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racks written, produced by hyunjhin baik 백현진
recorded by junSeok bang 방준석 & hyunjhin baik 백현진 at kimpo studio
mixed by jaehyuck lee 이재혁 & byoungjun 병준 at j's Studio
mastered by byoungjun hwang 황병준 at sound mirror
2 학수고대했던 날 the day i long-awaited
piano_jaeil jung 정재일
electric guitar_junseok bang 방준석
chorus_byoungjun 병준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사일만에 집에 돌아온 여자
끝내 이유를 묻지 못한 남자에 사연들을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돼지 기름이 흰 소매에 튀고
젓가락 한벌이 낙하를 할 때
니가 부끄럽게 고백한 말들
내가 사려깊게 대답한 말들이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막창 2인분에 맥주 13병
고기 냄새가 우릴 감싸고
형광등은 우릴 밝게 비추고
기름에 얼룩진 시간은 네시 반
비틀대고 부축을 하고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약속하고 다짐을 하고 끌어안고 섹스를 하고
오해하고 화해를 하고 이해하고 인정을 하고
헷갈리고 명쾌해지고 서로의 눈을 바라다 보는
그 시간을 또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네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에
너무나도 달콤했었던
너의 작은 속삼임과 몸짓
운명처럼 만났던 얼굴이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1집 Time Of Reflection
어어부 밴드의 보컬리스트 마부가 돌아왔다.! 백현진의 첫 솔로 앨범 [반성의 시간] 김윤아, 달파란, 신윤철, 방준석, 조윤석 박현준, 성기완, 정재일등 국내 최고의 뮤지션들과 함께 한 충격적 복귀작!!
내게는 겨울 오후에 맨발로 춥게 들을 때 너무 좋았던 깨끗하고 환한 좋은 음악들이다. -홍상수(영화감독)
백현진과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를 하는 장영규는, 한국에서 내가 주저없이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단 두 명 중에 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누구냐고요? 백현진입니다.-박찬욱(영화감독)
백현진은 슬픈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백현진은 아직도 세상에 항의하고 있고 그의 노래는 더 슬퍼졌다.
-김지운(영화감독)
※ 이 음반은 '오늘의 뮤직'의 2008년 6월 1주 '이주의 국내앨범' 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선정위원들의 평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단]
서정민- ★★★★ 백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극사실주의 일기장 같은 앨범. 바로 울림이 큰 이유.
이동연- ★★★★ 꿀꿀하고 무념무상의 지루한 곡들의 반복, 그러나 시간의 성찰이 느껴진다.
박은석- ★★★★☆ 그 파격적인 어법은 이 소박한 음악 속에서도 계속된다. 혁명적인 슬픔이다.
김학선- ★★★★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어느 불편한(했던) 이야기꾼의 기묘한 연애소설집.
신정수- ★★★★ 그의 '반성의 시간'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는 "시간의 반성"을 하게 한다.
[오늘의 뮤직 네티즌 선정위원단]
이혜진- ★★★★ 여느 소설보다 오롯한 가사가 어느 20대에게도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한다.
김기태- ★★★ 대중이 느림의 미학 속 가사에 귀기울일지 의문이나 보컬의 감성은 대단하다.
천학주- ★★★☆ 일기같은 가사와 Antony & The Johnsons를 떠오르게 하는 목소리가 어울릴듯 말듯.
이병주- ★★★☆ 어어부 시절만큼의 충격은 없지만, 청자의 가슴에 울림을 선사하는 점은 여전하다.
박재인- ★★★★ 기억 한쪽을 자극하는 사랑과 슬픔에 관한 가사, 모든곡을 관통하는 그만의 색깔.
