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과 롯 13:1~9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가나안 땅에 대한 하나님 약속 13:10~18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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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아브람이 아내와 소유와 롯과 함께 벧엘에 이릅니다. 아브람과 롯이 거한 벧엘과 아이 사이의 땅이 넉넉하지 않아서 양쪽 목자가 다툽니다. 이에 롯은 물이 넉넉한 요단 지역을 먼저 택해 소돔까지 이릅니다.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동서남북으로 보이는 모든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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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3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아브람이 아내와 롯과 함께 애굽에서 나와 네게브로 올라오다 벧엘에, 처음 제단 쌓은 곳,
처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자리에 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람이지만 그 약속의 위대함이나 그 능력을 알지 못하니까 그의 연약함이 반응하여
기근을 만나자 애굽으로 가서 아내를 팔고 바로 왕에게 재산을 많이 받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옵니다
약속의 땅,하나님을 예배 드린 처음 자리로 다시 온 아브람입니다
다시 아브람이 그 자리에 오게 된 것은 바로 왕의 쫒아냄이 있었기에 온 것입니다
아브람이 나선 것 아니라.
바로 왕이 사래로 인한 지참금을 돌려 받아도 시원찮을텐데 오히려 재산을 더 주면서 아브람을 쫒아낸 것입니다
아브람이 아내 일을 겪으면서 이 곳은 살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가야겠다면서 애굽을 나온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밀려 누군가의 강력한 힘에 의해 쫒겨나고 밀려난 자리가 바로 하나님께서 다시 나를 양육하시고자 하는 곳,바로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약속의 자녀를 애굽에서 밀어 내게 하사 약속의 땅으로 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하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어려서부터 말씀을 듣고 자랐어도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세상 살아보니 하나님 약속 보다 세상이 더 풍부한 것처럼 보여서 세상으로 도망 가 비열하고 속이고 성공하기 위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 하며
살았는데 갑자기 해고 당하고 모함 당하고 밀려 나는 일들을 만난다든가,기근은 사라지고 행복해 보여서
결혼하였는데 말도 안되는 일들로 무시 구박을 당하는, 고난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밀침을 당할 때
결국 나를 약속의 하나님께서 다시 교회당으로 말씀의 구조 안으로 밀어 넣으시는 손길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가고 싶은 세상의 멋드러진 곳 ,내가 차지 하고 싶은 세상 기준의 성공한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기 백성을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게 하시고 반드시 빼내셔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시기에 날마다 출애굽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되었는가 하면 되었다함없이 다시 세상을 사랑하는 나를 예배의 자리로 돌려 놓으시고 돌려 놓으시고 ,
절대 지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큰 민족이 되게하고 창대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입니다
애굽에서 돌아온 아브람이 간 곳은 처음 제단을 쌓은 자리, 처음 위치로입니다
처음으로, 다시, 다시, 다시 돌아오게 하시며 아브람을 복의 사람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미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셨는데 아직 부족하니까 다시 처음으로 ,훈련 다시 훈련을 하면서
세밀하게 왕같은 제사장이 되도록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바로에게 받은 재산이 많아 그 땅에서 같이 동거하기 부족하여 조카 롯과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좋은 땅 선택할 기회를 줍니다
아브람이 애굽 사건을 겪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복의 사람으로 복을 흘려 보내는 자로 조금 성장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크다는 것 알면 알 수록 내주게 되어있습니다
손해 보더라도 양보하게 되어있습니다
내가 혹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역할을 하였다면 전적인 하나님의 솜씨입니다
세밀하게 왕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길에 의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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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회복 (1-4절)
아브람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갈 때는 '내려갔다'고 했는데(12:10), 애굽에서 나올 때는 네게브가 같은 남쪽이어도 '올라갔다'고 표현한다. 이는 애굽에서 수치를 당한 아브람이 '회개하여 영적으로 회복되었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가나안으로 돌아왔어도 그곳엔 여전히 우상숭배와 부도덕이 만연하기에 그는 그 땅에서 살기가 싫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다시 제단을 쌓고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 가나안같이 힘든 환경에 있어도 애굽을 좋아하는 내 죄가 깨달아지니 가나안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날마다 나의 죄와 수치를 고백하며 겸손히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하나님이 넘치는 은혜로 영육을 회복시켜주신다.
