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이란?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여
안성의 칠장산까지 이어진다.
칠장산에서는 다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갈래쳐 한남정맥은 북서쪽으로
뻗어간다. 한남정맥은 한강유역과 경기 서해안 지역을 분계하는데
이 산줄기를 이루고 있는 산들은
도덕산(366m), 국사봉(440m), 달기봉(415m), 구봉산(456m), 함박산(349m),
부아산(403m), 할미성(349m), 형제봉(448m), 광교산(582m), 백운산(564m), 수리산(469m),
수암봉(398m) 등이며 김포평야의 낮은 등성이와 들판을 누비다
계양산(395m)과 가현산(215m)을 지나 강화도 앞 문수산에서 끝을 맺는다.
한남정맥 구간별 거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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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명 | 높 이 | 거 리 | 지 명 | 높 이 | 거 리 | 지 명 | 높 이 | 거 리 | 칠장사 | | | 할미성 | 349 | 1.2 | 도로 | | 2.8 | 칠장산 | 492.4 | 1.2 | 안현 | 316.6 | | 철마산 | 221 | 1.8 | 관해봉 | 457 | 0.9 | 향린동산 | | 4.3 | 장명이고개 | 90 | 3.2 | 도덕산 | 366.4 | 2.4 | 영동고속도 | | | 계양산 | 394 | 1.1 | 38번도로 | | 1.9 | 아차지고개 | 130 | | 작은장리치 | 140 | 1.0 | 발태종도로 | 130 | 1.6 | 신갈분기점 | | 6.3 | 꽃메산 | 95 | 1.8 | 국사봉 | 440 | 2.7 | 23번도로 | | | 골막산 | 73.6 | 3.8 | 덕재고개 | 320 | 2.3 | 응봉 | 235 | 4.3 | 종말고개 | 40 | 0.3 | 상봉 | 340 | | 버들치고개 | 170 | 1.0 | 할메산 | 105 | 1.0 | 가현치 | 220 | | 형제봉 | 448.1 | 2.8 | 문고개 | 30 | 1.2 | 345.9 | | 3.0 | 광교산 | 582 | 2.1 | 서낭당고개 | 69 | 2.3 | 달기봉 | 415 | | 백운산분기 | 564 | 1.6 | 가현산 | 215 | 1.3 | 구봉산 | 455.5 | 1.9 | 작은말도로 | | 4.3 | 스므네미치 | 60 | 2.2 | 281.6봉 | 281.6 | 2.3 | 지지대고개 | 110 | | 수안산 | 146.8 | 3.9 | 326번도로 | | 1.7 | 47번도로 | 50 | 5.5 | 대곡초교 | | 1.8 | 가재울도로 | | 4.0 | 수리산 | 469 | 4.3 | 것고개 | 34.9 | 6.7 | 57번도로 | | | 수암봉 | 398 | 2.0 | 56번도로 | 40 | 4.2 | 신가사도로 | | 2.8 | 397번도로 | 160 | 2.8 | 문수산 | 376.1 | 3.2 | 문수봉 | 403.2 | | 운흥산 | 203 | 2.7 | 보구곶리 | 30 | 3.8 | 바래기산 | 365 | 2.5 | 397번도로 | 40 | 2.8 | | | | 292.1봉 | 292.1 | 3.5 | 양지산 | 151 | 3.2 | | | | 217.2봉 | 217.2 | 3.0 | 뒷골도로 | 30 | 3.1 | | | | 무네미고개 | 110 | 2.1 | 여우고개 | 80 | 3.0 | | | | 함박산 | 349 | 1.8 | 하우고개 | 100 | 1.0 | | | | 하고개 | 220 | 2.4 | 와우고개 | 140 | 1.5 | | | | 부아산 | 402.7 | 1.3 | 철마산 | 202 | 4.1 | | | | 42번도로 | 170 | 3.2 | 만월산 | 186.9 | 2.0 | 전체도상거리 약 : 172.0km | 멱조고개 | 170 | 1.3 | 구루지고개 | 70 | 3.3 | 상기 지명과 수치는 국립지리원 발행 1/25,000 지형도를 토대로
맵미터기로 측정한 수치임.
(실제와 다를 수 있음) | 석성산 | 471.3 | 2.6 | 장고개 | 30 | 0.7 | 작고개 | 210 | 1.3 | 철마산 | 164.9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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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6시 40분 출발하여 신갈 도착하기를 10분만에 차를정류장 공터에 세워둔다.도로공사까지 갔다가는 자칫 버스시간에 늦을 것 같아7시쯤 도착 예정인 안성행 버스를 타기 위해 이번엔 정류장에 주차를 해놓는다. 6시 40분 수원시외버스터미널 출발이라 하니수원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해서 부득이 정류장에 차를 세워두고.. 신갈정류장에서 오래간만에 맥문동님을 비롯하여몇분의 반가운 얼굴들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7시가 되기 무섭게 도착한 안성행 좌석버스에 몸을 싣는다. 대간시절 경기무지개산악회를 이용하며 알게된귀천님 일행님들과는 벌써 여러해를 정맥길에서 함께 산행을 해오고 있다.사람의 관계란 묘한 일이어서처음 만날 땐 거리감을 두던 사람들도오랜 시간 같이하면서 차츰 정이들어이번 한남정맥길에선 남처럼 생각되지 않는 깊은 인연으로거듭 나게 되는가 보다.이젠 1대간 9정맥 완주를 눈앞에 두고떨어지고 싶지 않을 가까운 인연으로 다가가고 있으니.. 신갈에서 1시간 정도 걸려서 안성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풍경소리님 부부께서 안성에서 첫차 출발시간이 늦어도착이 지연되는 바람에 잠시 기다려서함께 가현고개로 향해 가는길에.. 안성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길을 건너삼죽면사무소 방향의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서잠시 기다리는 중이다.도로변에 피어있는 한송이 메꽃이 눈에 띄기에오늘 산행후기는 메꽃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피워보련다. 소박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저 꽃에는 '여성용 비아그라'라는엄청나고도 비밀스런 약성과 함께 아름다운 전설이전해져 오고 있다. 꽃말조차도 '수줍음'이란 소박한 내용을 품고 있는 이 꽃은여성에게는 비아그라의 약효를 제공하는 반면일명 '고자화'라는 엉뚱한 이름 하나를 더 지니고 있다.이는 메꽃이 결실을 맺지 못하는 데서 연유된 이름으로아주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대부분이 결실을 맺지 못한다.대신 하얀색 땅속 줄기가 기온이 높고 비도 많은 여름동안 이곳 저곳으로 뻗어가다 겨울이 되면 그 줄기에 겨울눈을 달고 땅속에서 월동을 하게 된다.봄에는 이 겨울눈에서 싹을 틔워 번식을 하게 되며, 전해지는 전설에는 "옛날 어느 장군의 수하에 연락병이 한사람 있었다.그는 장군이 이끄는 주력부대와 이미 지나간 돌격부대와의 길을연결해 주는 임무를 맏고 있었는데어느날 길목을 지키던 이 병사는 장군의 부대가 도착하기 전에적이 쏜 화살을 맞아 죽고 말았다.적은 이 병사가 만들어놓은 표지판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았고이 사실을 모르고 갈림길에 도착한 장군은표지판만 있고 장군이 보이질 않아 이상한 생각이 들어주변을 살펴보게 되었다.그런데 한 곳에 붉은 핏자국이 보였고그 옆에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였던 나팔 모양을 한 꽃이줄기를 왼쪽으로 틀고 있지 않은가?장군은 그 꽃이 죽은 병사의 나팔일 것이라 생각하고꽃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행군을 계속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 결과 장군은 앞서간 돌격부대와 합류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한다.그래서 메꽃의 꽃말은 죽어서도 충성을 다하는 병사의 넋을 기리는 '충성'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메꽃"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붉게 상기되는 제 얼굴은
메꽃의 이름으로 불립니다.
