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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제일 부자는 누구일까요?
참 인상적인 건
우리나라 처럼 자동차나 전자 회사의 회장도 아니고
은행이나 부동산 재벌도 아니라..
1,2,3 위 모두 슈퍼마켓 체인점 사장이라는 겁니다.
1,2위가 형제인
Aldi 라는 독일의 슈퍼마켓은 독일에서 가장 싸게 물건을 파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여기서 돈을 가장 많이 벌고 있지요.
주식 상장이나 기업 공개도 하지 않아 철저히 비공개된채 기업 운영이 철저히 비밀에 싸여 있습니다.
독일에 살때는 이 슈퍼마켓에서 가격파괴하는 광고지를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적인 가격에서 거의 반값을 만들어내어, 이 물건 사러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근데 이제는 워낙 그런 판매가 많아져서... 그렇게 센세이셔널 하지는 않지만요.
지금도 터치할 수 있는 노트북을 500 유로 약 70만원 정도에 팔고 있어 옛날 추억이 떠오르네요.
군대 있을 때 PX 보던 동기 놈이 돈을 횡령치는 사고쳐서
중대 매점인 PX 운영을 방위가 배치되기 전까지 3개월 정도 임시로 맡은 적이 있는데..
당시 신실하게 성당이 없어 교회인솔로 잘 가던 저가 투명하게 운영을 잘할꺼라 생각했는 모양이었죠.
근데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뭔가 음흉한 구석이 많아서 ;;;;
암튼 그때 납품되는 만두나 과자가 상표에 따라 각각 가격이 다르다는 것과
물건을 많이 팔아주면 매점 병한테 떨어지는 물품이 따로 있다는 것
외상 거래의 활성화와
방문객들도 사갈 수 있는 기념품과 같은 다양한 상품구비를 통한 판매 촉진 등등 여러 전략을 세워 ㅎㅎㅎ
3개월 사이에 당시 상병 월급이 만원 하던 시절에 50만원 을 벌었던 기억이 나네요.
안락한 분위기와 더 높은 매출을 위해 일부를 재투자하여 페인트칠과 탁자를 마련해 이윤의 극대화를 노렸죠 ㅎㅎ
저 이후에 방위가 배치된 후에
이미 군대 짬밥보다 매점의 맛있는 후식에 길들여진 중대원들이..
마구마구 외상달고 사먹다 보니
전체 매출 중 외상값이 하도 밀려
방위병이 영창갔다는 후문이 들려서... 상당히 미안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암튼 슈퍼마켓 정말 장난아니게 돈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지요.
한국과는 다르게 철저히 현금거래나 체크카드 거래만 하는 독일 슈퍼마켓은
독일의 그 무거운 세금을 피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아
경쟁이 무척 치열합니다.
독일 사람들 특유의 절약정신도 상업적으로 최대한 이용되는 씁쓸한 진실에 부딪힙니다.
베를린에 다녀온후 프라이부르크에서 도서관 - 학교 - 집 - 식당 이런 순으로 도는 유학생 생활을 다시 시작합니다.
월요일 쁘락띠까가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파트너와 함께 연습하는 분위기라,
혼자가기는 뭐해서..베를린에서 워낙 달린 터라 그냥 탱고 없이 살기로 생각합니다.
아무곳이나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점심을 먹다가
여기가 굉장히 오래된 레스토랑인지 지하에 엄청나게 예쁜 공간이 있네요.
지하실에 과거 프라이부르크의 맥주공장 사진이 많이 전시된 걸 발견합니다.
독일에서 빵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국에서 빵 개념과 다르게 온갖 잡곡이 많이 들어갑니다.
한국에서 보들보들한 카스테라나 흰빵은 여기서는 Kuchen 이라 하며 일종의 과자류에 속하죠.
