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도 삶의 이야기가 될까 / 몇 분의 글을 읽고
김 난 석
가족나들이를 마치고 저녁 무렵 댄스동호회 모임에 들려봤다.
얼마 전 탁구동호회 창단 1주년 기념일에
댄스동호회 회장과 총무 두 분이 모두 방을 비워놓고 왔다기에
하도 고마워서 답방을 겸한 나들이를 한 셈이었다.
가뭄을 풀어주는 듯 비가 오락가락해 바짓가랑이가 젖고 추적거렸지만
호기심 가득 찬 발걸음은 그에 아랑곳할 것도 없이 무도장으로 내달았다.
플로어를 지나 회원들이 모여 있는 부츠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눈빛들이 선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동호회나 탁구동호회 모임에서
이미 마주친 분들이 대부분인 때문이었다.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버이를 사랑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이는 없다.
자라면서도 어머니 아버지요 커서도 어머니 아버지다.
자식들을 다 여의고 나서 허리가 한참 휘어진 뒤에도
어머니요 아버지를 부르고 그리워하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 우리들의 어머니요 아버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여기에 성성하게 모여든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내 어버이가 있음을 뜻하며
그 어버이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거룩한 존재다.
내 어버이만 그런 게 아니라 남의 어버이도 이치는 마찬가지다.
비록 검버섯에 주름살을 훈장처럼 새기고
손등은 솥뚜껑처럼 무뎌졌지만
우린 그런 얼굴과 손을 그리워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그들은 누구에게 의지할 것도 없이
서로 어울려 외로움을 달래면서
그들의 어머니요 아버지를 떠올려보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고유의 춤은 허공을 향해 휘젓는 손끝에서 풍기는
아스라한 여운이 일품이다.
하지만 서양 춤인 댄스는 뭐니 뭐니 해도 손맛이 제일이라 한다.
잡아당기는 듯 밀어내고 밀어내는 듯 잡아당기되
가슴 사이로는 열정과 서늘한 바람이 함께 통하도록 길을 내놓는
이체(二體) 이심(二心)의 고추 섬 속에서
손끝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게 그것일 테다.
뒤집어 말하면 손맛은 역시 댄스라고 하는 이치다.
홀로 추면서 손끝으로 허공을 한껏 휘저어보기도 하고
둘이 추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손끝으로 느껴보는 것이라면
손으로 하는 재미가 그보다 더 좋기도 쉽지 않을 성 싶다.
서툰 솜씨로 이손 저손 잡아보면서 고왔을 시절도 상상해보고
따뜻했을 시절도 상상해보다가,
때로는 그 손으로 하 많은 눈물도 훔쳐냈을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안내하고 돌아서니
비에 젖은 바짓가랑이도 어느새 다 말라버렸다.
그러하매 누가 저들의 모습에서 꽃만 보려 하는가.
저들의 뒤에 숨어있을 사랑과 헌신의 허공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자고로 모임 이라함은 배려와 사랑으로 맞이 해야 해요
꼭 누구를 지칭해서 하는말은 아니지만 모름지기 선배와 후배 初人과 高秀의 차이는 나게 마련입니다
항상 모임이라는 것이 잘 어울리고 부담 없이 즐기자는 뜻이 다분이 있고요
운동도 겸해서 ~알겠지요
제가 당한 일 서울에서 어느 고수분에게 손 내밀었다가 바로 딱지를
감기몸살이 너무 심해 안된다고
근디요 살짝 돌아서 있다 홀 중앙을 바라보니 그 고수분이 다른사람과 지루박에 열중이드라고요
참나~그것도 제가사는 곳에서 못잡아본 손이 아쉬워 서울로 마지막 큰모임에 갔는데요 벤찌
지금 생각해도 많이 서운합니다~이것도 지나가리오~
그런데 선물 마지막 추첨 시간대에 한무제님 이~큰오빠 부르는 소리에~
여자 댄스복 당첨~저의 파트너 몸에 꼭 맞춤 이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불가에선 염화미소라는 말이 전해온다.
영취산에서 석가가 설법을 하던 날,
그는 설법 대신에 들꽃 한 송이를 쳐들어 보였다한다.
