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데본아오키
"죽는 건 하나도 안 무서운데 죽을 것 같은 느낌은 왜 그렇게 싫은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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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의 고통이 어떻다는 건 그걸 가져본 여자만이 안다. 모든 질병의 고통은 동정자를 끌어 모으지만 그 고통만은 비난과 조소를 면치 못한다. 사람을 질병에서 해방시키는 게 인술의 꿈이라면, 여자를 그런 질병 이상의 고독한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건 나의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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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언니 같은 효녀 될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엄마한테 잘하려고 애써왔어. 이젠 지쳤어. 언니도 곧 지칠 거야. 엄마한테 잘 하는 건 밑 빠진 가마솥에 물 붓기야. 엄마가 우리한테 어쩌다 보이는 관심이 뭔 줄 알아? 저 계집애들 중 하나를 잃었으면 내가 이렇게 원통하진 않았으련만,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볼 때야. 그런 표정 정말 소름 끼쳐. 엄만 우리가 살아 있는 걸 미안해하게 만들어. 우리도 우리에겐 한 번뿐인 인생인데 그래야 돼? 엄만 정말 해도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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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나에게 있어서 자유란 나뭇가지 끝에 걸린 별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딸 수 있을 것 같아 나무를 기어올라가 봤댔자 허사였다. 올라갈수록 별은 멀고 돌아갈 수 있는 땅 역시 멀어져서 얻어 가질 수 있는 것은 위기의식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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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직껏 꿋꿋하게 잘 버티기에 그냥저냥 극복한 줄 알았더니 이제 와서 웬 약한 소리냐구요? 형님 보시기에도 제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입디까?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단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그것은 무서운 일이다- 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고 있는 저 무(無) 로부터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존재하는 데 대한 증오, 싫증,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방법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넣는 방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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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란 멀리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갑자기 우리에게 달려들고, 우리 위에 멈추어, 살진 요지부동의 짐승처럼 우리의 마음 위를 내리누르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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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공허한 것 같다. 나는 이제는 더 분명하게 나를 느끼게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나는 버림받고 있다. 나의 내부에서 여전히 현실적인 것은, 스스로 존재한다고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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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고 있을 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배경이 바뀌고 여러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고, 그뿐이다. 결코 출발이라는 게 없다. 나날이 아무런 운율도 없이 나날에 덮친다. 그겋은 끊임없고 단조로운 덧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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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각, 그것은 '나'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다. 나는 생각하는 소로 존재한다······그리고 나는 생각하기를 단념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조차도-그것은 무서운 일이다-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존재하기를 내가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갈망하고 있는 저 무(無)로부터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것이 바로 나, '나'다. 존재하는 데 대한 증오, 싫증, 그것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방법이며, 존재 속에 나를 밀어넣는 방법인 것이다. 생각은 현기증처럼 내 뒤에서 생겨나고, 나는 그것이 내 머리 뒤에서 생기는 것을 느낀다. 만약 내가 양보하면 그것은 앞으로, 내 두 눈 사이로 오려고 한다-다만 나는 언제나 양보한다. 생각이 커지고 커진다. 그리하여 거기 나를 충만케 하고 나의 존재를 새롭게 하는 무한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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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롭다. 살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애써 찾아낸 모든 이유들은 사라지고, 다릍 이유는 이미 생각할 수가 없다. 아직 충분히 젊고, 새 출발을 하기에 충분한 힘이 남아 있다. 그러나 무엇을 새 출발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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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기 옆에서 나는 식후의 시간을 울적하게 보내며, 오늘 하루가 헛되이 가버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아마도 날이 저물기 전에는 아무런 흡족산 일도 못 할 것이다. 태양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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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모든 것을 보존했다. 과거, 그것은 소유자의 사치인 것이다. 어디에 나의 과거를 간직해 둘 수 있을까? 사람은 자기의 과거를 호주머니에 넣어둘 수 없다. 과거를 정돈해놓기 위한 집을 한 채 가져야만 한다. 나는 나의 육체밖에는 가진 것이 없다. 자신의 육체만 가지고 있는 아주 고독힌 사람은 추억을 간직할 수 없다. 추억은 육체를 거쳐서 지나가버린다. 나는 슬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자유로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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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주위를 불안한 눈초리로 둘러보았다. 현재뿐이다. 그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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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는 나에게서 떠나지 않았고, 그렇게 쉽게 내게서 떠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이상 그것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어떤 병도 아니고 지나가는 발작도 아니다. 나 자신인 것이다.
