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의 문화답사
1 보물 제234호 군산 발산리 석등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발산초등학교
원래는 완주지역에 세워져 있던 석등으로,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불을 켜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의 가운데기둥은 사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깍은 모습으로, 표면에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의 모습을 새겼는데,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화사석은 4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깍아 8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각 면에는 4개의 창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번갈아 두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화사석에 새겨 놓아 등불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붕돌은 8각으로 각 모서리선이 뚜렷하며, 곡선을 그리는 처마는 여덟 귀퉁이에서 치켜올림이 시원하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된 머리장식 받침대를 마련해 놓았으나, 머리장식은 남아있지 않다.
화사석의 사천왕상과 지붕돌의 양식 등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듯 하지만, 받침부분의 기둥이 4각으로 변하고 화사석 역시 4각을 닮은 8각으로 이루어져 있어, 8각에서 4각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석등을 만든 시기도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2 보물 제276호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원래는 완주(完州)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였으나 지금은 탑신의 한 층이 없어지고 4층까지만 남아있다.
아래·위 기단 모두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기단 위로 4층의 탑신에는 각 층의 몸돌마다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고 추녀 끝이 약간 들려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밑에는 3단의 받침을 두어 고려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탑 머리 부분에는 머리 장식이 일부 남아 있으나 훗날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으며, 고려탑의 간결한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다.
24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5호 발산리육각부도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이 부도는 1903년 군산에 농장을 개설한 일본인 시마따니 야소야라는 사람이 위치를 알 수 없는 절터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하며, 현재 발산리오층석탑(보물 제276호) 및 석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육각의 지대석 위에 2단의 하대석이 있는데 하단은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단은 복련과 함께 중대받침이 높게 각출되어 있다. 육각의 중대석에는 우주를 모각하고 있으며 앙련의 상대석 위에는 낮은 탑신받침이 있다.
육각의 탑신석은 2개소에 문비를 모각하였으며, 4면에는 희미하여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천왕상이 각출된 것으로 보이며, 옥개석 아래에는 3단의 옥개받침과 함께 연자와 부연을 모각하였으며 상면은 기왓골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오각부에 귀꽃장식이 있었으나 모두 결실되었으며 상륜부도 결실되었다. 전체높이는 175㎝ 내외이다.
이 부도는 전체적인 구도와 조각수법이 뛰어나며 6각이라는 형태가 특이한 부도이다. 이 부도의 본디 위치와 주인공에 대한 것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부도는 일반적인 탑형 부도 양식을 따르면서 그 평면이 6각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드문 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 불교 조형물에서 6각이 등장하는 것이 고려시대에 들어 중국 송나라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 하여 그 연대를 어림할 수가 있다. 또 전북 김제에 있는 6각 평면 구도를 가진 금산사육각다층석탑(보물 제27호)과 같은 맥락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평면형의 특이함과 희소가치만이 아니라 비교적 높은 조각수법과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3 보물 제1718호 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전라북도 군산시 동국사길 16 (금광동, 동국사)
군산 동국사의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석가여래와 2대 제자인 가섭과 아난존자로 구성된 삼존이다.
150cm가 넘는 대형상으로는 유일한 아난과 가섭을 협시로 한 석가여래삼존이며, 이 불상 들에서 나온 전적물이나 복장물의 기록에서 이 상이 전라도 지역에서 활약하였던 이름이 알려진 조각승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불상양식이 형식적으로 흐르기 전 단계의 소조불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며 세 불상에서 나온 복장물은 후령통의 제작기법, 내용물, 재질 등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6 등록문화재 제64호 군산 동국사 대웅전
전북 군산시 동국사길 16 (금광동)
이 건물은 개항 후 일본인과 함께 들어온 일본 조동종(曹洞宗) 사찰인 금강사의 불전으로 건립하였으나, 광복 후 조계종 사찰 동국사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지붕 물매는 급경사를 이루며, 건물 외벽에 미서기 문이 설치되어 있는 등 일본 사찰 건축 양식을 따랐다. 법당 내부가 일부 변형되었지만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4 천연기념물 제501호 군산 말도 습곡구조
전북 군산시 옥도면 말도리 산90-1번지 등
선캄브리아기는 고생대 이전의 매우 오래된 지질시대로서, 이 시대의 암석은 대부분 심한 변성작용을 받아 원래의 암석 구조가 남아있는 경우가 드문편이다. 하지만 군산 옥도면 말도의 선캄브리아기 지층은 심한 변성과 변형작용에도 불구하고 물결자국 화석과 경사진 층지 등의 퇴적구조를 아직까지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의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의 선캄브리아기 퇴적환경을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지층은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지층은 나중의 지각변형에 의해 만들어진 여러 구조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들 중 습곡은 나타나는 형태와 종류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습곡이 만들어질 때 부수적으로 생기는 다양한 구조들이 함께 나타나는 것이 특이하다. 그 중에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구조들(층상단층의 듀플렉스 구조, 여러 단계에 걸쳐 만들어진 중첩된 습곡 등)도 포함되어 있으며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이러한 점들이 이 지층을 국내 여타 지역의 선캄브리아기 지층과 구별짓는 중요한 특징이다.
