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의 신비를 간직한 곳, 울릉도 | ||||||||||||||||||||||||||||||||||||||||||||||||||||
우리 나라 다이버들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만일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필자는 4일간 울릉도에서 다이빙을 하면서 문득 마이크로네시아의 팔라우를 연상하였다. 파워 보트를 이용하여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깊고 푸른 바다 속으로 몸을 담그면 힘있는 울릉도의 수중 환경이 투명한 시야와 함께 펼쳐지고 거대한 혹돔이 허연 이빨을 드러내고 주위를 맴돌곤 하는 것이, 마치 팔라우의 바닷속을 생각나게 하였다. 보트위에서 바닷속을 내려다보면 20m 아래에 있는 다이버들의 노란 공기통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고 수천마리의 방어떼와 매바리 무리에 둘러싸여 수면을 뚫고 거침없이 내려쏘는 햇살의 눈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 울릉도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인 것이다. | ||||||||||||||||||||||||||||||||||||||||||||||||||||
● 울릉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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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생성 시기는 신생대 3기와 4기 사이인 약 2,500만년전 화산 분출로 2,500 - 3,300m 깊이의 바다 속에서 솟아올라 생겨났다. 우리 국토의 대부분이 고생대 말에서 중생대초(약 2억년전)쯤에 이루어졌으니 울릉도는 우리 국토 중의 가장 막내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섬 전체의 지형은 힘차고 거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울릉도는 현무암과 조면암, 화산재 등의 응회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위 37도 30분, 동경 130도 50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넓이 73㎢로 완도보다는 조금 작고 여수 돌산도 보다는 큰, 우리 나라에서 8번째로 큰 섬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56.5km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높은 성인봉의 경우 983.6m이다. 주민은 약 12,000명 정도이며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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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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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무릉(武陵), 우릉(羽陵 또는 芋陵), 우산(于山)으로 불렸던 섬이다. 서기 1000년대 초 일본인들은 우루마로 불렀으며, 당시 이두 문자로 불렸던 울릉도의 옛 지명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울릉도라는 이름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울릉도에 사람이 처음 들어간 것은 김해식 토기 시대 후기인 1세기쯤으로 추정된다. 울릉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이 처음으로 발견되는 것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 옥저조에 나타나며 삼국사기에는 지증왕 13년(512년) 하슬라(강릉) 주둔 사령관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후 400여 년 간 자취를 감추었던 울릉도에 대한 역사 기록은 고려 태조 13년(930) 백길(白吉), 토두(土豆)라는 우릉도 사람 둘이 공물을 가지고 왕을 찾아왔다는 기록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후 현종 9년(1018년), 현종 10년(1019년), 숙종 2년(1097년), 숙종 12년(1107년) 등에 울릉도와 여진 해적들간의 기록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덕종 원년(1032년)이후로는 기록에 잘 나타나지 않는다. 해적들의 등쌀로 인해 섬의 생활을 포기하고 모두 육지로 나온 것 같다. 울릉도에 다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200년대 경으로 추측되지만 이때부터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 섬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다.
고종 10년(1223년)부터 조선 세종 원년(1419년) 이종무가 대마도를 정벌할 때까지 196년 동안 왜구들은 무려 500여회나 울릉도를 침범해 왔기 때문에 섬은 정착민들이 살기에는 너무도 험난한 곳이었고 거의 무인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가 오히려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울릉도가 자유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군대를 보내 사람들을 잡아 육지로 끌고 들어오곤 했다. 사람이 있으면 왜구의 근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공도(섬을 비워 놓는 것) 정책을 사용한 것이다. 조선 태종 3년(1403년)과 13, 14년 세종 7년(1425년)과 20, 23년 무렵에는 섬이 완전히 비어 있었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자 일본인들은 제멋대로 섬에 들어와 나무를 베어 가고 고기를 잡아갔다. 그리고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이름까지 붙여 놓기도 하였다. 동래 어부 안용복은 숙종 19년(1693년)과 22년에 일본 막부로부터 독도는 조선 땅임을 확인받아 양국간에 공식 협약이 되게 하였다. 이후 고종 19년(1882년)에는 공도 정책을 버리고 개척령을 발표하여 울릉도의 역사를 이었다. | |||||||||||||||||||||||||||||||||||||||||||||||||||
● 울릉도로 가는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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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 : 포항 - 울릉도(편도 요금 : 우등 5만원, 일등 4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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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다이버리조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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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다이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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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다이빙의 제일은 역시 투명한 시야다. 연중 20, 30m의 시야가 보장된다. 40m 이상의 수심으로 내려가 보아도 시야는 여전히 좋다. 하기야 시야가 좋을 때는 40m 바닥에 있는 다이버의 움직임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어느 다이빙 포인트가 좋으냐고 묻는다. 울릉도에서 이런 질문은 별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어디를 들어가도 잘 보존된 수중의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다. 다만 포인트라고 해서 개발된 20여곳은 다이빙하기가 좀 더 편한데, 이는 안전한 다이빙을 위하여 다이빙 전문점에서 개발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수많은 다이빙 포인트가 다이버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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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릉도 다이빙의 주의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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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열거한 수중의 아름다운 비경을 관찰하려면 무엇보다도 다이빙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충분한 다이빙 경험이 없는 다이버들은 비취 다이빙을 통하여 울릉도의 수중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울릉도는 동해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작은 섬으로, 조금만 해변과 떨어져도 급경사를 만들어 내므로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특히 맑은 시야로 인하여 수심 감각을 잊어 버려 30, 40m는 보통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수심계를 자주 체크해야 한다. 다이빙 컴퓨터 역시 필수 장비다. 한번 오기 힘든 곳이라고 하루에 여러 번(3회 이상) 다이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다이빙 컴퓨터가 안전한 다이빙을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이빙을 마친 후 수면에서 강한 조류를 만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하며, 이때 다이빙 소시지는 다이브 얼럿보다도 위력적인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안전한 다이빙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장비를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 놓아야 한다. 장비는 철저하게 챙기고 이상 유무를 확인하여야 한다. 울릉도에서의 보트 다이빙은 파워보트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좁고 다소 불편하다. 특히 배가 정박해 있을 때는 배멀미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며 특히 전날 과음하는 것은 금물이다. 분명히 다음날 그 여파가 다이빙을 망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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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의 다이빙 포인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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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바위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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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두공, 삼형제 바위
행남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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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1번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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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2번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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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3번 포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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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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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정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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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선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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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 쌍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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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사진/ 신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