침 새벽달이 막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달 속에 그녀의 슬픈 모습이 어리비치고 있었다. “이 못난 사람을 용서하구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는 게요? 어째서 소복차림으로 나타난 게요? 그대를 보고 싶어 벌말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과거에 낙방하여 돌아갈 수 없었소. 금의환향해야 하는 이 몸은 절대로 그냥 돌아갈 수 없었소. 용서하오.” 새벽달이 서산 아래로 모습을 감추었다. 세상이 온통 캄캄한 어둠속으로 묻혀버렸다. 박달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하였다. ‘그녀가 소복을 입은 그녀의 배가 남산만 했어. 그렇다면 그녀가 임신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내가 벌말에 열흘 정도 머물고 있을 때 우리는 여러 차례 사랑을 나누었어. 그렇다면 그때 아기 씨 앗이? 아아, 안 되는데.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면 동네에서 내 쫓기거나 망신을 당할 텐데. 이일을 어쩌나? 현몽(現夢)하였으니, 그냥 있을 수도 없고. 소복은 사람이 죽었을 때 입는데, 어째서 그녀가 흰옷을 입고 있었단 말인가?’ 박달은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뜬 눈으로 새벽을 맞았다. 책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꿈속에 나타난 금봉이의 모습이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방금 전에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대화를 나눈 것 같았 다. ‘어쩌나? 분명 그녀에게 변고가 생긴 것이 분명한데……. 과거보다 사람 목숨이 더 중요해. 그녀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어. 과거는 다음 기회에 보면 돼. 내가 여기서 별시 준비를 하여도 그녀가 현몽한 이상 제대로 공부가 되지 않을 거야. 빨리 벌말에 다녀와야 하겠어. 차암, 그거, 그게 괘나리봇짐에 있지.’ 박달은 꿈속에 나타난 금봉이의 자신에게 손짓하는 모습이 너무 애절하고 빨리 가보지 않으면 천벌을 받을 것 같았다. ‘아깝지만, 이번 별시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 금봉의 마음을 안정시켜 놓고 다시 올라와서 공부해도 될 거야.’ 그는 금봉과 헤어질 때 그녀가 건넨 복주머니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괘나리 봇짐에서 붉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복주머니를 꺼냈다. 그는 비단 주머니를 열고 속 내용물을 꺼냈다. 복주머니 안에서 부적 하나와 분홍색지가 나왔다. ‘아아, 이것은 나의 입신양명과 부부의 사랑 그리고 두 가문의 번영을 기원하는 문구인데…….’ 분홍색 종이에 장원급제(壯元及第), 이성지합(二姓之合), 거안제미(擧案齊眉), 해로동혈(偕老同穴), 천고방명(千古芳名), 양문창성(兩門昌盛)이라고 쓰여 있었다. 마치 한시(漢詩)처럼 쓰인 글에 박달은 감동하였다. 이성지합은 남녀의 혼인을 의미하고, 거안제미는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이야기로 금슬 좋기로 이름 난 양홍(梁鴻)과 그의 처 맹광(孟光)의 고사이며, 천고방명은 장원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하여 이름을 길이길이 남기라는 의미이며, 양문창성은 두 가문의 번성함을 의미 했다. 박달은 괴나리봇짐을 챙기고 아지에게 편지를 썼다. 꿀맛을 잘 알지 못하는 나비 한 마리 어쩌다 갈 길을 잃고 한 여름 꽃에 잠시 앉았다 가오 - 박달 - 박달은 알쏭달쏭한 짧은 글을 써놓고 아지의 주막을 나섰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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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