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에서 나오는 유명한 탱고(Por Una Cabeza) 장면
"Por Una Cabeza"란 "간발의 차이로"라는 뜻입니다. 가사의 내용은 "경마를 했는데 말 머리 하나 차이로 말아먹었네" 하면서 신세 한탄하는 노래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지 머 이런 뜻입니다. 아르헨티나의 배우이기도 했던 카를로스 가르델이 작곡했다고 합니다.
[ 영화 <여인의 향기> ]
영화 <여인의 향기>는 명문 사립 베어드 고등학교의 재학생인 찰리(크리스 오도넬)가 추수감사절 기간 동안 '노인 돌보기' 아르바이트를 위해 찾아간 집에서 만난 퇴역 중령 프랭크<알 파치노)와 우여곡절 끝에 긴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내용의 드라마입니다.
* 아리따운 아가씨에게 탱고를 가르쳐주는 프랭크('여인의 향기'를 연상시키죠)
찰리와 프랭크의 첫 만남은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고학년인 찰리에게 프랭크는 고학년은 대부분 사기꾼이라는 말을 하질 않나, 아버지와 어머니가 편의점을 운영하신다고 하니 차라리 농사 짓는 게 낫지 않느냐는 핀잔에,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무엇을 하느냐고 무지막지한 말들을 쏟아냅니다.
* 사실을 얘기하고 하버드로 갈 것이냐 아니면 입을 다물고 퇴학을 당할 것이냐, 힘든
갈림길에 빠져있는 순둥이 찰리
첫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의사 교환이 거칠고 이색적인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결론적으로 찰리는 프랭크가 육군 중령이였고, 장님(군에 있을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실명)이며, Sir (선생님) 이라 불리기를 싫어하고,말과 행동이 부드럽지만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프랭크는 찰리가 베어드 고교의 고학생이며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고 가정 형편이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 장님이 된 후 한없이 괴팍해져가는 프랭크
이러한 형태의 첫 만남 후에 둘의 관계는 첫 만남만큼이나 급진적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돈이 없어 추수감사절을 아르바이트하며 보내기로 계획한 찰리가 뉴욕 행 1등급 좌석에 앉게 되지요.
뉴욕으로 떠난 찰리는 프랭크가 말하는 '계획'에 의해 최고급 호텔에, 고급 리무진에, 호화 레스토랑으로 생각지도 못한 추수감사절을 보냅니다.
* 뉴욕 공항에 도착한 두사람,둘다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외로움의 끝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괴팍한 모습을 보곤 합나다. 그들에게 권위와 의도된 친절 및 복종이 아닌 인간적인 따뜻함, 애정과 배려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퇴역 장교인 프랭크는 암묵적 소외와 평생을 독립적 인간으로 살아온 자신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시각장애(장님)로 극심한 외로움에 빠져 있었던 거죠. 그 충격이 그를 더 고립시키고 사회와 벽을 쌓게 합니다. 자살은, 그런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 자결 직전의 프랭크
생의 마감을 생각하게 할 만큼 극심한 고독은 수천 달러를 쏟은 멋진 호텔과 1등석 비행, 최고급 레스토랑이 위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더더욱 아닙니다. 그 감정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의 절망에 공감하고 있다는 한 마디일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프랭크와 찰리의 대화>
<프랭크> "Give me one reason -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한 가지만 대봐"
<찰리>"I will give you two, you can dance tango and drive ferrari then anyone I 've ever seen" - 두가지를 대지요. 누구보다 탱고를 잘 추고 페라리를 잘 몰았어요."
* 장님이면서 엄청난 속도로 페라리를 모는 프랭크와 옆에서 벌벌 떨고있는 찰리
어둠 속에 있기 때문에 생명이 없다고 말하는 프랭크의 절규가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찰리>"당신은 나쁘지 않아요. 단지 고통스러울 뿐이에요 - you are not bad. It’s just in pain”.
<프랭크>"고통이 뭔지는 알아? -What do you know about pain?"
* 괴팍했던 프랭크가 온순한 할아버지(먼 친척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우리는 감히 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찰스는 순수한 영혼과 프랭크에 대한 애정으로 프랭크의 슬픈 결정(자살)을 돌아서게 합니다.
찰스의 만류로 삶을 다시 시작한 프랭크는 찰스의 고민거리를 해결해주리라 결심하죠. 그래서 찰스의 학교 교장이 소집한 전체 상벌위원회 모임에서 좌중을 쥐락펴락 하는 말솜씨로 찰스를 곤경에서 구해냅니다. 바로 아래의 대화내용입니다.