암튼 맥주에 필요한 보리가 일반 식량인 빵에도 많이 들어가는데
15세기에 중세의 끈끈한 지역공동체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맥주를 만드는 상인들이 다른 재료를 넣거나 보리가 덜 들어간 맥주를 많이 만들어내었다고 하죠.
각종 약초나 기타 재료를 첨가해서 다른 맛을 내었다고 하는데..
뭐 소나무나 쑥, 자두, 로즈마리, 각종 나무의 잎등을 갈아 넣는 것은 애교라고 치더라도,
동물성 소의 쓸개즙까지 넣어 보건상의 문제가 많았다 합니다. ㅎ
보존을 오래 하기 위해 첨가되는 화학물질도 금지되어 있기에,
석회물 보다는 건강에 더 좋은 물이 들어가 있고
한캔에 1000 원 미만의 가격으로 좋은 맥주들이 많아
독일의 생활수준과 비교하여 정말 싸서 많이들 마시는 듯 해요.
하지만 독일에서 술은 맥주보다는 와인 소비량이 더 많습니다 ㅎ
와인도 좋은게 워낙 싸서...
한국에서 3-4만원 하는 와인도 여기 7000 원 짜리 와인보다 맛이 안나와서..
몇년 동안 와인을 못마셨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뭐 대충 아무거나 포도쥬스 에 소주타도 그러려니 하고 마십니다 ㅋㅋㅋㅋ
옛날 프라이부르크 대성당 앞의 풍경입니다.
성당앞에 시장이 형성된 과거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쩜 건물들의 모습이 지금과 하나도 다르지 않네요.
전쟁통에 많이 파괴되었지만, 과거와 다르게가 아니라 똑같이 천천히 복원하는 게 특징이죠.
지을 때 고비용이 들더라도 워낙 천천히 좋은 재료를 가지고 짓고,
복원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것이 되는 터라....복구를 최선의 선택으로 생각하죠.
한국처럼 서구 문물이 따로 들어와서 일종의 비교 대상으로
과거 유물을 더이상 쓸모없는 것으로 버려지는 것과는 다른 유럽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뭔가 좀 특이한 거 먹어보자는 심정으로 시켜본 소 간 요리 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 간을 이렇게 많이 먹어보네요.
양파 튀긴거랑 감자 으깬거 같이 먹어야
비린내가 좀 덜한데.. 야채 맛있다고 먼저 다 먹고
나중에 고기만 먹게 되어 좀 힘들었습니다. ㅎㅎㅎ
독일은 남부로 갈수록 음식문화가 발달하는데요.
지금도 스위스에서는 법적으로 개나 고양이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되어 있습니다.
여기 학생식당 같은 곳에서도 말고기나 사슴고기 등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냥 주는 데로 먹다가, 나중에 제목을 자세히 살펴보고
아~ 이게 아닌데 싶어 사슴의 맑은 눈망울이 떠올라 슬퍼하기도 하죠 ㅎㅎ
암튼 못먹는 음식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상태를 떠올립니다.
예전에 가족들이 다 먹는 빵게 를 못먹었는데.. 옆으로 흉칙하게 기어다니는게 떠올랐던 것이죠 ㅎㅎ
암튼 남자는 군대가서, 결혼해서 입맛이 바뀐 다고 하는데
저는 군대가고, 유학가서, 아무것이나 없어 못먹는 식성으로 바뀝니다.
무조건 먹고 보는 저장형으로...ㅋㅋㅋㅋㅋ
목요일에 여기 젊은이들 그룹에서 주축으로 운영하는 밀롱가가 열려 가보기로 합니다.
E-Werk Foyer 라고
이름에서 과거의 공장지역이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각종 연극이나 무용 소공연을 하는 곳입니다.
Eschholzstr. 77 Freiburg
에리카가 반갑게 맞아줍니다.
한국들어간 사이 결혼도 해서 선물로 자개함과 열쇠고리를 주니 무척 좋아하네요.
