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펌 글입니다.!)
요즘 되풀이해서 읽고 있는 일본 등반가 야마노이 야스시의 '수직의 기억' 에 나온 등반기 중 하나입니다.
야마노이 야스시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솔로 등반가로 02년에 갸츙칸에서 조난으로 손가락을 잃기 전까지 엄청난 솔로 알파인 등반을 해온 최강의 등반가중 하나 입니다.
몇가지 이력을 들자면,
90 피츠로이 동계 단독 초등
91 한국 토왕폭 등반
92 동계 아마다 블람 남서 무산소 단독 초등
94 쵸오유 무산소 단독 등정
00년 K2 남남동 리브로 정상 무산소 단독 등정 (세계 최초)
02 갸츙칸 (7952) 북벽 등정후 하산중 동상으로 손/발가락 대부분을 소실
07 그린란드 '오르카(암벽 크기 1300m)' 완등.
지금도 계속 등반중
마칼루, 마나슬루 등도 단독 도전했으나 완등하지는 못했습니다.
여유가 생겨서 심심풀이로 번역했습니다만, 역시 퇴고는 하지 않아서 오탈자나 표현의 문제가 있을 수 있음..
----------------------------------------------------
갈라진 손 끝에서 테이핑된 피투성이의 두마디째까지를 화강암 크랙에 비틀어넣고 몸을 끌어당긴 다음, 왼손을 더 위쪽에 쑤셔넣는다. 암벽화 끝은 불안정하게나마 크랙을 붙들고 있다. 슬슬 새 확보물을 설치해야되는데... 이미 5미터 이상 런아웃했다. 대량의 기어 속에서 적절한 사이즈를 냉정하게 찾고 싶지만 팔에는 이미 젖산이 차기 시작하고 호흡이 흐트러진다.
아래를 보니 지금 내 상태를 전혀 무시하기라도 하는 듯 속 편하게 음악을 들으며 확보를 보는 친구와, 지상까지 삼백미터 아래로 떨어져내린 공간. 상승기류는 며칠이나 씻지 못한 머리카락을 불어올리고, 벽에 반사되는 자외선은 눈을 찢는 듯 하다. 오늘은 이제 충분해. 어차피 삼일은 더 이 벽에서 벗어나지 못할테니.
'빅월 클라이밍'
이 얼마나 매력적인 단어인가.
수직과 오버행된 거대한 암벽을 며칠이나 해먹과 포타레지에서 자며 오른다. 어쩌면 수직에서의 비박이야말로 빅월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는 몇 년 이상 알파인 루트를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빅월 클라이밍에도 정열을 기울여왔다. 무기질의 눈과 바위의 세계도 좋지만 건축물과 같은 빅월도 클라이머의 본능을 자극하고, 수직벽 속에서 며칠간이고 보내고 싶어진다.
처음 빅월 클라이밍을 체험한 것은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엘 캐피탄. 관광객이 돌아다니는 길에서 겨우 오분이면 붙을 수 있는 암벽과 멋진 날씨, 초심자에서 궁극의 클라이밍을목표로하는 클라이머까지 폭넓게 세계각지에서 모여든다. 그 중에서도 클라이머에게 있어서 엘 캐피탄은 상징적인 빅월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한덩어리로 된 바위는 최대 구백미터의 표고차를 가지고 있고, 현재 육십개 이상의 루트가 있다. 살라테처럼 어려운 프리 루트에서 역사적인 인공루트 씨 오브 드림즈 등이 있고, 여러가지 테크닉을 배울 수 있다.
