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여행(2024.5.11~5.19)>
터키 turky라 불리다 얼마전 부터 튀르키예turkiye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한 나라.
칠면조.겁쟁이라는 뜻도 있는 터키보다 "튀르크인의 땅"이라는 국명으로 불리고 싶어서였다.
우리나라와 형제국이라 부르는 이유가 6.25전쟁 파병국이어서 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오랜 인연이 있다.
중앙아시아 초원의 突厥族 일파가 서진하여 아나톨리아 반도에 정착하면서 튀르크족이 되었다.
돌궐왕국 시절 고구려와 다투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공동의 적인 중국의 隋.唐을 견제하기 위해
사신을 교환하고 협력한 사이였다. 6세기 돌궐왕국의 건국을 튀르키예 역사의 시작으로 본다.
인천공항에서 이스탄불 까지 비행거리 9000km를 갈 때 11시간 올 때 9시간 소요된다.
가는 코스는 지구 자전방향의 반대라서 지구자전과 함께 움직이는 대기층을 거슬러 가고 올 때는
자전과 같은 방향이니 뒤에서 밀어주는 바람을 타고 오기 때문에 속력이 달라진다.
인천공항을 오후 2시에 출발하여 이스탄불 시간으로 오후 7시에 도착하니 그 사이 시차가 6시간이 있다.
따라서 비행시간 11시간이 내내 환한 day time이니까 거대한 아시아 대륙 깊숙한 오지 중앙부를 10km상공에서
조감하는 절호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서해바다를 지나면 바로 산동반도 북부해안을 스치듯 지나자 서북방으로 북경 주변을 향한다.
중국의 동쪽 연안과 화북지방은 평야지대로 인구 밀집지역임이 확연하다.
농경지 가운데 촌락이 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북경을 지나 내몽골자치구에 들면 건조한 야산지대로 변하면서
경작지와 주거지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몇 년전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스페인 갈 때 몽골초원과 바이칼호를 거쳐 시베리아의 광활한 한대의
침엽수림 상공을 날아가던 생각이 난다.
가도 가도 끝없는 타이가 taiga의 삼림지대는 바이칼호부터 우랄산맥을 넘어 모스크바평원에 이르기까지
약 4-5천km에 펼쳐져 있었다. 러시아 땅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다.
내몽골을 지나 이젠 몽골남부의 고비사막이구나 싶더니 곧이어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평원인 스텝steppe지대가
신장위구르부터 카자흐스탄 까지 넓게 펼쳐진다.
과거 흉노,돌궐.몽골 등 기마민족의 흥망성쇠가 서려 있는 아시아의 내륙오지다.
저기 초원 속에 나타난 도시가 신장위구르의 중심도시 우루무치구나 짐작을 하고
좌석앞 화면의 비행항적을 보여주는 개략적인 지도와 기억속의 지도를 대조하며 현위치를 가름한다.
승객들 취침에 방해되지 않도록 창문 내리라는 승무원의 지시에 내렸다가는 다시 올려서 관찰하기를
여러 차례.수시로 변하는 풍경이 주는 호기심과 기대감은 승무원의 권고를 어기게
할만큼 유혹적이다.
멀리 보이는 흰눈을 덮어 쓴 저 장대한 설산은 분명 실크로드가 지나는 천산산맥이 틀림없구나.
천산산맥을 사이에 두고 남은 천산남로 북은 천산북로가 있다.
그 너머로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고 남쪽으로 다시 곤륜산맥이, 그 다음은 티베트 고원이 있겠구나
상상하면서 지도로만 대하던 광활한 유목민의 땅을 실물로 내려다 보며 확인하는 혼자만의 벅찬 감흥을
다른 사람은 아마 알지 못하리라.
카자흐스탄 초원을 지날 무렵 궁금하던 아랄해를 지켜본다.세계 4위의 면적(6.8만km^2) 자랑하던 거대한 호수는
소련시절 유입하는 강을 막아 농업용수로 돌리는 바람에 면적이 10분의 1 이하로 줄어 환경재앙의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곳이다.현장을 직접보고 싶었다.
상공에서 바라보니 거대한 호수는 사라지고 황량한 초원에 드문드문 몇 개의 작은 호수로 나누어진 옹색한 모습이다.