●날마다 나의 죄와 수치를 고백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가? (4절)
2. 믿음의 선택 (5-13절)
그동안 서로 잘 지내던 아브람과 롯이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더 이상 동거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갈등의 중심에는 항상 '돈'이 있다. 돈이 없으면 화목할 수 있는 관계도 돈이 많아서 갈등 구조 속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아브람과 롯의 갈등을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이 보고 있다. 이처럼 믿지 않는 가족과 이웃이 내가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다 지켜보고 있기에 우리는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한다. 목초지와 물을 확보하는 것이 생명이 걸린 문제임에도 아브람은 눈에 보이는 것을 포기하고 롯에게 양보한다. 이는 그가 애굽에서 거짓말하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재물을 얻은 후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갈등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돈과 외모를 좇아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가,
아니면 내 죄를 보고 손해 보기로 작정하며 믿음의 선택을 하는가? (7-9절)
3. 하나님의 후대 (14-18절)
하나님은 믿음의 선택을 한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과 함께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비록 롯은 아브람을 떠났지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찾아와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롯처럼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바라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아브람은 재산도 잃고, 롯도 떠났지만 '친교'와 '동맹'이란 뜻의 헤브론에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간다. 오히려 돈이 없고 길이 없기에 더 깊은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 것이다.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동서남북으로 가는 곳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영적 자손을 얻게 하신다.
● 길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가?
눈앞에서 놓쳐버린 소돔만 바라보며 후회하고 있는가,
더 깊은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는가? (18절)
기도하기
돈과 명예만 따르던 저를 수치와 조롱의 사건을 통해 애굽 같은 세상 가치관에서 건져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앞에서 놓쳐버린 소돔을 바라보며 그리워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갈등 상황에서 아브람처럼 믿음의 선택을 하여 더 깊은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인도해주옵소서. 아멘.
오늘의 중보기도-
한국교회가 갈등 상황에서 믿음의 선택을 하여 동서남북으로 행하는 곳마다 영적 자손을 얻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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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도움
아브람은 그가 전에 처음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곳에 이릅니다. 그 곳에서 다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의 실수와 잘못이 있었음에도 큰 환난을 겪을 위기에서 건져주시고 재물까지 더하여 주신 분이 바로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여호와임을 깨달았습니다. 회복의 하나님께 드릴 것은 온전한 예배입니다. 아브람은 가족 간의 다툼 속에서 양보의 미덕으로 아랫사람을 배려한 넉넉한 사랑의 소유자입니다. 한쪽을 선택하라는 아브람의 말에 조카 롯은 주의 동산처럼 좋아보였던 풍요로운 지역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롯은 아브람에게 한 마디 감사의 말도 하지 않은 채 먼저 좋은 곳을 취해 나아갔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더 풍성한 약속을 얻었습니다. 아브람은 좋은 땅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한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길을 형통케 하시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 오늘의 기도
1. 우리의 교회가 언제나 같은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 되게 하소서.
2. 선택의 갈림길에서 다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는 우리 가정되게 하소서
가진 것이 없을 때는 잘 지내다가 소유가 많아지니 동거할 수 없었습니다. 목초지를 구하기 위해 목자들이 다투는 위의 이야기 중심에는 돈이 있습니다. 신앙을 잘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물질에 대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아브람은 손해를 보기로 작정 하고 주도적인 해결방법을 택합니다. 그는 오기로 양보하지 않았으며 양보를 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손해를 볼 작정을 하면 풀리지 않을 문제가 없습니다.
살아계신 나의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시험이 올 때마다 믿음으로 그 과정을 잘 통과하게 하옵소서. 갈등의 때에 세상과 다른 해결방식을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비록 내 인생이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살게 하시고,.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살게 하옵소서.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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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4절 약속을 잊고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람을, 풍부한 가축과 은금을 가지고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신 후에 처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고 자비로운 성품까지 경험하게 해주셨습니다. 아브람의 믿음은 일시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런 경험의 반복을 통해 성장하고 단련되었습니다.