1986년, 엘 캐피탄의 조디악이 나에게 있어서 최초의 본격적인 빅월이 되었다. 파트너는 일본등반클럽의 동료 이와타 씨. 그 당시 우리들은 홀링용 홀백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바위턱에걸리지 않도록 일반 배낭을 테이프로 둘둘 말아서 대용품으로 하고, 클라이밍 기어도 캠 종류는 여덟개 밖에 없었기에 무거운 피톤을 많이 사용해야만 했다. 게다가 암벽용 조립식 침대인 포타렛지도 맥시코인에게서 이백달러에 산 1인용 하나 밖에 없어서(이틀 밤 째에 부서졌다.) 나머지 한 명은 비좁은 해먹에서 견뎌야만 했다. 첫 빅월 클라이밍은 두사람 다 미숙하고 피톤 사이즈를 고르는 데에도 고생해서 속도도 느렸지만, 모든 것들이 즐거운 추억이다.
'확보 해제, 홀링 간다!'
'OK, 올려도 돼!'
'간다-!'
도르래를 거친 로프에 전 체중을 걸면 테이프가 감긴 배낭이 허공에 매달린채 삐걱삐걱 소리를 내면서 올라온다. 벽 위에 큰 비가 내렸을 때도 '우와~ 우리들 하나도 비에 안 젖는다.' '과연 엘캐피탄 남동벽이야. 오버행이라구.' '이거 최고다.' 등등 큰 소리로 떠들어 대면서 오름짓을 계속했다. 저 '조디악'에서의 며칠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다.
1995년, 나와 타에코, 다이사쿠는 파키스탄 훈자 지방에 있는 5950미터의 거벽 레이디스 핑거, 별명 부블리 모틴을 목표로 왔다. 훈자의 카리마바드에서 보이는 레이디스 핑거는 확실히 여성의 손가락처럼 가늘고 날카로운, 이름에 걸맞는 모양새였다. 북면의 릿지로는 이미 등정되었으나, 아직 정면 남면, 동면은 미답이고, 수많은 팀을 패배시켰다. 영국과 유고슬라비아의 강력한 빅월 클라이머도 벽의 절반도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정열적인 솔로 클라이머 짐 베이어가 정상 바로 아래까지 올랐다는 것은, 그가 멋진 테크닉과 인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레이디 핑거를 보았을 때는, 3년전 1992년. 훈자 출신 등산자 나자르 사비르에게서 아름다운 암봉이 있다고 들었던 우리는, 가셔브룸 원정뒤 타에코와 함께 카리마바드로부터 한나절 트래킹해서 카메라를 가지고 돌아다니며 정찰했는데, 그리 크다는 느낌은 없었다.
지금까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빅월을 세계 각지에서 보아왔다. 솔로로 올랐던 북극권에 있는 배핀 섬의 토르 서벽 등은,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보다 500미터 더 큰 벽이고, 올려 보고 있으면 목이 아파진다. 공격전에는 내가 벽 안에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 구토가 치밀 정도였다.
토르 서벽에서 맛본 8일간의 강렬한 고독감과 정신을 갈아내는 듯한 인공등반을 경험한 만큼, 레이디 핑거의 정면벽은 문제없을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정찰 트래킹 뒤, 실제로 도전할때까지는 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어느 겨울날, 전차안에서 다이사쿠와 현재의 클라이밍 상황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을 때, 문득 레이디 핑거의 이야기가 나왔다.
'가셔브룸 원정 뒤에 보러 갔었지. 그리 크게는 안 느껴졌지만 멋진 벽이었어.'
'어찌됐든 뾰죽하거든.'
'게다가 6천미터도 안되니까, 허가도 필요없고.'
그런 말들에 다이사쿠도 흥미를 보여, 눈을 빛냈다.
'어느정도 어프로치가 걸릴려나.' 하고 묻기에, 나는 별 생각 없이 '어프로치도 하루면 충분하고 어렵지 않아.' 라고 말해 버렸는데, 그것을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 나는 자신의 계획에 흥분하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레이디 핑거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던 것을 기억한다. 다이사쿠는 엘 캐피탄에서도 어려운 루트인 로스트 인 아메리카 와 씨 오브 드림즈 등을 완등했고, 거의 완성된 빅월 클라이머라고 할 수 있다. 히말라야 원정도 몇번인가 경험했다. 지금까지 함께 등반한적은 업지만, 체력은 물론 암벽 속에서의 계산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판이어서,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칼리마바드의 녹물밖에 안나오는 중급 호텔 방안에는 대량의 등반 장비와 식량이 쌓여 있었다. 11미리 50미터의 등반용 로프 두동. 픽스용 10미리 50미터 스태틱 로프 두 동. 홀링용 로프 한동. 홀백 보조용 8미리 20미터 한동. 포타렛지 세 대. 빅월용 장비로 캠 세 세트. 너트 세 세트. 피톤 30개 이상. 카라비너 백오십개 등. 너무 많아서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다. 물론 아이젠, 피켈, 플라스틱 이중화 등, 알파인 장비도 준비했다.