수줍어도
태양을 흠모하는 전
이슬 내리는 밤이면
꿈속에 내님 모습 그리며
촉촉한 입술을 붉히웁니다.
아침마다 애무하는 부드러운 손길에
입술을 열고
마음껏 님의 사랑을
열망하지만
님은 너무도 먼 곳에
불타는 정열은
깊고 깊은 연정으로 흐를 뿐
결실을 맺지 못한 사랑의 비애는
이른 새벽
한 점 이슬로 내려앉고
이루지 못할 사랑은
슬픈 연가로 흐릅니다.(13.07,27)
박꽃향기가 잠시 메꽃에 빠져 있는 사이
일행들은 정류장에 안내된 버스노선과 시간을 궁리 중이시다.
잠시 후 일죽방향의 시내버스가 와서 서기에 기사님께 물어보니
삼죽.두둘기를 지난다기에 올라타고
1시간 정도 용인시내를 돌아
지난 첫구간때 삼죽면사무소에서 뜨락식당으로
정맥을 이어갔던 삼거리에 도착한다.
풍성식당으로 가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함이다.
풍성식당에서 김치찌게를 주문하여
늦은 아침에 밥 한공기를 뚝딱 해치운다.
오늘 아침은 설악선녀님께서 첫 손주 본 기념으로
사시겠다 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는 아침식사를 하고..(09;12)
삼죽.두들기정류장에서 대기하고 있는 택시 2대에
각각 나눠 타고 가현고개 도착한 시간 09;22..
올라온 삼죽면 방향으로 지난번 내려온 날머리가 보인다.
삼죽면 표지판 옆, 휀스가 끝나는 지점..
그곳에 트럭이 서있다.
가현고개는 안성시 삼죽면과 보개면을 잇는 70번과 82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로
이곳 사람들은 '가치래미'로 부르는데
인근에 가칠암이란 절에서 유래된 이름이며
시내버스에도 가치래미행이라 쓰여있다.
고갯마루에서 천주교 수원교구 공원묘원 뒷산인 가현산 정상까지는
약 150m 고지를 쳐올려야 한다.
가현산을 향해 오르는 길에
공원묘원에 오르니
앞이 트이면서 전방에 가야할 한남정맥 마루금이 펼쳐진다.
한창 푸르름이 짙어진 묘원 풍경은
마음으로라도 풍족하다.
비록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잠들어 있을 혼령이지만
누렇게 져버린 산중에 잠들어 있는 모습보다는
누군가의 어루만짐이 있는 듯
대지를 꽉 채우고 있는 녹음에 감사한 마음마저도 든다.
묘지 위에 돋아난 싱그런 잔디들은
마치 잠들어 있던 혼령들이 일어나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하고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은
혼령들의 눈빛인양 영롱하며
한적한 묘원에 금방이라도 다정한 속살거림이
들릴 듯
안성추모공원엔 생기로 가득하다.
가현고개에서 잠시 숲의 터널을 뚫고
급경사지를 올라서면
진행방향으로 가야할 정맥능선이 조망되는데,
마루금 밑으로 공원묘원 장례식장이 보이고
장례식장 뒤로 송전탑이 솟아있는 봉우리가 가현산(346.6m)이다.
비록 생화는 아니지만
푸른 묘원에 붉고 노란 조화의 빛깔이 어우러져
한결 보기 좋은 분위기다.
언젠가는 나도 저들처럼 말없이 돌아가야 할 자리,
비록 몸은 말없이 누웠어도
영혼은 숨을 쉬어야 하겠기에
살아 움직이는 동안 많은 이야길 담아두고자
오늘처럼 비지땀을 흘리며
생의 현장에서 뛰게 되는 건 아닐까?
가현산 좌측으로는 달기봉이 솟아있고
그 뒤로 구비구비 아홉개의 봉우리가 몽글몽글한
구봉산 능선이 겹쳐보인다.
습한 기운 때문인가, 맑은 날이어도 먼 곳까지는 선명하지 못한
조망이 아쉬운 날이다.
뒤돌아보는 지난 구간의 상봉, 국사봉이 푸근한 느낌으로
다가선다.
앞서가는 일행들 너머로
가현산으로 흐르는 능선이 부드럽게 다가서며..
키낮은 잡목들이지만 중간중간 아카시아나무나
가시넝쿨이 섞여있어
제법 가는 길을 방해한다.
어깨까지 차는 푸른 숲을 헤치며 오르는데
무성한 수풀에 길이 메워져 중간중간 끊어진 등로를 찾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오른다.
솟아오른 능선봉의 정상을 향해 짐작으로 오르는 길..
뒤쪽에 송전탑이 서있는 봉우리가
가현산..
뒤돌아보는 마루금은 상봉에서 국사봉을 지나
뒷산으로 이어져 내리고..
먼저 부지런히 오른 일행들이
잠시 멈춰서서 땀을 닦고 있다.
박꽃향기를 기다리는 중이실테다.(09;42)
공원묘원에 올라서서 15분 지난 시간
다시 좌측으로 묘지가 보이고,(09;45)
등로는 공원묘지 우측으로 완만하게 이어진다.
무더운 날씨 그나마 그늘져서 조금은 견딜만한 산행길..
일행들은 박꽃향기가 뒤를 쫓고 있는지
뒤돌아 보고 확인을 하며 걷기를 반복한다.ㅎㅎ
녹색 휀스가 이어지다 끝나는 지점이 가현산 정상이다.
가현산(346.6m)은 안성시 삼죽면과 보개면, 용인시의 백암면
3개면이 갈리는 3면계봉이며
안성시에서 용인시로 바뀌는 시경계봉이기도 하다.
안성시에서 용인시로 넘어서니
안성시 관할 등로에서 보지 못하던 이정표가 자주 나타난다.
산행괘도까지 그려놓은 안내도를 보니
반가움이 솟긴 하나
정작 표기했어야 하는 현위치 표시가 되어있질 않다.
산꾼들이 메직으로 이정표 상단에 적어놓은
검은 글씨를 참고하며 진행한다.
정상에는 산행안내도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는 한남정맥의 총 연장거리 198.4Km 중 용인시에 속한 구간이
가현산에서 광교산까지 73.0Km라고 친절한
안내를 하고 있다.
역시 우리동네 용인시는 살기좋은 고을..ㅎㅎ
가현산정상에서 내려가다 잠시 앞이 트이는 지점엔
검은색 프라스틱 수로가 마루금을 따르고
진행은 그 수로를 넘어서 공원묘원 방향으로 내린다.
내려다보이는 공원묘원 우측 마루금 위에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칠장산에서 가현고개를 넘어
우리 보다 일찍 이곳에 도착한 울 은빛대장님과 일행들..
우리는 삼죽면사무소 근방에서 따뜻한 아침밥을 먹고 올라왔는데
이곳에서 썰렁한 도시락으로 아침을 들고 계신다.
삼죽면사무소 삼거리에서 시간이 맞아 함께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우리만 따뜻한 밥을 먹고 올라 미안한 마음이..