No longer mourn for me when I am dead
Than you shall hear the surly sullen bell
Give warning to the world that I am fled
From this vile world with vilest worms to dwell:
Nay, if you read this line, remember not
The hand that writ it, for I love you so,
That I in your sweet thoughts would be forgot,
If thinking on me then should make you woe.
O! if,-I say you look upon this verse,
When I perhaps compounded am with clay,
Do not so much as my poor name rehearse;
But let your love even with my life decay;
Lest the wise world should look into your moan,
And mock you with me after I am 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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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 음산한 종소리가,
내가 이 저열한 세상을 떠나
가장 저열한 벌레와 살러 간 것을 알리거든.
그대 더 오래 슬퍼 말라.
그리고 이 시구를 읽더라도 그 필자는 생각지도 말라.
내 그대를 극진히 사랑하기에, 그대가
나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그대의
고운 생각 속에서 잊어지기를 바라노라.
내 말하노니, 아마도 내가 흙이 되었을 때
그대가 이 시구를 읽더라도
나의 대수롭지 않은 이름을 입 밖에 내지 말고,
그대의 사랑도 나의 목숨과 함께 소멸하게 하라,
영리한 세상이 그대가 애탄하는 것을 보고
나 죽은 후 그대를 조롱하지 않도록.
ꜱᴏɴɴᴇᴛ 71
소설이란 추체험의 기록,
있을 수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구제 받지 못한 상태에 대한 연민,
모순에 대한 예민한 반응,
혼란한 삶의 모습 그 자체.
나는 판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겠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실 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의미 없는 삶에
의미의 조명을 비춰 보는 일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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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기가 뿜어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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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한적이 그리울 때도 나는 무진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럴 때의 무진은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리고 있는 어느 아늑한 장소일 뿐이지 거기엔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다. 무진이라고 하면 그것에의 연상은 아무래도 어둡던 나의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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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이제 점점 수군거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려들어 가고 있으리라. 자기 자신조차 잊어버리면서, 나중에 그 소용돌이 밖으로 내던져졌을 때 자기들이 느낄 공허감도 모른다는 듯이 그들은 수군거리고 수군거리고 또 수군거리고 있으리라. 바다가 있는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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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형과 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서 같은 지점에 온 것 같습니다. 만일 이 지점이 잘못된 지점이라고 해도 우리 탓은 아닐 거예요."
그녀는 자기와 남편 사이에 어떤 장막이나 장애물 같은 것이 가로놓여 있음을 느꼈으며, 두 사람은 결코 상대방의 영혼, 즉 사상의 내면까지는 침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란히 거닐고 때로는 포옹하기도 하지만 서로 녹아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우리들 인간 각자의 정신적 존재는 영원히 고독한 채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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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또다시 꿈꾸고, 희망하고, 기대하기 시작했다. 운명의 집요한 가혹함에도, 인간이란 언제나 날씨가 화창할 때면 희망을 품기 마련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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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는 아마도 자기 자신의 생각에 화답하는 것처럼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내 인생의 볼륨이 이토록이나 빈약하다는 사실에 대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절망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요즘 들어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내 인생에 양감(量感)이 없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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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것이고 어머니의 삶은 어머니의 것이다. 나는 한 번도 어머니에게 왜 이렇게 사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리 어머니라 해도 예의에 벗어나는 질문임에 틀림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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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상처는 상처로밖에 위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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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일이었다. 철이 들면 더욱 착하게 굴어야 할 텐데, 나는 그렇지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가만히 주위를 살펴보니, 내가 아는 착한 애들은 모두 바보였다. 그 당시 나는 단지 바보가 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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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그렇게 간단히 말해지는 것이 아님을 정녕 주리는 모르고 있는 것일까. 인생이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기꺼이 악을 선택하게 만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모순과 손잡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주리는 정말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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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그 이름을 자꾸 불러줘야 해. 이름도 불러주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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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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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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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거든.
