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기도
주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잠이들었나이다.
주의 보혈 덮으사 맑은 정신으로
주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안락함 속에 물든 내 영혼을
거룩한 성소로 옮겨 주시고
세속의 물결을 거슬러 아버지집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성경본문
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 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 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9) 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10)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11)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실인을 일으켰나니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2) 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14) 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15) 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16) 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 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주해
이스라엘의 범죄는 이방 나라들의 범죄와 유다의 죄악을 모두 다 포함하는 엄청난 죄악임을 지적한다. 즉 불의와 부정과 학대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멸시한 죄까지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한 그들에게 오직 심판이 주어질 수 밖에 없음을 선포한다.
7절: '한 젊은 여인' 은 '창녀' 또는 바알 신전에 바쳐진 '성녀' 이다. 한편 다녀서라는 것은 습관적인 것을 뜻하는 미완료 시제로 쓰여진 것을 볼 때, 당시의 성적 문란이나 우상숭배가 얼마나 심각했는가 짐작 해 볼 수 있다.
8절: 당시 이스라엘 지배층이 종교 생활을 영위했다는 사실은 '단' 또는 '전' 이란 말에서 확인되나 그들의 종교 생활이 타락함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당 잡힌 옷은 밤에는 돌려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행치 않았으며, 종교적으로 마시는 포도주도 착취로 얻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지배층들이 얼마나 형식적인 종교 생활을 했었는지 알 수 있다.
9-12절: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을 밝힌다. 즉 이스라엘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던 아모리 족을 비롯한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진멸하였던 것이다.
특히 본문에는 나실인과 선지자를 통하여 자비를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범한 이스라엘에 대한 아모스의 안타까움이 표현되어 있다. 영적 축복의 상징인 나실인의 순결을 침해하고 선지자들의 말씀 선포를 방해한 것은, 선택받은 백성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하나님의 엄준한 심판을 자초하는 행위였다. 사랑이 큰 만큼 그것에 반하는 데 대한 심판이 크며, 영적인 축복이 많은 만큼 그것을 거부하는 데 대한 징계도 큰 것이다.
13-16절: 1,2 장의 결론으로 해당되는 이 부분은, 일차적으로는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해 이차적으로는 범죄한 모든 열방에 대해, 확대하면 오늘날 패역한 죄를 지은 모든 자들에게 적용된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범죄한 자는 도망칠 시간이 없고 도망칠 길도 찾지 못하며 도주를 시도할 힘이나 정신도 없이 막다를 골목에 몰려 멸망하고 만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B.C 722년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입증되었다.
나의 묵상
하나님의 백성이 마치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행동한다. 자비와 사랑을 한 없이 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는 커녕 마귀의 본성대로 행한다. 마땅히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일말의 양심조차 져버리고 육체의 정욕을 따라 부끄러운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한다.
게다가 하나님이 구별하여 세운 나실인을 포도주로 혼미하게 하고, 선지자의 입을 막아버렸다. 이는 언약백성이길 포기하는 행위로서 드러내 놓고 하나님의 통치를 져버리는 행동이다.
만일 내가 복음을 알지 못하고 본능대로 살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실제로 주님을 몰랐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살았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주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만나 주시므로 나는 주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약백성의 신실함을 지켜나가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다. 나의 본성은 언제나 주님 뜻과 반대로 움직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영생의 투혼이라는 말이 참으로 와닿는다. 영적으로 죽었을 땐 투혼이 없다. 그러나 생명이 임하는 순간, 영적 생명은 거세게 죄를 저항한다. 오직 생명의 성령께서 도우사 영생 얻은 자의 삶을 살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언약백성일지라도 영생의 투혼을 그치면 이스라엘의 참상을 피할 수 없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인 언약백성들은, 전날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을 기억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오늘도 바벨론의 권세가 창궐하는 세상 속에서 믿음의 경주를 놓지 않길, 간절히 구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2)
묵상기도
주님,
안 밖으로 적들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영적 실상입니다.
달음질을 멈출 때,
죄가 나를 사로잡아가나이다.
그러나 생명의 성령께서
날마다 권고하심으로
아들의 생명으로 호흡하나이다.
주님을 떠나서 한시도 살아갈수 없는 인생.
오직 생명의 말씀을 사모하나이다.
스스로 귀를 막아 멸망으로 빠져버린
이스라엘의 과오를 기억하며
주님의 통치하심을 진정으로 사모하는 영혼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