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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마지막 기인 시인
권태원 19시집
꽃들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노래하는 시인 권태원
● 약 력․1950년 경남 고성 출생/1975년 부산은행문학상(심사․이형기/조순/김태홍)/1978년 한국해기사협회 詩․小說 당선/1984년<심상>신인상/2014년<詩와수필>‘수필’신인상/2015년<詩와수필>‘소설’신인상/2018<詩와수필>‘동시’신인상/2005년 한국해양문학상/2010년 동서문학상/2010년 부산국제茶어울림문화제 은상/2011년 부산문학상/2012년 대한민국다문화예술대상 ‘문학대상’/2014년 대한민국다문화예술대상 ‘사진작가대상’․2019년 대한민국스타예술대상 시부문대상/2019년 한국언론사협회 사회공헌대상/CJ케이블방송<라디오스타> 1시간 출연(2015)/2016년 국제신문‘박창희大기자의 색깔있는 인터뷰’/2015년 국제신문서평14시집<집 안에 시가 있다>/2014년 국제신문서평13시집<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2014년 부산일보서평13시집/2011년 부산일보서평9시집<당신 안에 있으면>/1971년 한국연예예술인협회 가수/1975년 대한민국사진대전‘대통령상’/1975년 MBC-TV전국사진촬영대회‘경남도지사상’/1975년 부산사진대전 동상/1978년 부산사진대전 특선/1975년 동아사진콘테스트/1976년 매일사진콘테스트
․한국스포츠경제 부산․영남지사 취재본부장․CNN NEWS 주필. 월간 시민미디어 주필
● 시 집․1시집<팬지꽃으로>(1987)․2시집<그러다가 그러다가 시인이 되어>(1990)․3시집<나는 그대의 쓸쓸한 그림자이고 싶습니다>(1992)․4시집<하루에 한 번만이라도>(1997)․5시집<그리운 예수>(2003)․6시집<당신 안에 있으면 1>(2004)․7시집<바다, 그리운 첫사랑>(2005)․8시집<또 하나의 사랑>(2010)․9시집<당신 안에 있으면 2>(2011)․10시집<어찌하여 물이 흐를 때 꽃은 피는가>(2011)․11시집 <봄날은 간다>(2012)․12시집<당신이 아니시면>(2012)
․13시집<그리운 예수, 보고 싶은 부처>(2014)․14시집 <방 안에 시가 있다>(2015)․15시집 <하늘지우개>(2016)․16시집<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2017)․17시집 <이슬처럼 별처럼>(2018)․18시집 <없습니다>(2019)․19시집 <꽃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2019)
● 저 서
․장편소설<블랙 크리스마스><완월동>․에세이집<이슬처럼 별처럼>․동시집<가을소리>․시조집<당신이 아니시면>
● 편집회사 태원․왕영수 신부<신앙의 신비여>․김계춘 신부<행복을 만들어가며>․표중관 신부<그리스도의 수난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한국해양대학교 50년사>․<부산일보 연감> <국제신문 연감>● 자격증․힐링치매예방지도사1급/웃음치료사공인2급/노래지도강사자격증/건강박수치료사공인1급/스피치지도사공인2급/리더십지도자공인1급/레크리에이션지도자공인2급/부산간병사협회자격증/대한태권도협회국기원공인4단/대한국술원총본부공인7단/대한쿵후협회공인7단/대한택견협회공인6단
● 만 행․해인사 쌍계사 옥천사 통도사 직지사 안거/대한불교조계종/공동선실천 부산종교지도자협의회/참선도량 법화선원․불교중흥실천협의회․화엄선림회/한국참선지도자협회/(사)세상을 향기롭게/법보신문/현대불교신문/한국문인협회/현대시인협회/부산문인협회/부산시인협회
․부산상고/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경성대 영문학과/부산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화신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 목사/ 대한예수교장로회대학원 목회학과 석사/대한예수교장로회 명예목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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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자유를 찾아서
흰구름 조양환(수필가)
권태원 시인은 맑은 영혼의 소유자이다.
무엇이 나를 평가하는지에 대한 세속적인 물음을 거부한다.
시인의 인생에는 오직 하느님을 향한 사랑만이 존재할 뿐이다.
항상 묻는다. 항상 답한다.
시종일관 십년 전에도, 일 년 전에도, 한 달 전에도.
아아. 십년 후에도 세속적인 변화는 멈추어선지 어언 35년이 넘은 것 같다.
하지만 님을 향한 열정은 더욱 담금질이 되어 청석도 한 칼에 자를 기세가 보인다.
아! 나는 언제 저렇게 멋진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아! 나는 어떻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아! 나는 어떻게 하느님의 사랑에 목말라할 수 있을까?