1년4개월전 독일에 왔다 한국으로 떠날 때, 음악 좋다는 지나가는 말에
자기 USB에 음악을 꼭꼭 담아 챙겨주던 착한 마음씨가 여기 탱고 밀롱가 운영에서도 발휘됩니다.
얘 없으면 프라이부르크 젊은 탱고 그룹이 운영이 안되겠죠
장소 섭외와 연락, 심지어 디제이까지 도맡아 돈안되는 일이지만
정말 성심껏 하는 루마니아 유학생 출신 의사입니다.
입장료도 일부 기부를 받는데 1, 2 유로 정도를 알아서 내면 됩니다.
장소가 예쁘죠?
근데 여기는 사람들이 공연 보고 중간에 잠시 쉴때
나와서 옷을 걸어두거나 음료수를 사먹는 휴식공간인데.. 이런 곳도 아주 좋은 밀롱가 공간이 될 수 있네요 ㅎ
베를린으로 떠나기 전 역에서 한 밀롱가를 빼고는
이번이 거의 처음으로 하는 밀롱가라 지난번에 알고 지냈던 분들의 얼굴을 기대해보며 들뜬 마음으로 앉아 있어보지만,
이상하게도 한분도 나타나지 않네요.
좀 있으면 모이겠지 하고...
러시아에서 왔다는 땅게라와 먼저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누에보를 했는지 약간 발의 움직임이 자유로운데다
키는 저랑 비슷한데 다리가 워낙 길어 상체가 하체의 절반 정도 된다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서양인 중에서도 굉장히 특별한 체형을 가지고 있어 깜짝 놀랍니다.
살롱으로 앞으로 많이 기울여 추는데.. 제 다리가 짧아 사까다 안걸리는 건 첨이었다는 ;;;;
또 여자 빽오쵸 시켜놓고 내 왼다리랑 통 부딪히는 걸 재미로 많이 쓰는데.. 다리가 저 멀리에서 휘휘 왔다갔다 했다는...;;;
여기 프라이부르크 뿐만 아니라 베를린에서도 겪은 거지만,
독일 사람들은 체력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보통은 한 파트너랑 두딴따 이상을 연속으로 춥니다.
꼬르띠나 끝나도 얘기하고 또 추지, 절대 밀롱가 공간을 비우는 법이 없죠.
그게 제대로 된 규율이 아니라는 걸 알고 아르헨티나 다녀온 다른 탱고 선생들이
아무리 그렇게 하지 말고 공간을 비우라고 지적해도
안고쳐지는 참 특이한 문화입니다.
여기서 신청할려면,
먼저 가서 말을 걸어 한참 수다를 나누고
탱고추는 중간에도 간혹 잡담을 나누고
2딴따 정도를 춘다음에도 또 앉혀서 수다를 떠는
독일의 친목 문화인 수다가 여기서도 참 중요합니다.;;;
암튼 2딴따 추고 와서 참 피곤하겠다 싶어 신청안하고 있으면
누가 옆으로 와서 수다 떨다 출만한 땅게라 채어가 2,3딴따를 잡아놓고 추고,
밀롱가에서도 파트너랑만 추는 사람도 꽤 많아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집니다.
한국에서 사온 열쇠고리들 이건 누구누구 줘야지 하고 잔뜩 들고 왔지만...
아무도 1년 4개월 전에 온 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네요.
탱고를 시작한지 2-3년 차 되는 땅게라 들과 최근에 여기로 이사를 온 여자분들과 인사를 나눕니다.
제가 온 당시에는 밀롱가에 나올 실력이 되지 않아 강습만 듣다가 밀롱가 나온지가 최근이라고 하네요.
조금 고급 기술을 걸어볼만한 땅게라들은 모두 다른 땅게로 한테 붙잡혀 있고
초급분들과 그저 그렇게 잡담하며 기본적인 걷기나 동작을 하는데..
이것도 저도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쓰는 것과는 다르게 조금씩 변형을 시키는게 익숙해져서...
