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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운에세이] 꿈의 여정,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을 마치고 --------------------- Certificate of Achievement
This is to certify that Young Dae Kim has completed the Milford Track Guided Walk Imelda, Moon, Marco, Hannah, Phoebe
20 November 2011. Ultimate Hikes .......................................... 이것이 지난 14일 인천 공항으로 출국하여 17일부터 3박 4일 간의 일정으로 세계 제일의 환상적 코스라는 54km에 달하는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사운드(Milford Sound) 트래킹 대장정을 운이 좋게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가슴 뿌듯하고 한편으로 재미있기까지 한 수료증서의 내용이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영어의 "sound" 라는 말은 바다가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간 "좁은 해협"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밀포드 사운드는 유명한 영화,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위에 이름이 적힌 다섯 사람은 장한 현지 젊은 남녀 가이드들로서 이번의 트래킹 이 성공을 거두게 하는 데 수훈의 공이 있는 이들이다. 그들은 스페인, 네덜란드, 스위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본국 뉴질랜드 그리고 한국에서 간 우리 일행 11 명(여 4, 남 7)포함, 35명 참가자 전원의 안전을 책임지고 시종일관 친절하고 자상 하게 안내하고 성심성의껏 봉사를 했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관광을 목적으로 한 해외 나들이가 아니었다. 평소 산을 사랑 하는 산사람들의 최고의 바람인 트래킹(tracking : 험난한 코스를 두 발로 걸어서 정복하는 일)이 주목적이었다. 이미 여러 달 전에 계획이 확정되어 필요한 제반 수 속을 밟고 소요경비를 정산한 뒤 학수고대 기다리고 기다리던 참에 기대와 두려움 이 교차하는 가운데 시작된 설렘의 여정이었다. 이 트래킹을 위해서는 적어도 6개 월 전에 그 나라 현지 관계자와 계약을 해야 한다. 돈만 내면 아무 때나 가고 싶다 고 갈 수 있는 성격의 여행이 아니다. 떠나던 날 공항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일 행의 면면도 저마다 가지각색, 등산화에다 등산모,잔뜩 짊어진 백팩(backpack) 등 전형적인 산악인들의 자연스런 캐주얼한 차림 그대로였다.
남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는 우리와는 계절이 정반대이다. 거기는 지금 봄이 한 창 무르익어가는 푸르름과 꽃의 계절이다. 토쿄 나리따(Narita) 공항에서 에어 뉴 질랜드(Air New Zealand)로 환승한 후 10시간 이상을 날아 남섬(South Island) 제1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국제공항에 처음으로 기착했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마지막으로 퀸즈타운(Queenstown) 행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40여분 동안 구름 속에 가려진 뉴질랜드 최고봉, 3.754m의 마운트 쿡(Mount Cook)을 멀리 서쪽으로 바라보며 낯선 풍경 남알프스(South Alps) 일대의 상공을 비행했다.
기내에서부터도 그랬지만, 공항에 내려 호텔로 이동하는 사이 차 안에서 내다 본 퀸즈타운 일대의 그림같은 자연경관에 우리 일행은 망연자실, 연신 감탄사 만 연발할 뿐이었다. 양쪽 끝까지의 길이만 해도 80km에 가깝다는 명경 같은 와카 티푸(LakeWakatipu) 호반의 아담하고 작은 도시, 당시의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에게 맞는 도시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여름이 가까웠는 데도 하얀 눈모자를 쓴 채 도심의 마천루처럼 우뚝우뚝 솟아 있는 리마커블 산맥(The Remarkables Mountain Range))의 병풍 같은 광경이 장엄하고 신비롭다. 시가지 와 산 아래쪽은 온 천지가 눈이 부시도록 노란색깔의 꽃으로 수를 놓았다. 하도 아 름다워 기사에게 무슨 꽃인가 물어봤더니 일종의 잡초에 속하는 식물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봄의 전령, 개나리와 거의 흡사했다.
밀포드 트랙은 11월에서 이듬해 4월 중순까지 봄과 여름철에만 개방이 되며, 일 일 통과 인원도 철저히 제한이 되어 있다. 이 모두가 그 나라 환경보호국, DOC (Department of Conservation)의 지도 감독 하에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이 번 우리의 경우처럼 가이드와 함께하는 최대인원 50명과 개별 참가자를 합해 하 루 90명을 초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원 미달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한 사람도 초과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규정이란다. 이는 무엇보다도 자연훼손을 사전에 예방하 기 위한 엄격한 조치에서 이루어지는 원대한 계획의 일환이다. 그래서 한 해에 이 트랙을 통과하는 사람의 수가 13,000명 내외라고 한다. 이번 트래킹을 통해서 우 리가 실제로 몸소 체험한 바로서의 밀포드 트랙 전 구간은 아직 어느 한 군데도 사 람의 발자취로 인한 훼손이나 손상이 된 곳을 찾아볼 수가 없는 순수한 원시자연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번 트래킹이 자랑스럽다함은 눈으로 덮힌 1.073m 높이의 설산, 험준한 맥키논 패스(Mackinnon Pass)를 넘어야 하는 고비가 있다는 사실이 그 하나다. "pass"란 산을 넘어가는 루트, 즉 길을 말한다. 이 패스는 1888년 퀸틴 맥키논(Quintin Mackinnon)에 의해 처음으로 개척이 되었다. 밀포드 트랙이 비록 정비가 잘 되어 있고, 트랙커가 준비를 철저히 한다 하더라도 우리 일행의 절대 연령에 따른 컨디 션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에 하는 소리다.