5 천연기념물 제548호 군산 산북동 공룡과 익룡발자국 화석산지
전라북도 군산시 산북동 1047-17
전북지역에서는 최초로 공룡과 익룡발자국 화석이 함께 산출되는 화석산지로 한반도 공룡시대의 고생물지리와 고환경 연구에 있어서 매우 유용한 학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발자국 화석의 다양성과 밀도가 높고 국내에서는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보존상태가 뛰어난 대형 수각류 보행렬 화석 및 국내 최대 크기의 초식공룡(Caririchnium) 발자국 화석은 백악기 당시 공룡의 행동특성과 고생태 환경을 이해하는 데에 귀중한 학술자료가 될 수 있다.
6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37호 상주사대웅전
전북 군산시 서수면 함안로 57-29 (축동리)
취성산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진평왕 28년(606)에 혜공이 지었으며 상주사(上住寺)라 하였다. 고려 공민왕 11년(1362)에 나옹이 다시 지으면서 현재의 이름 상주사(上柱寺)로 부르게 되었다. 그 뒤 조선 인조 19년(1641)과 영조 28년(1762)에 수리하였다.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는 우물천장과 빗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단청을 하여 전체적으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한 조선 중기의 건물이다.
7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66호 탑동삼층석탑
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66-1번지
1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후 머리장식을 얹은 탑으로, 백제탑 양식을 일부 보이고 있다.
기단은 밑바닥돌이 탑의 보수 당시 콘크리트에 묻혀 버렸다. 탑신부는 각 부분을 조립하듯 여러 돌로 짜 맞추었는데, 1층 몸돌은 큰 편이나, 2·3층의 몸돌은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1층 지붕돌은 별도의 돌로 2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앙화(仰花:활짝 핀 연꽃모양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옛 백제 지역에 세운 고려시대의 석탑으로서, 백제탑 양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어 지방적 특색을 보여준다.
8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17호 불주사대웅전
전북 군산시 나포면 장상리 836번지
불주사는 망해산에 있는 절로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지어졌다고는 하나 그 뒤의 역사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불주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으로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인데 반해 건축양식은 다포식 계통의 수법을 따르고 있다. 기단 위의 기둥은 가운데만 굵게 한 배흘림 형식이며, 앞면 가운데칸은 3짝으로 亞자형 문이고, 양 끝칸은 2짝문으로 되어있다.
불주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한말에 수리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9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2호 노성당(老星堂)(사단법인대한노인회)
전북 군산시 임피면 읍내리 422번지
임피향교의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건물로 임피유생들이 역대 수령들의 위패를 모시고 1년에 한 차례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유생들은 이곳에 모여 여가를 보내며 시와 노래를 즐기기도 한다. 지어진 연대는 중앙마루에 쓰여진 기록으로 보아 철종 6년(1855)임을 알 수 있다.
건물은 앞면 6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의 디딤돌로 사용되는 돌 중에 탑의 일부분으로 쓰이던 부재 2개가 발견되고 있으며, 향교의 부속건물 중에서도 주춧돌로 옥개석 1개가 사용되었다. 또한 진평호씨의 집에서도 옥개석의 일부를 주춧돌로 사용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임피읍지』에 5층 석탑과 4층 석탑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는 기록을 확인해 주고 있다.
