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제가 사는 동안 이세종 선생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는 게 못내 한으로 남습니다. 저는 23살에 유 영모 선생을 만났고, 25살에 함석헌 선생을 만나서 제 생각을 익혔는데, 이세종 선생과도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그분이 난 게 1880년이고 돌아간 게 1942년이라면 62년을 산 셈인데, 그분이 돌아간 해에 저는 겨우 10살이었습니다. 그분을 만날 수 없게 된 것은 운명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동광원』(東光園)에서 맡아 운영했던『송등원』(松燈園)에 입원한 해가 1956년(23세)이었는데, 거기에서 처음으로 ‘이세종’(李世鍾) 선생에 관하여 조금 들었을 뿐입니다. 그분은 ‘기인’(奇人)으로서 ‘동광원 정신’의 터전을 닦은 ‘성자’(聖者)였다는 정도였습니다. 그 뒤 제가 29살 때 겨울거지방랑이 끝난 후, 왠지 이세종 선생의 ‘기도처’를 찾아보고 싶어서 혼자 이곳 등광리(登光里)에 들렸는데, 그 땐 이곳은 초라한 ‘토굴’이었습니다. 동리에 들려서 생가도 둘러보았습니다. 이 집에서 “예수의 사람”이 나왔구나 생각하니, 감회가 깊었습니다. 그때 마침 이상복 장로를 만나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 기억되는 바는 겨우 몇 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선생은 아파도 약을 쓰지 않아서 자신도 지금껏 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 선생은 풀 한포기의 생명도 사랑해서 채소를 심으려고 밭을 만들 때 거기에서 뽑은 풀을 다른 곳에 옮겨 심었다는 것, 특히 흉년에는 한 밤중에 몰래 동리의 가난한 집을 돌면서, 식구들을 헤아려 매주와 소금을 알맞게 나누어주었다는 것, 그리고 금식하면서 기도생활에 열중하고 성경을 많이 읽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