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 장아함경 제十권
불타야사 축불념 공역
제二분 삼취경(三娶經) 제八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위국의 기수 급고독원에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세존은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들과 더불어 미묘한 법을 연설하리라. 의미는 청정하고 범행을 구족하였다. 그것은 三취법(聚法)이라 한다. 너희들은 자세히 듣고 깊이 생각하여 그것을 기억하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하여 설명하리라.』
때에 모든 비구들은 가르침을 받자와 들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三법의 세계란 一법은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요, 一법은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요, 一법은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나아가는 一법인가. 이른바 인자한 마음이 없고 독해(毒害)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다. 이것이 장차 악한 세계로 향하는 一법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一법인가. 이른바 악한 마음으로써 중생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장차 선한 세계로 향하는 一법이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나아가는 一법인가. 이른바 능히 정근하여 신념처(身念處)를 닦는 것이다. 이것이 장차 열반으로 향하는 一법이다. 다시 二법이 있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다시 二법이 있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며 다시 二법이 있어서 열반을 향해 나아간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二법인가. 一은 계를 허는 것이요 二는 견(見)을 부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二법인가. 一은 계를 갖추는 것이요 二는 견을 갖추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二법인가. 一은 그치는 것이요 二는 관하는 것이다.
다시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三법이 있고 선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三법이 있으며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三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三법인가. 그것은 三의 불선(不善)의 근본을 말한다. 탐욕의 불선의 근본과 성냄의 불선의 근본과 어리석음의 불선의 근본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三법인가. 三의 선의 근본을 말한다. 탐욕이 없는 선의 근본과 성냄이 없는 선의 근본과 어리석음이 없는 선의 근본이다. 어떤 것이 열반을 향해 나아가는 三법인가. 三의 삼매를 말한다. 공(空)삼매와 무상(無常)삼매와 무작(無作)삼매다. 또 악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四법이 있고 선한 세계로 나아가는 四법이 있으며 열반으로 향하는 四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四법인가. 정다운 말과 성내는 말과 두려운 말과 어리석은 말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四법인가. 정답지 않은 말과, 성내지 않는 말과, 두렵지 않은 말과, 어리석지 않은 말이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四법인가. 四념처(念處)를 말한다. 신념처(身念處) . 수념처(受念處) . 심념처(心念處) . 법념처(法念處)다.
다시 악한 세계로 향하는 五법이 있고 선한 세계로 향하는 五법이 있으며 열반으로 향하는 五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五법인가. 五계(戒)를 부수는 것을 말한다. 살생과 도둑질과 음탕함과 거짓말과 술을 마시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五법인가. 五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五법인가. 五근(根)을 말한다. 믿음의 근본 . 정진의 근본 . 생각의 근본 . 선정의 근본 . 지혜의 근본이다. 또 악한 세계로 향하는 六법과, 선한 세계로 향하는 六법과, 열반으로 향하는 六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六법인가. 六의 불경(不敬)을 말한다. 부처를 공경하지 않으며 법을 공경하지 않고 승을 공경하지 않고 계를 공경하지 않으며 정(定)을 공경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六법인가. 六의 경법(敬法)을 말한다. 부처를 공경하고 법을 공경하며 승을 공경하고 계를 공경하고 정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六법인가. 六의 사념(思念)을 말한다. 부처를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승을 생각하고 계를 생각하며 보시를 생각하고 하늘을 생각하는 것이다.
또 악한 세계로 향하는 七법과 선한 세계로 향하는 七법과 열반으로 향하는 七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七법인가. 살생과 주지 않는 것을 갖는 것과 음탕한 것과 거짓말과 두말과 욕설과 꾸밈말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七법인가.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두말하지 않고 욕설하지 않으며 꾸밈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七법인가. 七의 각의(覺意)를 말한다. 염각의(念覺意) . 택법각의(擇法覺意) . 정진각의(精進覺意) . 의각의(猗覺意) . 정각의(定覺意) . 희각의(喜覺意) . 사각의(捨覺意)다. 또 악한 세계로 향하는 八법과 선한 세계로 향하는 八법과 열반으로 향하는 八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八법인가. 八의 사행(邪行)을 말한다. 사특한 소견 . 사특한 뜻 . 사특한 말 . 사특한 행동 . 사특한 생활 . 사특한 방편 . 사특한 생각 . 사특한 정(定)을 말한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八법인가. 세상의 바른 소견 . 바른 뜻 . 바른 말 . 바른 행동 . 바른 생활 . 바른 방편 . 바른 생각 . 바른 정을 말한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八법인가. 八의 현성의 도(道)를 말한다. 바른 소견 . 바른 뜻 . 바른 말 . 바른 행동 . 바른 생활 . 바른 방편 . 바른 생각 . 바른 정이다.