아! 나는 언제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까?
詩가 운명인 사람, 귄태원
김대철(茶道人)
詩가 운명인 사람이 있다.
부처님도 좋아하고 예수님도 사랑하지만 숙명처럼 만난 詩에 목숨을 건 사람이 권태원 시인이다.
인간이 분출하는 에너지 중에 중요한 하나는,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라고 본다면 권태원 시인의 일상은 긍지와 혹은 오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평하고 싶다.
그의 기상천외한 행동과 모습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어떻게 보편적 사회인으로 살면서 세상의 규범과 질서를 무시하면서 또는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지를. 어쩌면 근현대의 탈속한 도인 스님들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권 시인의 기기묘묘한 행위는 상식 밖의 일탈의 연속이다.
세속의 삶에서, 저 옛날 신라의 원효 스님처럼 무애인無碍人을 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같은 인생이 권 시인의 생각이라면 그를 다시 주시해야 하리라.
때로는 승복을 입고 승려 행세를, 어떤 날엔 양복을 차려입은 목사님의 모습으로, 혹은 피에로처럼 우스꽝스러운 차림으로 활보하는 행위들이 영락없는 이 시대의 이단아다. 흡사 연극무대에 오른 일인극의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연출과 기획과 주연까지 도맡은 모습으로 지나가는 행인들을 웃길 때는 도대체 감을 잡지 못한다.
권 시인과의 만남은 35년이 넘는다. 요즘은 덜하지만 옛적에 우연히 마주치거나 또한 우리 연구소로 불쑥 찾아와 차 한 잔 마시고 갈 때의 모습은 언제나 보통 사람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행위예술가라 할까. 오리무중이다.
권 시인의 글은 참 쉽다. 그러면서 촌철살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어쩌다가 술집에서나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영락없는 기인의 모습인데, 그의 詩를 읽어보면 어찌 그리 감성적이고 투명한지 모르겠다.
권 시인은 외친다. “그리운 예수도 없다”고 한다.
“보고 싶은 부처도 없다” 한다.
“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없다”라고 하는 권 시인은, 그가 택한 시를 운명이라 자부한다.
권 시인을 나는 부산의 기인이 아니라 한국의 기인이라 부르고 싶다.
몇 년 전에 <인생이 한 잔의 차와 같다면>이란 책을 필자가 출간한 적이 있는데, 우리 연구소에 불쑥 찾아와서 차를 마시고는 늘 하는 이야기가 책 제목이 참 좋다 한다. 그래서 권 시인에게 ‘인생이 한 잔의 詩와 같다면’이란 책을 한 편 쓰면 어떨까요? 하고 물어보고 싶다.
차라리 내가 시들고
너는 피어나기를
차라리 내가 고통 받고
너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차라리 내가 울고
너는 웃기를
물은 물대로
산은 산대로
서로서로 사랑만 하면서
집 보는 햇살처럼 살고 싶다
-집 보는 햇살-
어쩌면 권 시인은 이 세상에서 탁발하는 스님처럼, 혹은 기도하는 신부처럼 살아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세속의 권위를, 세상살이의 위선을, 사회생활의 규범을 그는 송두리째 놓아버린 시대의 반항아다. 간혹 그의 모습을 보면, 그 옛날 조선 후기의 기인 화가인 최북崔北이 떠오른다.
신분 차별이 심했던 조선 후기를 예술가의 자존심 하나로 버티며 살았던 최북은 자신의 호를 호생관毫生館이라고 했는데,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일 게다. 양반들은 붓으로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풍류를 즐겼지만, 그는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아야 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그래도 호생관 최북은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자신의 눈까지 찌르며 거부했고 또한 도화서圖畵署 화원에 얽매이기도 거부하였다.
권 시인은 조선의 화가 최북과 닮았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 후대에 권 시인의 기행과 그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까 라는 생각도 가끔씩 든다. 현재의 모습으로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없는 법.
그를 오랫동안 거리에서 보지 못하면 문득 허전하고 어쩌다가 불현 듯 술집에서나 길거리에서 오다가다 해후하게 되면 그의 표정만 봐도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권 시인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런 예술가이다.
특유의 입담과 재담으로 그리고 기묘한 행위로 때로는 이웃들을 힘들게도 하지만 팍팍한 세상살이에 우리를 즐겁게 한바탕 웃게 만드는 그는 누가 뭐래도 단연 이 시대의 괴짜 기인이다.
이 시대의 ‘기인 괴짜열전’을 만든다면 권 시인을 빼 놓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가을날, 꽃피는 아침과 달뜨는 저녁에 향기로운 차 한 잔 마시며 삶을 향유하듯이 권 시인도 어쩌면 어느 주막에서 향기로운 詩 한편을 읊조리고 있을지도 모를 터.
