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강해 제 13 강 주일오전예배 (2018.04.01)
예배찬송 : 시147(1,2) 찬8(9,10) 시11(1,2) 시11(3,4) 시147(5,6)
본문 : 시편 11편 1-7
1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2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4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낭독: 사무엘상19장1-24
1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과 그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기뻐하므로 2그가 다윗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내가 나가서 너 있는 들에서 내 부친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부친과 말하다가 무엇을 보거든 네게 알게 하리라 하고 4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치 아니하리라 7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알게 하고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여전히 있으니라 8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도륙하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9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10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11사울이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일러 가로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12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내리우매 그가 도망하여 피하니라 13미갈이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고 염소털로 엮은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14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15사울이 또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보라 하며 이르되 그를 침상채 내게로 가져오라 내가 그를 죽이리라 16사자들이 들어가 본즉 침상에 우상이 있고 염소털로 엮은 것이 그 머리에 있었더라 17사울이 미갈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이처럼 나를 속여 내 대적을 놓아 피하게 하였느냐 미갈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를 놓아 가게 하라 어찌하여 나로 너를 죽이게 하겠느냐 하더이다 하니라 18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고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거하였더라 19혹이 사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더이다 하매 20사울이 다윗을 잡으려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의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신이 사울의 사자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1혹이 그것을 사울에게 고하매 사울이 다른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고로 사울이 세번째 다시 사자들을 보내었더니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 22이에 사울도 라마로 가서 세구에 있는 큰 우물에 이르러 물어 가로되 사무엘과 다윗이 어디 있느냐 혹이 가로되 라마 나욧에 있나이다23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그가 라마 나욧에 이르기까지 행하며 예언을 하였으며 24그가 또 그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웠었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제목: 환란 받는 성도가 피할 곳
본문: 시편 11:1-7
낭독: 사무엘상19장1-24
서론: 표제와 전체 내용
본론: 1. 악인이 성도를 시험한다.(1-3)
2. 감찰하시는 하나님(4-5)
3. 심판하시는 하나님(6-7)
결론: 여호와는 의로 우사 의로운 자를 좋아하신다.(7)
서론: 표제와 전체 내용
오늘 시편은 전체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부분은 다윗이 체험한 심각한 시험과 그가 사울에게 박해를 받는 동안 처해있던 불안한 상태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둘째 부분에서는 그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구원에 대하여 자축하며 세상을 의롭게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더 요약하면 다윗은 악인들이 시험하는 말을 듣고 나서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에게서 피할 곳이 되셨는가를 증거 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표제에는 다윗이 영장으로 한 노래라고 되어 있으므로 지은이는 다윗이며 성가대 지휘자에 맞춰 부른 노래입니다.
이시의 역사적인 배경은 오늘 낭독한 말씀 사무엘상의 19장의 내용입니다. 말씀에 보니까 이시를 지을 때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노리고 추격해오던 극심한 환란의 시기에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피할 곳으로 삼았다는 것을 잘 드러내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시편을 읽는 오늘날의 독자들은 환란과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과연 피할 곳은 하나님뿐임을 알게 하고 더욱더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함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안정을 누리고 평안하고 기뻐할 수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은 사람의 존재 목적 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목표를 잘 나타내고 사는가 시험이 되는 것은 우리가 환란과 어려움이 있을 때 누구를 의지하고 누구에게 피하느냐를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평소에 신뢰하는 마음이 바로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환란을 당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알았다면 하나님께로 피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평소에도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것을 실제로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란과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 자신의 신앙의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모습이 굳건해져 우리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통이 더욱 풍성해 지는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본론:
1. 악인들이 성도를 시험 할 때 (1-3)
1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 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2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데서 쏘려 하는도다 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오늘 시편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맹렬히 쫓아다닐 때가 배경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 피했더니 악인들은 다윗에게 말하기를 새 같이 너의 산으로 도망이나 가버려라 라고 합니다. 이러한가운데 처한 다윗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느꼈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사람이었기에 위기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피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더니 악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너희가’라고 표현된 자들을 2절에는 악인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들은 다윗의 친구들이나 동료들입니다. 그들은 다윗이 곤경에 처해져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나 힘이 되는 위로를 전해줄 수 있고 또 어려움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도와 줄 위치에 있었지만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다윗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사울과 그의 휘하에 있는 자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고 도망 다니는 처지였기 때문에 다윗 편에서 무엇을 행하기란 참으로 쉬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윗에게 새처럼 저 멀리 네 산으로 날아가 버리라고 말할 수 있을 까 생각합니다.