* 자결하려는 프랭크와 이를 말리는 찰리 사이의 승갱이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
영화 막바지에 펼쳐지는 최고의 명장면이 펼쳐집니다. 찰리의 큰 고민 이었던, 말(친구들을 일러 바치는 일)을 할 것인가 말을 하지 않을 것인가와 관련해서, 프랭크는 감동적인 연설로 찰리의 곤경을 해결해 줍니다.
교장선생의 차에 페인트를 쏟아 붓는 장난을 친 세 명의 학생을 목격한 찰리는 교장으로부터 누군지 말하면 하버드 추천서를 쓰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퇴학이라는 압박을 받습니다.
그는 여행 내내 고민하지만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신념을 지키려 하지요. 그러한 그의 결정에 대해 퇴학을 선언하는 교장에게 사자후를 토하는 프랭크의 연설,
* 찰리를 변호하는 프랭크의 열변
<교장> 심스(찰리) 군, 자넨 은닉자이며 거짓말쟁이야
<프랭크> 그러나 밀고자는 아니죠!
<교장> 뭐라고요?
<프랭크> 나라도 그랬을 거요.
<교장> 프랭크 씨(영화에서는 슬레이드씨라고 말합니다)!
<프랭크> 이건 정말 개수작이오!
<교장> 말조심 하세요. 프랭크 씨 여긴 베어드 고교지 군대가 아닙니다.
심스 군, 내가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프랭크> 심스는 원치 않습니다. 가치있는 베어드의 학생이라고 불러줄 필요도 없어요.
이게 뭡니까? 이 학교 교훈이 뭐요? 급우의 비행을 밀고해라 ,숨기면 너희를 화형에 처하겠다.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누군 달아나고 누군 남아요. 찰리는 위기와 맞섰고 조지는 아버지 주머니 속에 숨었죠 그런데 어찌 됐죠? 조지에겐 상을 주고 찰리는 파멸시킨다고요?
<교장> 끝나셨나요?
<프랭크> 아뇨. 이제 겨우 시작한 겁니다 난 누가 여기 이학교를 세웠는지 모릅니다. 윌리암 하워드인지 윌리안 제닝스 브라이안튼지 그의 정신은 죽었어요 만일 정신이 있었다면 사라진 거죠. 당신이 이곳을 밀고자 소굴로 만들었잖소.
만일 학생들을 남자답게 만들고 싶다면 다시 생각하시오. 내가 보기에 당신은 이 학교의 정신을 죽이고 있는 거요 망치는 거요. 오늘 이 자리에서 벌이는 이 쇼가 대체 뭡니까? 교훈이 될 것이라곤 내 옆에 있는 이 아이뿐이오.
이 아이의 영혼은 정말로 순수하고 타협을 모릅니다. 당신은 아시죠? 밝힐 수 없지만 누군가가 그의 영혼을 사려고 했소. 그러나 찰리는 팔지 않습니다.
<교장> 지나치시군요.
<프랭크> 지나친 걸 한번 보여 드릴까요? 당신은 지나친 게 뭔지도 모르실 거요.그걸 보이기엔 내가 너무 늙었고 피곤하고 앞도 못 보죠. 만약, 5년 전이었다면 난 이곳에 불을 싸질렀을 거요! 지나치다니, 지금 누굴 보고 하는 소리요?
내게도 당신 같이 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소.그 때는 이런 소년들(월남전에서 나이어린 병사들을 말함)이 그리고 더 어린 소년들이 팔다리가 찢겨 나가는 것들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를 꺾으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소. 그건 치료하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이번 일이 단지 이 젊은 병사를 퇴학시켜서 오레곤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고 여길 테지만 분명히 말하는데 그건 그의 영혼을 죽이는 짓이오! 왜냐? 그는 나쁜 인간이 아니니까.
이 애를 해치는 당신은 베어드의 얼간이요, 모두가 악한이요. 그리고 해리, 지미, 트랜트 어디 있는지 몰라도 모두 엿 같은 놈들이야!
* 장님인 프랭크가 열변을 토한 후 실내 분위기를 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박수를 치고있는 학생들과
학부모들,그리고 교직원들
<교장> 그만 하세요, 프랭크 씨!
