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의 변질
원래 드래프트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 메이저리그는 전력 균형 외에도 여름날 온도계처럼 치솟는 신인 계약금을 안정시키는 게 목표였다. 그런데 최근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는 다시 신인 계약금 인플레가 큰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1965년 제1회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의 영광을 안은 릭 먼데이의 계약금은 10만 4천 달러였으며 1순위 평균 계약금도 4만 2천여 달러에 불과했다. FA 제도가 도입된 1976년부터 신인 계약금도 상승하기 시작해서 1997년에는 평균 100만 달러를 돌파했고 2001년에는 200만 달러를 넘어섰다. 2009년 전체 1순위에 지명된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의 계약금은 무려 1,510만 달러에 달했다.
이처럼 신인 계약금이 끝없이 오르는 배경에는 스캇 보라스를 비롯한 거물 에이전트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고교와 대학 유망주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은 뒤 드래프트 과정에서부터 깊숙이 개입한다. 그리고 선수 권리 보호를 위해 마련된 드래프트 제도의 맹점을 파고들어 구단으로부터 거액의 계약금을 받아낸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구단들이 1, 2라운드에서 유망주를 지명하고도 계약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또는 애초부터 계약 실패를 우려한 나머지 선수의 실제 재능이나 가능성보다도 ‘계약 가능성’을 드래프트의 판단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2007년 드래프트에서 고졸 최대어로 불린 릭 포셀로가 대표적인 예다. 포셀로는 실력만 놓고 보면 1라운드 최상위 지명이 유력했다. 하지만 고졸에 스캇 보라스를 에이전트로 둔 그의 계약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구단들은 포셀로 대신 다른 선수들을 선택했다. 결국 1라운드 27번째 지명권을 가진 디트로이트 구단이 그를 선택했고, 디트로이트는 350만 달러의 계약금에 4년간 729만 달러의 메이저리그 계약까지 선사하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사인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사실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가 더 좋은 조건을 받아내기 위해 대학 행이나 4학년 진학을 선택하는 것은 선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전혀 비난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보라스 등 일부 에이전트들은 대학 졸업 선수도 계약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명을 거부하고 독립리그에서 1년 뛴 뒤 드래프트를 재수하게 만드는 ‘꼼수’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현상은 자금력이 풍부하지 않은 구단이 우수 신인 선수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가령 2001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미네소타가 대학 최고의 투타인 마크 프라이어와 마크 테세이라를 제쳐놓고 고졸 포수인 조 마우어를 선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되면 재정이 넉넉하지 못한 구단은 계약금 때문에 좋은 유망주를 지명도 못 하고 포기하는 반면, 돈 많은 구단들은 낮은 지명 순위에도 최고의 유망주들을 영입할 수 있게 된다. 팀간 전력 균형을 위해 도입된 드래프트 제도가 원래 취지와는 달리 FA 시장처럼 부자 구단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보스턴 레드삭스처럼 자금력도 풍부하고 선수 스카우트 노하우까지 뛰어난 구단이라면 더더욱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라운드 별 계약금 상한선’을 설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가령 1라운드는 최대 500만 달러, 2라운드는 300만 달러 등으로 상한선을 정하면 지금처럼 ‘스몰 마켓’ 팀이 계약금 때문에 좋은 선수를 지명하지 못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전년도 순위에 따라 드래프트에서 쓸 수 있는 예산 하한선을 정하고, 일정 라운드 이하에서는 계약금을 통일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선수노조의 반대가 워낙 심해서 실제로 도입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한 도입되더라도 과거 ‘보너스 룰’이 그랬듯이 계약서 상의 액수와 실제 액수를 다르게 하는 식의 편법으로 유명무실해질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더 많은 돈을 받아내야 하는 선수의 권리와, 전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드래프트 제도의 취지가 충돌하는 가운데 합의점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의 드래프트가 에이전트와의 전쟁이라면, 한국 구단들은 외국 스카우트와의 경쟁 속에 드래프트를 치러야 한다. 1994년 LA 다저스와 계약한 박찬호의 성공 신화 이후로 메이저리그라는 거대한 적이 등장한 것. 이후 유망주들의 미국 진출이 가속화되며 1997년에는 서재응, 김선우, 봉중근 등 최상위급 선수 5명이 대거 미국 팀과 계약하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2001년까지 매년 4~5명의 유망주가 꾸준히 태평양을 건넜다. 이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국외에 진출한 선수가 국내에 복귀할 때는 2년이 지나야 한다는 규정을 만들었고, 이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맹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
우수 선수의 해외 진출이 대세가 되자 이들을 잡기 위해 국내 구단들은 신인 계약금을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2001년 삼성에 1차 지명된 이정호가 당시로는 역대 2위인 5억 3천만 원을 받았고 2002년에는 김진우가 7억 원을, 조용준이 5억 4천만 원을 손에 넣었다. 2006년에는 한기주가 역대 최고액인 10억 원에 KIA와 계약했고 유원상은 한화에 6억 원을 받았다. 이후 신인 계약금이 낮아지면서 한동안 미국 행을 선택하는 선수가 다시 늘어났지만, 지난해 유창식의 7억 계약을 계기로 다시 ‘국내 잔류’가 대세가 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신일고 하주석(한화), 부산고 이민호(NC), 동국대 노성호(NC) 등이 미국 스카우트들의 구애를 받았지만 실제 계약으로 이어진 선수는 야탑고 김성민 한 명에 불과했다. 결국 구단들이 목동구장 스카우트 좌석을 점령한 외국 스카우트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제도를 통한 족쇄보다는 선수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게 우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