다른 나라에서 온 참가자들 가운데는 젊은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한국 에서 간 우리 일행은 평균 연령이 단연 제일 높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럼에도 불 구하고 전원이 무사히 트래킹을 마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체력 면에서도 한국인 의 우수성과 노익장을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한 사람이라도 낙 오자가 생기는 경우 그것은 결코 성공적인 트래킹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일행 모두가 가장 염려했던 바는 예측할 수 없는 변덕스런 날씨였다. 그 곳은 하루 에도 사계절이 있다고 할 만큼 날씨가 변화무쌍하다고 한다. 파란 하늘이 보이다 가도 어느 순간 구름이 비를 뿌리는 날씨를 우리는 여러 차례 체험할 수 있었다. 밀포드는 열대 다우림지대(rainforest)로 연간 강우량이 5.000~ 12.000m m이며 이틀에 하루 꼴로 비가 오는 지구상에서 가장 습한 지역의 하나(one of the wettest places on earth)라는 평판을 지니고 있다. 우리도 처음 이틀 동안은 계 속 비를 맞으며 걸어야 했다.
필수장비 가운데 하나가 우의(raincoat)이다. 그밖에 따뜻한 내의, 방수가 되는 장 갑이며 등산화 등을 갖추어야 하는데, 거가까지 대비를 하지 못함으로써 필자에게 는 개인적으로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여름 속의 겨울도 반드시 고려 해야 할 사항임을 강조하고 싶다. 계속되는 빗속에서는 아무리 우수한 방수 장비 라 하더라도 완벽하지가 못한 것은 물론이다. 다행인 것은 하루의 트래킹을 마치 고 일단 정해진 숙소(lodge)에 도착을 하면 거기서는 그날 젖은 옷을 세탁을 해서 말릴 수 있는 훌륭한 건조시설(drying room)이 갖추어져 있어 그래도 걱정을 덜 수가 있었다. 그랬기에 다음날의 힘든 행군도 큰 무리 없이 계속 이어갈 수가 있었 다.
필자가 가장 우려했던 바 역시 종일 비가 계속 되면 어쩌나 하는 점이었다. 필자는 아주 여러 해 전 지리산 등반에서 비 때문에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던 쓰라린 경험 을 가지고 있다.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도 출발부터 산행이 끝날 때까지 그날은 잠 시도 쉬지 않고 종일 비가 계속 되는 바람에 머리에서 발끝까지 등산화 속이 철벅 거릴 만큼 비를 맞고 저체온증으로 고생하던 중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 는데 그 때 그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사람에게는 죽음이 결코 멀리 있 는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 껑 보고도 놀란다" 는 옛말이 나의 경우에 해당된다 하겠다.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때는 아직 젊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비록 그런 상황이 닥쳐온다 해도 그 정도로까지 두려 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살 만큼도 살았고 지금까지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 고 자위하고 있는 터이고, 나름대로 어느 정도 소임도 다했고 여생은 덤으로 사는 보너스 인생이라 생각하며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기 까닭이다.
이번 트래킹을 위해 사실은 맘 먹고 사전 대비를 한다고 하기는 했으나 국내에서의 정확한 정보의 부족으로 어려움이 없지가 않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알선을 맡은 여행사가 현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함으로 인해 잘못된 정보가 제공됨으로써 겪어야 했던 어려움이라 원망의 여지가 없지 않다. 대가를 받고 하는 일이라면 양심적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수행 해야 함이 마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도 적잖이 그렇지 못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듯 한데 그들의 양심을 다시 점검해 볼 일이다.
우리 일행은 나이가 지긋한 시니어들로서 서울 덕산산악회 회원을 중심으로 구성 이 되었다. 60대의 여성 세 사람 외에는 모두가 70대에 접어든 연장자들이었다. 성기춘 회원 외에 남자 여섯은 모두가 대구 출신의 사람들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경북고 동문들이었다. 가나다 순으로 말하면 김광교, 관진, 이이석 씨 등이다. 필자만 41회이고 나머지 다섯 사람은 40회다. 말하자면 동기회, 동문회 성격의 구성원이 팀을 이룬 셈이다. 그것은 이 행사를 주선한 두 사 람 이관진 대장 내외와 우리 내외 두 커플이었다.