나름 땅게라들에 편하게 맞추어서 춘다고는 하지만 라 들은 많이 어렵나 봅니다.
제 스스로도 그다지 흥이 나지 않는데,
라들이라고 뭐 기존에 추던 로 들과 다른 동양인인 저랑 뭐가 좋았겠습니까만.....;;;
사람들이 많아지지만,
그렇게 자기들끼리 인사를 나누며 자기들만의 탱고를 즐깁니다.
실력과는 상관없이 파트너랑만 추고
다른 사람들과는 추기 싫은지..아예 신발 벗어두고 맨발로 남자친구랑 수다떠는 여자분들도 여러명 보이네요.
아는 아저씨 한테
누구누구 요즘 안오냐고 물어봐도
잘 모르거나 밀롱가에서 안본지 한참 되었다는 얘기 뿐입니다.
그렇게 탱고를 열심히 하던 사람들이 왜 사라졌을까 하고 고민해봅니다.
사람들이 파가 갈려서 잘추는 사람이나 새로운 사람과 탱고를 추지 못해 재미가 없어일 수도 있고,
더이상 늘지 않는 실력에 본인이 싫증 나서 일 수도
아니면 겨울에 스키나 등산과 같은 다른 취미가 생겨서 일 수도 있겠지요.
도서관에 있다 밀롱가로 와서 내 몸이 지쳐서인지
베를린에서 너무 재미있게 놀다와서 한껏 기대에 찬 마음에서 오는 실망 때문인지
무척이나 재미없는 밀롱가였습니다.
토요일이 되어 발도르프 슐레 에서 여는 밀롱가에 갑니다.
한국에도 이미 여러개 학교가 개설된 발도르프 정신을 가진 학교는
이 조그만 프라이부르크 도시에 3개나 있습니다.
독일 제 1의 환경도시 라다 보니
각종 대안적인 시스템을 생각하는게 워낙 기본 정신으로 깔려 있나봐요.
성적을 매기거나 공부를 안해도 낙제가 없고
스스로의 개성을 살리기 위한 활동적인 놀이에 중점을 둔 발도르프 학교는
가지고 노는 장난감들도 친환경제품이라던데..그래서 그런지.. ㅎㅎ
한국에서는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탱고추면
코피(?)날 일이지만 ㅎㅎ
여기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탱고 수업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수업하는 선생님이 한달에 한번 정도 학교 건물을 빌려 밀롱가를 엽니다.
옛날에 스윙 공연 군무 준비할 때
연습실이 없어 어떤 애가 빌린 곳이 내가 강의하는 대학 강의실이라.. 뭔가 우스웠던 기억이 납니다.
강의하는 선생이 여기서 춤추고 있다~~~~
하면 이상한 곳이 한국이지만,
그래서 어쩌라고? -_-+ 라고하는 곳이 독일입니다. ㅎㅎ
El salon Milonguero
mit DJ Claudia
주소는
Freie Waldorfschule, Ingeborg-Drewitz-Allee 1, FR-Rieselfeld
입구도 뭔가 신성한 독일 발로드르 학교 ㅋ
거기서 만난 유일하게 알고 지냈던 교수 아줌마랑 수다 떱니다.
원래 교수 아줌마는 베를린 출신이시기에
베를린 밀롱가 얘기 잔뜩 합니다.
아.. 금요일날 거기 안좋다는 소문은 자기도 들었다면서.. 원래는 Nou 라는 곳으로 넌 갔었어야 했고,
요일별로 각각 괜찮은 밀롱가를 다 얘기 해줍니다.
음..... 나중에 베를린 한번 더 가야겠군... 하는 생각이..
제가 본 것이 워낙 일부였다는 느낌이 드네요
베를린에서도 친한 아주머니들이 적어주던 인터넷에서 나오지 않던 밀롱가도 가보지 못했고...