이 말은 표현이 시적이기에 좋은 말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본뜻은 너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희망이 없고 끝장이 났으니 놀란 작은 새가 발길 닿는 데로 수풀 속으로 도망가듯이 너의 나라 곧 이스라엘을 떠나 다른 나라로 망명해 버리라는 말로써 여기는 멸시와 핍박이 담긴 어조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이 누구 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시고 기름 부어 세우신자가 아닙니까. 사실 알고 보면 그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고통과 여려가지 어려움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았기에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져버리고 다른데도 가버려 라고 하는 것이 다윗입장에서 용납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을 오늘날로 말하면 성도에게 세상 사람들이 너 처지가 어렵고 힘드니까 성도이기를 포기하고 죽어버려라 하는 말과 같은 조롱의 말입니다.
과연 우리 성도들이 그럴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수십 년을 아니 평생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의지하고 살아가는데 약간의 어려움이나 고난이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언약과 구속을 져버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앙생활을 그만두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을까요? 만약에 그런 환경 때문에 신앙을 져버린다면 우리는 그의 신앙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심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신 참된 믿음은 결단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기에 믿음의 연단을 위해서 잠시 주춤하거나 비뚤어져 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절대로 어긋나지 않습니다.
이에 더 나아가 악인들은 다윗을 향해 말로만이 아니라 어둠속에서 활시위를 당겨 쏘려고 하는 것같이 다윗은 죽이려고 위협하는 가운데 있다고 2절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윗이 매우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으며 죽음의 지경에 이르렀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위기의 시기는 바로 자신의 신앙을 드러낼 기회가 되는 것을 잘 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바른 자’ 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감히 그렇게 말 할 수 있을까요? 그 누구도 자신을 ‘바른 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을 ‘바른 자’ 라고 말합니다. 상대가 워낙에 악하니까 상대적으로 자신을 ‘바른 자’ 라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대적인 뜻은 아닙니다. 다윗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의 위치는 ‘바른 자’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지만 결국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었기에 ‘바른 자’입니다. 다윗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믿고 예언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살아가려는 사람이었으며 분명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은 ‘바른 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바른 자 라는 뒷받침하는 말에 대하여 또 한 가지의 증거는 바로 3절에서 읽은 것처럼 다윗자신은 ‘이스라엘의 터’라고 말합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터란 말은 하나님의 속성과 견주어 생각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속성은 다양하게 말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시편에서는 ‘인애와 공의와 의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속성이 진정한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을 터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그렇게 열방 중에서 택함을 받아 그런 하나님의 속성을 잘 드러내라고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나라입니다.
더 나아가 이 같은 속성은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이 가져야할 마땅한 도리 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터를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람임을 깨달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로써 그의 삶이 왕이 되었든 아니면 그냥 도망자로 살든 이스라엘의 시민으로 살아가든 하나님께서 그 땅에 태어나고 살게 하신 곳이 라면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속성인 인애와 공의와 의를 드러내고 살아야 한다고 깨닫고 자신에 대하여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다윗은 아무리 악인들이 자신을 위협을 하고 시험을 하고 죽이려고 들이대도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하나님이 사명을 주신 나라를 떠나 갈 수는 없다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성도들도 자신이 태어난 나라에서 또 지역에서 속한 교회에서 살아갈 때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으로 그곳이 하나님이 사명을 나타내게 하실 터라는 생각을 가지고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의 사명을 하나님의 형상에서 찾을 때에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이 어렵더라도 그 안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곳이 어디이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원하고 계시며 그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인애와 공의와 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 때 부여받은 문화위임명령이며 타락하여 잊고 있다가 다시 구원받은 후에 받은 사명도 바로 이것입니다. 성도는 이일을 위해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지키고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다윗은 이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타의에 의해 억지로 망명의 길을 떠났으며 이리저리 쫓겨 다녔으며 때때로 동굴 속에서 숨기까지 했습니다. 마치 다윗은 오늘 시에서 표현처럼 쫓기는 작은 새처럼 벌벌떨며 안정되지 못하여 이가지 저가지로 뛰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도 신앙을 져버리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이모든 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살게 하신 것이라고 믿었으며 선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철두철미하게 믿고 따른 결과 입니다.