반 성
미안하다
다시 한 번 미안하다
햇빛한테
새들에게
나무들한테도 부끄럽다
물소리
바람소리마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고 싶은 날
당신은 오지 않았다
나의 詩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매순간
새로운 詩를
쓰고 싶다
詩는 얼음 위에 피는 얼음꽃보다
더 냉엄하다
봄에 피는 꽃은 화려하다
설원에만 피는 詩는
가시나무새 울음소리만큼
참 처절하다
한 방울의 눈물
비오는 날에도 사랑은 흐른다
눈오는 날에도 나의 오래된 사랑은
진눈깨비처럼 쌓인다
나이 칠십에 비로소
나는 나의 길을 찾아간다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
나는 널 안고
너는 날 안고
단둘이 꽁꽁 끌어안고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올라가는 날
한 방울의 눈물은
나의 사랑이다
친 구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산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 강을 건널 수 없다
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려본 적이 있는가
그냥 친구가 좋아 술을 마신다
마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처럼
귀 천
빈 집
빈 방으로 돌아온다
서럽도록
못 견디게 그리워
나는 네가 되어본다
산 너머 물 건너에도
행복은 없었다
참숯처럼
뜨겁게 살고 싶지만
꽃이 지는 아침마다
나는 너를 찾아 먼 길 떠난다
어부의 기도
산을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없어도
환한 달빛 속에서
소리없이 갈대가 서걱거린다
마침내 詩를 쓰다가 잠든 밤에
바람도 없는데 별을 향하여
쉬지 않고 걸어가는 사람처럼
외롭게 살다 그렇게 죽을
내 영혼의 새처럼
나는 오늘도 詩를 썼다
생이 끝났을 때
죽음보다 강한 사랑도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슬프다
마치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기도드릴 수 있는 사람은 시인이다
마지막으로 춤춘 것이 언제인가
사랑은
그대만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나무를 짊어지듯이
내 안에
십자가를 만들었을 때에도
당신은 샘물처럼 정갈하다
설령 그대가
나의 곁을 떠날지라도
머무는 자리마다
사랑의 향기는 오래도록 그윽하다
퍼낼수록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오늘밤도 그대를 위해
기도하리라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꽃이 되지 못한다
때론 아프게
때론 불꽃같이 사랑하면서도
지워지지 않는 질투는
가시처럼 아프다
우린 얼마나 더 많이 싸워야하고
얼마나 더 많이 미워해야
사람을 이해할까
좋은 사람
처음 너를 만나던 날
착한 눈빛 착한 한 마디의 말에도
마음이 참 편안했습니다
마치 장미꽃 백 송이를 받은 것처럼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
외롭지 않기 위하여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영혼의 우물을 파는 사람이 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도
빙긋이 웃고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이 있다
어제를 돌아보고 내일을 그리는데도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람이 있다
인생이라는 땅을 경작하면서
묵묵히 슬픔과 외로움을 깨닫게 하는 사람이 있다
눈이 오면 눈길을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사랑에 대하여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언어는 사랑이다
시간의 모래 위에
욕망도 슬픔도
모두 지나가리라
사랑할 때와 이별할 때를
아는 자는 행복하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다
내 운명을 바꾸어 놓은 것은
콩깍지 사랑이었다
산방한담
마음의 번뇌가 없는
고요한 산중山中이다
연꽃 한 송이 피어난다
그대가 아프면
나도 많이 아프다
절반의 사랑
사랑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를 받을 뿐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아무런 모양도 볼 수 없는
절반의 사랑이어도
사랑은 한순간에 다가왔다
끝없이 흔들리는 갈대이다
춤 명상
별이 보이는가
빛은 상처를 통해 들어온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오래 남는다
어둠 속에서
꽃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당신도 이름 없이
나에게 오면 좋겠다
그대에게 가는 먼 길조차
혼자 걷는 길은 없다
저수지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땅
내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맑은 소리만 난다
비가 닿으면
꽃잎 피는 소리조차
문틀 낮은 사이로 들어온다
빈 집에 홀로 앉아
길 떠난 당신을 생각한다
산 그림자
저수지 물가 내려앉는
백로 한 마리
푸드득 날아오른다
당신이 떠난 자리
끝내 능소화 꽃잎이 진다
사람마다 그늘을 갖고 산다
오늘은
이유도 없이 눈물만 난다
눈 꽃
사랑하는 사람의 눈과 마음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하나가 된다
늘 함께 있고 싶지만
언제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
늘 가까이 있어도