식량은 아침은 비스켓과 스프, 점심은 초코바 한 개. 저녁은 라면이나 라이스에 후리카케(밥에 뿌려 비벼 먹는 가루). 이주일 분량을 준비했지만, 우리들의 위장은 하루종일 채워지지 못할 것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소문을 현지 마을사람에게서 들었다. 독일과 영국 두 팀도 레이디 핑거에 도전한다고 한다.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기분이 좋지는 않다.
달궈뒀던 계획을 누군가 앞질러 버리면, 아무리 클라이밍이 경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억울하다. 부드러운 초원을 횡단해서, 떨어지면 확실하게 죽을 계곡을 이십미터의 티롤리안 브릿지로 건너서 작은 암릉 옆에 3인용 텐트를 치자 베이스 캠프가 완성되었다. 이 곳에서 거의 벽 전체가 보이지만, 예상과는 달리 정상으로 향해 쭉 이어진 크랙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베이스 캠프를 설치한 이곳이 유일한 안전지대이고, 겨우 10미터 떨어진 빙하위에서 물을 뜰 때에도 언제 위에서 낙석이 떨어질지 모르는 위험한 장소였다.
'우선 정찰하자.'
'벽까지 어프로치도 꽤 위험할텐데.'
'아까도 냉장고만한 돌이 떨어졌고.'
'설벽에 해가 닿기 전에 이른 아침에 움직이자.'
알파미를 우물거리며 이제부터의 작전을 짠다. 세명다 백전연마된 클라이머여서 그리 강한 압박을 느끼지도 않고, 오히려 이제부터의 등반에 두근거리고 있다. 타에코는 지금까지 히말라야 등의 고소는 몇번이나 경험했지만, 본격적인 빅월은 오르지 않았다. 유럽 알프스에서 오랫동안 등반했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눈과 바위의 믹스 등반이었고 빅월 클라이밍과는 다른 성질의 등반이다. 그래서 이번 레이디 핑거 계획이 결정되었을 때 우리들은 사전에 봄의 요세미티 엘 캐피탄에서 트레이닝하기로 했었다. 빅월 클라이밍은 알파인과 프리처럼 타고난 재능이 클라이밍의 성공을 좌우하는 경우는 드물고, 경험을 쌓는 것에 의해 등반능력은 자연스럽게 올라서, 쾌적하고 안전한 수직의 여행이 가능해진다. 피톤을 박는 방법에서 회수 방법, 코퍼 헤드나 스카이훅 등의 특수한 기어의 사용 방법, 홀링 방법에 암벽에서의 생활까지 배워야 할 것은 많고, 모두 긴 루트를 오르고, 장시간 암벽 속에서 보내는 것에 의해 배워지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기어를 구사하는 인공등반 기술이다. 봄에 우리들이 처음 고른 것은 그렉 차일드와 랜디 리비트가 개척한 A5 등급의 로스트 인 아메리카.
A4+가 매겨진 2피치와 A5가 매겨진 12피치는 내가 담당하고 나머지 피치는 가능한 교대로 오르기로 했다. 인공 그레이드를 설명해두자면, 체중을 걸어도 안정적이고 절대 빠지지 않을 것 같은 지점을 오르는 경우는 가장 쉬운 A1이 매겨진다. 지지력이 아슬아슬해지고, 추락 예상거리가 길어짐에 따라 A2, A3, A4, A5로 올라간다. 그레이드가 올라감에 따라, 그만큼 어려워지고, 신경이 곤두서고, 때로는 하루에 오십미터 밖에 나가지 못하는 일도 있다. 게다가 A5가 매겨진 피치의 추락예상거리는 50미터 정도라고 말해지고, 위험성은 높지만 나는 떨어진 경험이 없어 잘은 알지 못한다.