또 악한 세계로 향하는 九법과 선한 세계로 향하는 九법과 열반으로 향하는 九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九법인가. 九뇌(惱)를 말한다. 사람이 있어 이미 나를 침로해 괴롭혔다. 지금도 나를 침로해 괴롭힌다. 장차도 나를 침로해 괴롭힐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이미 침로해 괴롭혔다. 지금도 침로해 괴롭힌다. 장차도 침로해 괴롭힐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자를 이미 사랑하고 공경했다. 지금도 사랑하고 공경한다. 장차도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九법인가. 九의 무뇌(無惱)를 말한다. 그가 이미 나를 침로했는데 나의 번민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장차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저가 이미 침로했는데 나의 번민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지금도 번민하지 않으며 장차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자를 저는 이미 사랑하고 공경했는데 나의 번민이 무슨 이익이 있으랴. 이미 번민하지 않았고 장차도 번민하지 않을 것이요 지금도 번민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九법인가. 一은 기쁨 二는 사랑 三은 기꺼움 四는 즐거움 五는 정(定) 六은 실다운 지견 七은 버림 八은 욕심이 없음 九는 해탈이다.
또 악한 세계로 향하는 十법과 선한 세계로 향하는 九법과 열반으로 향하는 十법이 있다. 어떤 것이 악한 세계로 향하는 十법인가. 十의 불선(不善)을 말한다. 몸의 살생 . 도둑질 . 음탕과, 입의 두말 . 욕설 . 거짓말 . 꾸밈말과, 뜻의 탐욕 . 질투 . 사견(邪見)이다. 어떤 것이 선한 세계로 향하는 十법인가. 十의 선행(善行)을 말한다. 몸으로 살생 . 도둑질 . 간음을 하지 않고, 입으로 두말 . 욕설 . 거짓말 . 꾸밈말을 하지 않으며, 뜻으로 탐욕 . 질투 . 사견을 가지지 않는다. 어떤 것이 열반으로 향하는 十법인가. 十의 곧은 길을 말한다. 바른 소견 . 바른 뜻 . 바른 말 . 바른 행동 . 바른 생활 . 바른 방편 . 바른 생각 . 바른 정 . 바른 해탈 . 바른 지혜다. 모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은 十법은 열반으로 이르게 할 수 있다. 이것을 이름하여 三취(聚)의 미묘한 바른 법이라 한다.
내가 여래가 되어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모두 갖추지 않은 것이 없다. 너희들을 걱정하기 때문에 경도(徑道)를 연설하는 것이다. 너희들도 또한 마땅히 스스로 그 몸을 걱정하라. 마땅히 나무 밑에 한가히 있으면서 깊이 생각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지금에 노력하지 않고 뒷날에 후회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했다.
제二분 대연방편경(大緣方便經) 제九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구류사(拘流沙)국의 겁마사(劫摩沙)거리에서 큰 비구 무리 천 二백 五十인과 함께 계셨다.
그 때 아난은 고요한 곳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세존이 말씀하시는 十二 인연법의 광명은 매우 깊어 알기 어렵다. 그러나 나의 생각대로 관찰해서는 마치 눈 앞에 있는 것과 같다. 무엇으로써 깊다고 하는가.」 이에 아난은 곧 고요한 곳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나아갔다.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저는 아까 고요한 곳에서 잠자코 혼자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고 특별하다.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十二인연법의 광명은 매우 깊어 알기 어렵다. 그러나 저의 생각대로 관찰하여서는 마치 눈 앞에 있는 것과 같다. 무엇으로서 깊다고 하는가고 했습니다.』
그 때 세존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만 두라 그만 두라. 그런 말 하지 말라. 十二 인연법의 광명은 매우 깊어 알기 어렵다. 아난아. 이 十二인연은 보기도 어렵고 알기도 어렵다. 모든 하늘 . 악마 . 범천 . 사문 . 바라문으로서 아직 인연을 보지 못한 자가 만일 사랑하고 관찰하여 그 뜻을 분별하려고 한다면 곧 정신이 아득하여 능히 보는 자 없을 것이다. 아난아, 나는 이제 너에게 말한다. 늙고 죽음에는 인연이 있다. 만일 누가 「어떤 것이 늙고 죽음의 인연인가」라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생(生)이 늙고 죽음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어떤 것이 생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유(有)가 생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유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취(取)가 유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취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애(愛)가 취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애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수(受)가 애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수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촉(觸)이 수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촉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六입(入)이 촉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六입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명색(名色)이 六입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명색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식(識)이 명색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식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 「행(行)이 식의 인연이다」라고. 또 누가 「무엇이 행의 인연인가.」고 묻거든 너는 그에게 대답하라.「치(癡)가 행의 인연이다」라고.
