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대담
"우리시대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진정한 선비 작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중앙대문인회 위원”등의 문학 활동과 지도를 하시며, 소설, 시, 수필, 평론 등 문학전반에 다양한 장르의 원로문인”으로 정진, 결코 자신을 남들 앞에 내 세우지 않으며 남의 장점을 추켜주며 겸손하면서 낮은 자리에서 타인을 배려하는, 결코 티나지 않는 모습의
김광한 작가
대담 : 김시우(본지 특집위원.문학박사)
<김광한 작가의 사진(근영)>
“아시아문예” 2023 여름 호를 위해, 소설 백두대간 등 명작을 발표하셨고, 시와 수필 등 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하시며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중앙대문인회 임원으로 또한 일간 시문 등에 평론과 칼럼을 다년 간 기고해 오신 김광한 원로작가님을 모시고 아래와 같이 귀한 대담 시간을 가졌습니다.
1문 대담자 김시우 : 안녕하십니까? “아시아문예” 여름 호 특집대담에 응해주시어 감사를 드립니다. 대담에 앞서, 지난 수년간 국내외에서 창궐하던 팬데믹 코로나19로 많은 분들이 고통을 겼었는데, 김광한 원로 문인께서는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또한 이러한 세계적인 팬데믹(Pandemic) 시대에 살아가는 김 원로작가님의 소회와 가까운 가족 분들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김광한 작가님 : 우선 천학비재 [淺學菲才]한 저를 오직 나이만 먹었다고 불러주신 것 같아 송구스럽고 한편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별다른 큰 병 없이 이 나이까지 살게 해주신 하느님에게 감사드리고 저와 제 가족이 탈 없이 살게 한 주위의 모든 좋은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건강이란 운동을 많이 하거나 보약을 많이 먹는다고 유지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선천적이고 운명 같은 생각이 듭니다. 체격이 크고 건강해서 오래 살 것 같은 친구들이 사고나 급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볼 때 삶이란 어떤 섭리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지요.
2문 김 : 작가님은 8순을 바라보시는 연세이신데 최근의 개인적, 작가적 근황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문단의 원로로서 후배 문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조언이나 참고의 말씀을 주신다면?
김광한 : 요즘은 주로 도서관에 가서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시했던 책들을 빌려 읽고 있습니다. 5~6년 됐을까요. 일주일에 다섯 권정도 빌려 읽고 있는데 나이 탓인지 읽은 것이 오랫동안 기억에 저장이 되질 않아요. 독서란 역시 젊은 시절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분들의 좋은 내용의 글을 읽으면 그동안 제가 젊은 시절에 자신만만하게 썼던 글들이 참으로 부끄럽고 치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작에 독서를 많이 한 다음 글을 썼어야 할 텐데 글부터 먼저 썼으니 그 내용이 가벼울 수밖에 없겠지요. 글을 작정하고 쓰겠다는 분들은 먼저 글을 쓸 것이 아니라 남의 책들을 많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인간의 행동거지와 생각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타인의 경험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지요.
3문 김 : 작가님은 거의 평생을 소설과 시작을 해오시며 문인으로서 많은 활동을 해 오셨는데, 어떻게 소설가 혹은 문인의 길에 들어선 동기나 에피소드를 소개해주신다면?
김광한 : 배움과 그 실현에는 문과적인 것과 이과적인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이과는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학문이고 문과는 형이상학적인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력이 기반이 된 학문인데 제게는 그게 맞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전공도 국문학과를 택했지요. 그런데 제가 다닌 대학의 국문학과는 어학이 중심이 되어 문학과는 거리가 좀 있었어요. 그래서인지 문학을 하는 동기생들이 별로 없었어요. 나중에 어쩌다가 선배의 권유로 잡지사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글을 접했지만 잡지의 글이란 것이 문학과는 동떨어진 잡문 수준이었지요. 나이가 들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는데 그게 잘되질 않더군요. 잡지기사란 것이 남들의 피상적인 생활에 대한 것들이라 남는 것이 거의 없어요. 내가 쓴 나와 함께 남들과 생각이 공감이 가는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더군요. 30여 년 전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작가 이관용이 제게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배경이 있어야 한다면서 성기조 선생을 통해서 문단에 나오게 했어요.