어디에나 사람이 있다. 기계 뒤에도 사람이 있고 기계 속에도 사람이 있다. 내가 버린 쓰레기도 사람이 치워야하고 내가 만들어내는 소음도 사람의 귀가 들어야 한다. 골짜기에 댐을 막으면 사람의 집이 물 속에 들어가야 하고, 개펄에 둑을 쌓으면 그만큼 사람의 생명이 흙 속에 묻힌다. 사람은 큰 집에서도 살고 작은 집에서도 살고 집이 아닌 것 같은 집에서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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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삶은 다른 삶을 준비하기 위한 삶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한 삶이기도 하며,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삶이 거기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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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마음이 서늘했다.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싫어서 다른 이에게 마음을 기댄 적이 있다. 순간순간 그것은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어쩌면 대상에 관계없는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흔들렸고 그러나 그들은 내게 오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꿋꿋하게 자기 자신으로 거기 서 있었다. 그들에게 나를 기울이면서 스스로를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결국 나를 견딜 수 없어했다. 내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믿는 그 사람이 나의 전부였다. 그것이 사라지면 늘 나도 사라졌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자신에게 버림받았으며, 단 하나의 사랑을 줄 수 있을 누군가에게서 나의 핵심을 찾기 위해 헤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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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진을 찍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진을 꺼내보면서 내게 이런 기억이 있었음을 떠올릴 때 그렇다. 사진 속에서는 사라진 기억의 상이 다시 나타나기도, 과거엔 몰랐던 기억의 단면이 새롭게 드러나기도 한다. 이때, 나라는 존재는 자기 기억의 온전한 주인일 수 없으며 기억은 이미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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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 그러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변화하고 사라지게 되는 것들이 지금도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내가 나에게 그랬듯이, 내가 너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그러므로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장면은 궁극적으로 슬픔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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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옴은 떠남만큼이나 즉각적이다. 갑자기 이름이 불린 사람은 이 세계로 돌아오면서 이전의 세계를 잊는다. 언젠가 나쁜 꿈을 꾸고 깨어났을 때도 그랬다.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던 언니는 매일 밤 이층 침대의 아래에 누워 내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느 날 그녀는 그게 무엇이든,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린 잘 모르는 사이였는데, 네 삶이 너무 힘든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정작 그 삶과 기억의 주인이 아니었다. 모든 순간이 내게 남아 있지 않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 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헝겊이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 사람이 죽었는데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 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어머니와 아버지가 미소를 짓거나 공범자 같은 폭소 또는 농담으로 서로에게 애정 표현을 할 때면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 사건은 그저 '나쁜 꿈'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 그런 애정 표현은 오로지 그것이 표현되는 순간에만 의미가 있을 뿐 미래에 대해선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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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질병은 내 잘못도 아닌데 운명에 대한 주의력 부족으로 간주되었다. 일반적으로 온전하고 정당하게 병들 권리는 인정되지 않았고 항상 구설수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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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에서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나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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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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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하지만 애인에게 털어놓은 것을 제외하면, 이 장면은 여전히 언어도 영상도 없는 듯한 이미지로 가슴속에 간직되었기 때문에, 이를 묘사하려고 사용한 단어들이 낯설고 무례하기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남들을 위한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삶은 그를 실망시켰고, 그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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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없이 사는 게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으며, 소망 없이 사는 걸 모두가 불행하게 생각했다. 다른 삶의 형태와 비교할 가능성은 없었다. 그렇다고 더 이상 욕망도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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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분위기가 만연한 이런 시골에서 여자가 독자적 삶을 갖겠다는 생각은 도대체가 시건방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표현되었던 거부의 표정들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진심이 되어버렸고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기뻐할 때에도 <여자답게 얼굴을 붉혀야> 했다. 왜냐하면 기쁨도 수치스럽게 여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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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밤중에 가끔 어떤 내적 충격에 깜짝 놀라서 눈을 뜨고는 공포 때문에 숨이 막혀하면서 시시각각 내가 살아 있는 채로 부패되어 가는 것을 체험한다. 어둠 속에 공기가 너무도 가라앉아 있어서 내게는 모든 것들이 균형을 잃고 갈갈이 헤쳐진 듯 보인다. 그것들은 그야말로 중심을 잃고 소리없이 얼마간 떠다니다가 결국은 여기저기서 추락하여 나를 짓누를 것이다. 이런 악몽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부패해 가는 짐승이 되고 모든 감정이 자유롭게 서로 교감하는 만족감을 소극적으로 맛보는 것과는 달리 수동적이고 객관적인 공포감에 어쩔 수 없이 사로잡힌다.