이 지점에서 보는 묘원은 완전 아파트 형식의 납골당이다.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 "은 옛말,
요새는 "生居 apt 死居 apt"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자와 영자를 섞어놓으니 불협화음으로 보이긴 하지만..
박꽃향기가 본래는 용인사람이 아니지만
용인 땅에 들어와 거주한지는 13년에 이르고 있다.
그러니 용인에 관련된 이야기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을 떠올려 놓고 보니
그 말의 근거지를 찾게 되었다.
이곳 저곳 자료를 찾다보니
그 말이 나와진 데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다 올릴 수는 없고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기에 올려보았다.
첫번째 설은
예전에 임금들은 선조릉에 년간 수차례 행차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만약 거리가 50리, 왕복 100리가 넘으면 당일 제사를 마치고
밤 늦은 시간까지 돌아 올 수가 없으니
밤 사이 궁궐을 비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궁궐을 비운 밤 사이에 역모를 꾀한 역적들이
궁궐을 접수 장악할 것을 두려워 하게 되어
아침에 일찍 출발하여 제사를 모시고 밤 늦게라도 돌아올 수
있는 거리에 왕릉을 조성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 거리를 측정해 본 바 그게 용인 못미처까지
해당되었다는 것..
또한 그 시대에는 왕릉이 조성되면
반경 5리 안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묘를 이장해야 했으므로
그런 위험을 벗어나자니 결국 한양에서
반경 50리가 넘는 위치에서 최소한 벗어나 묘를 써야
후일 파묘나 이장을 하는 번거로움을 면할 수가 있었기에
당시 한양에 살던 양반가들은 그 반경 50리를 벗어나는
용인지역을 장지로 선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진천은 물이 풍부한 곡창지대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났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생겨났다는 설이다.
또 한가지 다른 설은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에는
삶과 죽음의 질서를 오가며 생긴 기막힌 사연 하나가 숨어 있다.
즉, 옛날 진천 땅에 추천석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하루는 그가 잠시 잠들었다가 애절한 통곡 소리에 잠을 깨게 되었다.
그 통곡 소리의 주인은 바로 옆에 있던 자기의 아내였고,
뒤를 이어 자식들도 울고 있는 것이다.
“왠 갑작스런 울음이요?”
아내에게 물었지만, 아내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목놓아 울기만 했다.
“우리를 두고 먼저 저 세상으로 가시다니요. 흑 흑 흑.......”
그는 싸늘하게 누워 있는 바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제서야 지금 자신은 혼(魂)이 된 상태라는 걸 알아차리고는 멈칫거리다가
곧 저승사자를 따라 명부전(冥府殿)으로 인도 되어 염라대왕 앞에 엎드리게 되었다.
“어디서 왔느냐?”
“예, 소인은 진천에서 온 추천석이라 하는 자입니다.”
“뭐라?”
염라대왕은 대경실색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용인의 추천석을 불러들여야 했는데,
저승사자의 실수로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온 것이다.
염라대왕은 진천 땅의 추천석을 즉각 풀어주고
용인 땅의 추천석을 데려오라고 다시 명을 내렸다.
일이 꼬이려 해서인지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이름과 생년월일이 똑 같았던 것이다.
그는 가족과 재회하기 위해 이승의 자기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 갔는데
이미 자신의 육신은 땅에 묻히고 집에는 위패만 모셔져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몸둥아리를 되찾을 수 없게 되어 그는 아내를 연이어 불렀지만
소용이 없었고
실의에 빠진 채 멍하니 있다가 문득 묘한 생각을 하나 떠올리게 되었다.
바로 용인 땅 추천석의 몸을 빌려야겠다는 생각이 번쩍들어
그는 용인으로 냅다 뛰었다.
혼이 떠난 용인 땅 추천석의 몸엔 다행히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어
그는 얼른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슬프게 통곡을 하던 용인 땅 추천석의 가족들은
꿈틀대며 몸을 일으키는 그의 모습을 보고 기뻐 날뛰며
“여보, 다시 살아났구려!”
용인 땅 추천석의 몸을 빌린 그는 여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으나
여인과 아들 딸들은 죽음에서 깨어난 헛소리로만 여기고
어떠한 말도 믿으려 하지 않았기에 그는 하룻밤을 마지못해 보내고
다음날로 즉시 진천을 향해 다시 내달렸다.
아내라는 여인과 자식들은 그런 그를 실성한 사람으로만 생각하고는
붙잡고자 뒤따라 뛰었고,
진천 고향집에 도착한 그는 상복을 입은 아내에게 외쳐 대었다.
“여보, 나요 내가 돌아왔소.”
“뉘신지요, 여보라니요…?”
그녀는 돌아온 남편이라 외치는 남자의 말을 곧이들을 수 없었고
오히려 모멸감이 들어 이에 혼줄을 내주겠다며 이내 동네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뒤따라 온 용인 땅 추천석의 아내는 남편이 잠시 미쳤다며 계속 용서를 구하였다.
그는 계속 자신의 처지를 필사적으로 설명하였지만
동네사람들에게 매질까지 당하고선 결국 관가로 끌려가게 되었다.
고을 원님은 그의 사연을 쭉 듣고서 다음과 같은 명쾌한 판결을 내렸는데
“진천 땅의 추천석은 저승사자의 잘못으로 저승에 갔다가 다시 살아 왔으나,
자기의 육신이 이미 매장되었으므로 할 수 없이
용인 땅에 살던 추천석이 버리고 간 육신을 빌린 것이라 생각하노라.
진천 땅 추천석은 조상의 내력과 그 가족의 생년월일은 물론
논밭 등의 재산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알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지금의 저 추천석은 진천에서 살던 추천석의 혼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지금껏 살아서는 진천에서 추천석으로 살아왔으니
‘생거진천(生居鎭川)
지금은 진천의 추천석은 죽었는데 다만 용인의 추천석의 몸을 빌렸으니
지금부터는 용인의 추천석으로 살아가야 하니 사거용인(死居龍仁)하라.
양가의 가족도 그대로 실행토록 하라! ”고 판결하여
그때부터 이 추천석이 죽었다 살아 나는 사건으로 인하여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이 생겨 나게 되었다는 설이다.
그래서 진천의 추천석은 진천의 추천석으로 인생의 반을
또 용인에서는 용인의 추천석으로 나머지 반을 살다가 갔다고 전해지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그럴싸 하지만
내 생각에는 이렇다.
예전부터 귀에 들리는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이 있어
입에 올리고는 살지만
그 소리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어서
이런 저런 추측으로 빚어지는 설이
하나의 전설처럼 내려오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다.
그런 설의 근원은 문서로 전해지지 않으면 믿기 어려운 일이어서
전설처럼 구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되고,
하여 박꽃향기가 좀 더 과학적인 것에 근거를 둔 설이 없을까 하여
알아보던 중
강남대에 용인학 강좌를 개설하고 강의해 온
홍순석 교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홍순석 교수는 2013년 주요사업으로 <<용인 600년 사료집>>을 정리하고 있으며,
수년간 300여종의 고문헌 자료에서 용인 관련 자료를 채록한 분이다.
현재는 국역작업에 착수 중이며
그 같은 낙수를 정리하여 <옛 문헌속의 용인>을 집필 중이시다.
그는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의 근원을 알 수 없어 연구하던 바
2013년에 시작한 용인 관련 고문헌 자료를 국역하면서
"생거진천 사거용인"의 출처를 발견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이 지은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
명오지(名塢志)라는 글이 있는데 여기에 "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구절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용인의 금령촌은 현 동쪽 30리에 있다. 푸른 시내와 땅이 비옥하여 경작하기에 마땅하다.