로스트 인 어메리카, 5일 째. 양 어깨에 깊숙히 파고드는 장비를 사용하기 좋게 정리해 두고, 하네스 뒤에 홀링용 로프를 매단다. 사다리를 네개 건다. 완벽한 장비인만큼 동작도 둔하다. 이 A5가 매겨진 12핏치 째, 몇시간 걸릴지 모른다.
처음에는 비늘 모양의 후레이크에 나이프 블레이드를 때려넣고, 카라비너를 건다. 거기다 사다리를 걸고 체중을 조금 걸어본다. 시작부터가 끔찍하다.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있지 않으면, 나이프 블레이드가 빠지면 눈에 박힌다. 다음은 전체중으로 충격을 걸어본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냉정해질때까지 다음 장비를 설치할 수 없다. 다음에도 나이프 블레이드다. 하지만, 박았을 때의 소리가 너무도 나빴다.
팅팅, 통통, 핑.
또 심장이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테라스에서 사십오미터 지점까지 네시간은 걸릴려나. 지금은 1미터, 1미터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DO OR FLY' 로 이름 부쳐진 이 피치는 '성공하느냐 추락하느냐' 라는 당연한 이름이지만, 첫 십미터는 너무나도 어려웠다. 작은 틈새에 박아넣은 코퍼 헤드는 어느 것도 제대로 먹혔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만약 떨어지면 아래에 설치한 몇개인가의 코퍼헤드는 추락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빠져버리겠지. 오버행된 암벽은 발밑에서 삼백미터 이상 깍아질렀다. 만약의 경우 타에코의 확보에 의해 언젠가는 추락이 정지되겠지만, A5가 매겨진 피치의 종료지점 직전에 떨어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다.... 이 때도 추락하지 않고 올라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식은땀을 한바가지는 흘렸고, 기진맥진한 하루였다.
레이디스 핑거를 향한 어프로치는 역시 위험 그자체였고, 마치 러시안 룰렛과 같았다. 각자 높다란 배낭을 짊어지자 위를 올려다 보며 걷는 것은 불가능해서, 우선 두 사람이 행동하고 있을 때는 한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위를 보며 돌이 떨어져 내렸을 때를 대비해 소리칠 준비를 했다. 머리통 크기의 돌은 물론, 냉장고 크기의 바위도 떨어져내렸고, 아무리 반사 신경이 좋은 인간이라도 이 무거운 배낭으로는 민첩하게 움직일 수 없다. 조금 안전한 능선에서 벽을 올려다 본다. 마치 알프스의 드류 처럼 뾰족하게 푸른 하늘을 찌르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지독한 어프로치였어.'
어지간해선 무서움을 타지 않는 타에코조차 이런 말을 했다.
'무슨 이지메 당하는거 같아.'
라고 대답하는 다이사쿠.
'서벽은 여기에서 보면 작고 경사도 얼마 안되네. 충립암이나 병풍암 정도로 밖에 안보여.'
'서벽이라면 금방 오를 것 같은데.'
'아냐. 화강암 색깔로 봐서는 위험해. 게다가 남면이나 동면처럼 바짝선 곳에서 수직 여행을 즐기러 이 먼 곳까지 찾아왔잖아. 정상에 서는건 중요한게 아냐.'
분명히 다이사쿠가 말하는 대로, 우리들은 빅월을 즐기러 온 것이다.
'남벽의 잿빛 디에드르를 오르면 멋질거야. 박력 있는 루트가 될거라구.'