내가 최고라 생각하는 곳 말고도 더 괜찮은 곳이 있었다니....음...
프라이부르크에는 국경지대라 주말에 밀롱가가 있으면
프랑스인들이 많이 보입니다.
프랑스는 스트라스부르가 대도시지만, 워낙 탱고가 발달안했다 하고,
근처 콜마 나 물하우스 라는 도시에서 많이 건너오지요. 한 차로 30분 정도 거리라 ...
가까운 스위스 바젤은 주말에 자체 밀롱가가 있지만
평일에 없어 많이 프라이부르크로 건너오지요.
왠일로 잘 추는 밀롱게로 스탈의 땅게로가 보여 말 걸어보니
8년 정도 췄다는 스위스에서 온 레온 이라는 남자애입니다.
요하임도 바젤 출신이라 알고 있는데.. 서로 탱고 수업들은 얘기로 잠시 수다를 떱니다.
밀롱가가 시작하고 나서도 , 정말 50대 이상의 아줌마, 초보 들만 잔뜩 있어..
실망이 큽니다.
잔잔하게 밀롱게로와 살롱스탈로 추시기는 하지만 알고보니 1-2년차 들의 초보 땅게라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너무 거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나... 사람들을 가리나.. 싶어
이곳에서도 그냥 재미있게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해주는 마음으로 추다 가자!! 라는 결심을 해보지만,
초반에 벌써 나이많은 두명의 프랑스 아줌마한테 춤 신청 거절 당합니다. ;;;;;
한국과 똑같이...
제가 발스를 못춰서(탱고나 발스나 뭐 차이난다고!!!! 실력 부족하면 내가 맞추어 줄수 있는데) ...
제가 발이 아파서...(밀롱가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
원래는 한국에서 2번 거절 당하면 그냥 접고 집에 가는데....
외국이라 예외!!! 를 스스로!!!! 만들어 ㅋ
그냥 버텨 봅니다. ;; 그래도 기쁘진 않죠 ㅜㅠ
돌이켜보면, 2년 사이에 까인 경우의 90% 가
내가 진심으로 스스로 추고 싶은 땅게라 한테가 아니라
한번 춰 줘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접근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런 마음이 땅게라들 한테도 다 보이는 건지..
나랑 같이 춤을 추는 동안 정말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과 탱고를 함께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람들이 많아져도 기다렸던 지인들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과거 나한테 무척이나 잘 대해주고 사람들까지 소개시켜주었던
멋쟁이 미용실 아줌마랑 무척이나 닮은 분이 있어 춤을 신청해 봅니다.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그분은 아닌데.. 정말 비슷한 분위기와 외모를 가지신 분인데..
이제 탱고 배운지 2년 정도 되셨다 합니다.
그때 그분이랑 똑같이 무척이나 상냥하고 다정하게..
당신은 정말 춤 잘 추는 군요..하는 말로 집에 가실때는 다시 한번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시며
저의 지쳐있던 마음을 위로해주십니다.
지금 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라
이미 당신과 닮은 사람을 알고 있어요
라고 말하지는 못했지만
과거 아주머니에게 신세를 졌던 고마움과 그리움이 더해져
지금 함께 춤을 추는 이분에게 전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쓸쓸히 밀롱가를 마치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새벽 1시에 전철에서 몇명의 남녀들이 모여 와인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며 파티를 하는 게 보입니다.
전철을 통채로 빌려 그 안에서 파티를 여는 게 가능하군요
탱고가 하나의 장르로 현대적으로 형성되는 것은
당시 미국의 대표적 사교춤이었던 하바네라가 들어온 이후 입니다.
탱고의 기원이라 꼽는 흑인들의 음악은
당시 기타와 아카펠라, 멕시코 목동의 노래인 차벨라 바르가스로 번역되는 charrasca,
타악기의 일종인 마림바 등으로 연주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밀롱가 빠른 박자의 기원은 칸돔베 에서 나오긴 하지만
흑인들의 리듬이 탱고의 어디에 녹아 들어가 있을까 고민해 봅니다.
