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우리나라에서 낙태되는 태아의 숫자가 평균 4천명이라고 한다. 그 안타까운 생명들을 상징하는 4000개의 십자가란다.
2004년 10월 19일 오후 1시
미니버스를 타고 사랑의 체험 장소로 이동한다. 두분 선생님을 희망의집(구 심신장애인 요양원, 여기는 2중 장애를 가진 이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한 장애인 시인과 화가들도 있는 곳이다.)에 내려주고 산넘어 이동. 인곡자애병원이라는 곳에 내린다. 나는 다른 선생님과 같이 6층 병동에 배치된다. 학생들이 미리 배치되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마침 이곳에 배치된놈들이 모두 우리 2학년 5반 놈들이네. 평소에 이기적이고 게을러터지던 놈들의 모습이 그렇게 진지해 보일 수가 없다. 이곳은 오전에 변기저귀를 모두 갈아드리기 때문에 오후에는 별로 할 일이 없을 듯 싶다. 담당 수녀님이 오늘은 한달에 한번 있는 바닥청소의 날이라네. 준비를 하는 동안 병실에 할머니들 간식으로 포도 드시는걸 도와 드리랜다.
할머니들 10분이 계시는 병실에 들어가서 한 할머니의 포도 접시를 받쳐들고 포도송이를 따서 입에 넣어드리는데 자꾸 손짓으로 나보고도 먹으라신다. 원래 포도를 좋아하지만 먹기가 쫌 껄쩍지근하데. 한송이 따서 입에 넣어보니 맛이 괜찮기는 한데... " 포도 맛있네요. 할머니. 껍질은 제 손바닥에 뱉으세요" 옆 침상에 어떤 할머니는 연세가 그리 많이 드신 것 같지는 않은데 포도 한송이 먹는데 10초도 안걸리는 것 같다. 껍질째 한꺼번에 몇 알씩 입안에 털어 넣으시는데 맛보다는 깡으로 드시는 것 같다. 할머니는 반송이 정도 드시더니 나보고 다 먹으라신다. 몇 개 먹다보니까 좀 민망하데. 그래서 아까 그 포도 잘드시던 분 에게 "더드실래요" 하고 물었더니 지켜보던 장기봉사자 한분이 그분은 그만드려도 된다고 한다. 그 할머니도" 내껀 다먹었어요" 하신다. 그래서 바닥에서 얌전히 드시던 다른 할머니에게 드리고 다른 접시를 걷어서 나오며 아까 포도먹여드리던 할머니를 쳐다보니 손바닥을 쳐다보며 어쩔줄 몰라 하신다. 아차! 입속에 포도껍질이 있던 것을 뱉어서 처리를 못하고 계시는 것이었다. "아이고 할매요 절 주이소" 하면서 손바닥에 있는 포도껍질을 집어들었다. 순간 그할머니 내얼굴을 똑바로 보시더니 완벽한 발음과 또렷한 목소리로 "정말 고마워요" 순간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핑돌데... - 고맙긴요 제가 더 고맙죠. 제가 포도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저렇게 맑고 깨끗한 할머니 이신데 단지 늙고 병이 들었다는 이유로 버림을.....
아!!!!
병실을 나오면서 세면실에서 걸레를 빨고 있는 학생들을 본다. 걸레에 비누칠을 해서 치대는데 영 아니다. 나와봐 임마. 빨래란 이렇게... 잘봐 임마. 푹푹 싹싹 ... " 선생님 빨래 엄청 잘하시네요?" 한놈이 그런다. " 그래 짜샤 맨날 집에서 빨래만 하고 산다."
잠시후 장기봉사하는 총각의 지시로 바닥 청소실시, 먼저 물걸레로 바닥을 훔치며 지나간다. 다음조 비눗물과 소독약을 섞은 물을 바닥에 바르면서 지나간다. 다음조 마른 걸레로 닦으면서 지나가고 마지막 조 왁스칠... 학생들과 바닥을 뭉개면서 지나가는데 이것도 열심히 하니 몸에 땀이 바짝바짝 나네. 벌써 런닝이 푹 젖었다.
그때 아래층 호스피스 병동( 왜 알지? 병들고 버림받아 이제 생의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중환자들만 모여 있는 병동, 꽃동네 견학하면 우선 여기부터 들리게 되지)으로 갔던 교감선생이 올라와서 날 보고 좀 내려 오란다. " 왜요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여간 걸레두고 빨리 내려 와봐" 내려갔더니 이유가 환자 목욕을 시켜야 한단다. " 할머니들 목욕을 내가 어떻게?"- 그곳은 할머니들 병실이었거던.. 그것도 아주 상태가 심각한... - 그게 아니란다. 누군지 알고 보니 ...허걱!!!!! 꽃동네의 마스코트.