4문 김 : 작가님은 젊은 시절부터 소설이나 문학 창작 활동을 해오셨는데 특히 문학의 세계를 이끈 큰 주제는 무엇인가요?
김광한 : 문학이란 글을 통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가능하면 그 생각을 많은 이들에게 전파해서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과 즐거운 영육간의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예술의 영역에 드는 모는 것들 그림과 음악 등도 마찬가지겠지요. 화가는 그림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과 영적인 기쁨을, 음악가는 음악을 통해서 영감을 많은 사람들에게 주고 삶에서 어떤 기쁨을 얻게 하는 것이겠지요. 물론 작가가 무엇을 어떤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주제가 다르겠지만 저의 경우는 <사랑과 평화>같아요. 지고지순한 사랑이 개인의 트릿한 물적인 욕심으로 망가지는 것을 바로 잡아 주고 함께 좋은 생각으로 평화스런 세계를 만들어 가자는 것이지요.
한평생 살면서 사랑과 평화 또는 인간의 구원을 주고 떠난 분들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한 방법이지요. 일테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나 아슈비치 수용소에 수용됐다가 남 대신 자신의 목숨을 바친 막시밀리언 콜베 신부, 또는 자신의 자식을 죽인 범죄자를 회개 시켜 입적시킨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인 손양원 한국의 목사님 같은 분들을 써 가면 스스로의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지요. 글을 통해 나쁜 영혼이 변해 가는 과정도 중요하지요. 그래서 문학인은 웬만해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는 거 같아요.
5문 김 : 작가님은 여러 장르에서 많은 작품 활동을 해오셨는데, 대략 몇 편의 소설이나 시를 쓰셨으며, 기타 작품을 발표하셨는지요?, 그리고 이 기회에 작가님의 역작 소설 『백두대간』에 대해서 작품 소개와 작가의 집필 동기, 반향 등에 대해서 피력해주신다면?
김광한 : 대략 20여권 정도 됩니다. 처음에는 주위의 특이하게 사신 분들 이야기 즉 신변잡기에서 시작해 좀 더 넓혀 종교적인 문제가 되는 소설 등을 썼습니다. 백두대간은 해방 전해에 나라의 구국을 위해 힘쓴 애국 선렬들 즉 백범 김구선생을 통해본 선렬들의 이야기를 장편으로 썼습니다. 당시 광화문에 독립유공자 유족회 회장인 김삼렬 선생이 백범 선생의 상해 임시정부 시절의 에피소드와 죽음을 써보라고 해서 1년여 동안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 사무실에는 생존해있는 애국자들과 후손들이 많이 방문했는데 그분들의 기억을 통해서 기록을 작성해 글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톨릭 신자였기에 성인들의 전기와 이에 따를 범상치 않은 이야기들을 썼습니다. 특히 한국의 천주교 창립시 중국인 신부 주문모의 순교를 썼지요. 프랑스 외방 전교회에서 조선으로 파견 돼 순교한 병인박해 때의 인물들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순교자 윤유일입니다. 지금 다시 읽으려니 창피해 얼굴이 화끈거려요.
6문 김 : 작가님은 소설가로서 또한 문인으로서 활동을 해오시며, 수상도 해오셨는데 이 기회에 그 수상한 실적과 내용을 소개해주신다면?
김광한 : 문예춘추 이양우 사부님이 보령 사무실에서 문예춘추 소설 문학상을 준다고 해서 사양했는데 그분이 이럴 때 상 받지 않으면 생전에 한 번도 못 받는다고 해서 받았지요.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문학회에 잘 나가질 않아서 수상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또 상 받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고... 20여 년 전에 열린 문학회에서 열린 문학상을 받은 기억이 나네요.