1820년대에 흑인들이 남녀끼리 모여 두개의 라인을 따라 북의 리듬에 맞추어
서로의 배꼽을 건드렸다가 부끄럽게 다시 헤어지는 춤을 추는 모습이
몬테비데오를 여행하는 프랑스인 Alcide d'Orbiguy 에 의해 목격됩니다.
사회적으로 하층민이었던 흑인들의 모습은 탱고의 원형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추는 탱고의 음악과 자세에도 억압과 그 해방을 바라던 모습이 상징적으로 담겨져 있습니다.
이태리 백인들과 사회적으로 경쟁을 거쳐야 했던 흑인들의 모습
<1월 6일>
이 일을 빼앗아가는
도둑놈들 같은 이태리놈들아
신발을 만들줄 알면
왜 그일을 하지 않니?
이제 음료수 운반꾼과
짐꾼, 상인들 중
흑인은 아무도 없는데
흑인 어부도 없어지는 이유는
바로 너희 이태리 인들 때문이거늘
제과점까지 다 차지하고
이제는 세탁일까지 빼앗가 가려 하느냐?
내 피부색깔로 인해
더이상 서비스일은 할수 없거늘
이태리인들이 모두 그일은 차지해버리고
이미 모두.
예수여 저의 신이시여
저 이태리인들이 우리들의 삼바를 추게 하소서
북 앞으로 가서.
원래 배꼽닿는 춤으로 유명한 브라질 춤인 삼바는
흑인 춤인 Zamba 나 Semba 의 오기였다 합니다.
일요일날 뮌헨으로 가기전에 들른 프라이부르크 대성당의 모습은 여전히 웅장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성경말씀에
신부님의 강론은 사람을 낚기 위해서는 그만큼 풍부한 어장이 있어야 한다시며
많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인 다원주의 사회에서 관용의 자세를 강조하십니다.
유럽에 있으며 한 사람의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의 위로가
탱고 안에 녹아 있음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보다 따뜻한 탱고를 바라며
뮌헨으로 길을 떠납니다.
맥주를 잘 안먹어서..ㅎㅎ
독일의 대표적 음주문화인 글뤼와인 소개 할께요.
워낙 싸고 좋은 와인들이 많아 저가형 와인들은 뭔가 첨가를 해서 먹는데요.
과일이나 사이다를 왕창 넣는 샹그리아와는 다르게
독일의 대표적인 겨울 와인 문화가 레몬이나 계피 가루 조금 넣고 살짝 끓이는 정도인 글뤼바인에요
알콜이 날라가 진한 향과 열기가 몸을 녹여 주지요.
독일의 대표적 화이트와인 품적인 리슬링으로 만든 글뤼바인은 첨이라 마셔봅니다.
추가된 알콜이 많이 사라지고
각종 향이 더 어우러져 더욱 더 와인의 짙은 기운이 느껴지는 원형이 느껴지는
독일의 글뤼와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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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독일 글뤼와인 마시고 싶다. 내가 걍 날아갈까? 카이도 가고 싶으면 함 갔다 오라는데. ㅋㅋ 내일 아침 아톰 집 문앞에 내가 서 있을수도.
전 여기서 공부해야죠 ㅋ
뉴욕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맞으면 두 딴다를 연속으로 추곤 하던데, 저는 느낌좋은 사람과도 그러기가 싫어서 거절했던 기억이 있어요. 한 딴다에 온 집중을 기울이고, 여운을 남기는 것이 더 좋은데, 독일에도 그런 문화가 있나보네요.
글뤼와인은 접해보진 못했지만, 제 취향이 아닐 것 같아요 ㅋㅋ 오늘은 엄청 추운 날씨라 독일출신주인 와이너리의 활활타던 포티파이드 와인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