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오마나 왜 이러세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할망구. 나 어떡해?
남자가 빠져나가고 음악실 안으로 쾅-소리가 울려 퍼지니 구자의 심장이 더욱 심하게 요동친다.
동회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구자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은 후 그의 입술 위로 바람을 후-하고 불어댄다.
그 뜨거운 입김에 놀란 구자가 필사적으로 동회를 밀어내 보지만 얼마 못가 다시 붙잡히고 말았다.
동회가 구자의 몸에 완전히 밀착 시킨 후 귀에다 대고 나직이 속삭인다.
"허리 좀 세게 안아 봐."
"어?"
"잠 좀 자게 받치고 있으라고."
"서서 어떻게……."
"니가 내 잠 방해한 벌이야."
동회가 구자의 팔을 손으로 집어 자신의 허리께로 가져간다.
이런 포즈로 자겠다는 동회의 말이 약간 의아했지만, 구자는 뭔가에 이끌리듯 조심스럽게 동회의 허리를 안았다.
그러자 동회가 구자의 목에 팔을 두르며 말을 잇는다.
"10분 뒤에 깨워라."
동회는 이 말을 남기고 천천히 내려오는 눈꺼풀을 닫았다.
구자는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이 남자로 인해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지만
목에 닿는 야릇한 콧바람 때문에 사실 무거운지도 잘 몰랐다.
가끔씩 몸을 움찔 거리는 구자와는 달리 동회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10분 뒤에 깨우라고 했거늘, 이미 10분이 지나고도 벌써 넘었는데
동회는 달콤한 잠에 취해버렸는지 일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너무 곤하게 자고 있어 깨우기 미안할 정도였지만 구자는 용기를 내어
동회의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을 풀어 그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동회의 입에서 말소리가 흘러나온다.
"내가 10분 뒤에 깨우랬지."
"아, 나는 니가 너무 잘 자기에……."
"자긴 누가 자."
동회가 몸을 떼고 오묘한 표정으로 구자를 쳐다본다. 이어 구자의 왼쪽 가슴께를 툭툭 치며 말했다.
"니 여기 때문에 시끄러워서 한숨도 못 잤거든."
"……."
"책임져."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는 구자다.
책임이라는 단어의 뜻도 정확히 모른 채.
* * *
싱크대 앞에선 구자가 갑자기 자기 심장 쪽에 손을 갖다 대본다.
지금은 별로 안 시끄러운데. 아깐 왜 그랬던 거야. 이상해. 고장 난건가?
"구자 네 이놈! 아직도 멀었느냐. 배고파 뒤지겠다."
구자가 낮에 있었던 동회와의 일을 생각하느라 잠시 얼이 빠져 있는데 선율이 주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어느새 구자 옆에 바짝 붙은 선율이 싱크대 안을 빼꼼 들여다보더니 얼굴을 마구 일그러뜨린다.
"너 지금 뭐해?"
"밥…."
"누가 쌀에다 퐁퐁을 넣어!!! 미쳤어?"
"여기에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해서."
구자는 고윤이 찬장위에 정성껏 붙여 놓은 <밥 맛 있게 하는 법>을 가리키며 말했다.
노란 포스트 잍 속 동그라미 2번에는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쌀을 깨끗이 씻는다'라고 적혀 있었다.
밥을 처음해보는 구자라 '깨끗이 씻는다'라는 말을 전날 설거지 할 때와 동일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쌀이 든 바가지 안에서 퐁퐁 거품이 뽀글뽀글 일고 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선율이 옆에 있는 구자를 거칠게 밀어내고 찬장에서 뜰채를 꺼내어 쌀알을 퍼 담았다.
이내 물을 틀어 거품을 싹 헹구어 내며 말했다.
"쌀처럼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건 퐁퐁 넣고 씻으면 안 된다는 것도 몰라? 너 어느 별에서 왔어~ 인간 아니지?"
"내,내가 왜 인간이 아냐! 나 인간 맞아, 인간!"
선율은 그저 자극을 주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팔짝 뛰는 구자를 보니 쪽-하고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구자를 구박하는 선율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지만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했기에 일부로라도 더 핀잔을 주어야했다. 바로 지금처럼.
"일을 좀 똑바로 하란 말이다. 이걸로 누굴 죽일라고, 콱-!"
선율이 겁을 주며 노려보니 구자가 살짝 움츠러든다.
그에 살짝살짝 야유를 섞어가며 불쌍한 구자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트리는 것으로 일단락 지었다.
"근데 너 반찬은 할 줄 아냐?"
"아니."
"말해 뭐하겠니. 그치?"
