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24장 (구 360장) / 사도행전 21 : 1 - 14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324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21장 1절 – 14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까지 갈 수 없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청하여 고별 설교를 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 배에 오릅니다. 에베소 교회 장로들은 사도 바울을 보내는 아쉬움과 슬픈 마음을 가지고 어쩔 수 없이 작별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처음 교회의 믿음의 형제들의 뜨거운 정과 아가페 사랑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이제 에베소교회 장로들, 그리고 모든 성도들과 작별을 하고 배에 올라 두로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함이러라.” 사도 바울이 탄 배는 정기 여객선이 아니고, 무역을 하는 상선이었기 때문에, 두로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 시간이 일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일행은 그 일주일 동안 두로에 있는 형제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그들과 함께 은혜 넘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5절, 6절 말씀입니다.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 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 이 말씀에서 보면, 일주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들은 서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끈끈한 정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부두까지 따라와 울며 전송하고, 기도하고 헤어지는 초대교회의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7절 – 9절까지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사도 바울 일행이 두로에 가서 따뜻한 환대를 받으면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고, 두로를 떠나 가이사랴에 와서 머무는 동안에도 여러 형제들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따뜻한 환대를 받으면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예루살렘을 향하여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끼리 서로 만나면, 서로 사랑하고, 위로해 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주고, 용기와 힘을 주는 말을 많이 하십시오.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감격과 감동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성령의 감동과 인간의 생각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 두로와 가이사랴에서 동일하게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으니 올라가지 말라고 말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이미 사도행전 20장 22절 - 23에서 바울더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셨는데, 두로와 가이사랴에 있는 형제들은 인간적인 염려 때문에 바울에게 올라가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성령이 주신 말씀이고, 위험하니 올라가지 말라는 것은 사람의 생각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설교자를 통해서 그 음성을 들려주시고 기도하고 성경 읽는 도중에, 혹은 묵상할 때, 세미한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성경말씀을 벗어나서 성령은 역사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꼭 성경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황된 것을 찾거나 신비한 것만을 사모할 것이 아니라, 기록된 말씀을 사모하여 성령이 감동과 인간의 감정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바울 사도가 주님을 위해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는 말씀입니다. 형제자매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확고부동한 결심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교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드리기로 행동에 옮깁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놓았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셨고, 빌립보서 1장 20절 말씀에서는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이미 죽음까지도 초월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현실을 도피하는 염세주의자나 허무주의자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왕성하게 활동한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성경 13권을 기록하였고, 많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 대륙을 넘나들면서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죽음을 구원의 완성이요. 그렇게 소망하던 그리스도에게로 자기를 안내해주는 안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리스도를 위한 죽음은 그 자체가 영광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이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순교자들은 순교하기를 소원하고 소망했던 사람들입니다. 아무나 순교자의 영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바울은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다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든 가능성 가운데 가장 확실한 가능성은 죽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틀림없이 다가올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입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참으로 그 죽음은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 것을 심다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죽음은 참으로 헛된 죽음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의 삶이 되고, 예수님을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확고한 결심이 서 있어, 주께서 여러분의 생애를 축복하시고 귀하게 사용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