눈을 감을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물 좋고 산 좋은 곳에
집을 한 채 짓고 싶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고요처럼 슬프다
눈꽃이 피어난다
수류화개水流花開
빈 방에 홀로 앉아
침묵의 바다에 잠긴다
텅 비어 있으므로
모든 것이 넉넉하고 충만하다
저녁노을이
나를 물들이고
남은 날이라도
나 자신답게 살고 싶다
바람이 불고 꽃이 피었다가 진다
구름이 일고 안개가 피어오른다
내일은 없다
나만이 아는 섬이 있다
나만이 가는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대가 보고 싶은 날은
그림을 그리고
그대가 그리운 날은
음악을 듣는다
물빛 같은 詩
손발이 시린 날은
몽당연필로 詩를 쓴다
잠 못 드는 밤이면
임자 없는 한 줄의
詩를 찾아 홀로 떠난다
詩가 부르면 미친듯이 달려가고
詩가 오라하면 맨발로 뛰어간다
사랑에 빠져 사랑을
알지 못한 날에도 詩를 썼다
詩를 쓰는 동안에는
보라꽃을 피우는 햇살처럼
혼자 살아도 슬프지 않다
살아 있는 날은
눈 내리는 길로 간다
아름다운 하늘 밑 쓸쓸한 세월은
꼭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처럼 아프다
비록 한 포기의 꽃을 피운
그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슬픔의 힘으로 눈물의 힘으로
갈대처럼 온몸으로 울고 싶다
오늘밤은 그대의 빈자리조차
전혀 외롭지 않다
청사포에서
꽃이 피어 산에 간다
그리워서 당신에게 달려간다
산수유 필 무렵
강에는 바람이 불고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만난다
햇살처럼 바람처럼
맑고 향기롭게 살고 싶어
오랫동안 그 강을 사랑했다
푸른 별
나는 집이 없다
한 번도 가지 못한 하늘나라조차
하루 종일 비는 내리고
내 마음은 슬프다
단 한 번도 높이 날지 못하고
단 한 번도 높은 산을 오르지 못했다
오늘 밤에도 나는 슬픈 비상을 꿈꾼다
모두가 떠나버린 텅 빈 마을
개망초꽃 풀그늘에
혼자 숨어 별을 헤는 밤에도
나는 혼자다
나만이 아는 섬이 있다
나만이 아는 섬이 있다
민들레 홀씨처럼
비상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짐승처럼
울고 싶은 밤이다
살아갈수록
섬이 더 그리워진다
누군가 다시 와서 내게 사랑을 지펴준다면
나는 그대에게
진심으로 고백하리라
아슬아슬한 벼랑 끝
작은 섬이 되더라도
그대의 북소리로
심장이 쿵쾅거리더라도
나는 그대의 작은 섬이 되리라
섬
모두가 떠나버린
인생의 언덕 위에서
홀로 서보아라
빈 방
빈 술잔처럼
아무도 찾아 오지 않는 밤이어도 좋다
산행 중
안개 속에 길을 잃은 스님처럼
망망대해 외로운 섬조차
나를 걸어가게 하는 힘은
나를 일어서게 하는 힘은
오로지 슬픔이었다
그리고 눈물이었다
삶이 무거울 때
한 알의 씨가 떨어지면
수천수만 송이의 꽃이 다시 피어난다
수선화 원추리
할미꽃 두메부추 같은 꽃들도
때로는 자기 안을 들여다본다
나는 잠시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러 있다
때로는 높이높이
산 위로 오르고
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까지 잠기면서
바람을 놓지 않는다
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을 때에도
손 흔들면 닿을 것 같은
별을 바라본다
별들은 어둠 속에서도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는다
문둥이 탈을 쓴 하늘도 아름답다
사막으로 가는
낙타의 등은 더 무거워 보인다
할 일 없이
길을 거닐다
하루는 별이 되고 달이 되고
그리고 새가 되어 잠이 든다
죽음 앞에서
달과 별이 뜨면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단풍잎이 곱게 물들면
당신이 자꾸만 그립다고
가을편지라도 쓰겠습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날
황량한 들판에 나가
당신을 사랑하였다고
춤을 추겠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붉은 피 눈보라에
빗발 선 별자리들
노래에 몸을 싣고
몸에 가락을 실어
깊고 푸른 우물 하나를
첫눈처럼 녹였습니다
어머니 옥천사가
팔검무를 추는 날
진주비단 밝혀놓은
옷고름 잡아 당겨
창가에 파문 진 눈꽃이
겨울밤을 뜨개질 하였습니다
바람이 분다, 떠나라
찔레꽃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뻐꾸기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다
날이 저문다
나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
그 어떤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그저 나 자신이고 싶다
사랑한다는 것은
지금 헤어지더라도
더 이상 미워하지 말자
촛불처럼 늘 흔들리는
그대를 보며
지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싶다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고 싶은 건
사랑은 운명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토록 오래도록 용서하고
그토록 오래도록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왜 이토록 잠 못 이루는가
푸조나무 아래서
그대가 홀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을 때
처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대와 이별할 때
온 몸과 뼈가 녹아나는 것을
겨우 겨우 참고 또 참았습니다
다시 당신을 사랑할 때는
온 영혼을 바쳐 사랑하고
당신의 그림자에 쌓여 한 평생
빈 방을 지키는
집 보는 햇살이 되겠습니다
홀로 있는 시간
소유하지 말고
남 앞에 나타나지 말고
일을 더 이상 벌이지 말자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과
