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국사람일까?
“세희야, 너 북한에서 왔다며?”
집에 가는 길에 수연이가 달려오며 묻는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나는 침착한 척 물었다.
“우리 엄마가 그러던데. 너, 엄마랑 북한에서 왔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나 보다.
“응, 지금은 남한에서 살고 있으니까 너처럼 대한민국 사람이지.”
친구들이 몰랐으면 했는데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런 게 어디 있냐? 북한에서 태어났으면 북한사람이지.”
가장 친한 친구지만 동네방네 스피커로 소문난 수연이가 몰랐으면 했는데 이제 반 친구들이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다.
“하나원에서 남한적응 교육도 받았고 학교 공부도 마쳤기 때문에 난 더 이상 북한사람이 아니야. 다른 친구들한테는 비밀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서려다가 다시 돌아섰다.
“수연아, 친구들이 몰랐으면 해.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내가 새끼손가락을 내미니 수연이도 알겠다며 손가락을 걸어줬다.
나는 요즘 부모님과 남한에서 함께 살고 있다. 북한에서 살던 몇 년 전, 쌀쌀했던 어느 날 밤에 어른들이 서로 소곤거리더니 할머니가 내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다시는 못 볼 것처럼 눈물을 흘리셨다. 할머니는 ‘나는 나이도 많고 환자라 먼 거리 이동이 힘들고 너희에게 방해만 된다’며 혼자 남겠다고 했다. 그런 할머니를 끝까지 설득하지 못하고 사방에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자 우린 아무도 모르게 집을 빠져나왔다.
달그락 소리에 잠이 깼다. 어느새 아침이다. 밖으로 나가니 엄마가 아침준비를 하고 계셨다.
“엄마, 우리가 북한에서 왔다는 걸 이 동네 사람들이 알고 있나요?”
나는 식탁에 앉으며 엄마에게 물었다.
“글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 왜?”
엄마가 무슨 일인가 하는 모습으로 내게 물으셨다.
“응, 반 친구들이 몰랐으면 했는데 세희가 알고 있던데요. 자기네 엄마가 그러더라고.”
“으응~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어?”
“하나원에서 민주주의 적응 교육도 받았고, 학습과목도 다 공부해서 이젠 나도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했지요.”
“잘했어. 기죽을 거 없어. 너도 남한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학생이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라는데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빨리 밥 먹고 나가자. 엄마도 일하러 가야지.”
부모님은 식당을 운영하신다. 아빠는 아침 일찍 가게문을 열기 위해 나가셨다.
“야! 박세희! 너 북한사람이라며? 출세했다. 북한 촌놈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고?”
교실로 가던 중 뒤에서 들리는 말에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우리 반에서 장난 심하고 친구들 괴롭히기로 유명한 개구쟁이 박경수다. ‘아니, 저 녀석이 어떻게 알았지? 그새 수연이가?’
“누가 그래?”
나는 놀랐지만, 속으로는 태연한 척하려고 애썼다.
“다 아는 수가 있지.”
경수는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는 듯 의기양양했다.
“하나원에서 민주주의 사회 적응훈련도 하고 진도에 맞는 교육도 받아서 이젠 나도 한국 사람이거든.”
“네가 아무리 그래도 너는 북한사람이야.”
“우리가 북한을 탈출하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북한사람이라는 거야?”
나는 부지런히 걸으면서도 경수가 또 무슨 말을 할지 몰라 긴장했다. ‘하루만에 벌써 친구들한테 말한 거야?’ 생각할수록 수연이가 미웠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연이가 웃으며 지금 오냐며 손짓을 한다. 나는 본체만체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세희야, 내가 인사하는데 왜 아는 체도 안 하고 그냥 와버리는 건데?”
수연이가 쫓아와 따진다.
“몰라, 너하고 말하고 싶지 않아!”
나는 수연이가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들에겐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데 약속을 어기다니. 그때 마침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수연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쉬는 시간이 되자 수연이가 다시 내 자리로 와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상대도 하지 않았다. 수연이는 곧 울 것처럼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북한에서 살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싫다. 추운 날씨에 교복 치마를 입어야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학교 갈 때마다 소년단의 상징인 빨간 넥타이를 매야 하는 것도 싫었고 집단체조 연습이나 선전용 매스 게임도 하기 싫었다. TV나 영화, 드라마를 마음껏 보지 못하는 건 더욱 싫었다. 무엇보다 보고 싶은 남한의 아이돌이나 영화와 드라마는 모두 볼 수 없었다. 남한의 영상을 보다가 걸리면 탄광으로 끌려가거나 총살을 당했다.
몇몇 친구들이 점점 나를 놀려댔다.
“선생님, 친구들이 너무 놀려서 힘들어요. 경수는 저더러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난리예요.”
쉬는 시간에 교무실에 계신 선생님께 쫓아가 하소연도 해 봤다. 하지만 친구들은 멈추지 않고 나를 놀렸다. 수연이는 내게 무슨 일이냐며 계속 물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외면하고 본체만체 지나가 버렸다.
“야, 박세희! 넌 북한에서 계속 살 것이지 우리나라에는 왜 왔냐? 우리나라 인구만 해도 많은데 왜 북한사람들까지 몰려오는 거야?”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오늘은 영승이가 또 느닷없이 내게 따지듯 시비를 건다.
“우린 목숨 걸고 탈출한 거야.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온 사람들이거든. 아무것도 모르면 가만히 있어 자꾸 싸움 걸지 말고.”
