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향산(妙香山)
조 흥 제
6‧25 전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국어교과서에 ‘동룡굴’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엄청 멋있었다고 생각 된다. 동룡굴이 평안도 묘향산에 있다는 걸 알고 어디서든지 묘향산에 대한 것이면 읽었다. 그러다 92년 『月刊 山』에 게재된 장문의 묘향산을 읽었다.
묘향산은 우리나라 5대 명산 중에 하나다.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 구월산(구월산 대신 설악산을 넣어야 맞는다)을 5대 명산으로 일컬어 왔다.
묘향산은 웅장하고 기묘하게 생긴 뭇 봉우리들과 이름난 바위들, 아찔한 벼랑과 절벽들, 거기에 걸린 수많은 폭포와 계곡의 맑은 물, 울창한 수림과 그윽한 꽃향기, 가을철의 눈부신 단풍, 여기에 물소리와 각가지 새 소리가 한데 어울려 선계(仙界)를 방불케 한다.
묘향산은 행정구역상으로 평안북도 향산군과 자강도 회천시, 평안남도 영원군 경계상에 위치하고 있다. 낭림산맥 줄기에서 갈라져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비로봉(1909)을 주봉으로 하고 그 주변의 여러 산봉우리들로 이루어졌다. 동서와 남북의 길이는 각각 28㎞이고 둘레는 128㎞이며 넓이는 375㎢에 달한다. 이 산은 본래 연주 고을에 속한 산이라는 뜻에서 ‘연주산’이라고도 불렀고, 바위들이 유달리 희고 정갈하다는 의미에서 ‘태백산’이라고도 불리웠는데 11세기부터 묘향산으로 고정되었다. 이 산을 묘향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산세가 기묘하고 수려할 뿐 아니라 온갖 나무들, 특히 누운 향나무가 많아 사철 그윽한 향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묘향산은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내향산, 외향산, 구향산으로 구분한다.
내향산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한 층암연봉들과 남쪽의 향산천을 끼고 앉은 깊은 계곡지대를 말한다. 묘향산의 아름다운 절경들은 대부분 내향산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곳은 바로 상원골이다. 묘향산 등산의 기점이 되는 동천을 거쳐 상원암을 지나 법왕봉까지 오르는 골짜기인 상원골에는 금강폭포, 대하폭포, 산주폭포, 용연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들이 산재해 있다. 푸른 못을 이룬 금강폭포를 지나 물보라가 휘날리는 대하폭포를 넘어서면 이 골짜기에서 제일 아름다운 인호대에 다다르게 된다. 상원골 절벽 위에 있는 상원암이 바로 코앞에 바라다 보이는 인호대에 오르면 거대한 용연폭포와 산주폭포가 발아래 요란한 물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위를 보면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 60m 높이의 천신폭포가 있다. 인호대에는 이름 그대로 호랑이에 얽힌 전설이 깃들어 있다. 옛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총각이 있었다. 어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었는데 의원의 말이 백년 묵은 산삼을 먹어야 낫는다고 했다. 그 총각은 몇 달 동안 산삼을 찾아 헤매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에 어느 노인이 나타나 법왕봉 아래 상원골로 가라고 일러 주었다. 꿈을 깬 총각은 눈길을 헤치며 겨우 상원골에 다달았는데 절벽이 앞을 막아 더 갈 수 없었다. 그때 호랑이가 눈길의 벼랑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리로 올라가 무사히 산삼을 구해 어머니를 살렸다는 전설이 있다. 인호대 북서쪽에는 적유령산맥의 산봉우리들이, 동쪽으로는 낭림산맥의 높은 봉우리들이 안개에 젖어 가슴으로 다가온다. 4㎞ 정도 오르면 금강산 만물상을 연상시키는 1391m의 법왕봉에 다다른다. 