<선정의 변> 6월 1주, 이 주의 국내 앨범 : 백현진의 [Time of Reflection]
백현진은 천편일률이 지배하는 우리 대중음악계의 현실속에 돌출한 낯선 개성이다. 무의식 중에라도 마주하기를 꺼리는 일상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극사실주의적 시각으로 묘사해낸 이 앨범은 도식적인 양식으로는 결코 구분할 수 없는 독자적인 아우라를 내뿜고 있다. 혁명을 진부함으로 포장하는 시대에, 그의 음악은 진부함을 혁명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박은석>
백현진의 가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음과 동시에, 마치 시나 수필집과 같은 문학 작품의 한 페이지를 발췌해온 듯한 표현의 미학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렇게 자신의 20대를 돌아보며 울부짖으며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70년대 한국 음악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포크 음악의 화려한 재현과도 같다. 두꺼운 화장과 화려한 의상에만 치중하는 근래 대중음악들 사이에서 알몸을 온전히 드러내놓은 그의 울림은 더욱 큰 잔향을 남긴다. <네티즌 오늘의 뮤직 선정위원 이병주>
<뮤지션 소개> 전방위 창작자이자 예술가 '백현진'
백현진은 하나의 카테고리에 묶어둘 수 없는 인물이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이자 아라리오 갤러리 소속의 미술가이며 현재는 영화 연출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황신혜밴드의 김형태가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사용했던 '무규칙이종예술가'의 범주와도 다른 느낌이다. 그저 전방위 창작자이며 예술가라고 할 밖에 도리가 없다.
장영규와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를 결성한 백현진은 1997년작 [손익분기점]을 통해 데뷔했다. 이후 두 장의 정규앨범 [개, 럭키스타](1987)와 [21세기 뉴 헤어](2000)를 더 냈는데, 보다 주목할 것은 어어부 프로젝트의 작품들이 음악계 외부에서 수용된 측면이다. 그들의 음악은 장선우, 김지운, 박찬욱, 이무영, 홍상수 등의 영화와 피나 바우쉬의 현대무용극 등에 사용됨으로써 보다 큰 반향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와 같은 교류관계는 6월에 크랭크인에 들어갈 영화 연출 데뷔작 <끝>에서도 드러나는데, 박해일, 강혜정, 황정민, 문소리, 류승범, 엄지원의 앙상블 캐스트가 가세한다. 뮤지션으로서 솔로 데뷔작인 이 앨범 [Time of Reflection]에는 또한 김윤아, 달파란, 신윤철, 방준석, 조윤석 박현준, 성기완, 정재일 등 쟁쟁한 이름들이 가세했다.
<전문가 리뷰> 진부한 일상을 다루는 혁명적 태도
<이 리뷰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박은석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마따나 "그 어떤 인생에도 잃어버린 하루는 있다." 다만 그것을 반추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차이라는게 대단히 미묘하면서도 동시에 엄청나게 현격하여서, 그것을 대면하는 방식은 세상 사람의 머릿수만큼이나 만별(萬別)하기 마련이다. 앨범 [Time of Reflection]은 지나쳐온 20대를 마주하는 백현진의 방식이다. 내밀하게 써 내려간 일기장의 구석진 공간에나 존재할 법한 단어들로 엮어낸, 그 많았던 '잃어버린 하루'들을 들추는 '반성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타인이 이 앨범을 온전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각자의 시각으로 훔쳐볼 뿐이다. 그리고는 자문하게 된다. 일상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얼마나 순수해질 수 있을까? 과거를 돌아보는 시각의 문제에 있어서 나는 또한, 얼마나 솔직해질 수 있을까?
이 앨범은 인생의 부조리와 불합리가 어떤 이의 삶에 남긴 자취를 기술한다. 백현진에게 그것은 이미 어어부 프로젝트 시절부터 다뤄온 익숙한 주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타인을 향했던 시각이 이제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슬픔, 절망감, 부끄러움, 후회스러움으로 점철된 과거를, 너무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클로즈업에 담아냈다. 변화된 사운드 프로덕션도 그 사실을 반영한다. 추억의 배경에 머무는 아련한 소리. 부조리를 부조리하게 다뤘던 방식은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부조리를 타자화하는 방식으로 대체된 것이다. 그 지점에서 장영규의 부재라는 조건은 백현진의 부각이라는 결과로 상승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도 같이 생각난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걸 글로 쓸 필요는 없다.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걸 그림으로 그릴 필요도 없다." 백현진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는 바도 마찬가지다.
'무릎베개', '학수고대했던 날',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도입부의 (기묘한) '사랑노래 삼부작'은 이 앨범의 인상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추레하게 빛이 바랜 과거의 연정을 돌아보는 백현진의 태도는 덤덤한 관찰자의 그것이다. 거기에는 자기연민이나 자아부정 따위의 감상적 행태가 자리할 여지가 없다.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 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말할 지언정,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지도 않는다. 그 속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백현진만의 특별한 목소리는 냉정한 절제를 통해 뜨겁게 폭발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두 곡 - '어른용 사탕'과 '아구탕에서 나온 네 명'에서 그 목소리는 은은한 광채를 방사하는 신윤철(서울전자음악단)의 조력을 통해 상승작용을 이룬다.