빼앗듯이 쌍안경으로 남벽을 관찰한다. 디에드르에서 무너져 내려릴듯한 잿빛 행을 넘어서서, 가느다란 크랙이 거미줄처럼 뻗어서 상부로 연결되어져 있다. 이것은 억지가 없이 아름답고, 노출감 가득한 루트가 될것이다.
8월 30일. 남벽 시작부에 있는 다다미 세 장 크기 테라스에 짐을 모아놓고, 오후부터 첫 피치에 붙었다. 다이사쿠가 5미터도 못 올라 덧장을 잡아서, 모두가 바짝 긴장하는 상황도 있었지만 금방 제대로 된 크랙을 인공등반으로 확실하게 올라갔다.
이번에 우리들은 캡슐 스타일을 선택했다. 이 방법은 외떨어진 빅월에서 사용되고 있고 합리적이고 더욱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다. 캡슐 스타일이란 포타렛지를 매달아 캠프로 삼고, 3,4피치를 픽스한 뒤에 포타 레지 캠프를 픽스한 로프의 최상부까지 이동시킨 후, 모든 기어와 로프를 회수하고, 다음 3,4피치를 개척해가는 방법이다.
다음에 내가 가느다란 붉은 화강암 크랙을 등반할 즈음, 타에코는 시작지점에서 눈을 녹여 열심히 물을 만들고 있다. 20리터의 접이식 수통과 스물 다섯개의 콜라 pt병 40리터분. 이걸 합치면 모두 60리터 이상이 되는데, 홀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벽에서 눈을 얻을 가능성이 적고, 오천미터 산이라고는 해도 이 고도에서 탈수 증상은 행동과 사고력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된다.
3일 째, 기술적으로 걱정되던 백미터에 걸친 잿빛 오버행지대가 어렵고 박힌 코퍼헤드의 강도에 자신을 가질 수 없어 움직임이 둔했다. 하지만 박쥐처럼 오버행에 매달려 잘못 돌을 떨어뜨려도 암벽의 어디에도 닿지 않은채 빙하까지 똑바로 떨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신이 빅월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행복감으로 가득해진다.
나이프 블레이드를 부서질듯한 바위에 때려넣고 있을 때, 실수로 사방 30센치 크기의 돌을 떨어뜨려 버렸다. 벗겨진 바위는 암벽에 닿지 않고 공간을 떨어져 간다. 마치 허공을 헤메고 있는 듯 아무런 소리 없어, 정적에 휩싸인채 시간이 정지된 것 같았다. 3초 뒤, 도중에 하부 암벽에 맞은 바위는 훌륭할 정도로 조각 조각으로 깨어져 하얀 빙하로 사라져 갔다. 나는 숨쉬는 것 조차 잊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지만, 다시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오르기 시작했다. 파트너도 다시 나의 움직임에 맞춰 로프를 뽑아준다. 아래에서 확보하는 파트너는 내가 어떤 큰 추락을 해도 안전하고 확실하게 잡아줄 것이다. 불안정한 확보점에 항상 복잡한 로프 워크를 해야만 하고 거기다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솔로 클라이밍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안심과 행복이다.
클라이밍을 개시하고서 4일이 지나자, 우리들의 루트보다 오른쪽에서 올라오는 영국의 2인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새빨간 자켓을 입은 그들은, 짐 바이아가 시도한 루트로 오르고 있다. 저편에서 이쪽으로 카메라를 향해왔기에, 나도 그들의 등반을 촬영했지만, 아쉽게도 대화할 정도로 거리가 가깝지는 않다. 본래 라이벌이 되어야 할 영국 팀이었지만, 이 대암벽에서 다른 클라이머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마음든든하기도 하고 격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뒤, 그들은 유감스럽지만 레이디스 핑거의 등반을 포기하고 내려가게 된다.
'역시 초코바만 가지고는 못 견디지 않겠냐.'
'아침, 점심, 저녁, 그것만 먹겠다더니.'