정원에는 2구의 문인석이 있는데 일반적인 형태와 거의 비슷하나 눈 부분을 튀어나오게 조각하여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
10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84호 은적사석가여래삼존상
전북 군산시 설림3길 49, , 1332-1 (소룡동)
11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93호 불주사목조관음보살좌상
전북 군산시 나포면 군둔길 226 (장상리)
불주사 관음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목불상으로, 높이 45㎝, 무릎폭 35㎝이다. 불주사는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하나 뚜렷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머리에는 화려한 ‘산(山)’ 모양의 보관을 쓰고 있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게 솟아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은 원만하며 가는 눈, 오똑한 코, 굳게 다문 입 등이 균형있게 표현되었다.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3개의 주름이 있어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이 두 팔에서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에는 가로 입혀진 옷의 단이 보이는데 별다른 장식은 없다. 손모양은 양쪽 손을 수평으로 들어 무릎 위에 가볍게 놓아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있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다.
이 관음보살좌상의 복장에서는 불상발원문과 시주기 등이 발견되었는데, 발원문에 의하면 순치 3년(1647)에 이 불상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조성연대가 1647년으로 원만한 얼굴, 당당한 어깨, 안정감 있는 무릎 등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어 조선후기 불상의 편년작으로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12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94호 불주사목조아미타여래좌상
전북 군산시 나포면 군둔길 226 (장상리)
불주사 대웅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어 있는 목조여래좌상으로, 높이 90㎝, 무릎폭 64㎝이다. 불주사는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창건된 절이라고 하나 뚜렷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낮게 솟아 있다. 넓적한 얼굴은 원만하며, 가늘고 긴 눈과 큼직한 코 등이 균형있게 표현되었다. 이마 부분에는 동그란 백호(白毫)가 있으며,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3개의 주름이 있어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이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주름이 두 팔에서 흘러내려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에는 가로 입혀진 옷의 단이 보이는데 별다른 장식은 없다. 손모양은 오른손과 왼손을 모두 무릎 위에 두어 첫째손가락과 셋째손가락을 마주 잡고 넷째손가락을 약간 구부린 형태이다.
최근에 개금불사시 발견된 복장기록에 의하면, 이 불상은 조선 제18대 현종 7년(1666)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전체적으로 자세가 안정되었으며 넓적한 얼굴, 가슴에서 평행으로 가로지른 군의의 표현 등 조선후기 불상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13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00호 이영춘가옥
전북 군산시 동개정길 7 (개정동) 일제강점기
이 집은 구 개정병원 본관 동쪽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1920년경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가 지은 개인별장으로 외부형태에 있어서는 유럽의 주거형식을 따르며 평면의 구조는 일식의 중복도형 평면을 바탕으로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 온돌방이 결합된 절충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영춘 박사가 사용하면서 일식의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하였으며, 외관의 구조를 포함한 전체적인 주거의 틀은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가옥내의 기초와 벽난로는 호박돌을 허튼층쌓기 하였고 외벽의 하부는 통나무를 절반으로 켜서 걸침턱맞춤으로 짠 귀틀집의 구조이며 외벽의 상부는 회반죽 뿜칠로 마감하여 색채와 질감이 목재와 좋은 조화를 이룬다. 지붕은 요철이 있는 평면구조에 맞추어 박공과 모임지붕이 결합된 형태 위에 판석으로 마감하였다.
이 집의 바닥은 티그목 쪽매널이 정교하게 짜여져 있으며 샹들리에 및 가구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로 당시 건축비가 조선총독부의 관저와 비슷하게 소요되었다고 할 만큼 고급 자재를 사용하였다.
중복도를 중심으로 남쪽에 커다란 다다미방이 있고 북쪽에는 현재 식당으로 사용하는 온돌방이 있으며 복도 끝에 작은 홀이 있어 부엌과 다용도실, 화장실이 연결된다.
외부와 연결되는 북쪽 창은 유리를 낀 세살창과 미닫이 방충망, 완자창 등 3중의 창을 만들었으며 부엌은 현재 북쪽에 개수대를 설치하여 서서 행동하도록 된 부엌으로 개조하였다.
이 건물은 근대의 새로운 주거문화의 이입과 양상을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평면과 외관의 구성을 볼 때 뛰어난 건축적 구성을 하고 있다. 서구식·일식·한옥의 양식이 결합된 이와 같은 사례는 도내의 주거 건축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없으며 다른 도에서도 흔치않은 사례로 파악된다.
또한 이 건물은 일제의 토지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으며 해방 후 주인이었던 이영춘 박사의 지역 의료 활동에 끼친 역사적 비중을 볼 때 가치가 있다.
14 전라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21호 군산 상주사 목조삼세불좌상
전라북도 군산시 함안로 57-29 (서수면, 상주사)
상주사는 군산시 서수면 축동리 축성산에 위치한 사찰로서, 백제 무왕때 창건되었고, 고려 공민왕때 나옹대사, 조선 인조 19년(1641) 취계대사, 영조 38년(1762)에 학봉선사가 각각 중창하였다.