아랄해 다음은 최대의 호수 카스피해다. 37만km^2의 면적으로 호수라기 보다는 바다라 할 만한 크기다.
국제법도 바다로 규정 이유는 러시아 이란 등 5개 연안국의 영유권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서란다.
호수는 공해 즉 공동수역이 없는 내수면이므로 경계 설정이 어렵다.
카스피해를 지나면 코카서스 산맥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절벽에 갇혀 독수리에
심장을 쪼였다는 유럽 최고의 산악지대다.
아쉽게도 여기는 구름이 짙어 아래를 볼 수 없다 .
코카서스가 끝나 갈 즈음 내륙의 바다 지중해와 연결된 흑해(41만 km^2)가 보인다.
남쪽 아나톨리아 반도의 해안선 뒤로 멀리 보이는 설산 줄기는 전설 속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아라라트산(5,137m)이구나.
이런저런 상상과 기억속의 지도를 더듬다 보면 저 아래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이어주고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선 보스포러스의 좁은 물길이 식별되고 그를 둘러싼 거대한 도시가 드러난다.
이스탄불이다.
현장의 지리공부로 지루한 줄 모르게 보낸 11시간의 거대한 유라시아대륙 탐방은
옛 상인들이 1년 걸려 다니던 실크로드였기에 이번 여행의 부차적인 성과이자 잊지 못할 주마간산 대장정이었다.
인구 1500만 명으로 유럽 최대도시인 이나라 경제 중심지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 대륙을 걸치는 독특한 입지다. 여기를 차지하면 지중해와 흑해를 오가는 선박의 통행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비잔틴으로, 동로마의 수도일 때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다가 오스만터키 시대에 이스탄불이 되었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오스만터키가 기존의 그리스로마 유적을 파괴하지 않고 이슬람 양식으로 개조하여 사용한 건축물이 많다.
여기서 3일간 지내며 시내를 가로 지르는 성벽과 종교시설,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던 그랜드 바자르라는 시장을
둘러 보며 여러 종류의 터키음식을 맛보았다.
일부의 식당은 시원찮은 질에 바가지 씌운다는 기분이 들게하여 세계 3대 음식이라는 터키음식의 호감을
반감시킨다.
길게 뻗어 여전히 장대한 위용의 성벽을 보며 동로마제국의 흥망을 추억해본다.
1453년 5월 성안의 7천 병력으로 오스만의 10만 대군의 포위공격을 2달간 버티다 결국 함락되고만
비운의 도시 콘스탄티노플.
동.서로마로 분리된 후 1200 년간 수십 차례의 외침을 막아내며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요새는
오스만의 집요한 공격에 무너지고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유럽의 중세는 마감이요 근대의 시작점이 되었다.
동지중해의 제해권을 빼앗긴 유럽은 대서양으로 시선을 돌렸고 대항해에 나서면서 근대문명의 서막을 열 수 있었으니
그나마 전화위복이었다 하겠다.
사실 나의 관심사는 유적지나 관광명소 이런데 있지 않고 그 곳 사람들의 생활풍습, 거리의 모습,지형이나
식생 같은 자연환경이였다.
이스탄불 일대에 잠시 보이던 우거진 키 큰 숲은 트로이, 에페소 이즈미르 등 에게해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 가면서
식생 밀도가 낮은 키 작은 관목 숲으로 바뀌는 모습이 북쪽에 비해 강우량이 부족한 반건조지대로 보인다.
이 지역에서 다시 4일간 지내며 해안과 내륙을 천km 이상 달렸으나 제대로 된 큰 강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였다.
인상적인 유적은 단연 고대 도시 에페소였다. 기원전 10세기경 그리스의 식민도시로 건설되어 수차례 재건축되었다.
당시의 에게해 연안은 헬레니즘 문화권이였기에 에페소의 전성기는 그리스.로마 시대였으며
대부분의 유적은 로마시대의 작품이다.
지금은 해안가에서 8km 거리 떨어진 내륙에 위치하지만 그 때는 항구였다.