나는 깊이 숨을 쉬고 예전 같은 심장박동 소리에 귀 기울였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다, 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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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디 있든 나 자신의 시큼한 공기 속에서 속을 태우며 벨 자 밑에 앉아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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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순교자 같이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떠나온 곳에서 시작하는 거야. 이 모든 게 나쁜 꿈이었던 것처럼 행동하자꾸나."
나쁜 꿈.
벨 자 안에 있는 사람에게, 죽은 아기처럼 텅 비고 멈춰버린 사람에게 세상은 그 자체가 나쁜 꿈인 것을.
나의 밤은 지극히도 주관적이고 외로운 것이며 그 어떤 순간보다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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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드리워진 죽음보다
내게 정말 무서웠던 것은
집착하지 않는 삶의 연속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찾지 않고- 못하고가 아닌-
태연하게 삶의 쳇바퀴를 돌릴 때
그리고 그 굴레를 이탈하지 않고 정확히 이어나갈 때
끊어질 듯 말 듯, 팽팽한 이 질긴 생에
살기가 싫었다
덕지덕지 끼인 살기殺氣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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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독하리만큼 역겨운 이 고통에서 영원히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초연하게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그뿐이었다 죽기 위해서 살았다 살기 위해서 죽어야 했다 내게 삶은 모든 것 그 자체이다 생과 사의 연속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나라는 이의 속 얼굴을 제대로 보는데 35년이 걸렸다. 너도 혹시 그럴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제일 나를 학대하는 사람은, 제일 나를 몰라주는 사람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견딜 수 없이 내가 싫은 날이 있다. 뭔가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때, 돌아보니 모두 내 아집이었던 것만 같아서, 내게 남은 진짜가 뭔지 모르는 지금의 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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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에 집착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더 악착스러웠던 것 같다. 빵 냄새가 행복이라면 매일 먹지도 않을 빵을 10개도 넘게 살 수 있었고, 사랑이 행복이라면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구걸할 수 있었다. 그것이 언젠가 그가 말했던 '힘 있는 놈이 잘 사는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힘이 없어서 실패했다던' 그의 결론을 통째로 부정할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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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아끼니 실수가 적어졌다. 피로한 일이 줄었고, 대신 사람도 줄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나는 이것이 편한 것 같다. 다만 가끔 너를 생각한다. 열정적으로 너의 삶에 끼어들고자 했던 나를 생각한다. 그럴 때면 삶에 커다른 무언가가 이미 끝나 버린 느낌이다. 내가 잃었던 밤처럼 혹시 나는 너를 그렇게 잃었던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드는 날, 내게 찾아오는 감정은 후회가 아니라 절망이다. 나는 내가 잃은 것들에 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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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니까, 내 인생에 지나가는 시기니까, 스스로 달래며 반씩 모자란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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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돌아보니 혼자 서 있었다
답을 알려주던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이제 내가 가야 하는 길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나 역시 남의 일에 말을 아낀다
괜히 엮이는 것이 싫은, 게으르고 방어적인 사람이 됐다
그러지 마, 라고 그때 말했어야 했다. 그러지 마. 우리 잘못이 있다면 처음부터 결함투성이로 태어난 것뿐인걸.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설계된 것뿐인걸. 존재하지 않는 괴물 같은 죄 위로 얇은 천을 씌워놓고, 목숨처럼 껴안고 살아가지 마. 잠 못 이루지 마. 악몽을 꾸지 마, 누구의 비난도 믿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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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교훈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그런 자세로 살아왔다.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 악운이나 과오 앞에서 언제나 침착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든 통찰하고 교훈을 얻으려는 그 습관 덕분이었다. 병원에서 눈을 떠, 목의 늘어난 인대나 금 간 척추는 어떻게든 회복 가능하나 왼손만은 완전히 으스러져버린 것을, 신경까지 손상돼 재활이 불가능하게 된 것을 알았을 때, 버릇대로 나는 통찰했다. 점점 크게 요동치는 자동차를 멈추게 하기 위해, 열린 차창 밖으로 왼손을 뻗어 올려 차체를 붙잡았던 나의 과오를. 난 언제나 그렇게, 내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감당해 내려 하는 어리석음이 단점이었어. 순간적인 판단력도 부족했어. 항시 냉철하여, 때로는 잔인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교훈이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 나는 그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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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모른다.