아난아, 이와 같이<치>를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고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을 인연하여 <六입>이 있고 六입을 인연하여 <촉>이 있고 촉을 인연하여 <수>가 있고 수를 인연하여 <애>가 있고 애를 인연하여 <취>가 있고 취를 인연하여 <유>가 있고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고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과 걱정과 슬픔과 고뇌의 큰 환(患)의 모임이 있다. 이것이 큰 고음(苦陰)의 연이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생을 인연하여 늙고 죽음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생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늙고 죽음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난아, 이 인연으로 알 수 있다. 늙음과 죽음이 생으로 말미암고 생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생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생은 유로 말미암고 유를 인연하여 생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취를 인연하여 유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유가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유는 취로 말미암고 취를 인연하여 유가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애를 인연하여 취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애(欲愛) . 유애(有愛) . 무유애(無有愛)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취가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취는 애로 말미암고 애를 인연하여 취가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수를 인연하여 애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낙수(樂受) . 고수(苦受) .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애가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애는 수를 말미암고 수를 인연하여 애가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마땅히 알라. 애를 인하여 구함이 있고 구함을 인하여 이익이 있고 이익을 인하여 씀이 있고 씀을 인하여 욕심이 있고 욕심을 인하여 집착이 있고 집착을 인하여 질투가 있고 질투를 인하여 지킴이 있고 지킴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 아난아, 보호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칼과 막대와 송사가 있어 무수한 악을 짓는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이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보호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칼과 막대기와 송사가 있어 무수한 악을 일으키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 안다. 칼과 막대기와 소송은 보호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보호를 인연하여 칼과 막대기와 소송이 있다. 아난아,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지킴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지킴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보호가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서 안다. 보호는 지킴을 말미암고 지킴을 인하여 보호가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질투로 말미암아 지킴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질투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지킴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서 안다. 지킴은 질투로 말미암고 질투를 인연하여 지킴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집착으로 인하여 질투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집착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질투가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질투는 집착으로 말미암고 집착을 인연하여 질투가 있다. 내가 말한 뜻이 여기 있다. 아난아, 욕심으로 인하여 집착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욕심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집착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집착은 욕심으로 말미암고 욕심을 인연하여 집착이 있다. 내가 말하는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씀을 인하여 욕심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씀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욕심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뜻으로써 안다. 욕심은 씀을 말미암고 씀을 인연하여 욕심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이익을 인하여 씀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이익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씀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뜻으로써 안다. 씀은 이익을 말미암고 이익을 인연하여 씀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구함을 인하여 이익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구함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이익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이익은 구함을 말미암고 구함을 인연하여 이익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사랑을 인하여 구함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일체 중생에게 사랑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구함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구함은 사랑을 말미암고 사랑을 인하여 구함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또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랑을 인하여 구함이 있어 수호(守護)에 까지 이르른다. 수도 또한 그와 같아서 수를 인하여 구함이 있어 수호에 까지 이르른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촉을 인연하여 수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아난아, 만일 눈이 없고 빛이 없고 눈의 식(識)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만일 귀와 소리와 귀의 식과 코와 냄새와 코의 식과 혀와 맛과 혀의 식과 몸과 닿음과 몸의 식과 뜻과 법과 뜻의 식이 없다면 그래도 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일체 중생에게 촉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수가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뜻으로써 안다. 수는 촉으로 말미암고 촉을 인연하여 수가 있다. 내가 말하는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명색을 인연하여 촉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중생에게 명색을 없게 한다면 그래도 마음의 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만일 일체 중생에게 형색(形色)과 상모(相貌)를 없게 한다면 그래도 몸의 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명색이 없다면 그래도 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써 안다. 촉은 명색을 말미암고 명색을 인연하여 촉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식이 모태(母胎)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래도 명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만일 식이 모태에 들어갔다 나오지 않는다면 그래도 명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만일 식이 태에서 나와 어린애 때에 문드러진다면 그래도 명색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식이 없다면 그래도 명색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이 인연으로써 나는 안다. 명색은 식을 말미암고 식을 인연하여 명색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아난아,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만일 식이 명색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곧 식이 머무를 곳이 없다. 만일 식이 머무를 곳이 없다면 그래도 생 . 노 . 병 . 사와 우 . 비 . 고 . 뇌가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만일 명색이 없다면 그래도 식이 있겠는가.』
아난은 대답했다.
