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빛 햇살
강철수
새벽 5시, 커튼을 여니 소담스레 눈이 내리고 있다. 그제부터 이어지는 함박눈, 세모가 코 앞이니 2020년은 이렇게 눈 속에서 저물어 갈 모양이다. 아내가 잠이 덜 깬 듯 구부정한 모습으로 거실로 나온다. 여느 때 같으면 벌써 일어나 성경 필사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깜빡 늦잠이라도 들었던 걸까. “저녁에 머리를 감고 잤는데 밤새 열이 심했어, 감기가 온 것 같아, 약 좀….” “나를 깨우지 않고.” “중간에 깨면 당신 못 자잖아.” 각방을 쓴 지 오래다. 둘 다 고령이라 서로 밤새 ‘안녕’을 걱정한다. 가끔 기척 없이 늦잠에 빠져 있으면 ‘여보, 괜찮아?’라며 상대방을 흔들어 보곤 한다.
약을 챙겨주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가슴이 철렁했다. ‘어, 코로나!’ 짚이는 게 있었다. 그끄저께 그러니까 사흘 전인 지난 월요일, 대학병원 안과에 가서 녹내장 검사를 받고 그곳 외과의로 있는 막내아들과 식당에도 들렀다고 하지 않았던가.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고 하루 확진자가 천 명대를 오르내리는 판국에 부실한 노인네가 장터처럼 붐비는 종합병원엘 갔으니…. 거기다 뭇사람이 드나드는 병원 앞 식당에까지 들렀는데 어찌 무사하겠는가. 고열이면 그게 틀림없을 것이다. “마른기침 나와?” “아니.” “목 아파?” “아니.”
코로나 환자로 의심한다 싶었던지 문을 “쾅” 소리 나게 닫고 방으로 들어간다. 설령 그런 증상이 있더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감기야, 코로나가 아니고 감기야!’ 아내는 지금 스스로 최면을 걸어 코로나 불안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이런저런 증세가 있느냐고 다시 묻는 것은 상처에 소금 뿌리기와 다름이 아닐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어제 종일 식사를 제대로 못 하는 것으로 보면 주요 증상의 하나인 ‘미각 상실’은 확실하다.
아내가 걸렸다면 한집에 사는 나도 걸렸을 것이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그제 밤 꿈에는 오래전에 소천하신 누님을 만났고 어제저녁 꿈에는 십여 년 전에 고인이 된 성당 친구가 찾아왔었다. 돌아가신 분이 꿈에 보이면 꼭 몸에 탈이 나 앓아누울 때가 많았다. 이번에는 이틀 연속 그런 일이 생겨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마침내 코로나바이러스가 나를 덮친 모양이다.
이 위급한 상황을 가족들에게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한참 동안 망설였다.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자식들 걱정시킬 일 없다 싶었다. 그리고 저네들이 부리나케 달려오기라도 한다면 온 가족이 코로나 재앙에 빠질 수도 있겠다 싶어 알리지 않기로 했다. 대신 모든 일을 의사인 막내아들과 의논하면 되리라 생각했다.
막내에게 문자를 넣었다. “어머니가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이따 보건소로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어머니가 마다할 것 같구나. 어머니를 설득해주면 좋겠다.” “예, 알겠습니다. 우선 아버지는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시고 음식도 따로 드시고 접촉을 피하세요. 해열제는 6시간마다입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옮아도 벌써 옮았을 텐데 지금 와서 마스크를 쓴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설사 달라진다 해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내가 역병에 걸려 누웠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마스크를 쓰고 밥을 따로 먹고 거기다 접촉까지 피하다니…. 그런 얌체 짓은 평생을 함께한 아내를 오롯이 배신하는 행위일 것이다.
“여보, 괜찮아?” 함께 보건소로 가기 위해 잠들어 있는 아내를 흔들어 본다. “으응” 꺼져가는 목소리로 괜찮음을 알려준다. 파리한 얼굴, ‘저승꽃’이라는 검버섯은 왜 저리도 많이 피었을까. 새 이불 여럿 두고도 어찌 저런 후줄근한 걸 덮고 있을까. 가족을 위해 평생 물 한 방울 허투루 하지 않는 근검이 몸에 배어 저리 청승을 떨 것이다. 북받치는 연민, 스무 살 꽃봉오리 나이에 내게로 시집와 아이 넷을 키우며 갖은 고생을 다 하지 않았던가. 내가 사업에 실패하고 시골로 내려가 8년여간 장돌뱅이를 하는 동안 아내가 겪은 고초는 이루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거의 탈진 상태인 아내가 보건소에 간다는 건 무리일 것 같아 나만 가기로 했다. 내가 ‘음성’ 판정을 받으면 아내도 코로나가 아닌 단순 감기로 판명될 것이다. 검사를 시작하는 1시에 맞춰 12시 반에 집을 나섰다. 최강 한파, 새벽 영하 19도였던 기온은 한낮인 지금도 영하 14도, 그리고 미끌미끌한 눈길이다. 오리털 파카에 털모자와 목도리 그리고 방한 장갑, 단단히 대비했는데도 무속인 내림 대처럼 덜덜덜, 몸이 떨리고 마음도 떨렸다. 택시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한 사람을 애꿎게 만들 수도 있겠다 싶어 걷기로 했다.