꽃동네 호스피스 병동의 여자 중환자실 두 곳에는 아랫도리 다 내놓고 있는 아저씨가 각방에 한 분씩 계신다. 목 위로만 정상이고 전신이 마비된 상태로 수 십년간 누워만 지내는 중증 장애인이시지. 근데 왜 거기계시냐고? 이분들 몸전체가 마비되어서 그렇지 말씀도 잘하시고 건전한 사고에 대단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시지. 할머니들을 위로하고 메신저 역할도 하시는등 엄청난 봉사를 하시는 꽃동네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대단한 분들이시다. 그중에 한분은 어제도 뵌 분이다. 전신마비에 다리의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은지 웬만한 사람은 보기에 비위가 상할 정도다. 작대기 하나와 손가락 끝에 있는 약간의 신경으로만 생활하시는데 봉사자가 들어갈 때 마다 맑은 목소리로 인사하신다. "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이인사를 들으면 코끝이 시큰해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 연세가 58년 개띠라는데...
아니 이분을 나보고 씻기라니... 교감 이 영감은 벌써 어데로 새고 후배선생이 한명 내려온다.
"오늘 일주일 만에 목욕하는데 깨끗하게 씻겨주세요. 무릎에 물만 안닿게 하시고 제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요." 하신다. 침대에서 옮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듯 싶다. 간호사들이 와서 무릎에 붕대를 감고 카트로 옮기는데 생각보다 힘들지는 않다. 이분의 몸이 마비되셔서 고통을 모르시거든.. 근데 어깨힘이 대단하시드만... 세면실로 옮겨서 목욕시작... 나는 샤워기 꼭지를대고 아저씨가 시키는대로 정확한 지점에 물을 갖다 대주기만 하면 된다. " 물눈에... 가슴에.. 배꼽, 붕알, 고추, 똥꼬 다시 이마 눈위에 가만히 대고만 있으세요. 코에 물 안들어가게 하시고.. 자 이제 비누칠해 주시고... 행구시고 손바닥으로 세게 문지르세요... 뒤통수 아주세게 긁어주시고. 롱으로 길게 세게 긁어요... 말려져 있는 손가락 속으로 손가락 집어 넣어 긁어 내세요... " 이 아저씨 그동안 제대로 못 씻은거 오늘 뿌리를 뽑으시려나 보다. 병실에 누워만 있는데 웬 때는 그리도 나오는지... 목욕하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려 부럿다... 다시 병실에 모셔다 눕히는데 이것도 장난이 아니네.. 아저씨가 요구하는 자세를 잡아줘야하니.. 힘도 들고 입고 있는 옷도 다 젖어 부럿다... - 아들놈 목욕탕에 데려가서도 씻기기 힘들어서 때밀이에게 돈주고 씻기는 난데....- 이 아저씨 하는 말 " 정말 고맙고 수고 하셨어요. 이제 나머지는 학생들이 하면 되니까 이제 5호실 아저씨 씻겨 드리세요" 헐~~~ 나는 한 분만 씻기는 줄 알았는데.....
이제부터 시끄러운 605호실로 들어간다- 이 병실에는 아주시끄러운 할머니가 한분 계시는데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시려는 듯 하루종일 누군지 모를 이름을 부르던지 아니면 앓는소리를 하시던지 혹은 노래를 부르신다 곡목은 언제나 아리랑.-
한쪽구석에 아저씨의 침상이 있다. 아 근데 이 아저씨 인상이 장비스타일이다 꼭꼿한 수염에 배에는 복수가 차서 산만하다. 물론 전신은 마비되어 있는 상태고... " 저는 아까 그친구보다 씻기가 쉬울겁니다. 근데 한몸무게하는 몸이라서. 이렇게 하세요" 하나하나 시키시는데. 목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우신지... 성우해도 되겠더라.