삼불좌상은 높이가 1m가 넘는 대형 목불로서 원만한 상호, 당당한 어깨, 균형있는 모습 등 17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현재 대웅전 불단 위에 삼불을 봉안하고 있는데 가운데에는 석가여래, 왼쪽에 약사여래, 오른쪽에 아미타여래을 안치하고 있다.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은 나발의 머리 위에 육계가 표시되었고 얼굴 형태가 원만하며 양 미간, 콧날, 입술이 정제되어 있으며, 미간의 백호(白豪)는 수정이며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삼도(三道)가 돌려 있어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이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인데 오른쪽은 법의가 바깥쪽으로 펼쳐져 팔이 안쪽으로 노출되고 있고, 오른쪽 팔 밖으로부터 배꼽 앞을 거쳐 큼직한 원호(圓弧)를 그리고 길게 늘어져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에는 군의(裙衣)와 군의대(裙衣帶)가 보이는데 별다른 장식은 없고 사선으로 한겹 접혀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 위에 놓아 촉지인(觸地印)을 취하고 있으며 왼손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오른쪽 발바닥 위에 놓아 상장(上掌)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하면은 널찍한 목판으로 막음하였다.
왼쪽의 약사여래좌상은 나발의 머리 위에 육계가 표시되었고 얼굴 형태가 원만하며 양 미간, 콧날, 입술이 정제되어 있다. 이마의 백호는 수정이며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둘러진 삼도(三道)가 잘 어울려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이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으로 길게 흘러 배꼽 앞을 거쳐 큼직한 원호(圓弧)를 그리고 양쪽 팔에 걸친 옷은 길게 늘어져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에는 군의(裙衣)와 군의대(裙衣帶)가 사선으로 한겹 졉혀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앞에 놓아 상장(上掌)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 쪽에 수평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잡고 약병을 받들고 있다.
오른쪽의 아미타여래좌상은 나발의 머리 위에 육계가 표시되었고 얼굴 형태가 원만하며 양 미간, 콧날, 입술이 정제되어 있다. 이마의 백호는 수정이며 양쪽 귀는 짧은 편이나 목에 둘러진 삼도(三道)가 잘 어울려 인자하면서도 근엄한 인상이다.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으로 길게 흘러 배꼽 앞을 거쳐 큼직한 원호(圓弧)를 그리고 양쪽 팔에 걸친 옷은 길게 늘어져 양쪽 무릎을 덮고 있다. 가슴에는 군의(裙衣)와 군의대(裙衣帶)가 사선으로 한겹 졉혀 있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 외장(外掌)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으며 왼손은 결가부좌한 오른쪽 발꿈치에 놓고 상장(上掌)하여 엄지와 중지를 잡고 있다.
삼세불의 높이가 모두 1m를 넘는 대형 목불로서 원만한 상호, 당당한 어깨, 균정한 등체, 결가부좌한 양쪽 무릎이 안정감 있게 조성된 점 등으로 임진왜란 직후인 17세기 초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조형과 유려한 옷주름 등 조선시대 전형적인 목불의 형태이다.
15 전라북도 시도무형문화재 제22-2호 침선장(전통복식, 임순옥)
(林順玉) 전북 군산시
16 전라북도 시도무형문화재 제26호 전북의앉은굿(독경)(최갑선)
(全北의앉은굿(讀經)) 전북 군산시
17 전라북도 시도무형문화재 제38호 호남 넋풀이 굿(독경) (하진순)
전북 군산시
18 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32호 최호장군유지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21번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최호(?∼1597)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장군은 선조 9년(1576)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간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선조 27년(1594)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었으며, 선조 29년(1596)에는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이몽학의 난을 평정하였다. 선조 30년(1597)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칠천량해전에서 원균 등과 함께 싸우다 전사하였다. 선조 37년(1604)에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2등에 봉해졌다.
이 사당은 최호의 후손 최호선이 영조 5년(1729)에 세운 것으로 1906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사람 인(人)자 모양의 맞배지붕에 앞면 3칸·옆면 1칸으로 되어 있다.
19 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87호 구군산세관본관
전북 군산시 해망로 244-7 (장미동)
장미동에 위치한 구세관 건물이다.