『없습니다.』
『아난아, 나는 이 인연으로 안다. 식은 명색을 말미암고 명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 내가 말한 뜻은 여기 있다. 명색은 六입을 인연하고 六입은 촉을 인연하고 촉은 수를 인연하고 수는 애를 인연하고 애는 취를 인연하고 취는 유를 인연하고 유는 생을 인연하고 노 . 사 . 우 . 비 . 고 . 뇌의 큰 고음(苦陰)을 인연한다.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히 말하고 가지런히 대답하고 가지런히 한정하고 가지런히 연설하고 가지런히 지관(智觀)하고 가지런히 중생을 위한다. 아난아, 모든 비구는 이 법 가운데서 여실히 바르게 번뇌를 관찰하여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아난아, 이 비구를 이름하여 마땅히 지혜의 해탈을 얻었다 한다. 이러한 해탈 비구는 여래의 마지막도 알고 여래의 마지막 아닌 것도 알며 여래의 마지막과 마지막 아닌 것도 알고 여래의 마지막 아닌 것과 마지막 아님이 아닌 것도 또한 안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히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한정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지관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 알아 마친 번뇌 없어 마음의 해탈을 얻은 비구는 알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알고 또 본다.
아난아,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아견(我見)이라 한다. 그들은 명색(名色)과 수(受)를 함께 <나>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수는 나가 아니다. 내가 수다」라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수도 아니다. 수법(受法)이 나다」라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수가 아니다. 수법도 나가 아니다. 다만 애(愛)가 나다」라고 한다. 아난아, 저가 있다고 보는 이들이 수가 나다라고 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들에게 말하라. 「여래는 三수(受)를 말한다. 고수(苦受) . 낙수(樂受) . 불구불락수(不苦不樂受)다」라고. 낙수가 있을 때는 고수와 불고불낙수는 있을 수 없고, 고수가 있을 때는 낙수와 불고불락수는 있을 수 없으며, 불고불낙수가 있을 때는 고수와 낙수는 있을 수 없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촉의 인연으로 낙수를 낸다. 만일 낙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아난아, 촉의 인연으로 고수를 낸다. 만일 고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불고불락촉의 인연으로 불고불락수를 낸다. 만일 불고불락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아난아, 마치 두 나무가 서로 비비면 곧 불이 나지마는 각각 딴 곳에 두면 불이 없는 것과 같다. 이것도 또한 그와 같다. 낙촉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낙수를 내는 것이므로 만일 낙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고촉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고수를 내는 것이므로 만일 고의 촉이 멸하면 수도 도한 멸한다. 불고불락촉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불고불락수를 내는 것이므로 만일 불고불락의 촉이 멸하면 수도 또한 멸한다. 아난아, 이 三수는 유위(有爲)로서 떳떳함이 없어 인연을 따라 생기는 것이다. 다하는 법이요 멸하는 법이요 썩고 무너지는 법이다. 저는 나의 소유도 아니요 나는 저의 소유가 아니다. 마땅히 바른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 그것을 관찰하라.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보는 사람은 수로서 나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보는 사람이 「수는 나가 아니다. 내가 수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에게 말하라. 「여래는 三수를 말한다. 고수와 낙수와 불고불락수」라고. 만일 낙수가 나라면 낙수가 멸할 때에는 곧 二아(我)가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만일 고수가 나라면 고수가 멸할 때에는 곧 二아가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만일 불고불락수가 나라면 불고불락수가 멸할 때에는 곧 二아가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보는 자는 말한다. 「수는 나가 아니다. 내가 수다」라고. 그는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수가 아니다. 수법(受法)이 나다」라고 말하거든 너는 마땅히 그에게 말하라. 「일체는 수가 없다. 너는 어떻게 수법이 있다고 하는가. 네가 수법이냐」고. 그는 대답하리라. 「그렇지 않다」고. 그러므로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수가 아니다. 수법이 나다」라고 말하는 그것은 잘못이다.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는 이렇게 말한다. 「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수가 아니다. 수법도 아니다. 다만 애(愛)가 나다」라고. 너는 그에게 말하라. 「일체는 수가 없다. 어떻게 애가 있겠느냐. 너는 애이냐」고. 그는 대답하리라. 「아니다」라고. 그러므로 아난아,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수는 나가 아니다. 나는 수가 아니다. 수법도 나가 아니다. 애가 나다.」라고 말한다면 그는 곧 잘못이다.