14-18절 아브람에게 사방으로 보이는 모든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더불어 그 땅을 채울 티끌처럼 많은 후손도 주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롯이 비옥한 동쪽 땅을 택해 떠나고, 아브람이 척박한 가나안 땅에 남겨졌을 때 주신 것입니다. 자기 소유와 이익을 위해 롯과 경쟁하는 대신, 모든 것을 양보하고 하나님을 의탁한 아브람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업으로 소유한 이들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양보하고 배려하며 희생하는 일에 주저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녀에게 만물을 상속할 권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5-9절 아브람과 롯이 함께 거할 수 없을 만큼 재산의 규모가 커졌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신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아브람은 족장으로서의 권리가 있지만, 자신의 권리를 먼저 내려놓음으로(8,9절) 갈등과 다툼을 해소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복이 사람의 욕심 때문에 불화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화합을 위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내가 먼저 포기할 수 있는 권리는 무엇입니까?
10-13절 롯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같은 요단 근처의 동쪽 평야를 택합니다. 악은 늘 보기 좋고 탐스러운 모습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하와가 탐냈던 선악과의 모습이 그랬고, 지금 롯이 보는 소돔과 고모라의 땅이 그렇습니다. 겉은 풍요롭고 평화롭지만, 그 안에는 온갖 죄악을 행하는 부패한 도시였습니다. 눈에 보기 좋은 곳보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곳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실패하지 않습니다. 가정과 공동체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이 원칙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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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장에도 선택의 문제가 제시되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땅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행복해야 하는데, 땅의 문제로 분쟁의 불씨가 일어납니다. 롯은 갈대아 우르부터 아브라함과 동행했던 한 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유가 많아지자 한 땅에서 동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툼이 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헤어지기를 제안하며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는 선언을 합니다. 오늘 본문은 롯이 여호와의 동산과 같고 애굽 땅과 같은 요단 지역을 선택했다고 기록합니다. 요단 지역을 선택하는 자체가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여호와의 동산(에덴동산)과 같은 풍요로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회귀 본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단 지역이 에덴동산만이 아니라 애굽 땅과 같다는 표현입니다. 애굽 땅이라는 표현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할 때에 그곳에는 분명 세상의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롯이 요단 지역을 선택하고 그가 장막을 옮겨 소돔에 정착했다는 것입니다. 13절에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라는 지적은 롯이 정착한 곳이 여호와의 동산이 아니라 애굽 땅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줍니다. 롯의 실수는 요단 지역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점점 멀어져 세상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세상 적으로 요단 지역을 선택한 롯이 지혜로운 것 같이 보이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아브라함에게 복이 있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게 보이는 모든 땅을 그의 소유로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큰 무리를 이루게 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헤브론에 정착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방의 땅에서 약속의 땅에 거류하는 것처럼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선택한 그곳이 여호와의 동산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가까이 있습니까? 세상의 풍요를 쫓아 움직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있습니까? 우리가 거하는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동산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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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브람과 롯의 분쟁(13:1~7)
애굽에서 쓰라린 체험을 한 아브람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옵니다. 벧엘은 아브람이 처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제단을 쌓았던 곳입니다(12:8). 신앙의 추억이 담긴 벧엘에서 다시 하나님을 찾은 것은
아브람의 신앙이 회복되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곧 새로운 문제가 생깁니다. 아브람과 롯의 목자들이 물과 목초지를 확보하려고 다툰 것입니다.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거주하고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 사이의 갈등은 당시 상황이 어떠했음을 말해 주나요?
● 적용 질문
물질 문제로 가족 간에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 롯의 선택(13:8~13)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는 아브람을 너그러운 사람으로 만듭니다.
아브람은 평화를 위해 롯과 떨어져 살 것을 선택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롯에게 선택할 기회를 양보합니다. 그는 롯에게 왼쪽(북부)이든지,
오른쪽(남부)이든지 택해 약속의 땅 가나안을 공동으로 소유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롯은 비옥해 보이는 요단 강 건너편 동쪽을 선택합니다. 안목의 정욕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 묵상 질문
생존을 위해 타산적이었던 아브람이 관용하는 사람으로 변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평화로운 관계를 위해 양보할 일 혹은 관용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 아브람에게 약속된 땅(13:14~18)
아브람이 신앙의 모험을 하기로 결단하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십니다.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재천명하시며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아브람은 눈으로 보고 발로 누빈 땅을 차지하며,
그의 자손은 땅의 티끌처럼 셀 수 없이 번성할 것입니다.