뉴질랜드라는 나라는 나와는 개인적으로 각별한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꼭 40 년 전의 일이다. 영주여자고등학교 교사이던 시절, 1972년 나는 당시 콜롬보 플 랜(Colombo Plan)이란 국제 협약에 의해 선발된 국비장학생 자격으로 1년 기간 공부를 목적으로 처음 그 나라에 갈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그 해 1월 추운 겨울 어느 날 오후, 나는 김포공항을 출발하는 홍콩(香港)행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를 평생 처음 타보는 흥분과 설렘이 교차하는 가운데 저녁 하늘을 날기 3시 간쯤 후, 밤 9시경, 비행기는 사랑과 낭만의 도시 홍콩, "별들이 소곤대는 밤거리" 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도시, 휘황찬란한 야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카이택 공 항에 드디어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의 그 흥분, 그 설렘, 그 묘한 감동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고 내가슴 한 구석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근처 '포추나' 호텔이라 는 데서 일박을 한 후 다음 날, 에어 뉴질랜드라는 낯선 외국 비행기로 갈아 타고 적도를 넘어 남십자성(Sothern Cross)의 하늘 아래 나라, 뉴질랜드를 향해 남으로 남으로 날아갔다.
도중 오스트레일리아 최북단 적도 아래 사막의 열기로 이글거리는 군사기지(air base) 다윈(Darwin)이라는 데서 급유를 위해 타고 있던 비행기가 잠시 기착을 했 다가 이내 아름다운 해변 도시 브리즈번(Brisbane)으로 향해 동남쪽으로 계속 날 아갔다. 다시 그 곳 공항에 착륙하여 환승 등의 절차가 이루어지는 동안 청사내에 서 몇 시간을 보낸 뒤, 최종 목적지인 북섬에 위치한 뉴질랜드의 수도 웰링턴 (Wellington)까지 바다 건너 날아 갔던 아득한 옛날 기억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그때는 나도 우리나라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평생 처음 비행기를 타 보았고 처음으로 외국 땅을 밟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브리즈번 공항 에서 있었던 당시의 웃지 못할 한 가지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서울을 떠날 때 입었 던 한겨울 내의를 급한 나머지 그 곳 공항 화장실에서 벗고 가벼운 여름옷으로 갈 아 입었던 해프닝이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면서 계속 두꺼운 내의를 입고 있 었으니 그 여행의 고통이 오죽했을까. 나는 유별하게 땀이 많은 체질의 사람이다.
당시는 자유 월남(Vietnam) 아직 멸망하지 않았던 때였다. 전쟁 중인 데도 같은 목적으로 그 나라까지 와서 함께 공부하고 교류했던 몇 사람의 월남 교사들이 생 각난다. 그뒤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을까. 적대국의 언어인 영어를 공부하러 유학까지 한 신분의 사람들이었으니 공산치하에 들어가면서 과연 그들이 목숨인 들 부지할 수가 있었을까?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한때 고락을 함께 하며 서 로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던 동료들이라 그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 프다.
뉴질랜드는 스웨덴, 노르웨이와 더불어 세계 3대 복지국가의 하나로 이미 오래 전 부터 지상천국으로 알려진 나라다. 내가 30대 초반 젊은 시절 빅토리아 대학 (Victoria University in Wellington)에서 수학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그때 당시 의 그 좋은 인상이며 이미지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그대로 간직되고 있는 것 같아 뉴질랜드는 참으로 믿음이 가는 나라다. 믿음보다 더 소중한 자산은 없다. 개인도 국가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말을 생각해볼 일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는 속담이 있다. 아무튼 기대와 설렘 속에 벼르고 별렀 던 꿈 같은 밀포드 사운드 트래킹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으니 우스갯 소리 같지만 이젠 내일 당장 죽는다 해도 여한은 없겠다. 하기야 세상에 좋은 곳이 어디 밀포드 사운 드 한 곳 뿐이랴. 세상은 넓고 가 볼 곳은 부지기수로 많다. 그러나 분 명한 사실은 병들어가는 이 지구상에서 밀포드 사운드 만큼 독특하고 빼어난 자연 경관이 잘 보존된 지역이 오늘날은 그다지 많지가 않다는 사실이다.