아난아, 이렇게 가지런히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한정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연설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지관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중생을 위한다. 아난아 모든 비구는 이 법 가운데서 열심히 바로 관찰하여 번뇌 없이 마음의 해탈을 얻는다. 아난아, 이 비구는 마땅히 이름하여 지혜의 해탈을 얻은 자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해탈한 마음의 비구는 나가 있는 것도 알고 나가 없는 것도 알면 나가 있는 동시에 나가 없는 것도 또한 알고 나가 있지도 않고 나가 없지도 않는 것도 또한 안다. 무슨 까닭인가. 아난아, 이러게 가지런히 말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대답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한정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지관하고 이렇게 가지런히 중생을 위한다. 이렇게 다 알아 번뇌없이 마음의 해탈을 얻은 비구는 알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알고 본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똑 같이 모두 결정적으로 말한다. 저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혹은 유한(有限)의 색(色)을 나라 하고 혹은 무한의 색을 나라한다. 혹은 유한의 무색(無色)을 나라 하고 혹은 무한의 무색을 나라 한다. 아난아, 저 유한의 색을 나라고 하는 자는 「유한의 색은 나다.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다른 이가 보는 것은 그르다」고 결정한다. 무한의 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무한의 색을 나라고 하여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한다. 유한의 무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유한의 무색을 나라고 하며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이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한다. 무한의 무색을 나라고 하는 자도 무한의 무색을 나라고 하여 내가 보는 것은 옳고 남의 보는 것은 그르다고 한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七 식주(識住)와 二 입처(入處)에 대해서 모든 사문 바라문은 말한다. 「이곳은 안온하여 구제가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돌아감이 되며 허망이 아니요 번뇌가 아니다」라고 한다. 어떤 것을 七이라 하는가. 어떤 중생이 있어 약간의 몸에 약간의 생각이면 그것은 하늘과 사람이니 이것은 첫 식주처다. 모든 사문 바라문은 말한다. 「이곳은 안온하여 구원이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돌아감이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는다」라고.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첫 식주를 알고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고통을 알고 그 떠나는 길을 알면 그는 여실히 알고 보리라. 아난아, 그 비구는 말하리라. 「저는 나가 아니요 나는 저가 아니다. 여실히 보아 안다」고. 어떤 중생이 있어 약간의 몸에 한 생각이면 그것은 범광음천이다. 어떤 중생이 있어 한 몸에 약간의 생각이면 그것은 광음천이다. 어떤 중생이 있어 한 몸에 한 생각이면 그것은 변정천이다. 어떤 중생이 있어 공처에 머무르고 어떤 중생이 있어 식처에 머무르고 어떤 중생이 있어 불용처에 머무르면 그것은 七 식주처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말한다. 「이곳은 안온하여 구원이 되고 보호가 되며 밝음이 되고 돌아감이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는다」라고.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七 식주를 알고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허물을 알고 그 구원의 길을 알면 그는 여실히 알고 보리라. 그 비구는 말한다. 「저는 나가 아니요 나는 저가 아니다. 여실히 알고 본다」고. 이것은 七 식주다. 어떤 것이 二 입처(入處)인가. 무상입(無想入)과 비상무상입(非想無想入)이 그것이다. 어떤 사문 바라문은 말한다. 「이곳은 안온하여 구원이 되고 보호가 되며 집이 되고 등불이 되며 밝음이 되고 돌아감이 되며 허망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는다」라고. 아난아, 만일 비구로서 二입처를 알고 그 원인을 알고 그 멸을 알고 그 맛을 알고 그 허물을 알고 그 떠남의 길을 알면 그는 여실히 알고 여실히 보리라. 그 비구는 말한다. 「저는 나가 아니요 나는 저가 아니다 여실히 알고 본다」고. 이것이 二입처다.
