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성경을 잘 공부하려면 국어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늘 말하고 있습니다.
즉 문맥과 저자의 의도 그 액면과 이면의 성령님의 의도등을 파악할 수 있어야 자기 마음대로
마음에 떠오르는대로 해석하지 않게된다고 봅니다.
상식이 있도 성경공부하는 사람과, 상식없이 성경공부하는 사람은 차이가 많은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목사님
예수님 당시까지의 구약에 능통하고도 능통했던 서기관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은 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까 늘 생각해 봅니다. 물론 기득권이 그들의 눈을 가렸다고도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 같이 기득권에 구애받지않고 오직 하나님께 열심이 특심한 사람도 정통적으로
공부를 이시대의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해박했던 바울조차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 않습니까.
결국은 예수님이 먼저 나타나 주시고야 주님을 알아보았고,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들의 베일이
벗겨지고 퍼즐이 맞추어졌던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퍼즐이 다 맞추어지고 나서의 바울사도의 태도변화 입니다.
그가 지식은 활용해야 할때는 했으나, 거의 복음의 능력에 의존하여 말씀을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혹시 우리세대가 말씀은 넘쳐나서 이성에는 호소하는 힘이 크나
하나님의 능력은 인정하지않아서 살아계셔 꿈틀거리시는 하나님은 체험하지도 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이 듭니다.
한편, 사도바울의 모든것을 배설물로 여기는 단계를 우리 세대가 이해를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요 ?
공부를 많이 하고, 말씀도 이해하고, 능력도 받고, 예수님과의 깊은 교제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실상은 학문에는 끝이 없고, 과학도 변하고, 학문도 변하는 것 아닌가요 ?
얼마전에 빛보다 빠른 물질도 나왔다고 합니다.
과학하는 방법론이 중요하고, 학문하는 방법론이 먼저 중요하고, 성경과 하나님을 대하는
청결한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식은 사람을 거만하게하기도 하고 교만하게도 하기도 하는 것을 요즘은 많이 느낍니다.
사람은 같으나 돈이 없을때와 돈을 많이 가졌을때의 태도는 달라지게 되고
지식이 없을 때와 상당히 많을때는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짐을 많이 느낍니다.
목사님께서 많은 공부에 대해서 강조하시지만
누가 몇사람이나 충분히 따를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복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무지렁 백성은 목사님의 도를 따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반 주부도 시간이 없어서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회사원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목회를 전업으로 하지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서 학문에만
매진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회사원인데, 오늘도 겨우 한명에게 복음을 소개하는데 한시간 반정도 소요하니
퇴근할 시간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에 많은 도움을 받고있어서 늘 감사를 드리지만
한편, 이는 목사님과 몇분 외에는 따르기 어렵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래 목사님께서 올리신 글을 보면서 저는 답답함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