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29-33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29 말하였다. “이제는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시고 비유는 말씀하지 않으시는군요.
30 저희는 스승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누가 스승님께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을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스승님께서 하느님에게서 나오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3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
아니, 이미 왔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
33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용기를 내십시오.
누구나 고난과 좌절이 있을 때가 많습니다. 힘든 세상을 살면서 어찌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다 잘 되기만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외로운 항해를 하기도 합니다. 가끔은 파도 타기도 해야 하고, 돛대가 부러지기도 하고, 암초에 부딪치기도 하고, 풍랑을 만나기도 하겠지요. 순풍에 잔잔한 바다라고 하더라도 주의를 게을리 하면 지나가는 배와 충돌할 수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쓰나미에 밀릴 수도 있습니다. 해적선을 만날 수도 있고, 벌레 떼나 동물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마(魔)가 낄 수도 있습니다.
스승들은 그런 때에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면서 훌륭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하늘은 일부러 고난을 준다고 말합니다.
맹자의 고자장(告子章)에 나오는 고문을 인용하면서 고난과 역경에 용기를 불어넣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천장강대임어사인야 필선노기심지 고기근골 아기체부 궁핍기신행 불란기소위 시고동심인성 증익기소불능’
(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勞其心志, 苦其筋骨, 餓其體膚, 窮乏其身行, 拂亂其所爲, 是故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
“하늘이 장차 이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괴롭히고 뼈마디가 꺾어지는 고난을 당하게 하며 몸을 굶주리게 하고 생활은 빈궁에 빠뜨려 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한다. 그 이유는 그의 마음을 두들겨 참을성을 길러주어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어떤 사명도 감당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나도 시련에 시달리고 어려운 일로 곤란에 빠졌을 때 이 말씀에 용기를 얻고 기운을 차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정말 죽고 싶은 때에 나를 일으켜 세운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는 무서운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하늘이 큰일을 맡기려 할 때’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내게 무슨 큰일을 줄 것인가 하고 좌절하면 고난을 이길 힘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암과 죽기 살기로 싸울 때 ‘하느님께서 내게 큰일을 맡기시려고 계획하셨기 때문에 나를 살려 주셨다.’는 희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있기 때문에 나는 살아날 수 있었고, 고난을 이길 수 있었고, 뼈를 깎는 고통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장차 내게 큰일을 맡긴다는 그 희망은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고, 어떤 고통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쓸모없는 인간을 짓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쓸모를 찾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기준으로 쓸모는 전혀 다를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한 결 같이 바늘구멍 같은 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잡아서 크게 성공하였고,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들은 하늘이 맡기고자 하는 큰일을 잘 잡아서 성공한 것입니다. 그 아주 작은 기회를 절대로 소홀히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장차 큰일을 맡길 것이니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 오더라도 견디고 이겨 내라고 격려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고난을 이기기 위해서 희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라고 격려하십니다. 제자들은 용기를 냈고, 희망을 가지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믿음으로 지금까지 훌륭한 사람들로 추앙을 받으며 하느님께서 맡기신 큰일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 70대 후반에 다다른 나에게도 ‘장차 큰일을 주시려고’ 암에서도 낫게 하시고, 다시 글을 쓸 수 있도록 안배하신 주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계획에는 분명 무엇인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지고 계신 그 ‘무엇’을 내가 모른다고 지금 겪고 있는 이 고난을 이겨내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큰 고난에 빠져 있습니다. 자연환경은 파괴되었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전 세계에 창궐해서 어려운 사람들은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전쟁일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힘없는 사람들이 매일 죽어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심리적으로 지금 세계는 큰 재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고난에도 무언가 뜻이 있을 것이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견디고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지금 나보다 백배나 천배 더 어려움에 처한 많은 분들이 용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에 놓아진 그 고난을 이길 힘과 용기를 주님께서 은총으로 부어 주시길 청합니다. 고난과 고통과 역경은 주님께서 주시지 않았지만 고난과 역경을 이길 힘과 용기는 주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9,1-8
1 아폴로가 코린토에 있는 동안, 바오로는 여러 내륙 지방을 거쳐 에페소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제자 몇 사람을 만나,
2 “여러분이 믿게 되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묻자, 그들이 “받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있다는 말조차 듣지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 바오로가 다시 “그러면 어떤 세례를 받았습니까?” 하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요한의 세례입니다.”
4 바오로가 말하였다.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님을 믿으라고 백성에게 일렀습니다.”
5 그들은 이 말을 듣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6 그리고 바오로가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어,
그들이 신령한 언어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다.
7 그들은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8 바오로는 석 달 동안 회당에 드나들며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토론하고 설득하면서 담대히 설교하였다.
축일 5월 13일 성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 (Andrew Hubert Fournet)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연도 : 1752-1834년
같은 이름 : 안드레아스, 앙드레, 앤드루, 앤드류, 허버트, 후베르또, 후베르뚜스, 후베르토, 후베르투스
프랑스의 푸아티에(Poitiers) 근교 마유(Maille)에서 태어난 성 안드레아 후베르투스 푸르네(Andreas Hubertus Fournet, 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는 사제가 되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과는 달리 청년 시절 종교에 염증을 느꼈고 일상생활도 한 마디로 엉망이었다. 푸아티에의 대학에서 법과 철학을 공부할 때 그는 게으르고 단순히 즐기기만 좋아했다. 몇 차례 직업을 얻지 못하고 방황하자 그의 부모는 그를 매우 가난한 본당의 사제로 있던 삼촌에게 보냈다. 교구 사제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삶을 방향을 잡은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신학을 공부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고향인 마유 본당의 주임사제로 발령받았다.
프랑스 혁명 때 그는 성직자 법에 맹세하기를 거부하고 주교의 명을 따라 5년 동안 에스파냐로 피신했다. 1797년 다시 본당으로 돌아온 그는 신자들의 보호를 받으며 비밀리에 성사를 집전하다가 성 금요일에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수레에 실려 감옥에 끌려가는 것에 대해 항거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신 바로 이 날, 그분을 따르는 내가 수레를 타고 갈 수 없다” 하여 내려서 걸어갔다고 한다.
성 안드레아 후베르투스 푸르네는 아제스(Ages)의 성녀 요안나 엘리사벳 비쉬엘(Joanna Elisabeth Bichier, 8월 26일)과 교분이 많았는데, 1801년 이후부터 그는 그녀를 도와 십자가의 딸 수녀회 창립에 공을 들였다. 그는 1820년에 자기 교구에서 은퇴하여 1834년 5월 13일 비엔(Vienne)의 라 퓌(La Puye)에서 선종할 때까지 이 수녀회를 지도하였다. 그는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33년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오늘 축일을 맞은 안드레아 후베르토 푸르네 (Andrew Hubert Fournet)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