이 앨범을 한 마디로 요약하려는 시도는 부질없는 일이다. "97년 초여름의 빛나던 시간"과 "막장 2인분에 맥주 13병"을 마신 새벽과, "서서울호텔 607호실"을 뒤덮은 밤에 있었던 일들은 한 두름에 꿰일 수 없는 일상의 파편들이다. 혁명적인 것은 그 진부한 일상을 포괄하는 태도에 있다. 지나간 시간을 마주하는 이 앨범의 방식은, 개인사의 키치적 배설이 마치 쿨함의 조건이라도 되는냥 하는 시대인지라 더욱 크게 울리고 보다 길게 여운을 남기는 것일 터다.
<네티즌 리뷰> 진솔하게 읊어가는 그의 과거 "반성의 시간"
<이 리뷰는 네티즌 오늘의 뮤직 선정위원 이병주님께서 작성해 주셨습니다.>
백현진은 미술 작가로서 가진 개인전과 어어부 프로젝트를 통한 밴드 활동 및 영화 음악 참여, 내년에 상영될 그의 영화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다양한 곳에서 접하게 되는 반가운 이름이다. 물론 아무래도 그의 이름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대중이 더 많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가 1997년 대외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해 장영규, 원일과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통해 발매했던 첫 앨범 [손익분기점]은 당시 그들의 음악을 접했던 이들에게 하나의 문화적인 충격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매니아 층으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아온 것과는 상반되게, 대중적인 인지도가 전무했던 어어부 프로젝트가 그나마 대중에게 소개가 된 계기는 '반칙왕'과 '복수는 나의 것' 등의 영화에 그들의 음악이 쓰이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렇게 영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음악을 경험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방가르드와 그로테스크라는 듣기만 해도 거리감이 느껴지고 와닿지 않는 단어들로 표현되어온 그들의 음악이 대중들 사이에 뿌리내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어부의 보컬 백현진의 이번 첫 솔로 앨범은 장르적으로 정체불명에 가까웠던 어어부 프로젝트의 앨범들과 달리 파격적인 부분은 많이 줄었고, 전체적으로 포크라는 틀을 가지고 설명이 가능하다. 비록 포크 음악에 대한 정의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긴 하지만, 그의 음악을 통해 70년대에 꽃을 피웠던 주옥같은 포크 음악들을 새삼 떠올려보게 되는 사람이 분명 많을 것이다. 그의 앨범을 일단 들어보게 되면 기타 위주의 간소한 악기 편성에 인생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가사가 먼저 귀에 들어온다. 모든 곡이 빠짐없이 피아노와 기타를 중심으로 짜여 있으며, 그 선율도 결코 화려하거나 기교에 차있지 않고, 모두 백현진의 보컬을 충실하게 뒷받침해주는 정도까지로 절제되어 있다. 소수의 기타 악기들 역시 약간의 조미료와 같은 역할을 해줄 뿐이다. 그의 음악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일체의 화학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담백한 요리와 같아 단 번에 혀를 자극하는 맛은 없지만, 아무리 먹어도 물리지 않는 그러한 맛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달파란이 일렉트로니카 비트를 선사해 곡 말미에 삽입한 '여름바람'과 같은 예외적인 트랙이 있는데, 어떻게 보면 곡에서 사족과 같이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지만,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분위기의 앨범 안에서 색다른 느낌을 연출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최소한의 틀을 마련해주는데 머물고 있는 반주 위에서 결국 앨범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그의 가사와 보컬이다. 선명하거나 귀에 각인되는 멜로디들이 많지 않고, 곡들도 대부분 조금씩 늘어지는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행여나 그런데서 생겨날 수 있는 지루함을 훌륭하게 커버해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앨범의 가사들은 굉장히 일상적인 언어와 다양한 비유를 통해 이루어져 있는 것이 마치 일기장이나 한 편의 시를 그대로 드러내 가져온듯한 느낌을 전달해준다. 그러한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자면 가사가 담고 있는 서정성이 청자에게 감정적으로 크게 어필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특정 장소나 자신의 특정 기억,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적인 가사들이 청자가 곡에 감정이입하거나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어 개인에 따라 크게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공감의 여부를 떠나서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었던" 날이지만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 난다"는 그의 능청과 재치는 누구에게라도 다가갈 수 있는 강점이기도 하다. 또한 이미 예전부터 백현진의 노래 실력은 정평이 나 있었는데, 이 앨범이 녹음된 2003년에서 2005년까지의 시간을 감안하건데 그의 목소리는 30대에 들어서며 한층 더 무르익어 있다. 다른 여타 악기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보컬 역시 현란한 기교는 없지만, 울부짖는 듯, 내뱉는 듯 가사 내용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그야말로 완벽한 감정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귀를 잡아끄는 화려함과 강렬한 멜로디로 무장한 채 쉽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많은 대중가요들 사이에서 잔잔하고 느릿느릿하게 영혼 속으로 다가오는 그의 음악이 대중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많이 들려지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지 모른다. 또한 그가 좀 더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는 것도 소용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의 음악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흘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난 청춘을 돌아볼 때에 낡은 추억들과 함께 그의 음악이 떠오르며 마음속에 강한 울림을 남기게 될 것이란 점이다.