벨기에에서 수입해 온 적벽돌로 되어 있는 유럽 양식의 건물로, 서울역사와 한국은행본점 건물과 같은 양식이다. 지붕은 연화조동판으로 되어있으며 지붕 위에는 3개의 뾰족한 탑이 있다. 외부는 벽돌로 짓고, 내부는 목조로 지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일인이 건물을 설계하였으며, 광무 3년(1899) 5월 1일 인천세관 관할로 군산세관을 설치하였고, 1906년 청사를 계획, 1908년 6월 20일에 준공하였다.
20 전라북도 시도민속문화재 제24호 채원병가옥
전북 군산시 성산면 고봉3길 41-37 (고봉리)
조선 후기에 지은 이 지방 부농의 집으로 고봉산 지맥이 지네와 같은 형상을 이루는 지형의 가장 중요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안채는 철종 11년(1860)에 지었고 사당은 1901년에 지었다.
원래는 건물이 여러 채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 사랑채, 사당만이 남아있다. 비탈진 지형때문에 기단을 이중으로 쌓았으며, 북쪽 전면에 대문간, ㄷ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그 뒤에 一자형 안채가 있다.
건물 규모가 커지고 툇마루가 각 방을 연결하면서 길게 이어지는 등 조선 후기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가옥이다.
21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5호 임피향교대성전 /향교재단
전북 군산시 임피면 임피향교길 46 (읍내리)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임피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 흑산리에 처음 지었고, 숙종 36년(1710)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22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6호 옥구향교대성전 / 군산시 향교재단
전북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상평리)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옥구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 이곡리에 처음 지었고, 인조 24년(1646)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옥구향교의 특색은 단군에게 제사지내는 단군묘와 최치원의 영정을 모신 문창서원, 세종대왕 숭모비(崇慕碑)와 비각이 있다는 점이다.
23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6호 자천대(紫泉臺) 향교재단
전북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상평리)
원래 옥구군 선연리의 동산에 있었으나, 일제시대 후기 군용비행장 안으로 편입되자 이를 상평마을로 옮기고 경현재라 하였다가 1967년 다시 지은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하자, 자천대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의 2층 누각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여러 가지 색으로 된 무늬를 곱게 칠해 놓았다.
25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91호 군산 지장암 소조관음보살좌상
전라북도 군산시 원아산2길 135 (개정면, 지장암)
지장암은 군산시 개정면 아산리 고봉산의 8부 능선에 서남향으로 자리하는 태고종 사찰로서, 절의 창건에 대한 오래된 기록이나 유물·유적 등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지장암 법당에 모셔진 소조관음보살좌상은 복장유물의 유실로 정확한 내용은 살펴볼 수는 없지만, 자애로움이 충만한 자비로운 얼굴 표정과 온화한 느낌이 강하여 예술성이 뛰어남은 물론, 결가부좌한 양쪽 무릎이 안정감 있게 조성되어 있는 등 조형적인 면에서도 탁월하다.
또한, 자연스러운 옷 주름 표현과 얼굴의 표현방식 등 우리지역에서 보기 드문 불상이며, 현재 작례가 많지 않은 소조보살상이라는 점과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불상양식을 반영한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27 등록문화재 제182호 군산 발산리 구 일본인 농장 창고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이 건물은 군산 지역의 일본인 대지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조로 견고하게 지었다. 입구에는 미국에서 들여온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에는 이중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 때문에 한국전쟁 때에는 군산에 주둔한 인민군들이 옥구 지역 우익인사들을 감금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금과 서류뿐만 아니라 일본인 대지주가 불법 수집한 수많은 한국의 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을 보관하던 건물로, 일본인이 자행한 수탈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다.
28 등록문화재 제183호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전북 군산시 구영1길 17 (신흥동)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다.
29 등록문화재 제184호 군산 해망굴
전북 군산시 중앙로 255, 외 3필지, 금동 9-3 외 4필지 (해망동)
해망굴은 구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기 위해 1926년 건립한 반원형 터널(높이 4.5m 길이 131m)로서 근대 도시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토목 구조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현 서초등학교),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안국사(현 흥천사) 등이 인근에 있어서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 주둔 북한군 지휘본부가 터널 안에 자리하여 연합군 공군기의 공격을 받았던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다
30 등록문화재 제207호 군산 구 제1수원지 제방
전북 군산시 솔꼬지1길 46, 외 3필지 (소룡동)
이 수원지는 군산시 중심부 점방산, 설림산 기슭을 흐르는 물이 모이는 곳으로, 군산 지역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1912년 공사를 시작한 뒤 연인원 10만 명을 동원해 3년 만에 완공하였다. 이 지역 대다수 시민이 우물물을 길어 마실 때 건립한 수원지로, 제방과 수문, 수위측정 탑은 근대 초기 산업 시설물 건립의 수준을 잘 보여 준다.