<프랭크> 아직 안 끝났어요.난 여기 왔을 때 이 학교가 지도자의 요람이라는 말을 들었죠. 그러나 이곳에선 요람은 추락했소. 사람을 만들고 지도자를 만드는 분들, 자신들이 어떤 지도자를 만드는지 생각해 보시오. 난 모르겠어요, 오늘 찰리의 침묵이 옳은지 그른지를... 난 판사가 아니니까.
그는 자기 장래를 위해서 누구도 팔지 않았소. 그리고 여러분 그건 바로 순결함이고 용기죠. 그게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오.
난 지금도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언제나 바른 길을 알았죠. 잘 알았지만 그 길을 뿌리쳤어요 왜냐? 그 길은 너무 어려워서죠. 여기 있는 찰리도 지금 갈림길에 있어요. 그가 지금 선택한 길은 바른 길입니다.
신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길 바른 인격으로 이끄는 길이죠. 그가 계속 걸어가게 하세요. 여러분들 손에 그의 장래가 달렸습니다. 위원님들 가치 있는 그의 장래를 날 믿고 파괴하지 마세요. 보호하고 포용하세요. 언젠가는 그걸 자랑으로 여기실 겁니다.
[ 소멸하지 않는 카리스마, 알 파치노]
흔히 뛰어난 배우에게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라는 표현을 합니다. 무슨 역을 맡거나 어울리는 변신의 귀재에게 영화는 최고의 찬사를 바쳐왔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늘 일정한 패턴으로 어떤 틀을 벗어나지 않는 배우라면 훌륭한 연기자로 평가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서부극의 존 웨인, 필름누아르의 험프리 보가트, 갱스터의 에드워드 G. 로빈슨, 청춘영화의 제임스 딘 같은 배우들을 떠올려 보죠. 그들의 말투, 행동, 자세는 대체로 변함없는 것이지만 그들을 연기 못하는 배우라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 <대부1>에서
아마 알 파치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에게 아카데미상을 쥐어준 영화는 <여인의 향기>였지만 알 파치노가 빛을 발한 진짜 영화들은 갱스터나 형사영화였습니다.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로부터 시작된 알 파치노의 갱스터 연대기는 형사영화라는 굵은 가지를 치면서 거대한 나무가 되어갔습니다. 특정 장르의 스타라는 사실이 알 파치노에겐 전혀 약점이 아니었습니다.
알 파치노가 여러 영화에서 거듭 확인시킨 것은 도덕적 갈등과 시련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입니다. 아직 범죄세계를 모르는 앳된 청년 마이클, 그는 가족을 버리는 편이 옳았죠. 아버지가 부상을 입고 형이 죽었더라도 눈 딱 감고 뉴욕을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 <여인의 향기>로 아카데미 주연상을 수상할 때
하지만 마이클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가족에 대한 애착 때문? 꼭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부상당한 아버지의 병실을 찾는 장면에서 마이클은 세상을 알아버립니다. 아버지에게 총을 쏜 자들과 경찰이 같은 편이라는 사실이 그를 범죄의 땅에 머물게 만듭니다.
그는 권력뿐 아니라 정의도 총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마이클이 화장실 물통에 들어 있는 권총을 꺼내들고 나오면서 마피아의 길에 발을 디딘 것처럼 당시 32살이었던 알 파치노의 미래도 그때 정해졌는지 모릅니다.
<대부>의 마이클 콜레오네로 시작해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 <칼리토>의 칼리토 브리간테, <도니 브래스코>의 레프티로 이어지는 알 파치노의 갱스터 이미지는 회한과 연민을 불러일으킵니다.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항상 불운한 쪽을 택합니다.
<스카페이스>의 토니 몬타나는 콜롬비아 조직의 요구를 거절한 탓에 온몸이 벌집이 된 채 죽어갔고 <칼리토>에선 변호사 친구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낙원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타기 직전, 심장에 구멍이 납니다.
<도니 브래스코>의 레프티 역시 3만 달러를 들고 이곳을 떠나라는 도니의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비참한 최후를 피할 기회를 놓칩니다. 그렇게 알 파치노는 살길이, 희망이 보이는 순간에도 기어이 악운에 몸을 맡기는 비극적 영웅으로 스크린에 자신의 피를 떨어뜨렸습니다.
<대부>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피의 복수극이 끝나고 아내 케이(다이앤 키튼)가 묻습니다. “당신이 죽였나요?” 굳게 입을 다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던 마이클이 답합니다. “아니.” 마이클의 거짓말과 더불어 피로 얼룩진 가족사는 감춰집니다. 하지만 마이클의 가슴에 응어리진 가책은 어찌될 것인가요?
