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29. 네째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
신앙고백
찬송 23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기도 유춘자 집사(조용림 권사,이원진 집사,염성섭 피택장로)
성경말씀 아모스7:10~17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서시
찬송 460 지금까지 지내 온 것
광고 어린이집, 요양원으로 증개축 공사를 위해 기도 합시다.
장로, 권사 임직식 준비를 위해(2017.3.1. 11시)
피택장로 염성섭, 원로장로 이원진, 권사 유춘자, 하경숙
명예권사 석문분, 최연희, 차진일, 손병연, 김재암, 조용림, 이정의
방송시설을 위해 기도
찬송 222 보아라 즐거운 우리집
축도 아프니까 그만 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설 명절이 되면
우리 요양원에는 빈자리가 생깁니다.
그러면 저는 조용히 그 빈자리를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양원에서 종일 책을 읽기도 하고,
우리 어르신들이 창밖을 보며 우두커니 서서
자녀들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조용히 다가서서 어깨를 주물러 드리기도 합니다.
벌써 봄님이 오시는지 이번 설 연휴는 따듯했습니다.
요양원 커다란 창으로 햇살이 쪼여 오는데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창가에 앉아
윤동주님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꺼내서 읽었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을까?
저도 이렇게 아름다운 시 한편을 남기고 싶습니다.
10절입니다.
때에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이스라엘왕 여로보암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족속 중에 아모스가 왕을 모반하나니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
11절,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
12절,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지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 떡을 먹으며
거기서 예언하고
13절,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임이니라.
14절,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라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15절,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16절, 이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네가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하지 말며
이삭의 집을 향하여 경계하지 말라 하므로
17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렇게 혼란스럽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아메리칸 퍼스트를 외칩니다.
중국, 러시아는 호시탐탐 무력시위를 일삼습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에 대하여
국가적 거짓말을 일삼고 있습니다.
북한은 국가적 깡패나라입니다.
그리고 국내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나라꼴이 아닙니다.
종교인들까지 정치를 하겠다고
국민들의 가쉽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누가 목사인지 조차 구별 할 수도 없습니다.
성도보다 못한 목사들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바로 본문에서 이런
짝퉁 목사 아마샤가
진짜 신실한 목사 아모스를 이렇게 모함하고 핍박하고 있습니다.
12절입니다.
아마샤가 또 아모스에게 이르되
선지자야 너는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가서
거기서 떡을 먹으며
거기서 예언하고
거기 가서 떡을 먹으며 eat bread
바로 이런 말 아니겠습니까?
get bread, earn a living there
거기 가서 밥을 벌어 먹어라!
돈 때문에 사는 인생들이
바로 짝퉁 목사, 짝퉁성도들의 전형입니다.
돈을 위하여 목회를 하는
위선적인 목사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을
짝퉁 목사 아마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한 아모스 선지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어처구니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십인수지 十人守之 부득찰일적 不得察一賊이라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지킨다는 말입니다.
기가 찹니다.
짝퉁 아마샤 목사가 여로보암 왕에게 신실한 아모스 선지자를
이렇게 모함했습니다.
11절입니다.
아모스가 말하기를 여로보암은 칼에 죽겠고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땅에서 떠나겠다 하나이다 하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목사가 된지가 10년이 되었습니다.
첫 목회를 노숙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저는 노숙자 ‘노’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목회를 노숙자들과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있는 함열교회(기장) 등 목사님들이
얼마나 텃세를 부리는지
저는 살다가 이런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목사님들도 텃세를 하는 구나.
함열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함열에 사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탓할 시간조차 없이 살았습니다.
노숙자들이 새벽부터 술에 취해서 사고치는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눈뜨고도 코비어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짝퉁 목사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겠습니다.
요한복음 10장 7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절,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맞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양입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만 듣고도 양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지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위선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바른 관계여야 합니다.
짝퉁 목사 아마샤처럼 위선적인 신앙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선적인 신앙인들은 돈을 위해서 교회에 다닙니다.
위선적인 신앙인은 사업을 위해서 큰 교회를 선택합니다.
위선적인 신앙인은 겉모습만 겉치레한 교인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성도, 목사들의 흉만 드러내고 다닙니다.
이런 짝퉁 목사,
이런 짝퉁 성도들의 최후는 이렇습니다.
17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
이렇게 위선적인 나의 생활 태도 때문에
자녀들의 눈에서까지 피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설 연휴동안 하루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이 없으신 우리 어르신들이 설을 맞이해서
더 외롭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곁에 있으려 노력했습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한 분도 끙자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설 연휴 동안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 할텐데
우리 선생님들께서 제 자리를 굳건히 지켰습니다.
그래서 우리 요양원이 대한민국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그제 금요일에는 조용히 성경을 읽고 있는데
서울에서 석문분 권사님 큰아드님, 큰 자부가 찾아 왔습니다.
잠시 어머님 얼굴만 보고 서울로 가시려는 부부를 붙자고
자리 깔아 드릴테니 큰절하시고 가시라고 자리를 깔아 드렸습니다.
큰 절을 하시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서울 가시는 길에 사진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고맙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은 제 어머님입니다.
답장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제 어머님이십니다.
여러분들은 제 아버님이십니다.
어제 아침 설 명절 예배를 저희 집에서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침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요양원으로 달려 왔습니다.
그리고 아침 10시30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모처럼 오신 제 아버님께 죄송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께는 잘 해드리는데
저를 낳아 주신 아버님께는 소홀해서 죄송했습니다.
아침 설 가정예배를 인도하면서
장로님이신 아버님께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울먹울먹 하시면서
자녀들, 손자들을 위하여 축복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목사인 저를 위해서도 어찌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 없겠느냐며
저를 위하여 울먹물먹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인 저 역시
짝퉁 목사 아마샤 같은 사람
아마샤 같은 성도를 만나면 괴롭습니다.
헐뜯고
괴롭히고
못살게 방해까지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종 아모스 선지자는
당당하지 않았습니까?
14절입니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라여 가로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로서
그렇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돈 때문에 목회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부유한 목장 주였습니다.
그리고 고향에서 존경받는 유지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제 아모스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말고
가난하고 불쌍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사라라고 부르셨습니다.
15절입니다.
양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이렇게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가 필요하셨기 때문에
부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서 필요하셔서
여기에 불러 모으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핍박이 있을지라도,
그러니 어떤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러니 내 몸이 괴롭고 아플지라도,
그리고 어떤 모함과 오해가 있을지라도
십자가 사명을 감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자손손 축복하실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