안 그래도 친구들 놀림에 꾹꾹 참고 있던 나는 싸울 것처럼 대들었다. 그리고 수연이가 더욱 미워졌다. 대놓고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보다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아 더 미웠다.
“아, 그러니까 왜 왔냐고? 네가 태어난 곳이니까 거기서 계속 살 것이지. 우리끼리만 살기도 힘든데.”
“왜 너희들은 북한사람들도 같은 할아버지 자손이라는 걸 믿지 않는 거니? 북한사람들도 남한사람들과 똑같이 단군 할아버지 자손이거든!”
“북한은 공산주의고 우리 남한은 민주주의 나라야. 기본적으로 다르거든. 그런데 뭐가 같다는 거야?”
경수가 옆에서 거들었다.
“너희들은 우리와 달라. 날마다 단체로 집단체조도 하고 군사훈련도 받아 거칠고 폭력적이고, 애들도 군인 같아서 싫어. 안 그래?”
경수가 한마디 거드니까 영승이가 기가 살아서 떠든다.
“며칠 전에도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 올려서 아침부터 놀래 기분이 별로였거든.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남한하고 미국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했대. 같은 민족이라면서 미사일로 폭격하고 날려버려? 뭐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거야?”
영승이의 기가 하늘 높이 살았다. 자기는 북한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다는 듯 자랑하고 싶은가 보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남한의 우리들처럼 순수하고 착해. 훈련은 위에서 시키는 거고 그걸 하지 않으면 반동으로 몰려 수용소로 끌려가니까! 우리도 훈련받기 힘들고 짜증 났거든. 잡혀가지 않으려면 해야만 했어!”
나는 눈을 무섭게 뜨고 째려보다가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에 왈칵 울음이 쏟아져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김영승! 너 왜 자꾸 세희 놀리고 그러는 건데? 선생님께서 앞으로는 세희 놀리지 말라고 하셨잖아? 너 선생님께 이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연이가 영승이의 멱살을 잡을 것처럼 달려들면서 내 편을 들어줬다. ‘응? 수연이가?’ 나는 울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너는 뭔데 세희 편을 들고 나서는 거냐?”
영승이가 수연이 기세에 한풀 꺾인 것 같다.
“우린 세희랑 같은 반 친구잖아? 친구를 자꾸 괴롭히면 되겠어? 왜 자꾸만 세희를 못 살 게 구는 건데? 선생님이 세희도 우리와 같은 친구니까 더 이상 놀리지 마라고 하셨잖아!”
영승이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슬금슬금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친구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수연이가 내 편을 들어줄 줄 몰랐다.
“수연아, 고마워, 난 네가 비밀을 지켜주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친구들에게 말했다고 널 오해했어. 미안해.”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네가 날 믿어주지 않고 상대도 안 하려고 해서 서운했어.”
수연이가 말을 걸 때마다 나는 대꾸도 않고 피해 다녔었다.
“미안해. 진작에 네 말을 들었으면 오해 같은 거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수연이 손을 꼭 잡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수연이도 내 사과를 받아줘서 둘은 진심으로 화해했고 우리는 다시 다정한 친구로 돌아왔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교실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면서? 박경수! 김영승! 둘 다 일어서!”
선생님께서 나를 괴롭혔던 둘을 일으켜 세우셨다. 둘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아니, 우리 반 모두 놀랐다.
“너희 둘은 지금부터 선생님 말을 잘 듣고 명심해라. 그리고 앉아있는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알았지?”
“네!”
“세희네 가족이 북한을 탈출해서 남한으로 탈북한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맞지?”
“네!”
“세희가 남한으로 온건 가족 모두가 굶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야. 북한은 너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살기 힘들고 고통스러운 곳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니?”
“네!”
“그렇게 가족 모두가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넘어왔는데, 이곳에서 정착하기도 쉽지 않을 거야. 왜냐하면, 그곳에서의 관습과 전통이 우리 남한과 많이 다르고 체제도 다른 곳이기 때문이야. 그곳은 공산주의고 우리 남한은 민주주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희네 가족은 이곳에서 정착하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지 몰라. 그러니 너희가 세희를 좀 도와줘야 하지 않겠어? 경수, 영승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둘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세희는 우리 반 친구니까 이제 너희들 모두가 형제처럼 도와주길 바래. 알겠니? 너희 둘은 세희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서로 악수하고 화해해. 둘 이리 나와 세희한테 악수해.”
반 친구들이 와~하며 박수를 쳤다. 경수와 영승이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어 나도 악수를 받아줬다. 그날 이후로 그렇게 나는 더 이상 북한을 떠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세희야, 빨리 가봐야지. 친구들이 기다리겠다.”
엄마는 내가 약속에 늦을까 봐 아침 내내 성화를 하셨다.
“알았어요. 빨리 준비할게요.”
나는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을 챙겨 놀이터 앞으로 갔다. 약속장소에는 벌써 친구들이 모여있었다.
“어서 와, 세희야.”
경수가 내게 인사를 했다.
“응, 경수야 일찍 왔구나. 수연이는 왜 여태껏 꾸물대는 거야?”
경수의 인사가 쑥스러운데 수연이가 보이지 않았다.
“친구들~ 안녕? 다들 모였으면 출발하자.”
수연이가 드디어 왔다. 오늘은 반 친구들과 대공원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다. 그동안 선생님은 우리를 화해시켜 주셨고 반 친구들은 내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준다. 이 모두가 선생님과 수연이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