많은 청중들은 석가의 손에 든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의아해 했지만
청중 가운데 제자 가섭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니
석가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한다.
염화미소는 이렇게 석가와 가섭이 미소의 대화를 한 것을 이름이요,
이렇게 해서 석가와 가섭 사이에
진리를 소통하는 이심전심이 이루어진 셈이지만,
그 둘 외에 석가가 꽃을 든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다석(多夕) 유영모는 이 수수께끼 같은 불립문자의 뜻을 이렇게 설파한다.
“ 여기 이 꽃은 꽃을 보라는 게 아니라 꽃 밖의 허공을 보라는 것이다.
꽃과 허공이 마주치는 아름다운 곡선을 보고도
꽃만 보고 허공은 못 보았다고 한다.
꽃 테두리 밖인 허공에는 눈길조차 주려하지 않는다.
꽃을 있게 하는 건 허공이다.
꽃이 있는 건 허공을 드러내 뵈자는 것이다.
요즘에는 허공이야말로 가장 다정하게 느껴진다.
허공을 모르고 하는 건 모두가 거짓이다.
허공은 참이다. 절대자 하느님이다.
무한대한 허공이나 마음속의 얼은 결국 하나이다.”
(‘다석 어록’ 중에서)
흔히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려 한다고 나무란다.
총명함이 그럴진대 어찌 달 뒤의 허공을 볼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남성에겐 여성이 꽃이요, 어제는 꽃구경을 많이도 했으니
이번 보름날엔 한적한 교외로 나가
누가 가리키는 걸 따라 할 것도 없이
잠시라도 꽃 뒤의 먼 허공을 바라보아야겠다.
(지난날의 단상)
지존님의 글을 읽어보니 댄스방에 문이 다시 열렸다고 했다.
그래서 댄스방에 들어가 성황을 바란다고 댓글을 다니
소리방장이 한번 들리라 했다.
왜 하필 한번일까? 두 번 들리면 안 될까?
하지만 반가워서 인사치레로 하는 말이려니 서운해 하진 말자.
박민순님은 모든 게 다 때가 있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밥 먹을 때, 공부할 때, 일할 때.
심지어는 놀 때, 오락잡기도 할 때가 따로 있다.
시기를 놓치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렇다고 남들이 하는 걸 다 따라 해야 할까?
그렇진 않다. 골라서 하면 된다.
늘 평화님은 아직은 현장이 좋다고 썼다.
무료하게 지낼 것 없이 무언가 일을 하고 재능을 기부하고
돈도 벌면서 지내자는 뜻으로 읽혔다.
그냥 노는 것보다는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일 터요,
누구나 그렇게 할 순 없다.
바다4님은 회사에 다니면서 부업 개념으로 상담을 하고 있는데,
일이 많아 그만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더니
잡지 않으니까 섭섭하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했다고 썼다.
어찌 보면 행복한 푸념일 수도 있겠다.
유현덕님은 외로우면 아프냐고 자문하면서,
고독을 친구삼아 혼자서도 즐길 줄 아는 것도 삶의 기슬이라고 썼다.
공감이 간다.
유치원에서 “혼자서도 잘 놀아요, 둘이 서도 잘 놀아요.” 라고
노래를 가르치는 걸 보면 다른 말 할 것 없이 그게 정답인 것 같다.
그럼에도 카페에 몸답고 있는 이상
카페에 차려진 다양한 메뉴를 골고루 찾아다니며 즐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것도 다 때가 있는 법이니
머뭇거릴 것 없이 기웃거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 중 하나로 댄스동호회에 들어가보는 것도 좋으리라.
첫댓글 몇년전
햄릿 회장님 계실적에
사즐모 송년모임에
처음 인사드린
큰오빠. 방장님
그리 낮설지않았기에
친근감 있었네요
짝꿍선물이된
드레스 당첨 기분 최고이실듯 혀요
처음뵙던 모습에
배려하는 마음
저에게 택시비 까지주시고
마음을 보고
배려해주는 아름다운 마음
감동 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아~ 우리 이쁘니 그댄 쏘피아님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