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도 9월 일 자산군사 16세 허추(樞) 묘역 정리 작업중 잃어버렸던 부인묘비석이 많이
훼손된 모습으로 땅속에서 허재무 회장이 발견하여 원래 있던 받침돌위에 안치되었다.
字는 가운(可運)이고 절충장군(折忠將軍) 섭호군(攝護軍) 行 자산군사(慈山軍事) 贈 병조참판
(兵曺參判) 을 지내셨다. 부인(夫人)은 下 전주최씨 직보문각선조완성군(直寶文閣宣祖 完城君)
최을의(崔乙義)의 따님이시다. 이번 발견된 묘비석은 할머니의 묘석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최을의(崔乙義)
대표관직(경력) 사헌북사
1372년(공민왕 21) 사헌부사로서 김존성(金存誠) 등의 사건을 알린 적이 있었다. 1375년
(우왕 1) 이인임(李仁任)을 해하려고 모의하였다 하여 귀양을 가게 되었다.
1385년우왕이 태묘(太廟)에 분황(焚黃: 나라에서 관직이나 시호를 내리면 그 내린 명령을 누런 종이에
옮겨 써서 선조의 사당 앞에서 태우고 제사를 드리는 것)하는 제사를 지낼 때 동지밀직으로서 제사에
쓴 고기를 장부(張溥)에게 전하기도 하였다.
공양왕 초에 밀직사에 이르렀으나, 1392년(공양왕 4)이성계(李成桂)가 정몽주(鄭夢周)를 살해하고 정부를 개 편할 때 경상도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개국과 함께 배소에서 장살(杖殺)되었다.
출처: 최을의 [崔乙義]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8월 23일 임신 2번째기사 1392년 명 홍무(洪武) 25년
이숭인·이종학·우홍수의 졸기
손흥종(孫興宗)·황거정(黃居正)·김로(金輅) 등은 조정에 돌아왔으나, 경상도에 귀양간 이종학(李種學)·최을의(崔乙義)와 전라도에 귀양간 우홍수(禹洪壽)·이숭인(李崇仁)·김진양(金震陽)·우홍명(禹洪命)과 양광도(楊廣道)에 귀양간 이확(李擴)과 강원도에 귀양간 우홍득(禹洪得) 등 8인은 죽었다.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노하여 말하였다.
"장(杖) 1백 이하를 맞은 사람이 모두 죽었으니 무슨 까닭인가."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