온갖 새들 짐승 안개
구름 바람 산울림조차
여름이 지나간 가을철
산처럼 쓸쓸할지라도
음악 나그네는 결코 울지 않는다
퀘렌시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순록이 두려움 없이 풀을 뜯고
독수리가 마음 놓고 둥지를 틀고
곤충이 비를 피하는 나뭇잎 뒤로
땅두더지가 숨는 굴
인생의 피난처
안식처가 퀘렌시아이다
모든 것이 무너질 때
너가 없었다면
길 없는 길을 떠나지 않았으리
너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여행은 여러 해 계속되는 것이 좋다
땅에게 배우고 하늘에게 또 배워라
긴 여정이 끝나지 않도록
죽어서 여행 가방이 텅 비지 않도록
가슴 뛰는 순간까지
살아서 기도해야 한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마지막으로 기도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노래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여행을 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고요히 아침명상을 한 것이 언제인가
네가 아프면 나도 참 많이 아프다
나그네처럼
가고 또 가고
또다시 가라
인생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
내가 삶을 사랑하면
삶 역시 나에게 사랑을 돌려준다
사랑하면 비로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춤만 남듯이
초가산간
나 한 칸
달 한 칸
바람소리 한 칸
사는 일이
쓸쓸하다고 말하지 말자
오늘 하루도 바람을 맞이하고
달을 본다
늘 우리 앞에 있는
인생의 오두막길과 내리막길
날마다 나는 새롭게 태어난다
행복의 조건
내가 사는 움막은
흙과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배는 강을 건너라고 있다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
하루하루 시의 꽃을 피운다
청빈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시는 머리에서 나오지 않고
가슴은 늘 아침햇살처럼 신선하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
행복의 조건은 단순하다
오늘도 나는
골방에 앉아 시를 쓴다
새소리 바람소리
줄곧 혼자 살고 싶다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온다
칼로 대나무를 깎고 또 깎는다
뒷골에서는 올빼미 노루 우는 소리
바람소리마저 지나간다
등잔을 켜고 벽에 기대 앉는다
버리고 떠나고 버리고 떠나길
얼마나 오랫동안 했던가
내가 살고 있는 오두막에는
전기도 안 들어오고
전화도 없다
그래도 난 참 행복하다
生의 저녁
잎사귀가 넓은 후박나무 아래
아무도 없는 빈터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흙벽 앞에 놓인 나무의자
포개진 몇 안 되는 그릇
발등에 올라앉는 풀여치
낫과 괭이 같은 것들이
사람에 대한 희망으로 피어난다
거죽의 얼굴과 속의 얼굴이 같을 순 없다
단순하면서도 가난하라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삶
맑고 청아한 풍경소리처럼
날마다 출가하라
낮이 기울면 밤이 오듯이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시 나그네 음악 나그네처럼
때로는 사람의 몸에 음식이 필요하듯이
사람의 영혼에도 기도가 필요하다
사람이 꽃처럼 맑게 피어나는 날
한 가락에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거문고 줄처럼
나는 날마다 출가한다
시 인
詩는 직선이고
나는 곡선이다
詩를 즐기는 사람은
영혼의 밭을 가는 사람이다
나는 어디서 왔으며
詩는 어디로 가는가
낡은 것으로부터
묵은 것으로부터
순간순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살아 있는 시인이다
너를 만나면
오늘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
하늘만큼 땅만큼
지금 그대로 네가 좋다
사랑도 만남에서 시작되고
이별도 만남에서 시작되지만
사랑이란 파도를 넘어가면
우리는 제일 행복하다
소낙비 같은 나의 사랑아
먼 곳을 향하여 달려오라
너를 본 순간
내 안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는
너를 본다
마음공부
세상에서 의지할 것은
스스로 기도f하는 길 밖에는 없다
화두를 쫓아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사바세계의 환란은 멈추지 않는다
허튼 것 보지 않으려고 눈을 막고
허튼 말 하지 않으려고 입을 막고
허튼소리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아도
와불마저 돌아누운 긴긴 겨울밤
나는 밤새 혼자 울고 있다
출 가
108배 하는 동안
스님의 염불소리도
풍경소리도
잠든 영혼을 깨우는
천상의 울림처럼 맑고 고요하다
지혜의 길로 가는 중생도
자비의 길로 가는 비구니도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피해서가 아니다
영혼을 발견하는
습성을 알기 위해서다
해 탈
소중한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
해와 달이 지나갈수록
늘 처음처럼
순박했던 그 모습이 그립다
아무도 묶은 이가 없어도
나는 여전히 묶여 있다
뿌리 깊은 나무를 꿈꾸다
지나고 보면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은 속세에서
처음 먹었던 그 마음
그대로만 살아갈수록 있다면
해탈도 그리 멀지 않다
내가 사는 집
과거는 추억이고
미래는 막연한 기대일 뿐
우리의 시절인연은
현재가 만든다
진정 떠나보지 않은 사람은
외로움을 모른다
메었던 걸망 하나 벗어놓고
흐르는 시냇물에 혼자 땀을 씻는다
부산 대각사
기도는 인생의 길을 열어준다