아난아, 다시 八 해탈이 있다. 어떤 것이 八인가. 색(色)이 색을 관하는 것은 첫 해탈이다. 안의 색상(色想)이 바깥의 색을 관하는 것은 二 해탈이다. 깨끗한 해탈은 三해탈이다. 색상을 넘어 유대상(有對想)을 멸하고 잡 생각을 생각하지 않고 공처에 머무르는 것은 四 해탈이다. 공처를 넘어 식처에 머무르는 것은 五 해탈이다. 식처를 넘어 불용처에 머무르는 것은 六 해탈이다. 불용처를 넘어 유상무상처에 머무르는 것은 七 해탈이다. 그리고 멸진정은 八 해탈이다. 아난아, 모든 비구가 이 八 해탈에서 역순으로 노닐면서 드나들기를 자재로이 한다면 그러한 비구는 함께 해탈을 얻는다.』
그 때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했다.
제二분 석제환인문경(釋提桓因問經) 제十
이렇게 내가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마갈타국의 암바라촌 북쪽에 있는 비타(毘陀)산의 인타라바라(因陀羅婆羅) 굴 속에 계셨다.
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은 미묘한 착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을 뵈옵고자 했다. 「나는 이제 세존의 계시는 곳에 가리라」고. 때에 모든 도리천들은 석제환인이 묘하고 착한 마음을 내어 부처님께 가고자 하는말을 듣고 곧 제석에게 나아가 말했다.
『착합니다. 제석이여, 미묘하고 착한 마음을 내어 여래께 나아가려고 하십니다. 우리들도 또 모시고 따라가 세존께 가기를 원합니다.』
때에 제석은 곧 음악신(神) 반차익(般遮翼)에게 말했다.
『나는 이제 세존이 계시는 곳에 가고자 한다. 너도 같이 가자. 저 도리천의 모든 하늘들도 나와 함께 부처님 계시는 곳으로 잘 갈 이다.』
반차익은 「예」하고 대답하고 유리 거문고를 가지고 제석 앞에 서서 도리천 무리들 가운데서 거문고를 울려 공양했다. 때에 제석과 도리천의 모든 하늘과 및 반차익은 법당 위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마치 역사(力士)가 팔을 펴고 굽힘과 같은 시간에 마갈타국의 북쪽 비타(毘陀) 산중에 이르렀다. 그 때 세존은 불꽃 삼매에 들어 저 비타산은 동일한 불빛이있다. 때에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서로 말했다. 「이 비타산의 동일한 불빛은 바로 여래와 모든 하늘의 힘이다」라고. 때에 석제환인은 반차익에게 말했다.
『여래 . 지진(至眞)은 매우 뵈옵기 어렵다. 그는 능히 이 한적한 곳에 내려와 잠자코 소리 없이 금수와 짝하고 계신다. 여기는 항상 여러 큰 신천(神天)이 있어 세존을 모시고 있다. 너는 앞에 가서 유리 거문고를 퉁겨 세존을 즐겁게 하라. 나는 모든 하늘과 함께 뒤를 따라 가리라.』
반차익은 분부를 받자 거문고를 가지고 먼저 부처님께 나아가 부처님에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유리 거문고를 타면서 게송으로써 노래했다.
「발타(拔陀)여, 너 아버지께 예배하노라
너 아버지는 매우 단엄하나니
너를 낳을 때의 상서로운 징조에
내 마음은 매우 즐거웠노라.
본래 조그마한 인연으로써
욕심이 마음에서 생겨
갈수록 더욱 커졌나니
아라한을 공양하는
석자(釋子)가 四선(禪)을 오로지하고
항상 한가히 있기를 즐기며
바른 뜻으로 감로(甘露)를 구하는 것처럼
나도 전념하기 또한 그러하였네.
능은(能仁)은 도의 마음을 일으켜
반드시 정각(正覺)을 성취하려 하나니
나도 이제 그녀를 구해
반드시 만나고자 또한 그렇구나.
내 마음은 염착(染着)이 생겨
사랑하고 좋아함을 버리지 않고
버리고자 하여도 버리지 못하나니
갈고리에 매인 코끼리 같구나.