백현진의 [Time of Reflection]에 대한 평점, 그리고 40자평
[서정민의 뮤직박스]
홍상수가 노래를 한다
홍상수 영화는 호오가 극명히 갈리는 편이다. 극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게 무슨 영화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도 있다. 난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쪽이다. 아니, 좋아한다는 말에는 능동적인 의미가 들어 있을 테니, 그냥 끌린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지독하게도 리얼한 홍상수식 영상과 전개, 어울리지 않게 간간이 튀어나오는 유머가 나는 싫지 않다. 왜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백현진의 첫 솔로앨범 <반성의 시간>을 처음 들었을 때, 참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독특한 창법이야 ‘어어부 프로젝트’ 밴드 시절부터 익히 접한 터. 솔직히 그땐 불편함이 앞섰다. 그런데 이번엔 또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가만, 이 느낌, 왠지 익숙한걸? 얼마 뒤 누군가의 음반평에서 그 익숙함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홍상수 영화’였다.
“돼지 기름이 흰 소매에 튀고, 젓가락 한 벌이 낙하를 할 때, 니가 부끄럽게 고백한 말들, 내가 사려 깊게 대답한 말들이, …막창 2인분에 맥주 13병, 고기 냄새가 우릴 감싸고, 형광등은 우릴 밝게 비추고, 기름에 얼룩진 시간은 네시 반, …사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기억이 안 납니다, 미안합니다 정말.”(<학수고대했던 날>) 소박한 피아노 반주 위로 읊조리는 백현진의 알코올기 섞인 목소리에 어느덧 위무받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제부터는 백현진을 ‘좋아하기’로 했다. 왜냐고 묻는다면, 할 말 없다.
FILM 2.0
Feature - Feature
어느 문제적 아티스트의 초상
2008.05.22 / 김작가(음악 칼럼니스트)
숱한 영화음악을 통해 이름을 알린 백현진은 음악과 미술, 한국과 외국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해온 전방위 아티스트다. 최근 자신의 이력에 첫 개인전과 첫 솔로 앨범을 더한 데 이어, 곧 영화감독도 추가한다. 10여 년간 문제적 예술 행보를 거듭해온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화가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뮤지션이라 부른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작가, 영화를 만들면 감독이 된다. 그렇다면 그 모든 걸 다 해내는 사람을 뭐라고 해야 할까. 아티스트?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이자 아라리요 갤러리 소속의 작가, 그리고 첫 영화 <끝> 촬영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아티스트 아니면 달리 무슨 호칭을 쓸 수 있을 것인가. 그의 이름은 백현진이다. 보통 이런 글은 대상의 근황으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망설여진다. 거의 전방위에 가까운 그의 근황 중 무엇을 선택해서 옮길 것인가. 최근 한두 달 동안 그가 했던 일을 기록해보겠다. 4월 초에는 삼청동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한국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한 달의 전시회 기간 동안 다녀간 관람객은 총 일만 육천육백 명. “뭐, 운이 좋았던 거지. 날씨도 좋아졌고 문화생활차 삼청동에 나들이 왔다가 왠지 이름은 들어본 것 같으니까 들어왔다 간 거 아닐까.”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한국 작가로서는 유래가 없는 동원 관람객이라고 한다. 전시회가 한창이던 지난달 22일에는 첫 솔로 앨범 <반성의 시간>이 시중에 풀렸다. 이 앨범을 두고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평했다. “백현진과 함께 어어부 프로젝트를 하는 장영규는, 한국에서 내가 주저 없이 천재라고 부를 수 있는 단 두 명 중에 한 사람이다. 또 하나는 누구냐고? 백현진이다.” 박찬욱 감독은 이승열의 ‘Secret’ 뮤직 비디오를 찍을 당시 “어어부 프로젝트의 음악이라면 공짜로라도 뮤직 비디오를 찍어주고 싶다”고 했을 만큼 어어부 프로젝트의 팬이자 동료였다. <복수는 나의 것>의 주제가도 백현진이 불렀다.
