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굴레
이정식
부모로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받고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 내 집은 고사하고 발 뻗기도 어려운 셋방살이에, 먹고살기 힘든 처지를 두고 부모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식은 해마다 부모님 제사상 앞에서 “어찌하여 저에게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물려주고 가셨습니까.” 하고 부모를 원망하였다. 이런 가난 속에서도 그는 결혼은 했고 아이도 태어났다. 그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 지긋지긋한 가난을 너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리라‘ 하고 다짐을 했다. 그의 다짐은 헛되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마다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내 자식에게만은 넉넉히 살 수 있는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갖은 고생을 낙으로 삼고 돈을 벌었다. 그는 소원대로 자식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주고 고난과 한(恨)으로 얼룩진 인생을 마감했다. 재벌이 될 만큼 큰 재산은 아니지만 평생 동안 먹고 살 수 있는 넉넉한 유산을 물려주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물려받은 유산이 아버지가 가난의 굴레를 벗겠다는 일념으로 피땀 흘려 번 재산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낭비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노력해서 살기보다 모-든 것을 부모가 벌어놓은 재산만 믿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 둘 팔아 쓰다 보니 또다시 먹고 살기 힘든 가난뱅이가 되고 말았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한 것이다.
자식이 부자로 살 것 인지, 가난하게 살 것 인가는 부모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자식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그 부모는 알지 못했다. 이는 마치 난로위에 펄펄 끓는 물 주전자를 올려놓는다 해도 난로불이 타지 않으면 금방 식어버리는 것과 같다.
부모재산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한다. 유산이란 가난의 굴레를 벗고자하는 부모의 뜻과는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기 때문이다. 많은 재산을 물려주면 살고자하는 자식의 의지를 꺾고 가난뱅이로 만들어 놓는가하면, 너무 지독한 가난이 오히려 잘 살아야겠다는 자식의 의지를 분발시켜 부자가 되게 하는 경우를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그래서 미국의 심리학자 니키마른 은 ‘부(富)와 빈(貧)은 돌고 도는 것, 유전되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다.
우리 국민은 어떻게 살아 왔던가, 일제36년 약소민족의 설움을 안고 가난의 굴레 속에 살았다. 8.15광복은 되었지만,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부국강병의 꿈을 안고 어떻게든 잘 살아보자고 허리끈을 동여매고 발버둥을 쳤다. 정말 자식만큼은 이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물려주지 말자고 다짐했다.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산업화시대 경제건설에 젊은 청춘을 다 받쳤다. 지금은 백발이 된 7080세대지만 피눈물 나는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의 경제 강국을 이룰 수가 있었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새마을 운동이 그것이고, ‘국제시장’ 드라마에서 보듯 서독광부로 간호사로, 월남파병까지 하면서 오늘의 경제부국의 뒤안길에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보자는 슬픈 역사가 잠들고 있다. 이제 100세 시대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7080세대는 70%가 노후준비를 못한 상태에서 빈익빈(貧益貧)의 악순환을 겪고 있다.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할 때는 국민의 금모으기 운동이 큰 힘을 보탰다. 정보화시대가 성숙되면서 빠른 경제성장은 기업의 부익부(富益富)현상을 가져왔지만 근로자에게는 그 부의 낙수(落穗)효과가 크게 미치지 못 했다. 즉 돈은 돈으로 버는 수익률이 노동을 통해서 얻는 소득증가를 크게 앞질렀다. 이렇게 비생산적으로 축적된 부는 정당한 분배의 기능을 잃고 권력과 밀착하여 각종부패와 비리의 진원지가 되었다. 따라서 빈부의 양극화는 항상 불평등을 잉태하고, 이로 인한 불만과 갈등은 사회 곳곳에서 비인간화의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잊지 못할 세월 호 사건이후 여성의 묻지 마 살해사건, 열아홉 청춘의 구의역 사망사고, 섬마을 여선생의 집단 성폭행,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빚어진 노부부 살해사건, 부모재산을 탐한 시해사건, 가정 폭력과 이혼, 유산으로 인한 재벌2세들의 추악한 다툼, 등 정신병자 같은 숨 막히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통탄을 금치 못한다. 그래도 조금 나아지는 세상을 위해 두 손을 모으고 간곡히 기원을 한다. 우리가 가난의 굴레를 벗어보자고 애절하게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며 어떻게 살아왔던가,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보면서 사회적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성 회복이 가난의 굴레보다 더 시급함을 느낀다. 그것이 저성장시대를 극복하고 살아가야 할 이 시대의 급선무가 아닐까싶다.
2016.7.10
첫댓글 "우리가 가난의 굴레를 벗어보자고 애절하게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며 어떻게 살아왔던가, 이러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보면서 사회적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성 회복이 가난의 굴레보다 더 시급함을 느낀다. 그것이 저성장시대를 극복하고 살아가야 할 이 시대의 급선무가 아닐까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