용케 탈 없이 20여 분만에 야외 검사소 천막 안에 들어섰다. 백신 도입의 때를 놓친 방역 당국이 환자가 급증하자 부랴부랴 여러 곳에 야외 검사소를 세운 지 두 번째 날이었다. 우주인 복장을 한 사람들이 물 흐르듯 질서 정연하게, 그러면서도 친절하게 일을 처리했다. 손 소독제를 바르고 지난 선거 때처럼 비닐장갑을 끼고 신상 정보를 작성하고 마지막 검체 채취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막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감기 같으니 좀 기다려 보시지요.” 아니, 이럴 수가! 제 어미 말을 곧이곧대로 믿다니…. 본인이야 감기로 우기고 싶은데다 자식에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아 괜찮다고 했을 것이다. ‘한 다리가 천 리’라 했던가. 부부 사이와는 달리 부모와 자식 사이는 한 다리를 건너야 할 만큼 멀다는 옛말이 맞는 모양이다. 나 같으면 태평스럽게 문자만 날릴 게 아니라 방역 가운 챙겨 들고 한걸음에 달려왔을 것이다.
검사를 마치고 곧장 집으로 왔는데 웬걸! 으스스 춥고 목이 따끔거린다. 심한 두통에다 가슴까지 답답하다. 뜨거운 물을 마시고 전기 히터를 ‘강’으로 올렸는데도 나아지지 않는다. 코로나 증상, 드디어 내게도 그게 오는구나 싶었다. 틀림없이 내일 아침 ‘귀하는 양성입니다’라는 문자가 내 핸드폰에 뜰 것이다. 연이어 쐐기를 박듯 고양시청 알림이 창에도 ‘일산동구 80대 후반 고령자 1명 코로나 확진’이라는 기사가 오를 것이다.
80대 확진자의 생환(生還) 비율이 채 20%도 못 된다고 했던가. 하면, 우리 부부는 가망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하, 그렇다면 다소곳이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앙탈을 부린다고 피해 갈 수도 없을 것이다. 그동안 잘 살아오지 않았던가. 젊어서는 고생을 했어도 그 후로는 살림살이가 넉넉해지고 차례로 태어나는 손주들 재롱 속에 웃음꽃을 피우며 그런대로 복되게 살지 않았던가.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작별 인사를 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정도의 작별 문자조차 띄울 수 없을 만큼 촉박하다. 함께 공부한 문우님들, 오랜 등산 친구들, 형제님으로 부르는 성당 친구들 그리고 피붙이인 가족들과 친척들, 그 밖에 가까이 지내던 분들, 그들과 함께였기에 내 삶이 따뜻하고 뿌듯할 수 있었는데, 이렇듯 황망히 그들 곁을 떠나야만 하다니….
손자 한 놈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 기대가 컸었는데 어쩌다 발을 헛디뎌 중견기업 노조위원장이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허우적거리고 있다. 내 언제 그 녀석을 만나 도란도란 인생(人生) 얘기를 해 주려 벼르고 있었는데, 이제 얘기는커녕 석별의 말 한마디조차 없이 먼, 아주 먼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이튿날 아침, 입원 가방을 옆에 두고 조마조마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 한데, 다소곳이 받아들이겠다는 어제와는 달리 어쩜 코로나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게 아닌가. 뇌종양으로 돌아가신 손아래 동서가 연거푸 꿈에 나타났을 때도 별일 없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당사자인 아내의 증상이 더 나빠지지 않고 의사 아들도 꿈쩍 않는 것으로 보아 내 판단이 말짱 헛방일 수도 있지 않을까.
‘9시 반이면 연락이 갈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어째 10시 반이 넘었는데도 소식이 없을까. 안절부절, 참다못해 전화를 걸었다. “동구 보건소 이00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어제 낮에 야외 검사소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연락이 없어서요.” “전화번호를 일러 주시겠습니까?” “010 0000 3237입니다.” “3239로 적혀 있습니다.” 덜덜 떠느라 7을 9로 보이게끔 적었나 보다. “성함은요?” “강철수입니다.” “어르신은 음성입니다.” “예!?”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찌르르 온몸으로 전율이 흘렀다. 삼복더위에 냉수 한 컵을 들이켠 것 같은 시원함이 등줄기를 타고 저 아래 발끝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와 함께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목 아픔과 두통의 코로나 증상도 거짓말처럼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안도의 한숨, 사약(賜藥) 대접을 들고 있다가 임금님의 사면령으로 풀려난 사대부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세수했는지 아내가 어깨에 타월을 걸친 채 구부정한 모습으로 거실로 나온다. 오렌지빛 햇살이 거실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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