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 심봉석 작시/ 신귀복 작곡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 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곤 하는 얼굴
내 마음을 흔들었던 음악이었고
지금도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느 악기보다 마음을 울리는 여성 합창단의 노래이다.
음악 미술 등 예능과목 때문에
평균점수가 깎였다고 변명을 둘러대던 중1때의 녀석.
부전자전이라고 음악 미술엔 젬병이인 나를 닮은 모양이다.
영어 수학이면 좀 가르쳐줄 수 있으련만 여의치 않아
앉은뱅이 용쓰듯.......그렇게 들춰봤었던 바로 그 음악책.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시절........아들 녀석의 지금이리라.
그런 호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을까.......아득하기만 하여라.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도는 얼굴들은 있다.
옛 친구들........
친한 친구는 무엇인가?
함께 울어줄 사람은 많지만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줄 사람은 적다.
따라서 친한 친구는 그대의 성공을 질투심 섞지 않고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다.
- 킹슬레이 워드
위의 말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벗이란 멀리 떨어져 있으매 오랜만에 만나면 반갑고,
만나지 못해도 전화 연락이라도 한번 오면 새삼 마음 포근하다.
진심으로 성공을 사심 없이 기뻐해줄 친구가 나는 몇이나 될까.
흠, 이건 거꾸로 생각해 보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의 성공을 질투심 없이 기뻐해 친구가 몇이나 될까.
가만히 생각하니 그런 친구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가 돈을 많이 벌었다거나 사회적 지위가 꽤 올라갔다면
내가 과연 질투심 하나도 없이 기뻐해 줄 수 있을까.
솔직한 고백으로 시샘이 나지 않을 수 없고
난 왜 그렇게 못했을까 자책을 하지 않을 리 없다.
내가 못된 심성을 가져서일까.
친구가 부자이면 내게 돈을 나눠주지 않아도 든든할까.
글쎄 이건 이렇고 그건 그렇다며 딱 잘라 말하기가 쉽지 않다.
W 이야기를 한번 적어보아야겠다.
W는 고교 동문이면서 대학을 같이 다녔다.
지리산 자락 산자수명한 고을 산청이 고향이다.
일찍이 공무원 지망생이었기에 행정고시에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한두 번 실패하자 급수를 낮추어 1982년 7급으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은 재정경제부이지만 당시엔 경제기획원에 근무를 했는데
광화문 종로1가 1번지 교보빌딩에 근무하던 나와 같은 하숙집에 기거를 했다.
효자동 한옥에서 둘이 걸어서 출퇴근했고 주말이면 가끔 같이 진주로 내려갔다.
둘 다 집에서 선보라는 성화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는데 신부는 삼천포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규수였다.
그때는 공무원과 사기업체의 봉급 차이가 제법 났다.
친구는 자기 월급이 적으니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노라고 했다.
게다가 부부공무원은 배우자의 근무지에 따라 전근이 가능했다.
이 친구는 동정을 자기 아내에게 바쳤다.
신혼여행을 가서 첫날밤 아내의 거시기를 못 찾아 그냥 포기하고 잤다고 한다.
그건 신혼여행 갔다 와서 효자동 인근에 하숙하던 고교 동창들을 모아서
술 한 잔 내면서 제 입으로 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그 때 얼마나 포복절도를 했는지...정말 믿기 않는 말이었다.
그 다음 날은 둘이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합궁을 했다고.
그 말에 신빙성이 있는 건 딱 한번 같이 홍등가엘 갔을 때의 사연 때문이다.
나와 W, 그리고 J.
셋의 공통점은 고교 동창, 제대 후 복학생, 촌놈...이런 거였다.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인천 어느 대학에서 개최하는 세미나에 가기로 했다.
학과장께 허락받아 학교에서 주는 여비로 친구들끼리 유람삼아 인천 나들이를 했다.
세미나야 그저 그런 게 아닌가...마치고 인천 구경을 좀 하다가 J가 제의를 했다.