'아무리 스폰서가 제공했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는 못 버티겠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넉넉한 식량이라고 할 수도 없어서, 오히려 나는 매일 배고픔을 견디기 어려웠다. 실제로 등반 뒤에 레이디 핑거에서의 추억을 물어온다면, 배가 고팠던 것을 이야기하겠지.
세 대의 포타렛지는 제각각 50센치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모두 손으로 줄 수 있는 거리다. 40센치*190센치의 파이프로 만들어진 포타렛지이지만, 등에 깐 매트는 얇고 침낭도 얇다. 차가운 상승기류를 항상 느꼈다. 어려운 루트에 150kg 에 가까운 짐을 홀링하지않으면 안되기에, 몸의 관절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슬슬 식사 시간이다.
타에코가 버너에 불을 붙이고 요리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메뉴는 안봐도 안다. 알파미로 끓인 죽. 맛 없는 죽은 작은 컵 하나도 안될 정도의 양이다.
'다 됐어.'
'받아들 때까지 절대로 놓지 마'
포타렛지의 플라이너머로 타에코 쪽으로 손을 내민다.
손을 내밀어 받아들자, 코펠은 역시 가볍다. 알맹이는 소금기가 조금 섞인 죽이 찻잔 한잔 정도여서, 겉보기에도 칼로리가 없을 것 같다. 곧바로 먹어 치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지만, 먹어버리면 아까울 것 같아 곧바로 입으로 옮기지 못한다. 실제로 큰 스푼으로 다섯번 퍼면 코펠은 비어버리고, 한톨의 쌀도 남기지 않았지만 이십초만에 덧없이 저녁식사는 끝나버렸다. 식후에 배가 고프다... 이것은 너무나도 슬픈 현실이다. 자켓의 포켓을 뒤지자, 낮에 배급받은 한개의 초코바 껍데기가 들어 있다. 언제나 처럼 껍질에 묻은 초코 찌꺼기를 입에 넣고 기분을 달래지만, 위는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식량계획 실패한걸까..'
'이슬라마바드에서 좀더 검토했어야 했으려나'
'기름기 가득한 카레가 먹고싶다!'
'내일 아침도 언제나처럼 크래커 다섯 장하고 홍차지?'
라고 내가 타에코에게 묻자, '앞으로 며칠 뒤에 벽을 빠져나갈지도 아직 모르고, 예정은 못바꿔.' 라고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다이사쿠가 '마치 단식하면서 오르는 것 같구만' 이라고 하자, 세명 다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이 날, 공복보다도 클라이밍에 영향을 끼치는 악천후가 찾아왔다. 눈이 플라이를 두들기고, 상승기류가 강해지고, 누운 등이 점 점 더 차가워져 왔다. 더욱 안좋은 것은 플라이의
'침낭을 걷어야겠어.'
비닐 봉지에 마른 옷을 함께 쑤셔넣을 즈음에는, 더욱 더 격렬하게 눈이 플라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일본에 있을 때, 제대로 플라이 방수 테스트를 해뒀어야만 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플라이는 펄럭거리고, 얼굴에 달라붙어와 너무나 불쾌했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저편의 두 사람도, 시행착오하고 있는 모습을 소리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우리들은 변의를 견디며, 잔뜩 젖은 포타렛지 속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도 눈이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참을 수 없는 한계가 왔고, 언제나처럼 '과도한 모티베이션' 이라는 나쁜 병이 도졌다.
'오늘, 오르자. 내가 선등할 테니까, 타에코는 포타렛지에서 확보해주는 걸로 돼.'
'좀더 기다리는게 좋아.'
냉정하게 생각하면, 타에코가 말하는 대로 이런 상황에서는 오르지 않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괜찮아. 일본의 동계등반을 생각하면 대단할 것 없어. 그리고 이런 곳에서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식량이 없어져 버린다구.'
이런 대화를 하면서, 나는 이미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동상 걸려'
'괜찮아. 어차피 인공으로 갈거니까.'