7문 김 : 작가님은 소설가로서 외길을 걸어오시며 또한 다양한 장르의 원로 문인으로서 활동을 해오시고 관련 문예지나 문학 단체들을 많이 지도, 협력해 오신 경험이 있으신데 우리 문단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문제점 혹은 나갈 방향 등에 대해 조언을 해 주신다면?
김광한 : 동작 문인협회에는 당시 구인환 교수님을 비롯한 장승기 시인 등 저명한 작가들이 많았어요. 거기서 모임에 참석해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중앙대 문인회 역시 쟁쟁한 선배들이 많아요. 임헌영 신세훈 선생이나 박정남 선배, 김윤경시인 같은 분들이 계시지요. 지도위원이라기 보다 매년 나오는 중앙대 문학이란 잡지에 소설 기고한 것 외엔 특별한 것이 없지요. 낫살 들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는 것도 보기 흉하지요.
8문 김 : 작가님은 소설 이외에도 다른 다양한 장르의 문학 활동을 해오셨는데, 이 기회에 그 참여 동기와 활동 내용 등에 대해 소개를 해주신다면?
김광한 : 문학이란 여러 곳 나대지 않고 혼자 사색하면서 쓰고 싶은 거 쓰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문학 집회에는 거의 나가질 않았어요.
9문 김 : 작가님은 항상 겸손하신 자세로 공부, 연구하는 작가님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3,000권으로 책을 대출하여 다독하신 것으로 유명하신데, 그 동기와 독서의 요령과 장점에 대한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또한 작가님이 읽으신 수많은 소설이나 시 작품 중에 특히 마음이 가는 소설이나 애송하는 자작시 작품 등에 대해 소개를 해주신다면?
김광한 : 그동안 많은 소설과 문학작품들을 읽었어요. 도서관 대출 서열로 보면 비록 동네 도서관이지만 나이가 제일 많고 많은 책을 빌려간 사람이라고 도서관 직원들이 기억해요. 그동안 대여한 책만 3천권이 넘어요. 많이 읽었다고 그 책의 내용전부가 뇌리에 입력이 되진 않지만 그래도 무슨 내용인 것인지 아는 것만도 작품생활과 함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한 몫 했지요. 어렵고 복잡한 논리적 사고를 요하는 책들보다 쉽게 쓰여 지고 추구하는 가치관이 올바른 내용의 책들을 주로 많이 읽었어요. 주로 인간의 영혼을 맑게 하고 상쾌하게 하는 것들이지요.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존 번연의 <천로역정>,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그리스인 조르바>, 댑 댄 브라운의 <천국과 지옥>, 앤더 슈삭의 <침묵.숙적>, 마스모도 세이초의 <일본의 검은 안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금각사.금색 >, 최근의 작품으로는 히가시노 게이코의 <나미네 잡화점의 기적> 등 여러 추리소설 등이 기억에 남아요.
10문 김 : 문인들은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정치현실을 본다면 문인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김광한 : 문인들은 자신이 쓴 글이 활자화되어 독자들에게 돌아가면 그 독자들은 문인들이 쓴 글에 절대적으로 신뢰를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문인들의 생각과 글이 바로 되어야하는데 자신의 속 좁은 지식을 기반으로 한 글들은 흥미가 있을지 모르나 대단히 위험해요. 그래서 문인은 항상 공부를 해야만 해요. 일찍이 신해혁명의 주역이었던 루쉰 같은 분은 원래 의사였지만 중국민중들이 하도 어리석은 자들이 많아 의사 직업을 버리고 글을 썼어요. <광인 일기> <아큐정전>등이 그것인데 장르는 소설 같지 만 수필이에요. 일찍이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된 스토우 부인의 톰 아저씨. 그리고 남북전쟁이 끝난 남부의 실의와 좌절을 희망으로 부활시킨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같은 소설은 그 영향력이 지대했지요.