장지가 있는데 재물을 벌기에 충분하다.
진천읍 쪽은 큰 하천에 붙어있으며, 들이 매우 평편하여 벼를 심기에 마땅하여
흉년이 들어도 수확이 적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잊기에 충분하다.
사인들이 이르기를 '살아서는 진천에 거하고(生居鎭川), 죽어서는 용인에 묻힌다(死葬龍仁)' 하였는데
진천은 비옥한 토지가 많고, 용인은 아름다운 산기슭이 많기 때문인 것이다."
예로부터 그런 말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은
용인지역에 풍수지리학적으로 많은 명당이 있다는 말도 된다.
명당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하다는 뜻도 포함된다.
하지만 용인은 최근 계획적으로 조성된 분당, 일산 등 신도시 지역과 견주어
난개발과 교통지옥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가고 있다.
준공후에도 운행되지 못하고 묶여있던 경전철로 인해
'세금낭비의 전형'으로 지목받고 있는 등..
이제 용인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수도권의 단순한 위성도시의 기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어야 할 때이다. <참고문헌;굿모닝 용인 2013.2월 18일자>
아파트 형식의 납골당을 벗어나 내려오다
숲이 어찌나 우거졌던지 두 팔로 헤치며 내려오는데
오른쪽 어깨 있는 곳이 따끔하며 금방 뻐근한 감이 느껴진다.
그냥 내려오려니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아
초록색 휀스를 넘어 들어와 배낭을 내려놓고는
연고를 찾아 듬뿍 발라 준다.
여름숲은 이러저러한 사연들로 위험요소들이 즐비하다.
그러기에 배낭은 늘 준비된 물건들로 가벼울 수는 없는 일이어서
오늘도 물 2.2리터에 점심까지 메었더니
어깨가 뻐근하게 저려온다.
벌 한방 쏘이고 나니 두려움이 앞서 모기 퇴치용 스프레이를 찾으니
배낭에 없다.
잘 챙긴다고 한 것이 그만 빠져버린 것
늘 신경을 쓴다 하여도 더러는 잊고 오는 물건들이 있으니
산행 전에는 늘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연고를 바르고 배낭을 다시 메고 일행들의 뒤를 쫓는데
맞은 편에서 풍경소리님이 되돌아 오신다.
가현산 오르시는 중에 썬그라스를 잊어버리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되돌아 가시는 길이시란다.
휀스가 끝나는 지점 능선봉 위에 올라서서..(10;04)
가현산에서 가현고개 너머 우측으로
지난 구간에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본다.
국사봉이 우뚝 솟아 보이고,
그 앞에 상봉이 조망되며
상봉 우측 공원묘지 뒤쪽으로는 스테이트 월셔C.C와
Q헴튼C.C가 펼쳐진다.
가현산에서 정맥능선을 따라
아파트 형식의 납골당이 이어져 내려오고..
공원묘원을 벗어나 작은 오르내림의 연속인
달기봉을 향해 가는 길에 갈림길을 만난다.
좌측 넓은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향한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표지기 두장이 길을 안내한다.
계단으로 내렸다가 다시 계단으로 오르막이 이어지는
깊은 안부를 지나고..
첫번째 능선봉에서 썬그라스 찾으러 가신
풍경소리님 부부를 기다리는 중..
15분정도를 기다리니 공원묘원에서 식사 하시던
은빛대장님과 일행님들이
풍경소리님 부부와 함께 오신다.
반갑게도 썬그라스를 찾아 가지고 오시는 중이시란다.
3분후 송전탑을 지나고..
숲으로 살짝 올랐다 내려서는 길은 넓은 임도로 이어진다.
임도를 따라 200여m 진행 후엔 우측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달기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임도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잠시 올라서면
체력단련장이 나오고,
내려서는 내리막길 중간엔 두개의 이정목이 서있다.
우측으로 MBC드라미아와 황새울관광농원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이다.
갈림삼거리(용인문화동산.안말삼거리)에서
표지기들이 많이 걸려있는 방향으로 직진하여..
내려선 사거리안부에서 우측으로 나가면
MBC드라미아로 이어지고
좌측으로 나가면 가현고개로 오르는 70번군도와 이어진다.
이곳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통나무계단을 내려와 달기봉으로 향하는 오르막길도
통나무계단으로 이어진다.
돌아보는 안부사거리엔
모처럼 시원한 골바람을 좀 더 쏘이고자
풍경소리님과 엄태일님이 머물러 계시고..(10;45)
12분을 올라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2분 더 치고 오르면
달기봉 정상에 서게 된다.(10;59)
달기봉정상에서 귀천님 힘내라시며..ㅎㅎ
이후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엔
"산너울3길"이란 표지가 붙어있다.
이후에도 같은 표지를 몇개 더 만날 수 있는데
산너울길이란 용인시에서 공모한
명품 도보길의 당선작으로 뽑힌 이름이다.
용인시에서는 최근 이같이 3개의 너울길을 개방하였는데,
‘산너울 길’은 용인시의 나지막한 산이 마치 물결과 같이 보이는 모습에서
착안한 명칭이라고 한다.
너울길은 산 정상으로 향해 개설된 일반 등산로와는 달리
유적지와 종교성지, 농촌체험마을 등을 차례로 연결해 놓은 숲속 산책로로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산책길이다.
개방되는 3개 코스 가운데 부아산너울길은
용인중앙공원 현충탑과 팔각정 등을 연계한 호국 도보길이며,
민속촌너울길은 박물관과 관광지를 연계한 문화예술 도보길이다.
또 대지산너울길은
역사와 생태자연 등을 연계한 체험 도보길로
충렬서원과 문수산, 대지산 등을 경유한다.
구봉산 오름길은 길게 오르며 로프구간이다.
급히 오르지 않으니 그나마 오를만한 오름길이다.
급한 마음의 부담이 없으니
땀을 좀 흘려도 아름다운 길이다.
중간 쯤엔 이런 바위길도 지나게 되고,
로프지대를 한참 오르고 나니
달기봉에서 1.1Km 지점 능선봉엔
이정표가 서있다.
일행님들이 휴식을 취하기에
5분간 휴식을 취한 후..(11;29)
구봉산을 향해 2분 더 진행하니
삼각점이 있는 469m봉이다.(11;37)
삼각점봉에서 내리는 중간엔
공터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이 자리가 산불감시초소가 있던 자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은 산불감시초소가 안보여..(11;37)
이어지는 내림길은 통나무계단으로 이어지고..
계속해서 또 한번 통나무계단길을 이어 내린다.
이후 안부를 거쳐 살짝 올라서 지나는 능선 위엔
노린재나무가 무더기로 꽃을 피웠다.
노린재 꽃향기를 맡으며 지나는 길..(11;42)
계속하여 지나는 능선은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렸다가..(11;44)
3분 정도만 더 오르면 구봉산 정상이다.
구봉산 정상은 나무데크로 전망대가 세워져 있고,
정상 오르는 계단길 아래는 한남정맥 안내도가 서있다.
계단 바로 앞 나무 밑에는 "산너울3길"이란 푯말이 붙어있다.
세심하게 신경써서 잘 세운다고 세운 안내판이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다.
글씨가 바래 알아보기 힘든 이정표..
구봉산(465.1m)정상에서..
이중환의 『택리지』 경기편 앞부분을 보면
"죽산 남쪽에 구봉산이 있는데 봉우리로 둘러싸여 산성을 만들만 했다."
