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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시 문학관을 찾아서
旺山 조재완
지난 일요일, 모처럼 짬을 내어 약 일천여 편에 달하는 주옥같은 시로써 하나의 거대한 산맥을 이루어 내고 떠나신 미당 서정주 선생을 기념하여 지어진 미당 시 문학관엘 가보자 하여 아내와 함께 길을 나섰다. 경칩을 지났는데도 쌀쌀하던 그간의 날씨도 많이 누그러져 포근해진 새벽, 집을 나서다 올려다 본 하늘이 맑다. 그동안 멀리 전라북도 고창에 위치한 까닭에 미당 시 문학관을 찾아 가기에는 거리라든가 시간이라든가 하는 점 때문에 쉽게 내지 못하던 엄두였는데, 마침 동백꽃이 필 무렵이니 선운사 동백꽃 구경도 겸하자는 내 말에 선뜻 따라 나서는 아내가 고맙다. 하지만 그 흔한 자가용도 없애 버린 지 오래라 고속버스를 타고 고창 터미널에 내려서(나중에 알고 보니 오는 도중에 들른 흥덕에서 내렸어야 했다) 문학관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하는 여행길이어서, 속도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꽤나 참을성이 필요했다. 게다가 내가 사, 오십년 전에 타고 다녔던 옛날의 그 시골버스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골길을 달리고 있었다. 마치 시골버스는 의당 이래야 한다는 듯이...
왜 아직도 이런 버스가 있나요? 아, 네. 시골은 폐차연한이 되어도 연장사용승인을 해 주어서지요. 이렇게 시작된 시골버스 기사님과의 대화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빙글 빙글 돌아다니는 한 시간 내내 계속되었는데, 문학관이 자리한 선운리 종점까지 오는 동안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었던 덕택에 오직 우리만의 전세버스처럼 되어 버렸고, 기사님은 기사님대로 오랜만에 말 벗 한 번 잘 만났다는 듯 관광안내원이 되어 이것저것을 신나게 얘기해 주어서 시골길의 지루함을 쫓아 주었다. 선운리 종점에 내리자 바로 그 앞이 미당 시 문학관 입구였다. 한때는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함성 소리로 시끌벅적하였을 초등학교 분교가 학생 수가 줄어들자 그만 폐교되었고, 그 폐교를 아예 통째로 미당 시 문학관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고 있어서 단일 시 문학관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그 규모가 크고 널찍하였다.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한적한 시골마을에 있어서인지 이 날은 찾아오는 이가 별로 없어서 유리관 안에 재현해 놓은 집필실이며 약 오천여 점에 달한다는 여러 유품들과 벽에 걸린 선생의 대표작들을 둘러보기가 여간 여유롭지 않아서 좋았다. 선생이 가신지 일 년 만인 지난 2001년에 개관했다가 작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씌어져 있는 안내문을 지나서 곳곳에 걸린 선생의 사진과 유명한 시편들을 한편 읽으랴, 한편 사진에 담으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특히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운율에다 고운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선생의 시 엮는 솜씨에 새삼 경탄에 경탄을 거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한 여러 번 고쳐 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의 육필원고를 보면서는 그가 얼마나 치열한 사유(思惟)속에서 빛나는 명시들을 쓰시려 피나게 노력했는지에 생각이 미쳐 절로 고개가 숙여지기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면서 문학관을 둘러 보다 보니 너무 시간을 지체해 버린 바람에 예정했던 선생의 생가를 방문할 시간을 다 허비해 버려서 하는 수 없이 다음 목적지인 선운사로 가는 버스를 타러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생가와 유택과 문학관이 서로 가까운 곳에 있기는 드문 경우라는데 시간의 여유가 없어서 다 둘러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참 아쉬웠다. 선운사 가는 버스를 만나려면 문학관을 나와서 왼쪽으로 약 십오 분 정도를 걸어가야 한다는 아까의 그 버스 기사님의 말에 따라 한참을 가다가, 아내가 지나가는 자가용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버스 타는 곳까지 태워다 주기를 청하니 자가용차 기사님은 선뜻 우리를 태워 주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 우리가 얻어 탄 차에는 바로 다름 아닌 미당 선생의 친동생이자 시인이신 서정태 선생이 타고 계시질 않는가? 바로 엊그제 중앙일보에 난 그 분의 인터뷰 기사에서, 미당 선생의 생가이자 자신의 생가이기도 한 그 생가 옆에 조그만 집을 지어 생가를 지킬 겸 살고 계시면서 이번에 두 번째 시집까지 내셨다는, 올해로 연세가 아흔이나 되셨지만 무척 건강하고 정정하신 그 서정태 선생을 이렇게 우연히 뵙는 행운을 누리게 될 줄은 미쳐 몰랐었다. 아마도 생전에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의 인연설에 관련된 많은 시를 쓰신 미당 선생의 혼백이 이런 기막힌 인연을 맺어 준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여튼 시간이 촉박해서 생가를 가지 못한 아쉬움을 이렇게라도 풀게 되었으니 참 다행이었다. 우리가 미당 시 문학관을 둘러보려고 서울에서 일부러 왔다는 것을 알고 기사님은 옆에 앉은 서정태 선생에게 양해까지 구해가면서 자신들의 목적지와는 반대방향에 있는 선운사 입구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어서 더욱 고마웠다.
이렇듯 뜻하지 않았던 즐거운 경험까지 하여 더욱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우리는 빨갛고 앙증맞은 모습으로 피어 있을 동백꽃을 마중하러 선운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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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마음에 담아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행운을 빕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늘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