그는 전시회를 마치자마자 작업실을 치울 틈도 없이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한참 동안 준비해온 첫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서다. 오는 6월 크랭크인 하는 <끝>에는 박해일, 강혜정, 황정민, 문소리, 류승범, 공효진 등이 출연한다. 촬영은 <그때 그 사람(들)>, <얼굴 없는 미녀>의 김우형 감독이다. 이들이 받는 몸값만으로도 준 블록버스터 영화는 한 편 찍고도 남으련만, 총 제작비는 불과 2천만 원이다. 출연 배우들이 모두 어어부 프로젝트의 팬이었기에 흔쾌히 이 저예산 영화에 출연을 승낙했다. <끝>은 백현진이 각본과 감독, 그리고 제작을 맡은 영화다. “말로 할 수 있으면 단편소설이나 썼겠지. 찍어봐야 아는 거 아닌가.” 이 영화의 제작비 마련을 위해 백현진은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에 제작지원신청을 냈다. “원래는 내가 조건이 안 된다. 그 전에 연출작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그게 없다. 기본 자격에서 필터링이 되는 사람이거든, 나는. 혹시 몰라서 넣어본 거지.” 따지고 보면, 그는 모든 기본 자격을 갖추고 있지 못한 아티스트다. 미대를 다녔지만 2학년 때 중퇴했다. 영상 역시 배우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주류 대중음악과 인디음악 어디에도 애매하게나마 끼워 넣을 자리가 없다. 10여 년을 그렇게, 주로 제도권 바깥에서 살아왔다. 그는 거기서 스스로 광장을 만들고 제3지대를 구축해왔다. 백현진은 말한다. “나는 거리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안에서 밖으로
“뒷자리에 앉아서 잠 많이 자고 공부는 썩 잘하지도 않고, 싸움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아니고, 헛 농담 많이 하는 싱거운 애”라고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의 자신을 회상한다. 과연 그랬을까. 미술을 하는 누나와 외국에서 사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방 한쪽을 노랗게 도배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많은 이미지를 경험하면서 자랐다. 중학교 때는 한 푼도 안 쓰고 모은 용돈으로 화곡동과 이대 앞 레코드 가게를 돌며 빽판과 라이선스를 천 장 가까이 모으고, 한대수의 <고무신>과 김수철이 재적했던 작은거인의 2집을 구해서 야호를 부르곤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 랭보와 릴케, 이상의 책을 모으고 친구들과 종로의 극장을 누비며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불러줬다. ‘정원의 꽃이 지는 어느 봄날 / 남자의 척추뼈가 분리가 됐네 / 남자는 그날부터 산소 대신에 한숨을 마시며 사네’ 이런 가사를 가진 이 노래는 후일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라는 제목이 붙어 어어부 프로젝트의 데뷔 앨범에 담겼다. 이 노래를 불러준 후 백현진은 “야, 이 노래 어떻냐?”고 친구들에게 물었고 어김없이 “야, 그게 노래냐? 씨발 존나 우울하다”라는 답변을 듣곤 했다. “그림을 그리면 항상 상 받아 오는 아이”였던 탓에 미술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권유로 중앙대 문예창작과에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됐다. 백현진이 본격적으로 거리로 나선 건 그때부터였다.