용인의 구봉산 설명이 잘못 기술되어 있는 것으로
죽산에서 바라보면 서북쪽에 9개의 봉우리가
오르락 내리락이며 이어진다.
다행히도 구봉산 정상에 쉬고 있는 산객이 한분 계셔서
12명이 한꺼번에 기념촬영하는 영광을..
구봉산정상에서 서쪽방향으로 내려다 보이는
태영컨트리클럽과 원삼면 목신리 일대..
구봉산에서 서북방향으로 이어지는 태영C.C 전경..
동남쪽방향으로는 황새울관광농원이
바로 아래로 MBC드라미아가 넓게 펼쳐지고
달기봉 방향으로는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용인문화동산이 자리한다.
뒤쪽으로 뾰족하니 솟아보이는 산은
국사봉방향에서 능선이 좌측으로 돌아나가며
우측으로 계속 조망되던 조비산(294.5m)이
주변에 산이 없어 유별나게 눈에 띄며 꽤나 높게 보인다.
조비산은 용인 팔경에 드는 산으로
용인의 산중에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꼽힌다.
앞의 능선에서 우측(사진에서 우측)으로는
정배산(279.8m)이 조망된다.
뿌연 가운데도 제법 운치있는 조망을 제공한다.
진행해야 될 방향의 능선을 배경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올랐기에 시장기는 없었지만
등에 진 봇짐이 무거워
배가 불뚝 나오도록 점심을 챙겨 먹는다.
이러다 정말 배불뚝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정맥 종주한다고 너무 많이 먹어
정말정말 걱정..ㅋㅋ
전망대가 만들어진 건 오래지 않은 듯 보인다.
예전 산행후기를 보면 정상표지석이 길게 서있더니
삼각점과 함께 잘도 짜맞추어 놓았다.
신발까지 벗고 앉아 밥을 먹어보기는
정맥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은빛대장님은 새벽길을 달려오시느라 이슬을 신발 속에 가득
받고와 햇볕에 말리시느라 벗으시고..
그렇게 해서 35분의 휴식시간이 주어진 뒤
가야할 길을 가겠다고 나서는 중..
아무도 없는 텅텅 빈 구봉산 정상이 좋아 보여
다시 한번 정상석을 앞으로 뒤로 찍어보고..
구봉산에서 내려오는 길도
로프가 매어있다.
안부에서 무엇인가 자연학습을 한다 하였더니
산마넝쿨이 있어 들여다보는 중..
안부에서 다시 올라서면 쉼터가 조성되어 있는
능선봉을 지나고..
구봉산 정상에서 북쪽방향으로 둥글게 보이던 봉우리다.
다시 살짝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 우측엔
이정표가 서있다.
좌측으로 갈림길이 급하게 이어져 내리는 곳,
이 지점이 석술암산 갈림길이다.
무심히 지나치면 석술암산까지 거침없이 가버리는 곳,
석술암산까지는 1.5Km 거리로
왕복 3Km 거리다.
앞서 가던 일행들이 기운이 남아돌았는지 그쪽 방향으로 냅다
달려가기에,, <알바주의지점>
난 모르오~
힘 없는 난 두창리 방향으로 그냥 가리다~~ㅋㅋ..
살피지 않으면 주렁주렁 걸려있는 표지기들도
눈에 안들어와서 능선 좋은 석술암산 방향으로 go~ go~~
왜들 웃으시는디요?
박꽃향기 떼놓고 석술암산까지 다녀오시니
어째 좀 미안하시던가요?
삿갓님 표정 좀 보시라요?ㅋㅋ..
석술암산 정상엔 허물어진 돌탑이 있다 들었는데..
다시 방향을 바꾸어 두창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중..
석술암산까지 다녀온 기념으로 단체사진까지 찍고 가는 중이라오.
이 길이 참 편해 보이더만..
석술암산에서 5분 진행하니 또 다시 이정표가 나오는데
이 곳에선 우측으로 갈림길이 나있다.
골안마을 갈림길인 이 지점에서는 매봉재(두창리)방향으로 직진..
매봉재(두창리) 2.3Km..
두창저수지 모습이다. 거기까지는 안갔지만..
그후 또 다시 쉼터가 마련되어 있는 넓은 공터에서는
급우틀하여 내리막길로 이어간다.(12;44)
우틀하여 내려오는 길을 뒤돌아보고..
2분후 또 다시 나타난 삼거리는 둥지박물관 갈림길이다.
등로 좌측엔 시멘트로 지어진 움막이 있다.
사람이 살던 집 같지는 않고 예비군 초소가 아니었을까
짐작을 하면서,
진행은 우측방향인 두창저수지 방향이다.(12;47)
좌측으로는 둥지박물관 방향으로 가는 길인데
둥지박물관은 구봉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우리시대의 생활사를 간직한 박물관으로
지난 날의 추억을 불러오기 좋은 생활 물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곳이다.
아이들이 둘러보면 재미있어 할 여행지이다.
만화전시관, 생활사전시관, 서예전시관 등으로 구성된
테마박물관으로 2개의 건물로 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곳에 비치된 물품들은
오래된 물건들이지만 아직까지 사용가능하다는 점이다.
관계자들이 관리를 잘 해 오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한번쯤 어린아이들 데리고 다녀올만한 곳이다.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는 1,000원이다.
먼 거릴 달려오셨으니 지치기도 하겠지만
한남정맥길에선 모두 여유로움이 있어 좋다.
갈림길에서 뒤돌아 보니..ㅎㅎ
갈림길에서 3분후, 운동기구가 있는 쉼터를 지나며..(12;51)
이어서 2분후엔 이런 이정표를 지나고..(12;53)
10분후엔 갈림길이 있는 282.7m봉에 닿게 되는데,
오르막길을 오르는 모습이다.
이정표에 둥지골갈림봉에서 두창리가 1.0Km라 되어있어
잠시 착각을 한다.
거리표시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아직 두창리고개까지는 꽤 남아있다.
두창리고개 내려가는 마지막 이정표인가 했더니 정자를 지나고
얼마후 또 하나의 같은 이정표를 만나게 되고
그후 두창고개 내리기 직전에 다시 또 하나를 만나게 된다.(13;05)
282.7m봉에서 급우틀하여 완만하게 내리막길을 내리면
움푹 들어간 안부에 두창저수지갈림길(문사지고개)이 나온다.
우측 갈림길로 나가면 두창저수지가 나오고
한남정맥은 매봉재방향으로 직진한다.(13;12)
두창저수지갈림길에서 5분만 오르면
정자가 있는 휴식터이다.
이곳엔 운동기구들도 있어 동네사람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잠시 멈추어섰는데 눈으로 어찌나 땀이 쏟아져 들어오던지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이다.
동네 아주머니 두분이 산책을 나오셨다가 쉬고 계셨는데
우리 일행들이 물이 모자랐던지
아주머니들께 물을 얻어 먹고 있다.
설악선녀님은 지니고 계시던 빵과 물을 교환하여..ㅎㅎ
1리터들이 우유병에 하나가득 그대로 물을 지니고 계시다가
쓸일이 없었는데 잘 되었다며 선뜻 내어주시던
내고장 용인 아주머니들..ㅋㅋ
잠시 머물렀다 내려오니 그 문제의 이정표가 나온다.
이정표 그대로 믿고 진행하자면 두창리 방향으로 직진하여 내리기 쉬울 지점이다.
예전에는 정맥꾼들 거의가 이 지점에서는
알바를 하던 알바주의지점이다.