목이 말라서 눈을 든 차가운 새벽, 기억할 수 없는 꿈 때문에 흠뻑 젖은 눈두덩을 세면대 위의 거울 속으로 들여다보리라는 것을 모른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는 당신의 손이 거푸 떨리리라는 것을 모른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뱉어보지 않은 말들이 뜨거운 꼬챙이처럼 목구멍을 찌르리라는 것을 모른다. 나도 앞이 보이지 않아. 항상 앞이 보이지 않았어. 버텼을 뿐이야. 잠시라도 애쓰고 있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그저 애써서 버텼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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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랑받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사랑의 샘물을 가져 타인에게 퍼부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한때 나에게 그 물이 약간이나마 고여 있었다면, 이제는 마른 흙바닥만 남아 있었다. 알고 있다. 거기에는 내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아니 내 책임이 전부라는 것을. 사고를 당한 것은 불운이었지만, 그 후의 내 감정, 내 행동은 모두 선택된 것이었다는 것을. 삶과 나 사이의 거리가 들떴을 때, 잇몸과 이를 들뜨듯이 무엇도 씹기 어려워 괴로웠을 때, 나는 오히려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을 초월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남편의 말대로 막대한 사랑과 감사.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우리는 절반의 진실을 얘기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스스로도 믿어 버리는 사람들의 후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적당한 사람들만 추려졌고 결함 또한 바큇자국처럼 유전자에 깊이 새겨졌다. 자기에게 유리하지 않을 경우 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합의할 수 없다는 결함 말이다. 사심 없는 진실 같은 객관성에서 어떤 개인적인 구원을 찾을 도리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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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 과거의 상실감을 뒤흔들어 깨우기도 했다. 기구 사고가 있기 5년 전, 우리가 만난 지 2년 째에 그녀의 대학 친구인 마저리가 희귀한 박테리아 감염으로 4주 된 아기를 잃은 적이 있었다. 클라리사는 아기가 생후 5일이 되었을 때 맨체스커로 가서 한 주 머물며 아기를 보살폈더랬다. 그 아기가 죽었다는 소식은 그녀를 무너뜨렸다. 그때까지 나는 그토록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슬픔을 본 적이 없었다. 그 슬픔의 한가운데 자리한 것은 아이의 안타까운 운명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일처럼 겪은 마저리의 상실감이었다. 실상 클라리사는 좌절된 모성애가 빚은 망상 속 자기 아이를 애도했덤 것이다. 마저리의 고통은 클라리사의 고통이 되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자기 방어기제를 회족하고, 옛 친구를 있는 힘껏 돌보는 데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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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특별한 일이 얼마나 빠르게 평범한 일상이 되고 마는가를 얘기하곤 한다. 밤에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구름을 뚫고 햇빛 속으로 솟아오르는 비행기에 타고 있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한다. 인간은 고도로 적응력이 뛰어난 존재이다. 예측 가능한 일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미리 알고 있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를 끌지 않는 배경으로 물러나며, 그래서 무작위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더 잘 다룰 수 있도록 여지를 준다.
사랑해. 너로 인해 살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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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주머니에 그녀의 편지 다발이 느껴졌다. 기다릴게. 돌아와. 그토록 소중했던 이 말도 지금은 그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 그것은 수학공식처럼 분명하고 감정이 배제된 일임이 분명했다. 기다림.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기다림이란 너무나 힘겨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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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억 명의 사람들이 20억 개의 목소리와 하나같이 중요하다고 아우성치는 20억 개의 생각들을 가지고 자신만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 세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곳이었다. 이런 세상에서는 사실 어느 누구도 특별할 수 없었다. 모두 자신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무도 특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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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익한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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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오그라들 것 같은 그 순간, 그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진심으로 증오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증오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감정이었지만, 사랑과는 달리 얼음처럼 냉정하고 이성적인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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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분명해지면 괴로웠다. 걸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지는 상처 때문도, 북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해변 위를 맴도는 급강하 폭격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의 마음 때문이었다. 정기적으로 무언가가 사라졌간다. 연속이라는 일상의 원칙, 인생에서 자신이 어느 곳, 어느 단계에 있는지 알려주는 평범한 그 요소가 점차 의식 속에서 희미해졌고, 결국에는 생각을 하지만 그 생각의 주체인 자신에 대해서는 망각하는 백일몽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책임감이 사라졌고, 몇 시간 전의 기억도 사라졌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계획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 문제들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버렸다. 도저히 이치에 닿지 않는 엉뚱한 확신에만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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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지탱해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기억들은 마지막으로 그 기억을 불러 냈을 때 그가 어디서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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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이전에도 알고 있었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통렬하게 실감했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인 존재라는 것, 쉽게 파괴되지만 쉽게 회복되지는 않는 존재.