참회하는 마음은 나쁜 업을 녹인다
성찰하는 마음은 좋은 업을 만든다
반성하는 마음은 인과응보를 깨닫는다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모든 악을 가까이 하지 않는
나의 참 지혜는
풍경소리 안에 가득하다
그대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있는 그대를 보며
누워 있는 부처가
오늘따라 더 아름답다
※부산시 중구 광복중앙로19 051-245-8781
얼굴 속 얼굴
사랑만이 희망이라면
처음 마음 그대로
지금 내가 앉은 푸른 잔디밭은
극락이다
항상 내 마음에 부처님이
살아 움직이듯이
부처님도 나도
하나이다
세상에는 굳이
내가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꼭 나여만 하는 경우도 있다
너를 위하여
강을 넘고 산을 넘으면서도
헤어질 때는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동자를 잊어버리지 말자
아직 터지지 않는 꽃망울처럼
오래오래 너를 바라보고 싶어도
먼 훗날 다시 만날 때까지
말없이 웃으며 혼자 살아가리라
첫날 첫날밤 첫약속 그대로
그대 가슴에 내 모습을 새기고 싶다
동백꽃
아직도 살아 있다
인간소풍을 끝내고 떠나는 날
새들에게 부탁하리라
꽃들에게 부탁하리라
아파도 아프다고 하지 않고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말라고
너를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
오늘도 너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비록 사랑하는 데도
용서가 필요하고
평화가 필요한데도
바람 부는 날
사랑하는 그대여
조금만 더 햇빛을 그리워하자
내가 너에게는 꽃이 되어 피고 싶은 날까지
너는 나에게 타오르는 촛불이 되어다오
사계절 내내 깊은 그리움으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더라도
은빛 눈물처럼 비 내리는 날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뿌리 깊은 한 그루 느티나무로
한 생애를 마감하고 싶다
새들도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바람 부는 날
눈이 부시다
노을 앞에서
또 한 번의 가을이 내 곁에 앉아 있다
연꽃은 이미 연꽃이 아닌 것처럼
나 아닌 것이 나를 만들었다
세상을 칠십 년까지 살아오면서도
마음 한 번 비우지 못해
흐르는 물에 묵은 때를 씻는다
누군가 내 목을 베어버린다면
오늘 밤에도
나는 쓸쓸한 당신의 초생달이 되고 싶다
그 사람
어제도 들길을 걸으며
그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세상 발에 밟히면서도
새로워지는 그 사람의
풀잎이고 싶었습니다
쓸어도 쓸어도
쓸어지지 않는 당신은
밤하늘의 별빛이었습니다
사랑은
사랑은
지는 것이다
사랑은 버리는 것이다
사랑은
설레임 같은
산들바람이었다
내일이면
잊혀질 사람일지라도
내일이면
헤어질 사람이라도
능금나무 아래서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손을 꼬옥 잡았다
보고 싶다
내 사랑아
제발 너무 멀리 가지 마라
내 사랑아
마음의 마음까지 잊지 마라
살다가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라
눈이 맑은 단 한 사람을 위해
꼭 갖고 싶은 것이 있다면
굴러가는 나무 잎새처럼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두라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얼마나 오랜만에 웃어보는가
잠들기 전 기도
꽃에게 묻는다
내게 보여줬던 아름다운 노래
아직도 혼자 부르고 있는가
새에게 듣는다
햇빛이 눈부신 새벽
들길을 걸으면서
아직도 혼자 다니고 있는가
바람에게 듣는다
오늘도 그대는 멀리 있는가
헤어지고 나서 보고파지는
사람이 있다면
들국화
우리 사는 마을에는
산 자들이 따뜻한 등불이 된다
우리 사는 하늘에는
죽은 자들이
구름이 되고 별빛이 된다
하늘 아래 내가 받은
가장 커다란 선물은
당신이다
오늘 받은 선물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은
당신의 해맑은 눈동자이다
대나무숲 아래서
지금 있는 그대로
그대를 사랑하겠습니다
지금 있는 얼굴 그대로
그대를 바라보겠습니다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을
사랑하고
나보다 더 추운 사람을
생각하겠습니다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나보다 더 비천한 사람을 위해
묵상하겠습니다
너와 나
바라볼 수도 없고
아니 쳐다볼 수도 없는
그저그저 생각만 해도
아름다운 사람
그저그저 눈이 부시기만 한 사람
많이 보고 싶어도
조금만 더 참으리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해야 할 말을
별들이 대신해 주는 새벽까지
행 복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외로울 때마다
혼자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오래오래 보고 싶고
자세히 보고 싶지만
햇볕이 좋아
혼자 왔다
혼자 돌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어제 보고
오늘 보아도
자꾸만 보고 싶은 것은
사랑이었다
오늘도 나는
너 앞에서
다시 태어난다
너의 흰 구름 속을 혼자 걸으며
힘들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건지
외로울 때마다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조차
감사하다
당신의 잎새
너를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너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부터 따뜻해진다
네 앞에서 난 지금
울고 있는거니?