일단은 문수봉방향으로 급히 좌틀하였다가 이내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 정글속으로 틀어 진행해야 한다.
그동안 많이 알려졌는지 길 좋은 좌측방향으로는 누군가 나뭇가지로 막아놓고
우측방향에는 수많은 표지기들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13;21)
잡목들과 넝쿨들이 어찌나 잘 엉키어 길을 메우고 있던지
엄태일님은 두 손으로 숲을 헤치기가 귀찮으셨던지
아예 두 팔을 위로 치켜들고는 밀어부치신다.ㅎㅎ
뒤돌아 보니 맨 뒤에 오시는 귀천님께서는
번쩍 쳐드신 두 손만 보이시고..ㅋㅋ
잠시 잡목들과 한판 씨름을 하고 나서면
좌측으로 우거진 숲에 구멍이 뻥뚫린 곳에선
멀리 가야할 방향의 극동기상연구센타의 둥근 안테나들이 보인다.
잡목숲에서 빠져나와 5분 진행하면
안부로 내리는 입구에 수많은 표지기들이 주렁주렁 걸려있고,
진행은 좌측의 검은망이 울타리를 두르고 있는
임산물 재배지 방향으로 틀어나간다.(13;31)
이후 두창고개까지는 5분이면 닿을 거리이다.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고 사람들 소리가 들리기는 하나
우측으로 직진하여 그대로 돌아 나간다.
두창고개로 내리기 전에 살짝 올라치는 능선봉에서
잠시 후 두창고개 표지판과 이정표를 만나게 되는데,
우측으로 진행하면 이내 두창고개로 내려서게 된다.
이정표의 방향표시가 이해하기 어렵게 표시되어 있다.
드디어 두창리고개가 보이고
진행은 맞은 편 극동기상연구소 방향의 바리게이트를 넘어 진행한다.
두창리는 옛 죽산군 원삼면의 두촌과 창동에서
각각 한자씩 따온 지명이다.
두촌은 옛날 두견새가 많이 오는 마을이어서 불리어졌던 이름이고
창동은 옛날 사창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두창리 고개에 내려서면 좌틀하였다가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극동기상연구소 방향으로 진행한다.
두창고개로 내려오는 모습을
엄태일님께서..
두창리고개는 좌측 원삼면과 우측 백암면을 잇는 고개로
326번 지방도가 지난다.
좌측방향으로 326번도로를 따라도 오늘 목적지인 미리내고개에 닿을 수가 있겠지만
우리는 정맥길을 가는 사람이기에 극동기상연구소 방향으로 진행한다.
사진에 박꽃향기 표정이 왜 그러냐고요?
드물게 지나는 승용차 한대가
자신들 앞을 가로지른 것도 아닌데
계속 빵빵거리며 경고음을 내며 오기에
"이 정도도 무단횡단이라고 길 가는 사람께
시건방을 떠시오?
누군 운전 안하고 다니나?"ㅋㅋ..
가끔씩 운전하고 지나는 사람들은
우리들 이런 모습들을 어떻게 생각할까
의문을 가져 보기도 한다.
6차선 고속국도도 아무렇지 않게 무단횡단하는 정맥꾼들인데
남들 눈에는 이런 모습이 미친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정맥꾼들 도로 무단횡단 하다 사고 쳤다는 이야기는
안나오는 걸 보면 조심은 하고 다니는 걸로 보이는데..?
아무튼 안전산행을 위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여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가능하면 건널목을 이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나
사정이 용이치 못할 때에는
운전하는 사람들께도 배려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늘진 임도를 한참 따르다보면
극동기상연구소 담장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우측길로 직진하여 나간다.
마루금이라고는 하나 해발 33m밖에 안되는 평지와 다름없는 포장도로이다 보니
해발이란 말을 쓰기는 좀 무색하지만
산자분수령이란 높낮이를 가리는 말이 아니니
그래도 물가르기를 하는 정맥마루금임에는 틀림 없을 것이다.
직원들의 자동차는 아닐 것이고
진행하고 있는 포장임도 우측으로 큰 공사를 하고 있으니
공사장 인부들의 차인 것으로 보인다.
경비초소와 방범용 카메라가 삼엄하게 눈을 부라리고 있는
극동기상연구소 정문이다.
정문에는 'KS업무시설현장'이란 문패가 달려있다.
이 극동기상연구소는 실제로는 무궁화위성관제센타로
무궁화 위성체 감시 및 관리, 위성 운용 및 분석, 지상 방비 운용, 위성망 및 중계기 운용등의
사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 주관제센타가 있고
대전에 부관제센타가 있다.[디지털 용인문화대전 참조]
13;45, 극동기상연구소의 정문을 지나며..
극동기상연구소를 지나는 정맥꾼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나라 인공위성을 관리하는 곳이라는 말도 있고
한편엔 또 다른 말이 있으니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 곳이라고는 언급하기가 좀 그렇다.
이름 그대로 극동기상연구소 앞을 지나고
길게 이어지는 담장 너머로 둥근 안테나를 넘겨보며
담장이 좌측으로 돌아나가는 지점까지 일단 가본다.
박꽃향기 숲길에서 볼일 보고 오는 사이
일행들은 앞에서 사라져버리고..ㅎㅎ
극동기상연구소를 지나 황토재를 향해가며
돌아보는 공사장 너머로
우리가 지나온 능선이 조망된다.
몽글몽글 9개의 봉우리가 산너울을 이룬
구봉산 능선을 뒤돌아 보고..
한남정맥 이정표가 서있는 황토재의 담장코너에서
담장을 따라돌며 급좌틀하여
일단은 담장이 끝나는 지점까지 또다시 진행한다.
황토재에 서있는 이정표다.
우측으로는 농장으로 가는 임도가 이어지고..(13;49)
앞에 보이는 안테나를 지나고 하나 더 바라보며 진행한다.
관제센타 담장이 끝나는 지점을 지나며 좌측으로 지나온 길이 조망된다.
담장 안으로는 대형접시안테나에 태극무늬가 그려져 있고
'무궁화위성'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담장을 따라 파헤쳐 놓았는데 수로 공사를 하는지
아니면 담장을 다시 쌓는 것인지?
오다 생각하니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저씨가
진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시던데
그때 '무슨 공사를 하느냐?' 물어나 볼것을
괜히 궁금증이 일어..ㅎㅎ
우측으로 벌판을 바라보며 걸으니 뜨겁기는 해도
일단은 눈앞이 시원해서 좋다.
전방에 가야할 정맥 마루금이 너울너울 낮은 파도를 치고 있고
대충 어떻게 진행을 해야 할지 감을 잡는다.
쭈~욱 포장임도를 따르다가 이정표가 서있는 이 지점에서
문수봉방향의 화살표는 좀 못믿을 방향표시이고
오거리인 이 지점에서는 우측으로 급우틀하여 검은망이 씌워진
하우스단지 방향으로 진행한다.
실제로는 오거리로 보이는 이 갈림길은
원 도로는 삼거리인 것으로 보이나 중간에 농로로 이용되는
비로장도로가 두개 더 나있어
오거리라 하였지만
포장도로로 보면 삼거리이다.
이 지점이 중재삼거리로 보인다.
하우스 안에는 표고버섯들이 자라고 있다.
표고버섯 재배단지를 지나며..(13;56)
뒤돌아보는 중재삼거리(오거리갈림길)의 모습..
이후 3-4분 후면 가재월리사거리를 지나게 되는데,
가재월리사거리에서는 직진하여 도로를 건넌다.