“재수할 때부터 누나를 따라 미술 화류계에 몸담고 놀았던 거지. 너무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때 만난 사람들이 김형태, 고낙범, 최정화, 이불, 심철종… 부지기수다. 그 사람들도 젊었을 때였으니 얼마나 재밌었겠나.” 대학에 갈 생각은 안 하고 그렇게 2년 넘게 놀았다. 1993년 스물두 살의 어느 날, 회의가 들었다. “갑자기 내가 구경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들은 전시하고 퍼포먼스 하는 데 난 여기서 뭘 하는 건가 싶었다.” 넋 놓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쉽게 생각한 게 학교였다. 스물세 살, 늦깎이로 홍대 조소과에 입학했지만 거리에서 받은 교육과 학교의 그것은 너무 달랐다. “우스갯소리로 말하자면 선생부터 또래 애들까지, 너무 재미가 없는 거다. 게다가 등록금은 비싸지… 이미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지인으로부터 장영규를 소개받았다. 그렇게 지금껏 그와 어어부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음악적 동반자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백현진은 그에게 고등학교 때 만든 노래를 흥얼대고 가사를 보여줬다. 그걸 들은 장영규는 이랬다. “우리 작업실에 와서 놀아라.” 장영규의 작업실이 그의 새로운 학교가 됐다. “갔더니 음악 하는 사람들이 쫙 있지, 마이크 앞에서 소리 내보면 바로 녹음한 거 들을 수 있고, 나는 그냥 멋있는 형이라고 생각했던 영규 형이 베이스 연주하는 거 들어보면 와, 이거 진짜 음악 같잖아! 너무 재미있어서 학교는 더 안 가게 됐다.” 백현진은 그렇게 제도권 교육에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어어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1995년이었다.
소통은 없다
당시 황신혜 밴드의 김형태는 곰팡이라는 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다. 제도권 바깥의, 혹은 안팎을 넘나드는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김창완이 잭 다니엘을 병째 마시며 2시간, 4시간씩 공연을 하던 곳이다. 백현진도 그곳 식구였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소리로 흥얼흥얼 노래하고 다니는 그에게 김형태가 퍼포먼스를 제의했다. “무대를 만들어줄 테니 제발 아무 데서나 시끄럽게 굴지 마!” 어설픈 퍼포먼스는 안 된다는 걸 이미 최정화, 이불 같은 걸출한 사람들의 이벤트를 보며 알고 있었다. 스트레이트하게 라이브 콘서트를 하기로 했다. 백현진이 가사를 쓴 장영규의 노래, 장영규가 채보한 백현진의 노래들로 공연할 수 있는 뼈대는 잡혀 있었다.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방위 생활을 하며 훔친 수액과 환자복 등으로 무대를 꾸미고 첫 라이브를 했다. 반응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갤러리들을 중심으로 공연 제의가 들어왔다. 돈을 댈 테니 길거리에서 해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인디음악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전이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의 화제가 이어졌고 곡이 쌓여갔다. 그리고 인디음악이 모든 신문의 문화면을 도배하다시피 하던 1997년, 1집 <손익분기점>이 발매됐다.
“정말 간단한 이유였다. 리코딩을 해보려고 동네 아저씨들에게 돈을 모아 녹음을 해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당시 삐삐밴드를 하던 강기영(달파란)이 그걸 듣고 송스튜디오의 송홍섭 대표에게 들려줬다. 전화가 왔다. 테이프를 들었다. 얘기하자. 얘기를 했다. 앨범을 내고 싶다고 해서 1집이 나왔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수록, 영화만큼이나 파문을 일으켰던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를 비롯해, ‘소세지’ ‘깍두기’ ‘담요세상’ 등 총 네 곡을 담고 있는 이 앨범은 발매 당시에는 괴상한 앨범 취급을 받았을 뿐이었다. 주류음악은 물론 펑크와 그런지가 주류를 이루던 인디음악의 흐름과도 동떨어져 있었다. 특이한 이름과 특이한 음악이 이들이 매체에 소비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두 번째 앨범이자 그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난해한 작품으로 꼽히는 문제작 <개, 럭키스타>를 내놨다. “사람들이 1집에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아서 아예 작정을 했다. 한국에서건 외국에서건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조도로프스키가 인터뷰에서 인간의 영혼에 상처를 내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고 했는데 그런 느낌도 있었던 거고. 가사만 100번 넘게 바꿨다. 분노의 시였달까.(웃음) 편곡도 마찬가지고. 하다 하다 우리 모두 초죽음이 됐다. 그래서 다음 앨범은 좀 쉽게 가기로 했다. 