문인들이 정치가 하고 싶거나 타의로 정치적 감투를 쓰는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아요. 최고의 가치가 문학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 그보다 하위인 정치에 투신한다면 그게 성공하겠어요. 이시하라 신타로란 소설가가 동경지사로 있는데 여간 평판이 나쁜지 않아요.
11문 김 : 소설가로서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문학의 장르 중 소설이란 무엇이며, 굳이 정의하신다면?
김광한 : 소설이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이야기 식으로 긴 글을 옮길 때 소설이라 하고 짧은 것은 시, 대화체로 된 것을 극작이라 하지요 그 목적은 같지만 표현의 방법에 따라 나눠지는 것 같아요. 소설은 유연한 사고를 가진 문학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써야한다는 생각이에요.
12문 김 : 김광한 원로문인께 보시는 문학이란 무엇인지? 작가님의 문학관은?
김광한 : 문학을 상품의 가치로 알고 어떻게 하면 많이 팔릴까를 염두에 쓰면 당장은 간혹 베스트셀러가 돼 물질적인 혜택은 받을지 모르나 지나고 나면 한심한 것 같아요. 주위에 그런 분들이 간혹 있어요. 베스트셀러 한권 내고 평생 책 한권 못내는 분들이 많아요. 문학이란 천천히 쉼 없이 사고를 단련해서 글로 남겨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13문 김 : 미래의 주인은 오늘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러나 엔(N)포 세대(사회ㆍ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젊은이들 중 상당수가 연애, 결혼, 출산, 집, 취업, 인간관계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는 것 등 n가지를 포기한 사람들을 부르는 신조어) 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문학과 인생의 선배로서 문인 후배 들이나,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실 인생의 철학과 경륜, 교훈 같은 것이 있으시면?
김광한 :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모든 만물 중에 선택받은 삶이에요. 이 삶을 즐겁고 보람 있고 황금 같은 시간을 만드는 것이 최고선인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좌절하고 순간적인 압박감에 자살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그러나 삶이란 긴 거예요. 긴 삶을 살다보면 좋은 일 궂은 일 다 많아요. 나이를 먹고 뒤돌아보면 그때 잘못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 것을 알아요. 그래서 옛말이 있지요. 인생의 높낮이는 살아봐야 안다고.
14문 김 : 작가님께서는 일본의 문학 작품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으신 것으로 이해하는데, 최근 논의되고 있는 한일관계의 선린우호를 위해서 문학과 문화계가 할 역할에 대해서 아울러 견해를 피력해주신다면?
김광한 : 일본의 문학은 명치유신을 빼 놓고 생각할 수가 없어요. 19세기 후반 일본의 메이지 천황 때, 에도 바쿠후를 무너뜨리고 중앙 집권 통일 국가를 이루어 일본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정치적, 사회적 변혁의 과정을 명치유신이라 하는데 이 당시 일본인 지도층이 한 일이 번역사업이었어요. 외국의 문학작품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조어 [措語]가 필요했어요. 수많은 외국 책을 번역해서 거기에 맞는 용어를 만들었어요. 일본의 문학이 한국보다 앞섰다는 것은 그만큼 외래 문학을 받아들인 결과에요. 이때부터 많은 일본인들이 책을 썼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 龍之介) 나쓰메 소세키(夏目金之助) 등이었지요. 한국의 당시 문인들은 일본 유학을 통해 이 글들을 접했고 여기에 작품을 만들었어요. 김래성 같은 분들이 그렇지요. 당시 현대 문물을 접하기 위해서는 일본유학을 통해서였지요. 음악 미술도 그래요. 일본은 당시 선진국이라던 프랑스 등에서 차용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한몽 즉 이순애와 심순애란 신파극도 일본의 금색야차(금빛 귀신)에서 차용한 것이지요.그래서 문인들은 일본의 문학을 섭렵할 필요가 있어요. 중세 유럽에서는 학문을 배우기 위해서는 수도원의 중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 현대 문물을 알기 위해서는 일본 유학을 가야만 했지요. 그렇다고 친일파는 결코 아니란 생각이에요
한일 관계는 서로 반목하지 말고 이해하면서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일본이 침략해서 강점기를 거쳤지만 역사는 기억을 하는 것으로 놔두고 현실은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북의 김정은 같은 악마가 있는 한 일본은 우방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거 같아요.