낮에는 밤의 달빛을 즐기겠노라 마음먹지만 정작 밤이 되면 방 안에 틀어박히게 됩니다. 내가 왜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왜 잠자리에 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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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은 말입니다. 한계가 있어요. 인간의 본성은 기쁨, 번뇌, 고통을 어느 정도까지는 견디다가 그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파멸하고 말아요. 그러니깐 여기서는 사람이 약한가, 강한가의 문제가 아니고 그 사람이 고통의 한도를 견딜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게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에요. 그리고 악성 열병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이 부적절한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을 비겁하다고 부르는 것 역시 말이 안 된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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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그녀의 모습이 나를 따라다니네!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내 영혼을 온통 사로잡는다네! 두 눈을 감으며 여기, 내면의 시력이 모이는 머릿속에 그녀의 검은 눈동자가 어른거리네. 눈을 감는 순간 그녀의 모습이 나타난다네. 바다와도 같이 심연과도 같이 그녀의 모습이 내 앞에, 내 안에 스며들어서는 나의 머릿속을 장악해버린다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나를 놓아주겠다고도 말하지 마세요.
열세 살 그날 이후, 나는 한 뼘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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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을 때 사실 나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 인생은 옷처럼 그렇게 쉽게 벗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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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에게는 최고의 방패였다. 여학생을 강간해도 세상은 그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녀 자신조차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 때문에 그녀는 그의 곁으로 돌아왔다. 죄책감은 아주 오래된 순수 혈통의 양치기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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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려서 제일 좋은 점은 아무도 자기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라고, 류이팅은 생각했다. 사실을 부풀려 얘기할 수도 있고,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고, 심지어 거짓말을 해도 괜찮았다. 그건 어른들의 반사적인 자기 보호이기도 했다. 아이가 진실을 말해도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철없는 소리일 뿐이라며 귀담아듣지 않는다. 반복된 좌절감에 학습된 아이는 사실을 말하는 아이에서 선택적으로 사실을 말하는 아이로 변하고, 그러면서 어른이 된다.
당신은 사랑하는 감정이 어떻게 불시에 생겨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여자가 당신에게 대답한다: 어쩌면 우주의 논리에 갑작스레 끼어든 어떤 균열 같은 것에서요. 여자가 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실수 같은 것에서요. 여자가 말한다: 의지 같은 것에서는 절대로 생겨나지 않지요. 당신이 묻는다: 사랑하는 감정이 다른 것에서도 불시에 생겨날 수 있을까요? 당신은 말해달라고 여자에게 애원한다. 여자가 말한다: 모든 것에서요, 저 밤새(鳥)의 비행에서, 어떤 잠에서, 잠 속의 어떤 꿈에서, 다가오는 죽음에서, 어떤 낱말에서, 어떤 죄악에서, 스스로, 저절로, 어떻게 생겨나는지 모른 채 갑자기.
첫댓글 여시야 글 올려줘서 고마워!!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많네. 특히 모순이랑 밤이 선생이다 이 책 문장들은 다 너무 좋다ㅠㅠ 여시덕에 좋은 책들 알아갑니다ㅎㅎ
여시야 글 너무 고마워 덕분에 좋은 책 많이 알아가❤️🔥
와 문장 하나하나 다 너무 좋다ㅠㅠㅠ
너무 좋다 글쓴 여시야 고마워 글 읽는동안 행복했어 🤍🍵
북마크 하고 생각이 많아질 때 읽어야지..글 지우지말아줘 너무 좋아
응 안지울게!
헐 너무 좋다 고마워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진짜 소름 ㅠ 생각많아진다 고마워 글 지우지말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