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즙
김성신
당신이 누굴 상대해야 하는지 알지
한낮이 모호해진 빗줄기
더듬이 끝이 부풀어 오른 귤빛 부전나비
두 눈을 자유자재로 뒤집는 바람에 상황이 복잡해지고 있어요
뼈끼리 맞닿으면 살 냄새가 번져 오고
세상에 잠시 가려진 당신은 주름으로 깊어진 동굴
밟고 솎을수록 의지는 샘솟아
새들의 손을 탈 때
어금니 감추며 멈추지 않는 다짐
축, 늘어진 곤한 시간들이 얼굴에 봉해져요
네 탓으로 돌린 변명에 귀 붉어져
목젖만이 골목을 빠져나오는 유일한 통로죠
잠든 척 누워 손을 뻗으면 먼 곳까지 맞닿는 기분
꿈틀거리던 옆구리를 없애
누군가 내던진 돌멩이를 맞고도 목이 터져라 탄성을 지르죠
달다, 시다는 사실 어둠으로 이루어진 은어
누군가 그곳에 또렷한 잇자국을 남길 때
밤의 뾰족한 태도를 나눠 갖거나
붉게 오그라드는 정수리처럼 시가 되지 않으려 몸서리쳐요
무엇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나를 쉼 없이 죽이고도 새로 태어나
결국, 중독 5조 23항 위반죄로 당신은 체포되죠
계간 《문예바다》 2023년 겨울호
김성신|전남 장흥 출생. 2017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광주대대학원 문예창작학 박사. 시집 『동그랗게 날아야 빠져나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