* <칼리토>에서
아마 조각가 로댕이 살아 있었다면 알 파치노를 <칼레의 시민들>과 <지옥의 문>의 모델로 썼을 것입니다. 조각칼로 깎은 듯 광대뼈가 뚜렷한 알 파치노의 얼굴은 비극을 형상화한 로댕의 조각품과 놀랄 만큼 흡사합니다.
로댕이 알 파치노를 알았다면 비극을 꼭 군상으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월이 내려앉으면서 알 파치노의 얼굴은 전보다 그림자가 짙어졌습니다. 뚜렷한 음영이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현재의 번민을 좀 더 깊고 또렷하게 만들었습니다.
* <대부1>에서
갱스터와 형사영화라는 거칠고 남성적인 장르에서 시간의 흔적을 쌓은 알 파치노의 얼굴에는 비극의 기운과 더불어 전문가적 자존심과 자기 확신이 들어 있습니다.
이 같은 알 파치노의 이미지를 살려 <애니 기븐 선데이>를 찍은 감독 올리버 스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니체를 인용한다면, 알 파치노는 ‘에너지의 괴물’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부드러움, 스크린에 활력을 넣다 뺐다 할 수 있는 엄청난 고통이 그를 유례없는 세련되고 열정적인 연기자로 만든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부글거리는 마그마가 그의 몸 속 어딘가에 있음을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데블스 애드버킷>의 악마 존 밀턴을 보세요. 말끔한 양복을 입은 노신사에 불과한데도 이 영화에 나오는 알 파치노를 보노라면 팔에 소름이 돋습니다. 심장박동을 측정하듯 연기의 파동을 재는 기계가 있다면 알 파치노가 품어내는 연기의 에너지를 인간의 한계치로 규정지어도 좋을 것입니다.
물론 알 파치노가 격정적인 연기만 잘하는 배우라면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알 파치노는 한번 터져 나오면 감당할 수 없는 용암을 가슴에 숨긴 채 눈빛만으로 그걸 드러낼 줄 아는 배우인거죠.
<대부>의 마이클이 화장실에서 권총을 들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은 캐스팅 당시 알 파치노 기용에 극력 반대했던 스튜디오 관계자들을 하얗게 질리게 만들었습니다.
“키가 작고 첫눈에 띄는 미남도 아닌데다 지저분해서 하버드를 나온 청년 마이클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그들은 이 사내가 말론 브랜도의 뒤를 잇는 거인이 될 것이라고 믿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혜안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대부2>에서
알 파치노가 퇴락하는 늙은 마피아 레프티로 출연한 <도니 브래스코>는 극에서 극을 오가는 그의 연기 폭을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양피가죽 코트만 입으면 한눈에 조직의 보스나 노련한 형사로 느껴지는 알 파치노가 이 영화에선 목 주변에 털이 달린 체크무늬 모직코트를 입고 축 처진 어깨를 드러냅니다.
의상 한벌의 차이로 정반대의 인간을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알 파치노가 일정한 연기 틀을 벗어나지 않는데도 찬탄을 자아내는 이유일 것입니다
[ 파란만장한 삶,우여곡절 인생 ]
1940년 4월25일 뉴욕 이스트할렘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알프레도 제임스 파치노. 시실리 출신 아버지 살바토레와 어머니 로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2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가자 어머니와 둘이 브롱크스의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얼마 뒤 조부모와 숙모가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지만 생계를 이어야 했던 어머니가 일을 나가 있는 동안 알 파치노는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고나면 집에서 혼자 연기하는 걸 흉내내곤 했다”는 그는 1년간 청각장애를 가진 두 숙모와 지내면서 대화를 위해 말 대신 몸을 쓰는 연습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연기를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쫓겨난 알 파치노는 그때부터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스스로 벌어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구두닦이, 슈퍼마켓 점원, 경비원 등을 전전하며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잠깐씩 출연했던 그에게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을 제시한 곳은 말론 브랜도와 더스틴 호프먼을 키웠던 연기학교 액터스 스튜디오였습니다.
* <칼리토>에서
26살 때 액터스 스튜디오의 연출가 리 스트라스버그의 눈에 띈 알 파치노는 차츰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중요한 역을 맡으면서 재능을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그는 1968년 <인디언들은 브롱크스를 원한다>로 오비상을 받았고 다음해 <타이거는 넥타이를 하는가?>로 토니상을 수상했습니다.