해외 출장을 자주하는 편인 내 두 아이들이며 큰 아기도 이번 여행에서 내가 담아 온 카메라 사진들을 보더니 감탄을 연발한다.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과연 이번 에는 참으로 좋은 곳을 다녀오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우리 여행을 위 해 그간 세심하게 마음 써준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도 확인이 되었으리라. 자식이라도 고마운 것은 인정해야지 당연한 일로 치부할 수 만은 없다. 그것도 부 자유친의 길이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밀포드 사운드의 숨막힐 만큼 아름다운 자연 경관들을 아무리 좋은 사진 들을 통해 많이 보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는 안 된다. 컬러 잉크로 나타낸 사진이 니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그림의 떡(畵中之餠)일뿐이다. 그 곳에 가서 자기 발로 걸 어다니면서 자연을 호흡하고 땀 흘리고 비를 맞고 눈을 밟으며 육안으로 직접 보 며 감상하는 것과는 비교가 될 수가 없다. 이런 경우라야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함이 마땅할 것이다. 노년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여행이다. 건강이 허용하는 범 위 내에서의 알맞은 여행이라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무기력하기 쉬운 노년의 삶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어 줄 신선한 맛을 내는 양념이 될 것임은 틀림이 없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전까지는 알지 못했고 교류도 없었던 여러 사람들로부터도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언제 어디를 가도 천성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사람인 내가 앞으로 그런 고마운 사람들의 은혜에 무엇으로 어떻게 보답해 야 할지 숙제만 잔뜩 안고 돌아왔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독불장군 은 없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동료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싫은 사람도 반대 자도 때로는 심지어 적도 있어야 한다. 혼자의 삶에서는 생의 의욕도 행복도 있을 수 없다. 존재 자체의 의의가 사라진다. 상부상조하는 가운데 이웃을 사랑하고 감 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적 삶의 자세다.
그리고 길지 않은 기간의 이번 여행 중에도 적잖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어 좋 았다. 그들은 늘 울고불고 하는 가운데 부대끼며 함께 지내는 귀여운 손자들이었 다. 사람이 그렇게 보고 싶었던 적이 예전에는 별로 없었다. 이것도 나이 탓이리 라. 늙은 할아비가 어디가 좋아 그렇게도 나를 따를까.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 도 생긴다. '고독고'가 노년사고(老年四苦)의 하나라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이렸다. 어린 그들은 나의 한 가지 고통을 덜어주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나를 반기 는 사람이 아직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존재가치가 있겠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본다.
공항에 나와 입국장을 빠져나오는 나를 발견하고 반가워 "할아버지!"하고 외치는 세 살 짜리 손자의 맑고 밝은 목소리가 너무도 신선하다. 남북 이산가족의 재회인 들 이 조손(祖孫)의 만남만큼 반가웠으랴. 나를 향해 달려오는 녀석을 번쩍 들어 안는 순간, 그 동안의 나의 여독은 봄 눈 녹듯 온데간데없이 싹 가시고 만다. 이제 8개월이 겨우 지난 공주도 안아 본다. 체온이 너무 따뜻하다. 닿는 살결의 촉감이 어쩌면 그렇게도 좋을까. 좋다는 뉴질랜드 산 양털보다도, 고운 비단결보다도 더 보드랍다. 세상에 이 순간의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강남 대치동 사는 일학년 짜리 큰 손자는 거리가 멀기도 하려니와 주중이고 어린 것이 벌써부터 시간에 쫓기면서 늦게까지 뭘 배우러 다니느라 공항에 나오지를 못 했단다. 주말이면 할아비 만나러 틀림없이 어미, 아비와 같이 달려올 텐데 그때까 지 좀이 쑤셔 어떻게 기다릴까. 할아비도 녀석이 보고 싶다. 그와 나는 두 손의 손금이100% 똑 같은 이 세상 유일의 두 사람이다. 씨(種子)는 못 속인다 했다. 생 물학의 법칙 격세유전(atavism)도 <종의 기원>의 저자요 진화론자인 생물학자 찰 즈 다윈(Charles Darwin)의 주장이던가.
짧은 기간 동안이나마 고락을 함께하며 정들었던 일행과의 작별 인사도 제대로 나 누지 못한 채 행복한 착각에 도취되어 둘째가 모는 차에 몸을 실었다. 인천대교 건 너면 바로 나오는 가까운 거리의 송도 신도시 우거까지 여행 이야기로 꽃을 피우 는 사이 차는 어느새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당도했다. "However humble it may be, there is no place like home.(아무리 소박해도 내집 같은 없다)라는 말이 실 감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일주여 동안 선경을 헤매던 황홀한 꿈에서 나는 아직도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몽롱한 상태다. 그러나 이 꿈에서는 언제까지나 깨어나지 않 을 수 있으면 차라리 좋겠다.
인천 송도에서/草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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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南 십자성을 만날 수 있는 청정의 하늘 아래 멋진 트랙킹 축하드리며
저도 다시 한 번 그 곳에 다녀온 느낌 입니다. 감사
행복한 인생을 사시는것 같아요 ...부러워요
멋진 여행을 하시고 오셨군요.너무너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