2. 하나님은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신다,(4-5)
4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이어서 다윗은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모습을 잘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께서는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는 하늘에 있음이여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통치의 모습을 그려 주고 있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는 당시 시온을 말하는데요 여기서는 분명히 하늘을 지칭해서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공간적인 의미로 제한된 하나님의 통치를 말씀하심이 아닙니다. 우주만물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으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합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은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감찰 하신다고 합니다. 통촉하다는 말의 본래의미는 쪼개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의미는 통촉하다는 말에 연결시켜보면 쪼개듯이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동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감찰하다는 말은 불로 금속 따위를 시험해보듯이 어떤 물건의 아주 깊숙한 본질까지 응시하여 살핀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사람을 아시되 이렇게 통촉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속은 자신만 안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촉과 감찰하심가운데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어 낱낱이 다 드러내놓고 사는 인생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한결 흐트러짐 없이 구별해내십니다. 의인은 감찰하시므로 구별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들은 미워하신다고 합니다. 즉 시편1편 6절에서 말씀하신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인정하지 않으시고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도로서의 삶을 살아갈 때 많은 위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 까지 통촉하시고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과 마음을 가지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람 앞에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살아가다보면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이고 사람 앞에서도 바르게 살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죄 많은 인생으로 얼마나 바르게 살겠습니까. 마는 하나님께서 살게 하신만큼은 살아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통촉하시고 감찰하시는 눈으로 통치하실 때 우리는 선하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로 인한 위로와 기쁨이 더 풍성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은?(6-7)
6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의인 다윗을 괴롭히고 핍박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져버리고 다른 나라로 망명이나 가버려라 라고 말했던 악인부류에게 하나님은 심판의 경고를 전합니다. 익인들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라고 6절에 말합니다. 이말씀은 하나님이 그런 자들에게 심판을 하시는데 유황불을 그물처럼 악인에게 뒤덮게 해서 피할 수 없게 하시고 철저히 심판하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러한 심판은 이미 소돔과 고모라를 통하여 시행되었고 그 심판은 모든 악인들에게 경고하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같은 원리로 다윗의 대적들을 심판하시고자 경고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1:7)
우리가 본문과 함께 읽은 사무엘상 19장의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무고한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 또한 이러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의 결말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합니다. 악인들의 심판은 자신들이 원한다고 조금식 조금식 마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는 에스겔 선지자가 말한 대로 한꺼번에 전부를 마셔야 합니다.(네가 그 잔을 다 기울여 마시고 그 깨어진 조각을 씹으며 네 유방을 꼬집을 것은 내가 이렇게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 23:34)
결론: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자를 좋아하신다.(7)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은 의로운 일을 좋아하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의로움을 좋아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분의 일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 그분의 의로운 성품 때문입니다. 의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늘 계신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외’라고 하는 말은 공경하고 두려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두려워합니까? 두려워함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을 때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우리와 구별되는 지극히 거룩한 속성 때문에 두려워집니다. 이는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 가지는 바람직한 두려움입니다. 우리는 피조물로써 마땅히 하나님에 대하여 바른 두려움이 존재해야합니다. 이는 의인과 악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가지는 두려움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으며 구별되는 두려움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뵈올 때에 거룩한 두려움으로 긴장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은 오히려 복을 누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두려움은 바로 하나님을 대면했다는 것이고 하나님을 대면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인 여러분들과 저는 결국 환란 날에 피할 곳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봄으로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인 하나님과의 갈등과 사람간의 갈등이 바뀌어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회복되며, 우리성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상급은 바로 하나님자신임을 알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삶이됩니다.
우리는 본성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죄로 말미암은 두려움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큰 상급이 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서 죄 사함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거룩한 두려움으로 세우시고 복주시기 위해 우리구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막힌 담을 허셨고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 갈등관계도 회복해주셨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은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 받은 사람의 지위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속성인 인애와 공의와 의를 이 땅에 충만히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복을 누리고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멘
설교 후 기도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성령과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전해주신 것과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게 하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저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하시며 저희들이 가르침 받은 대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내리고 세움을 입으며 믿음이 확고해져서 저희의 감사가 넘치게 하옵소서. 주님께 간구 하는 것은 저희는 무지하고 주님께 감사하지도 않으며 불평하며 마땅히 복종해야할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순종치 못하오니, 주님 주님의 크신 자비를 기억하시고 저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참으로 저희의 죄를 알게 하시고 진정으로 회개하게 하시며, 저희의 생활을 개선토록 가르쳐 주옵소서,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는 주의 종에게 믿음과 지혜와 권능을 주시사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칠 때 주님의 말씀을 바르고 신실하고 확고하게 전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고, 또 교회를 다스리는 종들에게 같은 은혜를 주셔서 맡겨진 권위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잘 사용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봉사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모든 주님의 지체된 주의 종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주님의 말씀위에 굳건히 서서 은혜를 누리며 기쁨으로 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바라옵기는 교회를 통해 전하는 복음을 통하여 주님의 백성들이 돌아오는 것은 주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모든 악과 교활한 음모들을 깨뜨려 주신 증거이옵나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과 성령을 저희에게서 더 충만하고 풍성하게 주셔서 강한 믿음과 인내와 확고한 의지를 가지게 하여주시옵소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에게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라고 저희에게 확실히 약속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강 주시기를 바라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