15문 김 : 100세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오늘의 건강관리법을 소개해 주신다면?
김광한 : 특별한 건 없어요 요란하게 때마다 약 먹고 좋은 운동한다고 건강이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16문 김 :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수많은 애국선열들과 어진 백성들의 피와 땀, 눈물로 오늘날의 번영된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특히 최근에 K-Pop 등 문화와 경제 부분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오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 노소 간, 이념간, 노사간의 갈등과 병리현상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정치적 문제점들이 야기되고 있습니다. 문인으로서 6.25 동란과 최근세사 격동기를 살아오신 원로로서 후배와 국민들에게 들려주실 문제 해결 방안이나 삶의 지혜가 있으시다면?
김광한 : 역사관이 올발라야 이 땅에 살면서 추구하는 목적이 명확할 텐데 역사를 왜곡하고 거짓으로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종의 범죄행위라 생각해요. 참으로 큰일 났습니다.
17문 김 : 오늘날 우리나라가 당면한 문제 중에는 전통적 가족 구조의 변화와 효(孝)문화의 쇠퇴로 인해 가정과 사회에서 패륜 범죄가 늘어가고, 도덕적 해이나 사회적 병리현상 등이 문제가 되고, 청소년들의 인성(인격)교육의 강화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또한 소위 저출산 풍조에 따른 국가적 인구절벽 시대를 맞아 가문의 절손, 농어촌 마을의 소멸 혹은 장기적으로는 국가의 소멸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의 예방 대책이나 해결방안으로서 문학의 역할이나, 전통적 효 정신의 회복에 대한 선생님의 고견과 좋은 말씀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광한 : 까마귀 하면 흉조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까마귀의 행위를 보면 우리 사람이 크게 본받아야 합니다. 까마귀가 오랫동안 살다가 어미가 노쇠했을 때 어미를 다시 찾아 봉양하는 것은 보통사람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까마귀의 효도를 보고 보통 말하는 것이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마귀의 효도를 고사 성어에서는 반포지효(反哺之孝)라고 합니다. 되씹어서 어미에게 주는 효의 교훈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젊은이들 가운데는 이런 까마귀만도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신문지상에 가끔씩 등장하는 실례를 보면 부모를 돈 때문에 살해하는 끔찍한 일들이 벌어져 이것이 과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때가 많아요. 예전에 대가족 때는 비록 가난했지만 인륜만큼은 존중해서 어른들 공경하는 것이 당연시했는데 요즘의 세태는 살벌해요. 이럴 때일수록 효문화를 발전 시켜 효에 대한 사상을 의무적으로 주입시켜 올바른 인간의 자세를 가르쳐 줘야할 때라 생각해요
대담자 김시우 : 바쁘신 중에 장시간 대담을 나누며 귀한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훌륭하신 원로문인 김광한 작가님께서 문학 작품을 통해 인간의 바른 도리를 선도하시며, 맑고 밝은 생각과 건강하신 몸으로 앞으로도 더 많은 명작이 나오기를 기원 드리면서 대담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축복합니다.
소설가 김광한
(프로필)
서울 용산에서 출생(1944년)
처 김재연과 사이에 3녀 외손주 4명
학력
서울 숭문 고등학교 졸업
중앙대 문과대 국문학과 69년 졸업
문학입문
성기조 선생의 추천으로 시와 시론 소설 당선
*<사진 제출 요망> : 개인 독사진, 가족사진, 시집, 수상, 시문학 활동 사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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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중앙대문인회 원문보기 글쓴이: 김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