과거에 아브람은 자신의 목숨을 위해 아내를 희생시켰지만, 지금은 롯이 어떤 땅을 선택하든지 개의치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어떤 결단을 내리든지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 묵상 질문
신앙의 길을 선택한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여러 번 확증해 주신 비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보기에 좋은 것보다 주님을 향한 올곧은 마음을 갖기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이나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잊은 롯의 어리석음을 반면교사 삼아, 어떤 상황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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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8 세상의 길과 믿음의 길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으로 만들기 위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 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12:1)
그러나 그 약속의 땅에 도착 했지만 기근이 왔을 때 먹고 살기 위하여 애굽에 내려 갔었다.
그곳에서 아브람은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하고 누이를 바로 왕에게 빼앗길 뻔하다가
하나님께서 바로의 집에 큰 재앙을 내려 수치를 당했지만 아내와 소유를 데리고 나왔다.
애굽에서 큰 수치를 당한 아브람은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온다.
애굽에서 남방으로 올라가니(1)
남방에서 벧엘에 이르러(3)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러(3)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
아브람이 처음 단을 쌓은 곳 벧엘 땅에 돌아왔다.(12:8)
지난 번에 애굽에 내려가서 실수한 것과 죄를 회개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다시 새롭게 출발을 한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4)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아브람의 입장에서는 참 많은 변화가 있는 말씀인 것 처럼 느껴진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는
기근이 오더라도 약속의 땅에 머물러야 했는데 경솔하게 애굽으로 옮긴 것에 대한 후회와
회개의 의미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가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기는 비참함과
대망신을 당한 일에 대한 수치스러움에 대한 회한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 왕의 손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구원해 주신 그 크신 은혜에 대한
감사도 멈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는
나를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고 나를 저주하는 자를 저주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네가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하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12:2)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뼈속 깊이 되세기는 뜨거운 감사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다시는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겠다는 헌신과 다짐의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
일이 꼬였을 때 처음의 장소로 돌아 가는 것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매우 중요하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아브람이 그렇게 했듯이..........
요즘은 정말 예배의 홍수 가운데 살고 있다.
그러나 오늘 아브람이 애굽에서 돌아와서 처음으로 단을 쌓은 장소에 돌아와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는 분명 아브람에게 매우 소중한 예배 였을 것이다.
일주일에 몇 번씩 예배를 하지만 모든 예배가 다 이렇게 소중한 예배는 아닌 것 같다.
갈대아 우르 땅에서 우상 숭배하고 있던 데라의 아들 아브람을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신 것은
가나안 땅에 와서 굶어 죽으라고 부르신 것이 아닐 것이다.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것이였다. 그러나 잠시 그 정체성을 잊어 버렸다.
허락도 없이 기근이 왔다고 애굽에 내려가서 큰 수치를 당하고 나서
다시 부르는 하나님의 이름은 분명히 달랐을 것이다.
이 때는 눈물도 있었고 헌신고 있었고 결단도 있었을 것이다.
불신의 죄악을 뼈아프게 회개하고 다시는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으리라
분명히 굳게 결심 했을 것이다.
이 헌신예배 때문에 조카 롯의 목자와 아브람의 목자들의 다툼이 있을 때(8)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삼촌이 우선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롯에게 우선권을 양보할 수 있었던 것
아브람의 예배를 통해서 헌신하고 결단 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멘.
또 다른 증거는 아내 사래가 죽었어도 고향 땅에 돌아 가지 않았고
아들 이삭을 결혼 시킬 때에도 종을 보내어 며느리 감을 구해 오게 했었다.
아브람에게 약속의 땅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큰 수치인가를 절감했기 때문에
아브람은 이 약속의 땅에서 믿음을 굳게 지켜 간다.
때때로 삶을 살다가 보면 어려움을 만나기도 한다.
가정의 위기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아브람이 이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기로 결단한 것과 같이
믿음으로 어려움을 이기고 Breakthrough하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잠시 지나가는 어려움이 있다고 철새처럼 떠돌면 떠돌이 신앙 밖에 더 되겠는가?
믿음으로 약속의 땅에 거주하자. 아멘.
아브람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8)라는 말씀 처럼 어디를 가든지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의 예배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예배자가 되자
하나님 아버지
허락없이 약속의 땅을 떠났다가
먹고 살기 위하여 애굽 땅에 갔다가 큰 수치를 당하고
처음 단을 쌓았던 곳 거기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아브람을 봅니다.
사명의 땅을 떠났던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아내를 누이라 속였던 죄를 회개하며
당신의 이름을 더럽힌 죄악을 회개하며
아무리 어려움이 있더라도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헌신하며 결단하는 아브람의 예배를 봅니다.