사거리에는 반사경과 '원삼제일교회' 입간판이 서있다.
사거리에서 좌측으로는 원삼면사무소가
우측으로는 원삼면 가재월리가 위치한다.
진행하는 포장도로 좌측으로는 공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고,
공장건물을 지나칠 때쯤 우측으로는 패밀리승마목장 간판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목장으로 들어가는 임도가 갈리고..(14;02)
구봉산 이후로는 도로를 따르는 일이 많지만
중간에 다시 능선으로 진입하여 오르락내리막이며
마루금을 잇게 된다.
말 그대로 비산비야(非山非野)인 곳을 진행한다.
잠시 후 검은망 울타리가 끝나는 지점에 폐타이어가 쌓여있고,
마루금은 그 지점에서 좌측으로 오르게 되어있는데
막혀 있으니 조금 더 진행하여 보면
앞에 전봇대가 보이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능선을 향해 오른
길의 흔적이 보인다.
입구에 표지기 두장이 걸려있다.
앞서 오른 엄태일님의 경기하나 표지기가 걸려있다.
내 키만큼 훌쩍 자란 개당귀 옆을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이곳부터는 다시 우거진 수풀속을 헤쳐가야 하는
고통이 따른다.(14;04)
3분밖에 안걸린 시간인데 그 시간이 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앞도 안보이는 잡목숲을 꾸부정한 자세로 가시에 찔리면서
움츠리고 능선을 따라 오르니
봉긋 솟아있는 돌무지가 앞을 막는다.
잔돌이 쌓여있는 이곳에 오르니 오른쪽으로 원삼제일교회의
빨간지붕과 십자가가 보이고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뒤돌아 본 정맥마루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쪽 마루금으로 들지 않고
포장도로를 따라 원삼제일교회 앞에까지 그대로 가서
좌측 능선방향으로 진행하여 정맥에 합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게 하면 힘은 안들겠지만..ㅠㅠ
돌무지를 내려서면 좌측에서 들어오는 비포장임도가 있는데
앞에 검은 울타리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한다.
5분정도 비포장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보면
문수봉 5.4Km의 이정표가 좌측 숲쪽으로 서있다.
이정표 뒤 숲길로 다시 진입한다.(14;13)
잠시 숲을 통과하면 다시 포장도로와 만나지고,
우측으로 몇발짝 이동하다 보면 좌측으로 임도가 갈라지는 지점
전봇대에 둥근 스틱커가 붙어있다.
정맥표지 스틱커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갈라지는 임도를 따라 잠시 이동하여
우측 절개지를 타고 다시 능선으로 진입한다.
입구에 표지기 몇장이 걸려있다.
가재월리사거리에서 진행하여 능선으로 진입하지 않고
원삼제일교회방향으로 도로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 도로를 따라 들어와 이 지점에서 정맥능선에 합류하면 될 것 같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해 보이는 잡목숲의 오솔길을 따르는 마루금은
우측에 가재월리를 두고 둥글게 돌아나간다.
우측으로 원삼제일교회와 목장건물이 보인다.
갈림길에서 마루금을 따라 5-6분 진행한 후엔
움푹 패인 등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고,(14;21)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는 지점에서 우측으로는 묘지가 보이는데
그곳엔 승용차 한대가 세워져 있고
아저씨 한분이 벌초를 하는지 묘지를 가꾸고 있다.(14;22)
이어서 2분후 우측으로 목장건물이 보이고 초지가 보인다.
사료로 쓰일 옥수수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전형적인 시골의
평화스런 여름풍경이다.
갑자기 눈의 피로감을 덜어주는 시원스런 색채감..(14;24)
그후 평지와 다름없는 평평한 등로를 따르다가
등로가 우측으로 급하게 휘어나가는 모퉁이 좌측으로는
무명묘 2기가 자리하고,(14;25)
좌측으로 나뭇잎들 사이로 언뜻언뜻 동네가 내다 보이면서
3분 더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우측으로 갈리는 길은 농원으로 내리는 길이다.
길 입구에서 하우스 단지가 보인다.
갈림길에서는 좌측길로 직진한다.(14;28)
4분 더 진행하여 숲에서 나가니
한참동안 못보았던 일행들이 도로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
문수봉 4.2Km 이정표가 서있는 지점이다.
잠시후 임도는 사거리와 만나게 되는데,
사거리에서는 앞에 공장건물을 싸고도는 능선길로 오른다.
사거리에서 급경사지로 오르는 등로 우측엔
"농작물 두릅에 손대지 마시오. 주인백"이란 나무푯말이
참나무기둥에 부착되어 있다.
잠시 후 능선에 올라서서는 공장의 뒤를 돌아 진행하게 되는데,(14;34)
진행방향으로 문수봉과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을
잠시 조망하며 진행하게 된다.(14;36)
공장건물을 돌아나가 5분후 살짝 올라선 능선에선
앞서 오른 일행들이 탐스런 영지버섯 몇개를 따서
손에 들고 있다.
그렇잖아도 심심하던 차에 흐뭇한 광경이다.(14;41)
영지버섯..
그뒤로 2분후 등로 우측에 서있는 이정표이다.
문수봉이 3.7Km라는..
이정표 뒤로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을 내다보며 좌측으로 휘어 나가는
숲길에서 벗어나면
눈앞이 시원해지면서 정면에 문수봉 능선이 바라보인다.
그 능선을 목표로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풀밭으로 좌틀하여 진행한다.
잠시 후 우측으로 틀어나가는 길의 흔적을 따르면
잠시후 비포장임도를 만나게 되고,
우측으로 조금 더 진행하면
포장도로에 닿게 된다.
포장도로에서 좌측으로 틀어 진행하다 보면,(14;45)
우측으로 목장건물로 이어지는 철대문이 나온다.
그곳에는 제철을 만난 산개나리가 죽은깨 바글바글한 얼굴로
미소짓고 있다.
금방 피어난 듯 깨끗한 모습의 능소화를 바라보며 좀 더 진행하면,
포장임도가 우측으로 휘어나가는 지점에
등로 좌측으로 반사경이 서있다.
한남정맥은 포장임도를 버리고 풀숲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로 직진한다.(14;47)
잠시 숲에서 빠져나가면 석물공장으로 보이는 건물이
우측으로 자리하고 앞에는 석재가 쌓여있다.
이 지점에서는 직진방향의 숲길로 진행한다.(14;48)
2분후엔 연안김씨합동제단에 닿고
제단을 좌측으로 두고 우측으로 휘어나가는 임도를 따르면
2차선 지방도로인 17번 군도에 도착한다.
이 지점에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57번 지방도로와 17번도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한남정맥길은
연안김씨합동제단에서 나가 직진방향에
시멘트포장임도로 나가는 길이 열려있다.
입구에는 장수목장 표지석이 서있고 우측으로는
용인테마파크 1.7Km가 제시된 이정표가 서있다.
이 지점에서는 도로간판을 우측에 두고 길을 건너
직진방향에 장수목장 옆길로 진행하는데,
정작 있어야 할 것같은 표지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인근 부동산 소유주들이 사유지를 밟고 지나는 정맥꾼들을
귀찮게 생각하여 모두 제거해 버린 듯..
옆에 글씨는 지워져 흐릿해졌으나 한남정맥 이정목을 지표삼아
진행한다.