31 등록문화재 제208호 군산 구 임피역
전라북도 군산시 서원석곡로 37-0 (임피면, 임피역)
임피역사는 2동, 1층 규모로 역사 건축면적 86.48㎡, 화장실 43.32㎡이다.
임피역사는 군산선로의 역사로 1936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판단되며, 1920년 12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였다. 구조는 목조로 벽체는 시멘트 모르타르 마감되어 있다. 지붕은 맞배집 형태에 박공을 설치하였는데 출입구와 개찰구 위에 직선으로 설치하였고, 철로변 사무실에 모임지붕이 돌출되어 있다. 대합실과 사무실 사이에 벽난로인 난방시설이 있으며, 굴뚝이 지붕위에 설치되어 있다. 역사는 폐역되었다가 활용할 목적으로 현재 공사중이다.
32 등록문화재 제372호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전북 군산시 해망로 230 (장미동)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곡물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한 금융기관 건물 가운데 하나이다. 단층의 본관과 2층의 부속 건물 2동(창고, 사무실)으로 구성되었으며, 왼쪽 창고 건물은 본관 쪽 출입문을 금고문으로 처리하여 은행 건축에서 필요한 금고를 딴채로 둔 독특한 형태이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초반에 지어진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33 등록문화재 제374호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전북 군산시 해망로 214, , 12번지 (장미동)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한국과 대륙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일제가 세운 조선은행 군산지점으로 건립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하였다. 정면에 돌출 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우고 양쪽에 각각 1개씩 반원형 아치를 두었으며, 외벽 중간 보머리를 상징하는 화강석을 끼워 장식하였다. 지붕은 우진각 형식으로 함석판 잇기로 마감하였으며 물매를 매우 급하게 처리해 장중한 느낌이 난다. 일제강점기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濁流)’에 나오기도 하는 등 군산의 근대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34 등록문화재 제378호 군산 어청도 등대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길 240 (어청도리)
이 등대는 청일전쟁 후 중국 항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축조하였다. 입구의 삼각형 돌출지붕(pediment)과 이를 장식한 꽃봉우리 그리고 상부로 갈수록 좁아 드는 단면 등이 주변의 바다 풍광과 잘 어우러진다. 내부의 조립식 나선형 철제 계단과 외부 침입자를 차단하기 위한 접이식 철제 바닥판 역시 독특한 형태이다. 불을 밝히는 등명기(燈明機)를 수은 위에 뜨게 하여 회전시킨 ‘중추식 등명기(목제의 덕트 시스템)’의 흔적 등 초기 등대의 구성 요소가잘 남아 있다. 아펜젤러 선교사가 어청도 등대 앞바다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35 등록문화재 제600호 구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
전라북도 군산시 구영2길 43 (영화동)
ㅇ 조선식량영단 군산출장소는 철근콘크리트 2층 건축물로서 지붕은 철근콘크리트 평슬래브로 되어 있으며, 평면은 전체적으로 L형으로서, 도로 가각부는 원형으로 처리하였고 그 상부에 상징적인 수직 조형물을 두어 중심성을 강조하였음 ㅇ 중일전쟁 이후 국가가 식량 가격 및 유통량을 조절·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조선식량영단의 군산출장소 건물로 일제에 의한 호남평야지역 쌀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증거물로 가치가 있음
36 등록문화재 제677호 군산 둔율동 성당
첫댓글 보수교육 답사지가 군산이기에 가져와 봤습니다~~^^
꼼꼼하고 자상하게..
고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꾸벅
저는 초딩때 군산 은적사에 소풍갔고 고대는 군산으로 다녀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동네가 완전히 바껴서
저도 했깔리더군요, 그래도 역사 박물관에 가보면 60~80년 때 그 물건들이 많아서 이해가 쉬운 장점을 있으며 근대사 물건이므로 50대 이상인 분들은 다 봤던 것이라서 별로 생소하지는 않을 겁니다.
권선생님~
군산답사지 미리 탐구하면 답사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울 문선쌤 쵝오!
언제 저걸 또 다 찾아냈는지... 체력 좀 키워서 몽땅 답사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