나는 플라이를 빠져 나와서 냉정해야만 함에도 점점 더 클라이밍 기계가 되어가는 자신을 느껴 버린다. 등반 장비 위에 쌓인 눈을 털고, 얼어붙은 스파게티처럼 얽힌 로프를 짜증을 내며 풀고, 인공으로 등반을 시작한다.
디에드르에는 상부에서 끊임없이 눈이 떨어져내려 스피드가 오르지 않았지만 상공은 조금 푸른 하늘을 엿볼 수 있게 되었고, 속으로 '역시 오르는게 맞았어.' 라고 생각하며 오른다. 두 시간 지나자 기온은 높아지고 눈에서 진눈깨비로 바뀌어, 디에드르에는 물이 흐르게 되었지만 날씨는 점점 더 좋아졌다. 그리고 낮이 될 즈음에는 푸른하늘도 태양도 보이고, 우리들은 다시 한번 정상을 향해 풀 가동하기 시작했다.
등반 십일째에 들어가, 16피치째, 레이디스 핑거 등반에서 가장 인상적인 클라이밍을 할 수 있었다. 오르기 시작하기 전부터 확보물을 설치하기 어려운 것을 알고 있었다. 화강암의 수직벽을 자유등반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마찰력에 자신이 없는 플라스틱 이중화. 작은 너트를 때때로 먹이고는, 머리를 쓰는 복잡한 동작을 필요로 했다. 경사는 80도도 안되지만, 손 홀드는 1센치 정도의 흐르는 것들 밖에 없고, 그것들은 많은 미세한 동작이 필요함에도 지저분해서 일일이 모래를 털어내야만 했다.
파키스탄의 암벽에 있다는 것 조차 잊고서 집중하고 있었지만, 자칫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밸런스가 무너질것 같다. 한 순간, 포기하고 떨어져버릴까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나중에 레이디스 핑거의 나쁜 추억이 될 것이기에 견뎠다. 오십미터 로프가 꽉차는 지점에서 손 홀드가 없는 테라스에 맨틀링으로 기어 오른다. 표고차 5800미터. 이 높이에서 무산소 동작은 좋지 않다. 잠시동안 머리는 어질거렸지만, 이 위험하고 특징적인 수직벽을 해결해냈기에 정상을 향한 길이 열렸다.
십일일째에는 다이사쿠가 100미터 이상은 될 듯한 적색 코너로 향했고, 타에코가 확보하고 나는 포타렛지위에서 태양빛을 받으며 휴식일을 가졌다. 피톤을 해머로 때려넣는 소리를 들으며 누워서 때때로 그들의 분투를 카메라에 담거나 공상에 빠지거나 하며 보낸다. 빅 월 클라이밍은 오를 때는 물론이고 이런 식으로 높은 곳에서 누워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행복한 한 때이다.
주위를 보면 스팬틱 등의 산 들이 멀리 보이고, 아래 쪽으로 녹색으로 덮인 카리마바드 마을의 집들이 보인다. 그리고 솔개 같은 커다란 새는, 이상한 것을 관찰하려는 듯 벽으로 다가오거나 상공을 선회하거나한다. 신주쿠의 고층 빌딩 몇배나 되는 암봉을 계속해서 오르는 일은 언제나 안전에 신경을 쓰고 조금씩 긴장도 하지만, 그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며칠이나 빅월을 오르고 있으면, 알파인 루트를 오를 때 처럼 빠르게 벽을 빠져나가 정상에 서려고 하는 기분이 옅어진다. 일종의 독특한 정신상태가 되어, 이 암벽에서의 생활이 당연한 것이고,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된다.
8월 24일, 태양이 벽을 데우고, 얼음은 끊임 없이 우리들을 덮치려는 듯 떨어져 내린다. 하지만 우리들은 정상에 설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던 것 처럼, 불필요한 동작 없이 빠르게 고도를 올려 갔다. 모두 크게 웃어가며, 서로가 기념촬영을 하고 전진한다. 태양빛을 받아 반빡반짝 빛나는 붉은 화강암에 나는 친밀감마저 느끼고, 떨어지기 힘든 존재로 느낀다. 이 즐거운 시간과도 이제 이별이다. 지금, 이 때를 모두 느긋하게 맛보자. 마지막 피치, 침니를 오르는 타에코에게, 나와 다이사쿠는 '좀더 빨리 올라! 확보물 제대로 쳐!' '빨리 정상에 서!' 하고 재촉했다. 타에코는 뾰족한 삼각형 바위에 확보를 걸고, 로프를 고정한 뒤, 크게 손을 흔든다. 'OK, 도착했어!'
