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욕심
서 영 복
작년 봄 어느 날 남편과 다투었다.
결과는 내가 이겼다. 하지만 여러 달이 걸렸다. 사실 누가 봐도 다투기까지 할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스레 나는 지고 싶지 않았고, 평소에는 그냥저냥 넘어가던 그이도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누가 이기나 보자며 티격태격 옥신각신하다가 서로 삐져서 몇 시간 동안이나 남 보듯 하였다. 그리고 그 명분 없는 싸움은 끝맺음도 없이 두루뭉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 몇 개월이나 지나갔다. 그이는 자기가 이겼다고 여겼을 테지만 나는 내 의견을 관철해보려고 틈틈이 기회를 엿보다가 슬슬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문제는 새로 이사해온 주거공간의 전용면적이 전에 살던 아파트에 비해 턱없이 작다는 데 있었다.
침실 세 개와 거실 하나의 넓은 공간에서 내게 필요한 모든 걸 다 갖추고 살던 수십 년의 생활을 하루아침에 청산하고 방 두 개 거실 하나의 좁은 공간에 입주했으니 말이다.
한 두 해 살아보고 결정하자며 아파트를 그대로 놓아둔 채 최소한의 것들만 옮겨오다시피 했다. 몇 달이 지나고 보니 점점 빈집의 관리비도 아까워지고 더는 다시 돌아갈 생각이 없을듯하여 아파트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그것을 필요로 하는 지인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그중에도 내가 유난히 욕심을 냈던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장롱도 아니고 화장대도 아니다. 값나가지 않는 책상들이다. 그래서 이곳에 처음 들어오면서 길이가 2m 가까운 커다란 책상 하나를 내방에 가장 먼저 들였다. 그 녀석은 남쪽 베란다 넓은 창으로 햇빛도 들어오고 정원과 도시풍경이 한눈에 보이는 우리 집에서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했다. 다행히도 그것은 남편이 배려해준 덕분이다.
그런데 폭이 팔십 센티에 달하는 넓고 긴 책상을 혼자 사용하면서 아직도 두고 온 또 한 개의 작은 책상을 더 가져오고 싶은 나의 책상 욕심이 우리 부부싸움의 발단이 되었다. 남편은 언제라도 아래층에 내려가면 도서실과 연구실이 있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컴퓨터를 사용 할 수 있는데 좁은 집안에 커다란 책상이 차지하는 공간을 생각한다면 또 책상을 들여놓겠다는 내 의견은 찬성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누가 들어도 백번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그다지도 책상에 목숨을 거는 걸까? 몇 번이나 빈 아파트를 오가며 책상의 치수를 재보았고 내방의 남는 공간을 재고 또 재었다.
나는 낮 시간에 아래층에서 여러 동호회 활동을 하다가 집으로 올라오면 습관처럼 책상 앞에 앉는다. TV 쪽을 향해 들여놓은 거실의 푹신한 소파보다 내 공간 책상 앞의 회전의자가 좋다. 물론 내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여기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마주하고 있으면 우선 마음이 안정되고 맑아진다. 내 책상 앞 한쪽 벽에는 결혼 20주년 기념사진이 걸려있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던 해 딸은 열심히 공부만 하던 꿈 많은 여고생이었다. 우리 부부는 직장생활로 바쁘던 사십 대였고 한창 아이들 가르칠 때 칠십 대인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근사한 곳에 가서 점심을 함께하며 결혼일을 기념하였다.
그날 우리 가족 여섯 사람이 화사하게 미소를 머금고 사진을 띡었다. 지금은 네 분 부모님이 모두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우리에게 재물보다 귀한 신앙과 정신적 유산을 많이 남겨주신 분들이다. 그들은 매일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바라보시며 아직도 많은 말씀을 해 주시는 듯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책상과 다를 바 없이 연필꽂이와 책꽂이에 내가 자주 보는 영어책과 일기장 가계부도 꽂혀있고 앉은뱅이 거울과 컴퓨터 모니터도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매일 챙겨야 하는 약과 비타민 화장지는 기본이고 즐겨 연습하는 악기들과 심지어 재봉틀까지 있으니 내 책상은 오만가지의 잡동사니들 때문에 정리·정돈하는데 꽤 노력이 필요했다.
아래층에 내려가면 동호회실에서 뭐든지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때로는 한밤중에도 일어나 불을 켜고 책상 앞에 앉으면 알 수 없는 어떤 희열감마저 느낄 때도 있다. 손때묻은 악기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입던 옷에 알맞은 색실을 골라 수를 놓기도 한다. 안 입는 옷을 가위질하며 요리조리 바느질도 한다. 그런 내가 또 하나의 책상을 욕심냈던 건 순전히 재봉틀 전용 책상이 필요해서였다.
급기야 딸에게 지원사격 신호를 보냈다. 그녀에겐 역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어느 날 뜬금없이 자동차에 책상을 싣고 와서는 내방에 들여놓았다. 이제 안방의 남쪽벽은 1㎝의 공간도 없이 책상 두 개로 딱 들어 맞춰졌다. “엄마가 아끼던 재봉틀 책상을 싣고 왔어요” 내 예상은 백발백중이다. 그이는 그 엄마에 그 딸이라며 허허 웃는다. 부부싸움도 전략이 필요하다. 시간은 물론 지원군도 필요하다. 그이가 백기를 들어준 덕분에 그이의 그냥 입을 만하다는 바짓단도 알맞게 줄여주고 티셔츠의 소매길이도 재봉해 주었다. 책상 앞 창 너머로 한가로운 솜털 구름을 보면서 적지 않은 이 나이에도 몇 십 년을 뛰어다닐 것처럼 철없는 꿈을 꾼다. 이 앞에 앉으면 뭐든지 할 것 같다. 책상이 참 고맙다. 요즘에도 나는 수시로 재봉틀 전용 책상에 옮겨 앉아 신나는 취미생활을 이어간다. 책상 욕심은 나만의 별난 욕심인 거 인정한다.(202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