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서
장석원
인간의 비명 고통의 편년체로 기록된다 오늘도
절규하는 세계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온 것
우리는 어리석고, 사랑은 더럽고, 마지막 사랑은 부끄러움도 부숴버리고
익사하려고 다짐한 고래처럼 돌아가겠지만, 사랑을 반복할 수 없다는 것 수긍하면서, 우리는
우리 곁으로 돌아온 바람의 턱에 어퍼컷을 날려보지만 우리를 데려가는 거대한 그림자 몸을 잃어버린 자는 바로 나
까마귀의 부리, 허공에서 벌어졌다 닫히는 아가리 잔인한 생멸 이별 우리가 겪었던 패퇴
책상 위의 머리카락 환형동물 같다
손발을 잘라낸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니, 노동해방? 아니? 우리 불발탄? 그럼 그럼
우리는, 우리를, 우리는 습관적 패배자, 끝끝내 사랑은 불가능? 해 해 해
—격월간 《현대시학》 2022년 9-10월호 --------------------- 장석원 / 1969년 충북 청주 출생.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 현재 광운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