우리들은 소리를 지르며 기대로 가슴을 부풀린 채 픽스된 로프를 주마로 오른다. 정상은 바로 앞이다. 그리고 세명이 정상에 모였다. 전원 흥분하며 서로의 사진을 찍고, 웃고, 경치를 만끽한다. 멀리에는 K2 인 듯한 산이 보이고, 듬직한 모양의 독립봉 라카포시는 바로 가까이에 빛나고 있다.
우리들의 레이디스 핑거 등반은 정말로 모든 것들이 잘 진행되었다. 멋진 팀워크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무사히 하산하지 않았음에도 푸른하늘을 바라보며 이제부터 앞날에 펼쳐질 빅월에 대해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히말라야는 물론, 마음은 그린란드, 남극 대륙과 중국을 향했고, 어떠한 악조건이라 해도 용기를 가지고 지구상에 있는 대암벽에 도전을 계속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이번과 같이 좋은 동료와 다시 도전하는 것도 좋으리라. 힘을 합쳐 마음이 맞는 동료와 함께 등반하는 것은 때로는 솔로보다도 충실감을 줄 지도 모른다. 정열을 가진 클라이머들이 모여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세밀한 계획을 세워 서로의 지식과 기술을 합치면 불가능이라 생각되던 대암벽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에게 잘난척하지 않고 파트너들에게 진정을 쏟으며 등반하면 최고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이 12일간, 다이사쿠의 확실한 기술과 타에코의 안정된 정신력은, 나에게 즐거움 가득한 빅월 클라이밍을 주었다.
우리들은 긴 시간동안 정상에 머물렀다. 세 명 다 얼마 전까지 그렇게도 떠들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말없이 풍경만을 바라보고 있다. 차갑고 상쾌한 바람은 상처입은 우리들의 몸을 어루만지고, 공복은 감동의 스파이스가 되었다.
-----------------
'어려운 등반, 암벽등반 같은거 관둬도 되잖을까 라고 생각도 했던건 확실합니다만...
역시.. 역시 나는 좋아하는구나 라고 새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달까.'
야마노이 야스시. 07년. 대부분의 손가락을 잃은 채 그린란드의 1300미터짜리 거벽 오르카를 마찬가지로 손발가락을 대부분 잃은 아내와 함께 빅월로 완등하는 다큐 '시선, 차이 혹은 다름-아름다운 도전' 중에서.
EBS 방송.
|
첫댓글 손가락까지 잃으가면서 난 하고싶진 않은데 .. 대단하네요 근데요 이글읽는데 눈이 넘 아파요 ..ㅎㅎ 잘 봤습니다
드레그해서 보시면 점은 바탕줄 없어짐... ㅋㅋ 아는 척 해 봅니다...
진짜루~~ ㅋ
아니면, 복사해서 한글파일에 붙어넣기...ㅋㅋ 아는 척^^
2012년 서울시 산악연맹 교육기술위원회에서 훈자피크6270m와 레이디핑거6000m를 동시에 등반예정으로 현재 추진중입니다..
현재 대원후보들 10여명중에 청죽에서 돌부처(심권식).조민수.박노범 등이 대원선발훈련에 참여 예정입니다...
네이버 블로그 "솔숲에 부는 바람처럼" 에 동영상 보기가 있습니다. 9분짜리 5편인데 첫편은 못보고 나머지는 다 볼 수 있네요
돌부처형님,노범,민수는 좋겠어유 ㅎㅎ...흰두쿠시,히스파르빙하,그리고 훈자까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