"헤헤."
구자의 애교 섞인 눈웃음에 선율의 가슴이 잠시 흔들린다. 설레기도 했지만 약간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방금 구자가 보여준 그 예쁜 눈웃음은 마계에 있을 때 엘린이 휴에게만 보여주던 것이었으니까.
선율은 잠시나마 휴로 돌아가 인간 피선율을 질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자기 자신을 질투한다는 게 어찌 보면 웃기는 일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구자의 두 눈에 담긴 사람은 휴가 아니었다.
선율은 하루 빨리 구자가 자신을 알아봐줬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나 인간 남자인 선율은 마계사람이던 휴 때와는 너무도 달라 도저히 알아볼래야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야 선구자."
"어?"
"바보 같으니까 앞으로 그렇게 웃지 마. 내 말 안 들으면 너 쫒아 낼 거야."
구자는 갑자기 또 변덕을 부리는 선율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흘겨본 후 고개를 픽- 돌렸다. 그리고 생각한다.
'피-, 휴는 내가 웃을 때 제일 예쁘다 했다 뭘. 아- 갑자기 휴 보고 싶어.' 어느새 휴의 폼나는 얼굴이 구자의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러나 선율은 구자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오히려 자기 말을 흘려듣는다며 구자의 머리통을 세게 한 대 쥐어박았다.
그것도 모자라 풍일에게 쪼르르 달려가 방금 전 쌀에 퐁퐁을 풀어댄 구자의 만행을 꼰질러 버렸다.
"구자 이 새끼!!! 감히 내 밥에 퐁퐁을 풀어?! 너 일로 안 와!!!!"
"으아악-!"
마치 톰과 제리를 연상케하는 그들의 술래잡기를 어린 천희가 뒷짐을 지고 유심히 살피며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형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천희에게 제대로 미움 받고 있는 구자였다.
* * *
"뭐 써? 일기?"
잠자리에 들기 전 인간탐구 일지를 쓰고 있는데 고윤이 궁금했는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몸으로 일지를 가리며 받아쳤다.
"별거 아니야. 전에 우아한 아줌마가 쓰라고 한 거, 그거야."
"뭐 썼나 구경 좀 해보자."
넌 봐도 몰라. 왜냐면 인간어가 아닌 마계어로 썼으…… 아니다. 고윤이 마계인이라면 단번에 알아 볼 거 아냐?!
나는 내가 쓰고 있던 일지를 고윤에게 들이 밀었다. 그러자 고윤이 눈썹을 귀엽게 움직이며 웨이브를 타기 시작한다.
설마, 내가 자기네들 욕 써 놓은 거 읽은 건가? 고윤이 진짜 마계인?
나는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전부 내 눈에 담았다.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네. 이거 어느 나라 말이야?"
역시 아닌가? 에이.…… 아냐! 다 알아 봤는데 괜히 나 헷갈리게 하려고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 걸 수도 있어.
"이거 어디 말이냐고~"
"어? 어~ 이거는 말이지. 내가 전에 살던 곳."
"거기가 어딘데?"
어디라고 해야 되지? 아, 진짜 어디라고 해야 하는 거야! 지금 바로 생각나는 데가 없는데!
"어- 어, 내가 나중에 말해주면 안 될까? 헤-."
"뭐, 그러든지. 암튼 빨리 쓰고 올라 와라."
"난 그냥 밑에서 자도 되는데."
"바닥 되게 차가울 텐데."
"괜찮아."
정말 괜찮겠냐고 재차 확인하는 자상한 고윤이다.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주는 게 그 사람이랑 많이 닮았다.
"그거 다 쓰면 불 꺼."
"응."
"잘 자라, 구자."
어딘지 느낌이 비슷하다.
"너도."
"형이라니까."
"아, 형도…."
"풋-."
꼭 휴 같아.
첫댓글 헉;;착각하는건가??
재밌어요~ 많이 길게 나왔으면 좋겠어요(그래도 지금도 좋아요..)
동회야~~~~~~~~!! ㅋㅋㅋㅋ
오노... 착각하면 안된다.....ㅠㅠㅠㅠㅠㅠㅠㅠ
오노... 착각하면 안된다.....ㅠㅠㅠㅠㅠㅠㅠㅠ
착각도 참.......-_- 랄까 동회야! 덮치는것도 물론이거니와 꼬시는것도 내 허락받아라!
오 ~ 동회도 매력있네..ㅋㅋ
오우 감사합니다.
구자는 선휼이껀데................. 휴껀데............. 그리고 구자 너는 책임져가 무슨 말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