웃고 있는 거니?
날마다
너의 꽃으로 피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너만 바라보며
이렇게 울고 있는데
가을비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기 때문에
보고 싶은 것도 많고
사랑스런 것도 많다
더러는 두 셋이서
피어 있는 꽃보다
더 도란도란
외롭게 살다가자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너무 미안하다
푸른 꽃
해 뜨는 것
해 지는 것 사이에
너무 일찍 왔거나
너무 늦게 왔거나
둘 중에 하나다
나는 너 때문에 살고
너는 나 때문에 살지만
멀리 길을 떠나도
너를 생각하며 떠났다
돌아올 때도
너만 생각했다
다시 한 번만 더 사랑하고
다시 한 번만 더 용서를 빌자
내겐
그대가 봄이다
별 위에 쓴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예쁜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주고 싶은 것 가운데서
가장 고운 꽃을
너에게 선물하고 싶다
별 위에 쓴다
너를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아직도 만나야할 좋은 사람들
만나게 하여 주소서 하고
당신은 꽃이다
금방 만나고 돌아왔는데도
참 많이 보고 싶다
밤하늘에 혼자서 반짝이는 별처럼
외론 산길에 혼자서 가는 솔바람처럼
당신이 없을 때에도
참 많이 보고 싶었다
여기에 물이 있다
첫 번째 사랑한 사람도
당신이고
마지막으로 사랑한 사람도
당신이다
꽃을 보듯 당신만 생각하고
별을 보듯 당신만 묵상한다
지금은 갈 수 없지만
다시 한 번 그 섬에 가고 싶다
그리움
당신 몸에선
수선화꽃 향기가 난다
당신 입술에선
새소리가 들린다
당신 눈동자에선
촛불이 타오른다
당신 앞에만 서면
라일락 꽃잎이 보랏빛으로
내가 물들고 있다
금 간 보석
참는 것이 사랑이다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다
용서하는 것이 사랑이다
바람 부는 날
찾아가고 싶은 것이 사랑이다
너무너무 보고 싶을 때
만나는 것이 사랑이다
아주아주 나중에까지
수선화
사랑한다는
말을 아껴야지
용서한다는
말을 가슴에 품어야지
우리 서로 떨어져 살아도
하루를 천년 같이
천년을 하루 같이
참고 또 참으면서
그대 떠난 자리에
나 혼자 남아
수선화를 바라본다
7월의 피아노
호수공원의 장미꽃들이
피었다가 진다
문득문득
이별의 말은 끝이 없다
우리는 날마다 헤어지고
영원히 이별하는 것인가
사랑은 이별로 끝나지만
이별은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는지
물안개 피는 저녁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시나요
몽골 대평원 그날 밤 별들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눈이 되어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먼 바다 기슭에 핀 동백꽃은
아직도 피어있을까요
아픈 날의 고백
작은 것과
적은 것이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답다
내 방에는
방석 하나
죽비 하나
한쪽 구석에 덩그러이 남아있는
찻그릇뿐이다
그 방을 거치기만 해도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맑은 가난
텅 빈 충만
향기로운 바람조차 신비롭다
나무가 나에게
가난한 절에서 살고 싶다
맑고 향기로운 도량에서 기도하고 싶다
고통 속에서 해탈을 얻으며
가슴 속에 꽃씨 하나 지닌채
아침 햇살 빛나는
자작나무 밑에서
부처를 보고 싶다
낡은 창호로 스며드는 햇살처럼
바람에 서걱거리는
파초잎이 되고 싶다
오두막 옆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소유는 집착하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것이다
수도원을 소유하지 않는 수도자처럼
먼 길 떠나는 순례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청빈은 단순한 가난이 아니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향기이다
개울가에서 막돌을 주워다가
혼자서 뒷간 하나를 만들었다
해 뜰 무렵
수도자가 떠난 자리
가난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알게 하소서
내가 사는 집과 움막은
흙과 나무로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낡은 판잣집처럼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오늘 하루도