이 봉우리에 서서 아래를 보면 약산 등대를 감도는 구룡강과 청천강이 굽이굽이 서해로 흘러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상원골을 지나 향산천을 따라 오르면 문수골 어귀에 이르는데 이곳에는 위장병에 특효가 있다는 약수가 있다. 약수터를 지나면 폭포가 제일 많은 만폭동이 나타나는데 상원골 다음으로 경치가 좋은 곳이다. 묘향산에는 모두 30여개의 폭포가 있다. 폭포는 각양각색이다. 곧바로 떨어지는 폭포가 있는가 하면 바위 등판을 타고 흐르는 폭포들이 있고, 맑은 물이 흩뿌려지는 폭포, 미끄러지다가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폭포도 있다. 크고 아름다운 폭포들은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용연폭포(높이 84m, 길이 105m)와 물줄기가 9번 꺾여 흘러내리는 9층 폭포(높이 99.2m, 길이 249m), 곧바로 떨어지는 비선폭포가 있다. 만폭동의 유선폭포는 선녀들이 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8선녀가 물놀이 할 때 사자가 이들을 해치려 하여 8형제 총각들이 구해주어 옥황상제의 허락을 얻어 만폭동에서 짝을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두 가닥의 물줄기가 나란히 떨어지는 형제폭포, 무등폭포, 은선폭포도 시원한 물줄기로 자태를 뽐낸다. 묘향산의 폭포들은 이처럼 기묘한 바위들을 에돌아 옥같이 흰 돌과 흰 모래 위로 구슬이 구르듯 흘러내리기도 하고, 흰 명주 필을 드리운 듯 은빛 날개를 날리며 쏟아지기도 하며 사자가 포효하듯 웅장한 물소리로 위엄을 자랑하기도 한다.
외향산은 내향산의 남쪽 연봉들인 형제봉과 호항령의 남쪽지대를 일컫는다. 여기에는 석회암이 넓게 분포되어 있으며 그것이 녹아서 생긴 석회 동굴이 많다. 이 가운데 지하금강으로 불리는 동룡굴과 백령대굴은 석회 동굴의 진수를 보여 주는 명승들이다. 동룡굴은 길이가 1.7㎞에 달하며, 백령대굴은 6㎞의 석회암 자연동굴로서 천태만상의 종유석과 석순 등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구향산은 비로봉을 중심으로 한 중앙연봉의 북쪽 일대를 말한다. 이곳은 산세가 험하고 깎아지른 듯한 벼랑들이 첩첩이 싸여 아름답고 웅장한 폭포들이 즐비하다. 심산계곡인 묘향산은 기후가 온화하고 강우량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연평균 기온은 8.3도, 1월 평균 기온은 영하 10.5도, 한 여름인 8월의 평균 기온은 23.7도이다. 연 평균 강수량은 1200~1300㎜로서 여름철인 7~8월에 집중적으로 내린다.
이처럼 기후가 식물이 생육에 유리하고 산이 높을 뿐 아니라 오랜 기간 기후가 큰 변동이 없어 수백 만 년 전부터 살아온 식물들이 대부분 보존되어 왔으므로 식물 종수가 많고 풍부하다. 700여 종의 식물이 있는데 그 가운데 400여 종은 초본 식물이고, 200여종은 목본 식물이다. 이렇게 식물상이 다양하고 철 따라 다른 꽃들이 피고 숲들이 모습을 달리 해 사철 푸른 풍치를 볼 수 있다. 봄이면 두봉화, 진달래, 벚꽃을 비롯한 갖가지 꽃들이 피고, 새 싹이 움터 온 산이 연한 풀빛으로 물들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 속에 목단꽃, 넓은 잎 정향나무 꽃이 피어 골짜기마다 꽃향기가 그윽하다. 가을이면 울긋불긋한 단풍이 들어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고, 겨울이면 나무들에 희 눈꽃이 피어 그야말로 장관이다. 묘향산의 희귀식물인 두봉화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관목으로 매녀 4~5월 경 보랏빛 또는 붉은 색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7,8 월경이면 불영대 앞 500㎡ 지역에 꽃바다를 이룬다. 또 보현사 앞마당에 산뽕나무는 수령이 300년 이상된 것으로 북한에서 제일 크고 오래 된 것이다. 또 높이가 30m, 밑둥 둘레 3m인 수령 수백년 된 들메나무, 600년 이상 자란 소나무 등이 있다.