알 파치노의 영화 데뷔작은 제리 샤츠버그 감독의 <백색의 공포>(1971). 그는 2년 뒤 제리 샤츠버그 감독과 <허수아비>(1973)에서 다시 만나는데 진 해크먼과 함께 출연한 이 영화는 그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습니다.
* <대부1>에서
하지만 알 파치노에게 진정한 영화인생을 터준 것은 역시 <대부>(1972)였습니다. 라이언 오닐, 워런 비티, 잭 니콜슨, 알랭 들롱 등 쟁쟁한 후보들이 마이클 콜레오네 역의 후보로 등장했지만 코폴라는 알 파치노를 고집했습니다.
당시 그는 스크린 테스트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는 등 실수를 연발했지만 코폴라는 스튜디오 간부들의 반대를 묵살하며 알 파치노를 캐스팅했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알 파치노는 “누군가 내게 <대부>는 당신이 아니었어도 훌륭한 영화였을 거라고 말했는데 그건 사실이다. 난 그저 그때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라고 당시를 회고했습니다.
* <스카페이스>에서
알 파치노는 70년대에서 80년대 초까지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시드니 루멧, 브라이언 드 팔마, 윌리엄 프리드킨 같은 뉴할리우드의 작가들과 보냈지만 술과 담배, 신경안정제에 탐닉하면서 경력은 내리막을 향했습니다.
1985년 출연한 시대극 <혁명>이 실패하면서 4년간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춘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엘렌 바킨과 공연한 형사물 <사랑의 파도>(1989). 뒤이어 <딕 트레이시>(1990)에서 코믹연기를 선보였고 <프랭키와 쟈니>(1991)에선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습니다.
알 파치노의 재기는 <여인의 향기>(1992)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사후추인됐지만 영화사적으로 좀더 중요한 작품은 <칼리토>(1993)입니다.
* <대부1>에서
<칼리토>는 <대부>에서 시작된 알 파치노의 갱스터 연대기에서 하나의 정점이었습니다. 1996년작 <뉴욕광시곡>은 알 파치노가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자연인 알 파치노는 한번도 결혼한 적 없는 남자로도 유명합니다. 연기교사 얀 타란트와 사이에 12살된 딸이 있고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여배우 비벌리 안젤로가 최근 쌍둥이를 낳았지만 그가 결혼계획을 발표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 탱고(Tango)이야기,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춤 ]
탱고는 1860년경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생겨났습니다.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향수를 달래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항구 사창가와 술집에서 춤으로 먼저 태어난 것이죠. 그리고 음악이 뒤따라 나왔습니다. 1916년까지 탱고는 다른 곳이 아니라 사창가에서 순번을 기다리던 남자들끼리 추곤하면서 탄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탱고에 담긴 아픔과 슬픔은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온, 돈을 벌겠다고 홀로 이민을 온 사람들의 절망감과 외로움에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이 창녀들에게서 모든 감정을 다 해소할 수는 없지 않았겠습니까.
말하자면 다 채울 수 없는 사랑, 즉 총체적인 사랑에 대한 향수가 탱고에 담기게 된 것입니다. 탱고의 음악적 뿌리에는 아프리카적인 요소와 스페인적인 요소가 녹아있고 쿠바의 하바네라와 스페인 안달루시아 탱고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탱고(Tango)의 어원은 라틴어 탄게레(Tangere)입니다. 이는 ‘만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 육체보다는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코디언의 일종인 반도네온(Bandoneon),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의 경쾌하고 활기찬 음악에 맞춰 두 남녀가 상대방을 놓칠세라 공간을 파고들며 환희에 찬 현란한 춤 동작을 선보입니다.
애수에 찬 현악기의 흐느끼는 듯한 선율에 서로를 갈구하는 애절한 눈빛과 고혹적인 표정을 짓고 마지막 절정의 순간 아름다움의 극치 ‘볼의 입맞춤’은 보는 이의 심장을 멎게 합니다.
아르헨티나 정착기 서민들 사이에서 시작된 탱고는 오래지 않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상류층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탱고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유기적인 결합은 탱고를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했고 음악과 춤, 영화, 피겨 등 여러 분야로 확산되면서 인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습니다.
탱고는 애절한 음악 속에 삶의 기쁨과 상실의 슬픔을 표현한 춤이자 육체로 말하는 또 다른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