"야, 인천하면 옐로하우스 아이가.
대구 자갈마당, 부산 완월동처럼........우리 온 김에 거기 구경이나 함 가자."
"어랍쇼...니 거기가 어딘지나 아나?"
"학익동이라고 들었다........군대에서 인천 짠물 졸병이 거기 죽인다더라."
"그래. 어차피 밤 열차 타고 내려갈 거니 함 가보자."
그래서 택시를 떡하니 타고 촌닭들이 옐로하우스로 몰려간 것이다.
밤이라 노란집인가 뭔가는 모르겠고 빨간 불빛이 그야말로 홍등가였다.
쇼윈도처럼 밖에서 안의 아가씨들을 볼 수 있었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화대가 얼마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도 구두 한 켤레 값이었지 싶다.
차비 별도로 두고 돈을 모으니 한 명분 밖에 안 되는 돈이었다.
그래서 내가 J를 따로 불렀다.
W가 아무래도 총각딱지도 못 뗀 거 같으니 우리가 양보하자.
J도 흔쾌히 동의해서 W를 밀어주기로 했다.
쭈뼛쭈뼛 싫다고 손 사레를 치는 W를 아가씨 방에 넣은 건 J의 한마디였다.
"야, 너 할 줄 모르지? 그럼 비켜, 내가 할게."
자존심이 강한 W가 그 말을 듣더니 발끈했다.
"뭐라꼬. 내가 와 그걸 못 하노.......자슥........날 뭐로 보고."
그렇게 W는 아가씨와 방에 들어가고
J와 나는 포주 아줌마와 쇼윈도 옆 의자에 앉아
어디서들 왔소.......저기 남쪽에서요.......총각들도 함 하지.......싸게 해주께........
외상으론 안 될까요.......아따 언제 봤다고, 단골이면 몰라도........
그런 이야기들을 하며 노닥거리는데 이친구가 도무지 감감무소식인거라.
한참 뒤에 W가 나오는데 뭔가 낌새가 좀 이상해서 J와 내가 W에게 물었다.
"야, 했어?"
"........"
"그럼 안 했나?"
"음...그게........말이야."
J가 발끈했다.
"그러게 내가 한다고 했잖아.......아, 자슥........돈이라도 도로 돌려달라고 해야겠다."
포주 아줌마에게 친구가 안 했다니 환불 좀 해주이소 했더니 무슨 소리냐고 펄쩍 이다.
환불 그런 건 모르겠고.......안했으면 지금이라도 들어가서 하라는 게 아닌가.
그것도 멀리서 왔다니 특별히 봐주는 거라며.
할 수 없이 J와 내가 가위 바위 보를 했다.
이기는 넘이 대신 가서 하기로 했는데 웬걸........J가 이겨버렸다.
젠장........입맛만 쩝 다시는데 대타로 간 J는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쫓겨나온 것이다.
그런 게 어디 있냐는 것이다.......아무리 화대 받고 하는 짓이지만 하룻밤 낭군도 낭군인데
이사람 저사람 아무나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독하게 쏘아붙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다시 포주 아줌마에게 사정을 했다.
아지매, 반이라도 어떻게 환불이 좀 안될까요.........하고.
그랬더니 포주는 이런 스토리를 미리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심드렁하게 하는 말,
"방법이 있나........아가씨가 싫다는데........"
아 cba........뺑 돌 지경이었다.
한번 하려다 못해서 더 성질 오른 J가 꽥 소릴 질렀다.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안 한 게 명백한 데 반도 안 돌려주면 되냐고.
허리에 손 올리고 눈 똑바로 뜨고 항의하니 한 옥타브 더 높은 포주의 대거리.
"이것 봐 총각들, 극장에 표 끊고 들어갔다 영화 안보고 나온다고 돈 돌려주나?"
"표 끊은 건 아니잖아요."