더울 때 시원한 바람을 만난 듯
목 말라 찬 샘물 얻은 것처럼
열반을 취(取)하는 것처럼
물이 불을 꺼주는 것처럼
마치 병자가 좋은 의작 만나고
굶주린 자가 맛난 음식을 얻어
싫건 배 불리고 즐겨하는 것처럼
아라한이 법에서 노니는 것처럼
코끼리가 깊은 갈고리에 매였어도
즐거이 항복하지 않고
달리고 몰아쳐 제지하기 어렵고
함부로 방탕하여 그칠 줄 모르는 것처럼
마치 맑고 시원한 못에
온갖 꽃들이 물 위를 덮을 때
피로한 코끼리가 거기에 목욕하여
온 몸이 유쾌함을 얻는 것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내가 보시한 것
모든 아라한을 공양한 것
세상에 복의 갚음 있는 것을
모두 저에게 주어바치리라.
내가 죽으면 함께 죽을 것이다.
너 없이 나 혼자 살기 보다는
차라리 내 몸을 죽여 버리리
너 없이 나는 살 수 없나니.
도리천의 주인
제석이여 이제 내 원 들어 주리.
너를 예절을 갖췄다 칭찬하나니
너는 잘 이것을 생각해 살피라.」
그 때 세존은 삼매에서 일어나 반차익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반차익이여, 너는 청정한 소리로 유리 거문고에 맞추어 여래를 칭찬하는구나. 거문고 소리와 너의 목청은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슬프고 화하고 아릿다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네 거문고가 아뢰는 바는 온갖 뜻을 갖추어 있다. 욕심의 결박을 말하기도 하고 또한 범행(梵行)을 말하기도 하며 또 사문을 말하기도 하고 또 열반을 말하기도 한다.』
그 때 반차익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기억하나이다. 옛날 세존께서 울비라의 니련선물가에 있는 아유파타(阿遊波陀)의 니구율나무 밑에서 처음으로 불도를 성취하셨을 때 시한타천(尸漢陀天) 대장의 아들과 집악(執樂)천왕의 딸은 한 곳에서 살면서 다만 애욕을 구했습니다. 저는 그 때 그들의 마음이 그런 줄을 알고 곧 노래를 지어 욕심의 결박을 말하고 범행을 말하고 또 사문을 말하고 열반을 말했습니다. 그 때 그 하늘 아가씨는 제 노래를 다 듣자, 눈을 들어 웃으면서 제게 말했습니다. 「반차익이여, 나는 아직 여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일찍 도리천의 법강당 위에서 저 모든 하늘이 여래는 그러한 덕이 있고 그러한 힘이 있다고 칭찬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믿음을 가지고 여래를 친근합니다. 이제 나도 당신과 친구가 되고자 합니다」고. 세존이시여, 저는 그 때 단 한 마디 말만 하고 그 뒤에는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않았읍니다.』
때에 석제환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이 반차익은 이미 여래를 즐겁게 해 마쳤다. 나는 차라리 이제 저 사람을 생각하리라」고. 때에 제석은 곧 저 사람을 생각했다. 때에 반차익은 다시 생각했다. 「이제 저 제석천은 나를 생각한다」고. 곧 유리 거문고를 가지고 제석에게 갔다. 제석은 그에게 말했다.
「너는 내 이름과 및 도리천의 뜻을 대신해 세존의 기거가 평안하시고 유보(遊步)가 굳건하신가고 문안 드려라.」
때에 반차익은 제석의 분부를 받고 곧 세존께 나아가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세존께 여쭈었다.