물론 대중에게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그러나 2000년 발매된 3집 <21세기 뉴 헤어>는 미약하게나마 대중에게도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반칙왕>에 먼저 쓰였던 ‘사각의 진혼곡’ 때문이었다. “김지운 감독이 인터뷰에서 그러더라. <도시락 특공대>라는 컴필레이션에 실렸던 ‘밭가는 돼지’라는 노래를 듣고 이런 음악이 대중적인 영화에서 들리길 원했는데 별로 없어서 자기가 했다고.” 그때부터였다. 어어부 프로젝트는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등의 영화에서 음악을 맡았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백현진의 노래가 흘렀다. 모든 노래가 방송 금지였던 탓에 매스미디어에서는 접할 길 없던 그들의 노래는 영화를 통해 조금씩 알려질 수 있었다. 대중과의 소통이 시작된 것인가. 백현진은 말한다. “미디어에서 쓰는 소통이란 단어는 크게 잘못돼 있다. 술 먹다가 ‘오빠가 너 사랑한다’라 말하는 것만큼이나 실체가 없다. 작가가 대중적으로 쉽게 가보자 마음먹는다 한들 대중에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성공한 한두 명이 인터뷰에서 소통에 신경 썼다고 얘기할 때 읽는 사람들은 착각하는 거다.” 그래서 그는, 소통 대신 게임이라는 말을 쓴다. 솔로 앨범 <반성의 시간>은 대중과의 게임에서 전에 없던 흐름을 보인다. “학수고대하던 날의 뮤직 비디오를 1월 17일에 올렸다. 개인전 준비한다고 동네에서 공연도 못했으니 프로모션을 전혀 못했던 거지. 그런데 지금 조회 수가 8천4백 건이 넘는다. 어어부의 공식 비디오들은 많아야 천 건 정돈데. 나 구려진 거 아닌가, 걱정도 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칫 오버센스해서 들떠버리면 대중과 나의 게임에서 룰이 깨진다는 걸 아니까.”
그 모든 표현의 아티스트
그의 룰은 단순하다. 살아가면서 생각하고 표현하는 걸 계속 데이터로 남기는 거다. “전에는 무슨 목적이 있어서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그냥 만들었던 거다. 그런데 얼마 전에 데이터라는 의미가 생기더라. 떡을 뽑는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떡을 뽑다가, 떡을 뽑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자각하는 것과 비슷한 거다. 떡을 누가 얼마나 사 가는지 신경 쓰지 않고.” 그는 시장을 쫓아다닌 적이 없다. 사람들에게 구걸을 한 적도 없다.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들었을 뿐이다. 영화감독들이 먼저 찾았고, 2005년에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이렇다 할 포트폴리오도 없는 그를 전속 작가로 발탁했다. 5년 동안 약 5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 액수를 내세워. “결정이 되자마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날아갔다. 2개월 동안 머물면서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생각을 다듬어왔다.”
그는 상업 갤러리에서는 보기 힘든, 그가 계속 그려왔던 스타일의 그림을 그려왔고 유럽과 아시아를 돌며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가졌던 첫 개인전은 오픈한 지 얼마 안 돼 현지 언론에 의해 ‘One of Best’로 꼽혔다. 그때 얻은 확신으로 4월 초 한국에서도 개인전을 열었고, 서두에서 말했듯 국내에서는 볼 수 없던 유래 없는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백현진은 이제 영화로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지도 같이 생각난다.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걸 글로 쓸 필요는 없다.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걸 그림으로 그릴 필요도 없다. 이탈리아에서 개인전을 하면서 어떤 상황을 겪었는데 이건 동영상으로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만들게 된 거다.” 스스로도 어떤 영화라 설명할 수 없다는 <끝>은 올겨울 크랭크업, 내년 봄 상영될 예정이다. 이 영화가 대중에게 어떤 반응을 얻게 될지, 감독으로서의 성공 여부를 평가받을 수 있을지 그는 여전히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그의 생업인, 표현의 수단이 하나 더 추가될 뿐이다. “나중에는 소설도 쓸 수 있겠지. 한 50, 60 정도 먹으면”이라 말하는 백현진은 대중의 프레임에 자신을 구겨 넣으려 하지 않는다. 대중의 프레임으로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는다. 자신의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표현할 뿐이다. 그런 그를 이탈리아의 미술평론가 밀로반 화로나토는 “모든 계절에 어울리는 남자”라 묘사했다. 마찬가지다. 시인이자 뮤지션이자 화가이자 영화감독인 그는 모든 표현에 어울리는 남자다. 아티스트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