산림 속에는 곰, 산양, 사향노루, 오소리, 너구리, 멧돼지, 토끼 등 산짐승 32 종을 비롯해 모두 100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다. 조류로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조를 비롯해 노랑할미새, 바위종다리, 박새, 메종다리, 붉은 방울새, 꾀꼬리, 딱따구리, 뻐꾸기, 꿩, 부엉이 등 200 여 종이 둥지를 틀고 산다. 묘향천을 비롯한 계곡 냇물에서는 투명한 은어, 꺾지, 금강모치, 모래무치, 새미, 버들치, 뚝종개, 하늘종개 등 20여 종의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 묘향산의 희귀 동물로는 날다람쥐가 대표적인데 한반도 특산 아종으로 몸에는 부드럽고 짙은 회색의 털이 돋아 있으며 목에서 가슴까지는 흰색이다. 날개막을 이용하여 날아다니기도 하는데 보통 30~50m, 낮은 지대를 날 때는 80m까지 날 수 있다. 꼬리는 방향타의 역할을 한다. 청조는 독특한 울음 소리로 유명한데 매년 5월 중순 경에 날아와 10월까지 주로 조계암 일대에서 살며 딱정벌레, 청벌레, 풍뎅이 등 해충을 잡아먹고 산다.
묘향산에는 여러 가지 유적과 유물들도 많다. 묘향산에도 사찰이 많이 있었으나 현재는 고려 때 창건된 보현사를 비롯해 상원암, 능인암, 계조암, 수충사 등 20여 개의 크고 작은 사찰과 수십개의 절터, 석탑 등이 남아있다, 가장 규모가 큰 보현사는 1042년(고려 정종)에 240여 칸의 큰 절을 짓고 보현사로 이름을 지었다. 6‧25 당시 많은 건물이 소실되고 현재는 새로 복원한 대웅전과 만세루를 비롯하여 여러 종의 건물과 석탑들이 남아 있다. 보현사는 첫문인 조계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남쪽 중심축을 따라 해탈문, 천왕문이 있고, 9층탑이 서있으며 뒤에 만세루가 있다. 만세루 뒤에는 13 층 탑이 있고, 그 뒤에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은 앞면이 5칸, 옆면이 3칸인 합작 지붕을 이은 단층으로 단청미가 우아하며 만세루는 2층으로 된 다락 건물로 앞면이 5칸, 옆면이 3칸이다. 4각9층 석탑은 높이가 6m, 기단 폭이 2.25m로1044년 조성된 것이다. 이 석탑은 바위 위에 두 단의 기단을 쌓고 그 위에 9층의 몸체를 쌓아 올린 연꽃대형 4각 돌탑으로서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대웅전 앞뜰에 있는 8각13층 석탑은 기단 한 변의 길이가 1.2m, 탑의 높이는 8.58m로서 고려인들의 우수한 석조건축술을 보여주고 있다. 보현사 경내에는 묘향산 역사박물관이 있는데 이곳은 대장경 목판 1629매, 8만대장경 영인본 전질과 고려와 조선시대 인쇄 목판 3000여점, 12~13세기 때의 고려자기, 고려 청기와를 비롯한 미술품과 공예품들이 보존되어 있다. 상원동 계곡 절벽 위에 위치한 상원암은 본전과 칠성각, 수각, 산신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현재의 건물은 1580년에 재건축한 것이다. 현판에 쓰인 ‘상원암’이란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앞뜰에는 오래 되 보리수 한 그루가 서 있다.
초등학생 때 감명 깊게 읽었던 동룡굴에 대한 것이 자세하지 않아 좀 김이 빠지지만 이 가운데 ‘지하금강으로 불리는 동룡굴과 백령대굴은 석회 동굴의 진수를 보여 주는 명승들이다. 동룡굴은 길이가 1.7㎞에 달하고, 백령대굴은 6㎞의 석회암 자연동굴로서 천태만상의 종유석과 석순 등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는 대목에 눈이 간다. 동룡굴에 대한 기록은 어디 가면 찾을 수 있을까? 서초동 국립도서관에 가면 있을까? ‘연평도 조기잡이’가 멋있게 내 머리 속에 깊이 박혀있어 오래 전에 가 보았더니 사변 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는 몇 권 없어 찾지 못했다. 동룡굴에 대한 것은 거기 가면 찾을 수 있으려나. 마음은 벌써 국립도서관 서가를 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