장수농원 표지석..(14;51)
2분후 갈림길에서는 직진방향에 보이는 공장으로 진입한다.(14;53)
공장 마당으로 들어서면
화공약품 드럼통(폴리부텐)이 야적되어 있는 곳에서
개장 뒤에 보이는 냉각탑 두개 있는 곳으로 정맥은 이어진다.
포인터(pointer) 두마리가 달려들 듯이 짖어댄다.
그러나 훈련견으로 보이는 포인터들은 짖어대기만 하고
사람을 해하려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유지를 통과하려니 미안한 마음도 들고하여 얼른
건물 옆으로 들어가 냉각탑이 있는 좌측방향으로 돌아 나간다.
공장을 돌아나가면 다시 임도와 만나지고
임도에서 우틀하면 좌측 아래로는 묘지가 자리한다.
공장건물 반대방향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직진하여 나간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보면 3분후엔 좌측으로 과수원이 나오면서
과수원집이 나오고,
잠시후 5거리인 내동마을갈림길에 닿게 된다.
이 지점에도 우측으로 57번지방도가 지나며
도로 우측으로는 내동마을 표지판이 서있다.
5거리인 이 지점에서는 좌측으로 급좌틀하여 포장임도를 따르다
잠시 후 우측 마루금으로 올라서서 진행한다.
입구에 표지기 몇개가 보인다.
오거리에서 좌틀하여 잠시 후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서 진행하는데..
능선 우측으로 지나는 2차선 아스팔트(57번지방도)를 따르면
용인시 농업기술센타에서 운영하는 연꽃.꽃창포단지가 펼쳐진다.
지금쯤 연꽃이 한창일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주중에 잠시 틈을 내어 다시 다녀가기로 하고
능선을 따른다.
진행하는 마루금에서 도로 옆 나무 위로 용인농업기술센타가 보인다.
오늘은 그곳에서 산행을 마무리 하게 된다.
능선으로 다시 올라서면 마루금 우측으로 묘지가 자리하고
잠시 올라서서 정맥능선은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휘돌아나간다.
완만한 능선을 5-6분간 진행하여 나가면
숲에 구멍이 둟린 듯 눈앞에 전원주택마을이 들어오고
낮은 절개지를 내려서면
전원주택 담장 밑으로 길의 흔적이 따른다.
담장을 따라 진행하다 담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급틀하여 주택의 대문 앞을 지난다.
빨간 우체통이 있는 정원이 넓은 주택 앞을 지나
시멘트포장도로로 이어지는 마을길까지 진행하여
우측으로 돌아나가면..
좌측으로는 아담하고 예쁜 둥근 모양의 황토집이 그림처럼 앉아있고
우측으로는 57번도로 건너 용인농업기술센타가 바라보인다.
57번 도로인 미리내고개(안골고개) 나가는 길에
문수봉으로 오르는 능선을 마주보며 우측 도로로 내려서면
도로건너 정면으로 여러가지 입간판들이 즐비하다.
이 고개는 이동면과 안성시 안성면을 이어주는 고개로
정맥은 좌측방향에 절개지를 오르면서 이어진다.
문수봉 입구에는 이정표가 서있고
급경사로 오르는 오르막길엔 로프가 매어있다.
이 고개를 미리내고개라 하는 사람도 있고 안골고개라 이르는 사람도 있다.
이는 주변에 미리내마을과 안골마을이 있어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보며
정확한 고개이름은 알 수 없고
박꽃향기는 고당리 57번지방도로로 마무리를 짓는다.
미리내는 순수한 우리말로 은하수라는 뜻으로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본래 천주고 박해시대의
교우촌이다.
1846년의 병오박해 때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신부의
시신이 순교한지 40일만에 비밀리에 거두어져
용산 뒤편의 와서(왜고개)에 안장되었다가 미리내로 이장되면서부터
순교 사적지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천주교 신자라면 한번쯤은 누구나 다녀가는 곳으로
박꽃향기도 몇년전 다녀온 적이 있는 곳이다.
고당리 57번지방도로에서 한남정맥 2구간 산행을 종료하고
우측도로를 따라 좀 더 이동하여 용인시농업기술센터로 들어가
화장실에서 물을 이용하여 씻고 옷을 갈아 입은 후
용인버스터미널로 이동한다.
근처에서 일행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며
시원한 칡냉면으로 저녁식사를 대신하고
10번 버스를 이용하여 신갈까지..
첫댓글 박꽃향기언니 생신 축하드려요~
한남정맥길 후기를 읽으면서 참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글을 읽어 내려가면 갈수록 이 길을 걸었던게 제가 아닌가 할정도로 착각을 들게하고,,
뒤따라 오는 한남정맥길 산우님들의 발자국에도 큰 도움으로 남을 귀하고 소중한 자료입니다.
산아름님의 비보소식에 너무많이 놀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좋은곳을 가셨을거예요..
누구나에게도 한치앞도 볼수없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오늘... 지금...
많이 사랑하고 많이 나누면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해보게 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울 팬더님 생일은 어제 지나버렸네요.
행복한 하루 보내셨는지?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리고
그래요 우리 많이 사랑하고 삽시다.
내일 어찌 될지 모를 오늘의 삶
한치도 어긋남이 없이 살뜰하게 챙기고
아끼면서..
다음 산행에 뵙시다~~^^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날.. 향기님의 좋은 글을 읽어봅니다..
산행얘기는 뒤로 접어두고,,
산을 좋아하던 사람이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행일까 불행일까를 생각해 봅니다..
본인에게는 작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죽음이겠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이나,, 우리같은 산행동료들에게는 너무나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비보를 접하고 산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봅니다. 예전에 제주도 바다낚시에서 동료가 큰파도에 실종된후 낚시를 접었던 기억이 떠올라서요..
하지만, 산아름님께서는 우리일행들에게 무리하지 않는 무모하지 않은 산행을 하라는 경고를 주신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고인이 평소에 알려주셨던 종주산행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 또 고인이 못다 이룬 정맥길을,, 고인을 대신해서
꼭 완주한 후에 고인께 머리숙여 애도의 술잔을 올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고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함께 9정맥을 완주해 봅시다..
항상 인자하게 후배들을 대해주시던 고인의 영전에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산아름님.. 이제는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옵소서..
휴가는 잘 다녀오셨겠죠?
멋진 곳에서 지내셨으니 행복한 시간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전 아직도 밤잠을 못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도 그렇게 떠나는 건
누구나 원치 않을 겁니다.
죽엄 그 자체보다도 다리에 부상 입고 꼼짝 못한 채
눈을 감기까지 그 고통이 자꾸 떠올라
견디기 어렵습니다.
순간에 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복이란 생각이 듭니다.
휴가 다녀오셔서 업무에 드시려면
오늘은 바삐 지나셔야 되겠습니다.
무더위에 몸건강히 잘 지내시고
다음 산행길에 뵙겠습니다~~^^
함께 하시는 한남정맥길의 산우님들 모습을 보니
반갑고 보고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개발되어 뭉개진 산줄기를 보면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정맥길에 맛난 추어탕, 해장국집등이 있어 나름 입이 즐거울겁니다.
오늘쯤은 한남정맥 끝나셨을라나?^^
스,포,츠,토,토 프~로~토 온ㄹㅏ인ㅂㅔ팅
K U S 8 5 5 . 콤 (추.천.인1234)
회,원,가,입,시 3000원,지,급, 매.일 첫.충.전5%추/가/지/급.
올킬,올다이,이벤트중입니다. 단/폴(50)~모/바/일/가/능
365일 연/중/무/휴 24시간(해/외운/영) 온라인 고/객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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