"선생님은 다리를 잡으시고.. 선생님은 저를 포옹하듯이 꽉 안으세요. 그리고 한손으로는 오줌주머니를 이렇게.... " 끙끙대며 목욕실로 이동하는데 몸약한 내가 하기에는 장난이 아니다. 간신히 목욕시작. 이아저씨는 때는 없네. 그냥 타월에 비누칠해서 문대고 행궈 달라신다. 열심히 구석구석을 비누칠해서 문지르는데.. 살이 접혀진 부분을 보니 이건... 눈물이 또날라칸다.. 피부가 온통 짓물러서 말이 아니다. 그래도 마비가 되어서 고통은 모르시나봐. 피부도 갓 오십이라시는데 온통 탄력이 없고 흐물흐물하다 .. 조금있으니 예쁜, 정말 예쁜 장기봉사자 아주머니 한분이 들어오시데..." 형제님 목욕을 하실 줄 알았으면 미리 면도를 해드렸을 텐데.. 지금 빨리 면도기 가져와서 해드릴께요" 하신다. 목소리 이쁘고 얼굴 이쁘고 맘씨는 더욱 이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을 본듯하다. 능숙한 솜씨로 면도를 하시는데 그장비처럼 생긴 얼굴이 어느덧 소년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다시 병실로 모셔다 드리는데... 그 시끄럽던 할머니 일어나 앉아서 말없이 물끄러미 나를 쳐더보신다. 억지 미소를 띠면서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인사 했더니 뭐하는 놈이냐는 듯 쳐다 보신다. 아저씨의 "고맙고 정말 수고하셨어요"라는 인사를 들으면서 병실을 나서는데 할머니의 "아리랑"이 다시 귓전을 때린다. '
내가 정말 봉사를 하긴 한건가? 아니지... 이 아저씨들이 하는 봉사가 진정한 봉사가 아니겠는가? 오히려 듬뿍 사랑을 배우고 받아가지고 나온다. 위층에는 벌써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 울반놈들 구석구석에서 중환자들 식사를 챙기는데 여간 이뻐보이지가 않는다. "귀엽고 사랑스런 놈들.. 내 저놈들을 위해서... 저 놈들의 미래를 위해서... 더욱 열심히 해야지..." 밖에 나와서 담배한데 또 굽는데 교감이 다가온다. 담뱃불을 끌 생각도 않는다. " 서선생 정말 수고했어" " 수고는요. 덕분에 봉사한번 진하게 한 것 같습니다."
수련원의 숙소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까 그 할머니의 '아리랑'노래소리가 귓전에서 윙윙거리듯 맴돌며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식사후에 학생들의 발표회와 캠프파이어가 있는데... 그냥 한잠 자고싶은 생각 뿐이다.
친구들!! 19일의 산이야기는 이후에도 계속 되는데(캠프파이어 이야기와 서울 중앙고등학교 선생님들과의 일전 등)... 고만 쓸란다. 괜히 시작을 해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쓰다보니 두서 없이 산만하기만 한 글이 되어 부렀네... 그냥 부담갖지 말고 읽어만 주시게..
마지막으로 꽃동네의 희망의 집에서 20년째 전신불수로 누워있는 배영희 씨가 직접 쓴 시 한편을 친구들에게 들려주며 두서없이 찌끄린 '상호의 10월 19일의 산 이야기'를 그만 마치려고 하네. 친구들 작은 행복에도 늘 감사하고 늘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시세나.
'나는 행복합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아무것도 아는 것 없고
건강조차 없는 작은 몸이지만
나는 행복합니다.
세상에서 지을 수 있는 죄악
피해 갈 수 있도록 이 몸 묶어주시고
외롭지 않도록 당신 느낌주시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세가지 남은 것은
천상을 위해서만 쓰여질 것입니다.
그래도 소담스레
웃을 수 있는 여유는
그런 사랑에 쓰여진 때문입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첫댓글 참 감동적인 글임다. 은헤 마니 받았구요. 행복한 사람이라는게 모두 느끼기 나름이지요? 울 교회 장로님 한분이 골수암 수술 후에,약물 치료 중인데 본인을가르켜 행복한 사나이라고 하데요? 나도 몸이 자유로운데 이 자유로운 몸을 죄짓는데 더 많이 쓰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겠슴다.
산이야기...라고 하셔서...등산 얘긴줄 알았습니다 ^^;;;....음성 꽃동네는 저도 딱 한번 봉사 다녀온적 있는데 이틀 봉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었습니다...힘든거 보다는 배운게 훨씬 더 많은듯 해요...꽃동네 후원하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몇달 가지도 못한적이 있습니다...-.-;;
선배님 사진으로뵌 얼굴은 산적?이신데 글보니 천사 같으셈^^* (당분간 잠쑤-)
잠수는 웬잠수? 자네야 말로 산적질하러 산채로 들어가는가??
여러 번 상호후배님 글을 읽었지만 참 감동적입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 같고, 그 모습 그대로 다 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스크랩 좀 해갈께요.
가정과 사회로 부터 소외되어 열악한 보호시설 병석에서 오래동안 머물며 고생하시는 환자분들을 생각하면 자신은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힘겹게 살아가는 그분들을 위해,건강한 사람들이 봉사활동등을 통해 고통의 짐을 덜어 주어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에도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자책감?)때문에 글을 읽고나니 송구한 마음이 드네요. 학생들을 대동하고 봉사활동체험장을 다녀오신 서상호 후배님과 학생여러분 큰 수고 하셨네요..
부끄럽슴다. 요즘 할말도 별로 없고 해서 예전에 동기회 카페에 끄적거려 봤던 글을 울과먹기로 올려 보았습니다. 이런글을 쓴다는 자체도 그분들에 비하면 사치일지도 모르죠. 주어진 작은 행복에 늘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십시다요.
가장 바쁘게 사시는 후배님... 좋은 일도 많이하고 참으로 대한하이... 잘지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