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nibus
더불어 산길을 오르며 친구가 얘기하였다.
지난겨울 싸락눈 내리는 밤 귀가가 늦어져 동네 앞에 차를 주차하고 좁고 굽은 골목을 걸어 집으로 가다가 문득 이 길 끝 내가 닿을 그곳에 불이 꺼져 있다면 어떨 것인가?
그러나 언젠가는 이 길 끝에 불이 꺼지고 내가 어두운 자물쇠를 열고 불을 켤 때가 오고 말 것이라는
저 안의 불의 주인도 또한 같을 것이란 생각을 하니 새삼 그 동병상련이 가슴이 조이도록 소중하더라고 했다.
Omni는 모든, 전(全)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이다.
그리하여 내가 하는 일, omni directional ant.는 무지향성 안테나이다.
성경에 나온다.
‘Non omnis moriar’ - 내가 완전히 죽는 것은 아니다.
옴니버스(omnibus)는 직행버스도 출퇴근버스도 리무진버스도 선거철 효도관광버스도 럭셔리 캠핑카도 난민을 태운 버스도 아니다.
가다가 ‘같이 가자’ 손을 드는 사람마다 모두를 세우고 한 명을 태우는 쿠션이 나쁘고 의자도 지극히 딱딱한 완행버스이다.
굳이 시간과 누구와 무엇을 정하지 않는다. “내려요.” 누군가 내리고 누군가를 태우면서 가는 그 무한의 궤도에 얹혀가는 버스다.
우리도 그때 어느 길모퉁이에서 손을 들어 그 버스에 동승했었다
자리를 좁혀 주는 누구를 만났고 그 중 누구는 먼저 내렸고 또 누구는 내가 내린 후에도 멀고 먼 길을 갈 그런 사람들의 버스이다.
한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꽃 같은 사람을 만나 악수하고 이름을 묻고 사랑하고 또 먼저 내리거나 먼저 내리는 이를 배웅하며
처음 가는 길을 쉬지 않고 우리인 채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한 버스를 타고 가는 서로 사람들의 이야기,
정해진 한 방향으로 가듯 공통의 주제의 짧은 이야기를 모아 만든 형식의 영화나 소설을 Omnibus라 한다.
우리는 다 같은 버스를 타고 먼 먼 길을 가는 승객이다. 나란히 앉은 동행은 서로 다른 곳에서 손을 들어 버스에 올랐고 우연인 듯 필연인 듯 나란히 또는 떨어져 앉아 먼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중간에 누구는 이미 내렸고 누구는 내릴 준비를 하지만 나의 동행도 나도 아직 내려야 할 때를 곳을 모른다.
모르면서 마치 한 무리인 듯 가고 있는 것이다.
안개가 자욱한 길 어디가 앞인지 모르는 초행길을 우리는 지금 가고 있는 것이다.
쓰가루해협(津輕海峽)
오오마의 그 참치 잡이 어부의 나이는 여든넷이라 했다.
늙은 참치 잡이, 그는 지난 해 내내 한 마리의 참치를 잡지 못하였다.
참치를 쫓다가 밤늦어 들어온 그에게 아내가 꾸중을 한다.
“당신 나이가 지금 얼만 줄 아세요?” 애틋하다.
“미안해요.”
다음 날 새벽 아내가 싸준 검은 깨를 뿌린 주먹밥을 들고 그는 다시 혼자 작은 배를 타고 바람이 세찬 바다로 향한다.
아내에게 꼭 참치 한 마리를 잡아 주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주먹밥을 싸주는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 한다.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 바로 그의 행복의 법이다.
행복은 솜사탕 같이 것이다. 지금 먹지 않고 아껴 남긴다고 남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행복 그것은 아직 살아있는 자의 특권이다.
행복, 그것 대단한 것이 아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