눈을 뜨게 해주셔서
주님 감사합니다
산중 일기
혼자 살고 싶다
홀로 살면서도
아침 저녁 예불을 빼놓지 않듯이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을 길어 온다
가끔 범어사 뒷골에서는
올빼미 노루 우는 소리
바람소리마저 홀로 지나간다
등잔불 켜고 벽에 기대 앉아
먼 산을 바라본다
달빛 일기
살다 보면
당신 앞에서
나는 늘 눈물이 되었습니다
삶의 가시 속에서도
당신 앞에만 서면
슬퍼도 슬프다고
눈물 흘리지 않았습니다
나보다도 더 깊이
나를 아는 당신은
나의 눈물이었습니다
유언장을 쓰며
詩 한 줄 쓰고 싶을 때마다
자주 눈을 감는다
수도원의 종소리를 들으며
울다 울다 쓰러져 지친 마음은
어느새 나의 동반자 나의 시는
때로는 너무 멀리 있고
너무 높이 있었다
죽어서도 결코
지을 수 없는 시 한 구절 찾아
절망 속에서도
쉽게 떠나지 못한
첫눈
첫날밤
첫약속을 잊지 않았다
눈이 내린다
바람 부는 날
필 때도
질 때도
팬지꽃으로 살고 싶다
바람 부는 겨울에도
한 송이 동백꽃처럼
부산 송도에서 살고 싶다
삶이 무거울 때마다
마음이 아플 때마다
상처는
꽃이 되어 나비가 되었다
바람 부는 날
내 곁에 누군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아침고요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그냥 견디는 것이리라
헤어져도 다시 만나자
사랑하다가
사랑하다가 죽어버리자
그게 사랑이다
세한도
흰 눈을 짊어지고
우물을 메우는 것처럼 공부하리라
산 속에 집 한 채 짓는다
달팽이도 마음만 먹으면 바다를 건넌다
다 버리고 내려놓을 때까지
해는 다시 뜨지 않으리
마음속 푸른 가지
새가 날아와 앉는다
사군자
사는 일에
1등보다 2등을 해보아라
시를 쓰는 일에도
1등은 없다
사진을 찍으려면
천 번을 찍어라
시를 쓰려면 만 번을 써라
깊은 데에 그물을
던지는 강태공처럼
그냥 기도할 뿐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라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사랑할 시간도
기도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 걸으면
강나루에 도착할 수 있다
희 망
두 주먹을 쥐고 분노하지 말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자
하루에 한 번
책을 쓰다듬으며
가시 많은 나무에 핀
장미꽃을 바라보자
햇빛도 詩가 있어야
더 맑고 더 눈이 부시다
참 회
지금부터라도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실패를 기념하리라
꽃을 보고 싶은 순간에
꽃씨를 뿌리면 이미 늦었다
기도할 만큼 완벽한 때는 없다
향기 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 一자를 10년을 썼다
붓 끝에서도
낙동강 강물이 흐르고
새들도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지었다
오륙도
하루 종일 내가
미세먼지라는 걸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른 아침에
모든 벽은 문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너뜨릴수록 무너지지 않는 것이
벽 사이로 핀 꽃을 느끼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섬과 섬 사이로 사람과 사람의 그림자 사이로
작은 배들이 떠가는 봄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서서 너무 행복합니다
부산 갈매기
흔들리는 그대는 물을 흔들고
흔들리는 얼굴은 풀잎을 흔든다
사랑의 길은 좁고 길다
일부러 잊은 건 아니지만
작정하고 잊은 것도 아니다
사랑은 눈으로 온다고 했다
다음엔 입으로 온다고 한다
눈을 감으면
나는 없고 당신만 보인다
너인지 나인지
눈을 감고 앉은 자리마다
사무치게 돌아오는 회한이
오늘따라 갈매기 울음소리보다
더 아프다
권태원 19시집
꽃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인 쇄 2019년 9월 20일
발 행 2019년 9월 25일
지 은 이 권 태 원
펴 낸 곳 연문씨앤피출판등록 제02-01-209호 (1970. 7. 23)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135번길 11전화 051-467-2119 팩스 051-467-1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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