『석제환인과 및 도리천의 모든 하늘은 일부러 나를 보내어 세존에게 「기거가 평안하시고 유보가 굳건하신가」고 문안드리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제석과 및 도리천의 수명이 연장하고 쾌락해 근심이 없게 하리라. 무슨 까닭인가. 모든 하늘과 세상 사람들과 및 아수륜의 모든 중생들은 다 수명과 안락해 근심이 없는 것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제석은 다시 가만히 생각했다. 「우리들은 마땅히 가서 세존을 예배하고 뵈옵자」고. 곧 도리천의 모든 하늘과 함께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로 그 발에 예배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다. 때에 제석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는 이제 세존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아야 할까요. 가까이 앉아야 할까요.』
『너 하늘 무리가 아무리 많더라도 내게 가까이 앉아라.』
때에 세존이 계시는 인타라굴은 저절로 넓어져 걸림이 없었다. 그 때에 제석은 도리천의 모든 하늘과 및 반차익과 함께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제석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느 때 부처님은 사위국의 어떤 바라문의 집에 계셨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불꽃 삼매에 들으셨습니다. 저는 때에 조그만한 인연으로써 천 바퀴살이 있는 보배수레를 타고 비루륵 천왕에게 갈 때 공중을 지나가다가 어떤 하늘아가씨를 보았습니다. 그는 깍지손으로 세존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는 곧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세존이 삼매에서 일어나시거든 너는 마땅히 내 이름으로 세존의 기거가 평안하시고 유보가 굳건하십니까고 문안드리라.」 그녀는 그 뒤에 끝내 저를 위하여 제 마음을 전달했나이까. 세존은 능히 이 일을 기억하시나이까.』
『기억하고 말고. 그녀는 너를 대신해 내게 문안했다. 나는 삼매에서 일어나 네 수레 소리를 들었다.』
제석은 부처님께 여쭈었다.
『옛날 제가 조그마한 인연으로 모든 도리천과 함께 법당에 모여 있을 때 저 모든 옛 하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면 모든 하늘 무리는 붇게 되고 아수라의 무리는 줄게 되리라」고. 이제 저는 직접 세존을 뵈옵고 직접 뵈와 스스로 알고 몸소 스스로 진리를 깨쳤습니다. 여래 . 지진은 세상에 나타나 모든 하늘 무리를 붇게 하고 아수륜의 무리를 줄게 했습니다. 이에 구이석(瞿夷釋)이라는 여자가 있어 세존 앞에서 범행을 깨끗이 닦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 도리천의 궁전에 태어나 곧 제 아들이 되었습니다. 도리천의 모든 하늘은 다 칭찬해 말했습니다. 「구이 큰 하늘아들은 큰 공덕이 있고 큰 위력이 있다」고. 다시 다른 세 비구가 있어 세존 앞에서 범행을 깨끗이 닦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나자 낮게 건달바신(乾沓和神) 가운데에 태어나 밤낮으로 제게 와서 시중을 들었습니다. 구이는 그것을 보고 게송으로써 놀려 주었습니다.
「네가 부처님의 제자였을제
나는 본래 집에 있어
옷과 밥으로 공양 올리고
예배하며 정성껏 공경했다.
너희들은 어떤 사람이라 이름하건대
몸소 부처님의 가르침 받고도
깨끗한 눈의 말씀하시는 것
너는 그것을 살피지 않았다.
나는 본래 너를 예배해 공경하고
부처님 좇아 훌륭한 법을 듣고
저 三十三천에 이내 태어나
제석을 위해 그 아들 되었네.
너희들은 어째서 보지 않는가
내가 스스로 가진 바 공덕을.
나는 본디는 여자의 몸이지만
이제는 제석의 아들 되었네.
너희들은 본래는 우리 다 함께
다 같이 범행을 닦았건마는
지금은 홀로 낮고 천하게 있어
우리들의 시중을 들고 있구나.
본래 행한 더러운 행으로
그 때문에 이제 이 갚음 받나니
홀로 낮고 천한 곳에 처해 있으며
우리들의 시중을 들고 있구나.
이 깨끗하지 못한 곳에 태어나
남의 놀림을 받고 있나니
내 이 말 듣거든 마땅히 싫어하라
이 곳은 싫어하고 걱정할 곳이니라.
지금부턴 마땅히 부지런히 힘써
다시는 남의 부림 되지 말거라.
두 사람은 부지런히 힘써 정진해
여래의 법을 깊이 생각코
저 애닯게 집착하는 것 버려
욕심의 부정한 행을 관찰하여라
욕심의 결박은 참되지 않아
온 세상을 속이고 혹하게 한다.
코끼리가 굴레를 떠나는 것처럼
도리천을 뛰어넘어
제석과 및 도리천의
법강당 위에서 모였을 때
저는 자기의 용맹의 힘으로써
도리천을 뛰어넘었다.
제석은 일찍 없었던 일 찬탄하고
모든 하늘도 또한 찾아보고는
이것은 저 석가의 아들
도리천을 뛰어넘어
욕심의 결박을 걱정하고 싫어했다고.
구이는 이제 이렇게 말하나니
마갈타 나라에 부처가 있어
이름을 석가모니라 한다.
저이들 본래는 뜻 잃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