"아따, 참 귀찮게 하네. 말하자면 그렇다는 거지........낸들 어쩌노....."
"그래도, 좀 봐 주이소........"
잠시 후, 뭐야 어떤 놈들이야........하며 어깨 몇 놈이 골목에서 나타나는 게 아닌가.
어 어.......큰일 났다.
야 야, 뛰어.......도망가자........그렇게 헐레벌떡........셋이서 줄행랑을 놓았다.
그넘들은 조금 따라오는 듯 하다가 사라졌고.
얼마나 달렸는지 몰라, 어느 모퉁이에서 숨을 몰아쉬며 촌놈 셋은 기진맥진.
휴대폰도 없던 시절, 그나마 한 방향으로 뛰어 안 흩어진 게 다행이었다.
내가 W에게 물었다.
"어이, 니 그라모 그 시간 동안 아가씨랑 도대체 뭘 했노?"
"그냥.......고향이 어디고........그런 거 물어보고........."
J가 한심하다는 듯 빈정댔다.
"니 거기 호구조사 하러 갔더나?""
"그기 아니고.......이런데 있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지금은 국채은행 지점장인 J가 덧붙인다.
"얼씨구, 무슨 목사나 신부 같은 설교를 했단 말이가.......생돈까지 줘 가며.""
W는 그런 친구였다.
그 친구 부인은 십여 년 전 교통사고를 당해 15개월을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죽었다.
장례식 날 지리산 자락 장지에서 많은 친구들이 모였었지.
38살 한창 나이에 세상을 떠난 권 선생의 명복을 빈다.
딸 아이 한 명 소생이 있는데 엄마의 대를 이어 초등학교 교사라고 한다.
친구는 와이프 사후 다른 부처로 옮기고 지금도 대전에서 혼자 산다.
한번인가 재혼 비슷한 걸 했었는데 얼마가지 못했노라고.
혼자 지낼 때 술이 많이 늘었고 술만 마시면 죽은 아내 이야길 했다니
그걸 참고들을 여자가 대한민국에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은 서기관이고 부이사관을 바라보니 사회적 지위는 꽤 되지만
아내의 빈자리가 아직도 크기만 하다.
나름대로 재테크도 잘 하고 부인의 사고 보험금도 상당하여 재산은 꽤 된다.
그렇지만 가끔 통화하는 중에 하는 말은
니가 부럽다........고 한다.
이 친구 정도는 내가 그래도 시샘 접고 성공과 재물 운을 봐 줄만하다.
그건 아내를 떠나보낸 친구에 비해 내 아내가 건재하기 때문일까.
배경음악으로 넣은 음악은 친구 W의 애창곡이기도 하다.
아내와의 옛 추억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라고.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아내 얼굴.......
세월이 한참 흘렀는데도 잊지 못할 얼굴이리라.
무심히 시간은 흐르고 돌아보면 아득하기만 한 세월이다.
다시 한 번 플레이 버튼을 눌러 그 노래를 듣는다.
첫댓글 곰이야~~ 나는 똥글똥글 내친구가 생각난다~~지금 설에 와있어~~ㅎㅎ
설에 왠일이래... 배추 보러왔던 나 있는곳을 지나서 갔나벼...
난 이노래 들으며
동그라미 그려놓고
그 안에 그 소녀이 이름을 빽빽히 다 채웠지... 거의 날마다.
상사병 걸릴뻔 했구먼..
아랫집 한 살 아래 단발머리 소녀..
갸 언니가 내 초딩동창 동갑이니 우리 카페에 있는지도 몰라...
나의 예전 다음닉이 동그라미 였제~~ 지금은 국제화에 동승하고져 라운드 라고 닉을 개명 했지만 ..
그래 잘지내고 있제 항상 즐거운 일만 있기를 바라고 위에 양배추 말이야 좀 독에다 절궈 놔바 .캬캬캬...^^*
비오느날 그친구는 이노래들이면 슬프겠다..