안내판 설명 글로는 지진이 있었고 홍수에 토사가 밀려 와서라지만 토사가 쌓였다고 보기에는
지형 변화가 너무 심하다.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내륙의 바다인 지중해 수위가 2000년 사이에 그렇게 낮아질 리도 없고 엄청난 홍수가 있을 거대한 강도 없는 지역인데.
고대도시 에페소의 즐비하게 늘어선 거대 돌기둥, 대리석 깔린 도로,원형 경기장,도서관,
모자이크 벽화가 선명한 유흥시설 등 수 많은 석조물은 평지가 아닌 4,5백 미터 높이로 에워싼
두 개의 산사이 완만한 경사지에 들어서 있다.
한 때 인구가 25만으로 아테네와 쌍벽을 이루는 대도시였다는데 왜 평지가 아닌 비탈진 위치에 세웠을까?
거대한 돌을 운반하기도 어려운 곳에.
고대의 석조 유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이유는 항구의 기능을 잃은데다 지진으로 파괴되자
AD6세기경 주민들이 떠나고 1500년간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좌식 공중화장실 아래로 수로를 설치하였고 테라스하우스라는 경사지의 계단식 주거지는
배수관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물이 풍부해야 가능한 시설이다.
그러나 주변의 지형으로 보아서 물을 공급해 줄 배후지가 매우 부족하다.
유적을 둘러보는 내내 물은 어떻게 공급하였을까 의문이 들었다.
높지도 않고 규모도 작은 야산이 둘러싼 완만한 경사지를 올라가면서 형성된 도시는
평평한 고개마루 정상에 고대의 시청 등 건물이 있던 광장까지 이어진다.
도대체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도랑은 찾을 수도 없거니와 배경 산세 역시 사이즈가 빈약하다.
펌프가 없던 시절에 대량의 지하수를 퍼올릴 방법은 없었겠고 성모 마리아가 살았다는
저 너머의 해발 천미터 정도의 산에서 수로를 연결하였을까 하여 유심히 살펴 보지만
비슷한 흔적도 관련 기록도 없다.
로마의 다른 고대도시 처럼 멀리 수원지와 수로를 연결하였다면 엄청난 토목공사가 있었을 것이다.
부근의 3km 떨어진 곳에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있다.
제우스의 딸이자 아폴론과는 쌍동이 남매인 아르테미스는 에페소의 수호신이다.
신전을 구성하던 많은 돌은 이스탄불의 소피아 성당 옆에 1616년 세워진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의
재료로 반출되었다 하니 거대한 신전은 허물어져 사라지고 높다란 돌기둥 하나만 남아 있다.
황성옛터에 방초만 푸르러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더라는 노래가사를 연상케하여
"고작 70생애에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줌의 부토로 돌아 가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없는 나그네의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던 정비석의 산정무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첫댓글 여행 다녀오신 거지요...?
비행기 창으로 11시간을 지루하지 않게 내려보며 상상과 현장을 조합하는 과정은 역시 우리 땅 능선을 걸었던 경험이나 다도해 곳곳을 누비던 경험 축적이겠습니다
우리들 모두 산에 오르면 주위를 둘러 보며 여기저기 지명 알아 맞추기들 많이 하지요.
그런 버릇이 비행기에서도 나옵니다. 가급적 창가에 앉아 아래 보이는 저기는 어딜까
짐작하면서 맞다 싶으면 혼자 희열을 느낍니다.
소싯적 부터 지도에 관심이 많아 세계지도를 약간은 기억하기에 호주.뉴질랜드 갈 때는
망망대해 남태평양의 섬들,솔로몬제도,뉴칼레도니아,비누아트 등을 하늘에서 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보기도 하였습니다.
제주여행시는 서해안을 따라 가며 당진,군산,목포와 완도,추자도를
지도로 보던 모습을 떠올리며 실물로 보이는 광경과 대조해 보기도 합니다.
ㅎㅎ 지도찾기는 어디가서나...암튼 훌륭한 여행 다녀오셨슴다 감축드립니다.
덕분에 이리 비행기안에서도 멋진 풍광과도시 열사 지리가연결이 되네요.
저도 터키를 못 가보았는데 ,이번 기회에 꼭 가야 할 곳으로 점찍게 됩니다
잠 감상하고 갑니다
진정한 여행가이십니다.
다음이야기도 이어지는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