믿음으로 인내하며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첫 사랑을 회복하는 믿음
철저히 당신을 신뢰하는 그 믿음을 다시 회복 시켜 주옵소서.
약속의 말씀을 다시 새기는 은혜의 시간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날마다의 예배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거룩한 예배자로 살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배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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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 -
아브람은 애굽에서 많은 것들을 얻어 가나안으로 돌아옵니다.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자주일어나자 아브람은 롯에게 땅의 선택권을 먼저 주며 갈라설 것을 제안합니다. 롯은 눈에 보기에 좋은 땅을 선택하고, 아브람은 하나님이 보여주신 땅을 선택함과 동시에 약속을 받게 됩니다.
✔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삶은 무엇입니까?
- 눈에 보이는 현재의 생활에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걷는 삶입니다(1~4절).
아브람은 애굽에서의 생활을 접고 그곳에 얻은 모든 소유와 그의 아내와 롯과 함께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2절). 우여곡절을 겪은 애굽 생활이었지만 그럼에도 아브람은 부요해진 상태로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아브람은 네게브를 떠나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 즉,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에 이릅니다. ‘...거기에서 아브람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렸습니다(4절b,새번역)...
지나온 몇 년의 시간들을 돌아보니 참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목회를 포기할까도 여러 번 생각을 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이래서 40대의 가장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군아...’라는 생각도 가져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도 저를 부르심의 목적과 무엇보다 믿음을 잃지 않도록 언제나 신실하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지금에서야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베풀어주신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이 풍성함 그 자체였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니 이미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삶에 풍성하게 주어졌습니다. 그 은혜 안에서 현재의 삶에 감사하며 믿음의 길을 걷는 삶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 눈에 보이는 세상의 유익을 버리고 믿음의 길을 걷는 삶입니다(5~13절).
아브람뿐만 아니라 조카 롯도 많은 양 떼와 소 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정된 목초지로 인해 함께 동거할 수가 없는 형편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할 것을 제시합니다.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0절)... 롯은 외적으로 보기에 좋고 유리한 조건들이 가득한 땅을 선택하고 아브람을 떠납니다. 롯의 선택의 기준은 자신이 주어가 되어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 세상적 유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소돔은 ‘매우 악했으며, 그들은 항상 여호와께 죄를 짓고...’(13절,쉬운성경)사는 곳이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나를 향해 눈앞에 보이는 세상적 유익을 제시하며 유혹합니다. 당장은 삶이 바뀔 것 같고, 생활도 안정이 될 것 같지만 그러나 세상이 주는 약속들이 나의 생활을 근본적으로는 바꿀 수 없고, 생명을 보호해 주며, 위기로부터 나를 구해 줄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선택한 롯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작은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매 순간 순간 세상적 유익을 버리고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용기 있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길을 걷는 삶입니다(14~18절).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14절).. 롯과는 달리 하나님이 주체가 되셔서 아브람에게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보이는 그 땅을 아브람과 자손들의 영원한 땅이 되게 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또한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6~17절)... 땅을 채울 티끌처럼 많은 후손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아이가 없는 아브람과 사래입니다. 아브람은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그곳에 거주하며 다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에 대한 반응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믿고, 붙잡으며 세상의 것을 포기하고 순종하는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그에 합당한 영적 보상을 베풀어 주십니다. 영적 보상이라 함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은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약속입니다. 삶이 무기력해 지고, 좀처럼 영적 변화를 경험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내 안에 포기하지 못하고, 놓지 못한 세상의 유익함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등이 영적 풍성함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을 다시 한 번 마음 속 깊이 새기고 과감하고, 용기 있는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다고해서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변함없이 나의 삶에 간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은 내가 주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 소망을 가지고 믿음의 길을 걷는 삶입니다..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걷는 삶에 부어주실 풍성한 은혜들을 소망하며 세상의 유익을 좇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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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가치,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아직 경험하지 못한 천국을 위해 보이는 가치, 보이는 유익을 포기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친 현실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도 다소 어리석어 보이는 아브람의 결정이 믿음의 결정이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어야 한다는 성령의 음성으로 알아듣고 현실적인 이익에 목숨걸지 않기로 마음을 새롭게 먹어보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브람처럼 믿음의 여정에 동참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도 성도다움을 잃지 않는 믿음의 삶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